-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이나 구조물을 세우거나 설계하고 만드는 기술이나 건축물.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은 모더니즘으로서의 근대 건축이 아니라, 개항 이후에 유입된 서양식 건축 양식을 근간으로 하는 외래 건축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 유입된 근대 건축은 주로 개항장인 부산, 원산, 인천에서 이루어졌다. 부산과 원산이 주로 일본식이나 일본 의양풍(儀洋風) 건축물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절터. 길마사는 문학산 동쪽 자락의 길마산 중턱에 있었던 절이라고 하나 현재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조선 시대 각종 문헌 자료에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어 창건과 폐사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1949년 인천시립 박물관의 조사에서 2단에 걸쳐 고른 땅에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고...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근대의 한옥 주택. 문학동 376-4 주택은 문학동 우체국에서 학익동 방향으로 약 100여m 진행하다 남쪽 문학산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골목 안쪽, ‘가마솥 손두부’라는 음식점이 있는 건물이다. 문학동 376-4 주택은 규모가 상당히 큰 근대 한옥으로 ‘ㅁ’자 형태를 하고 있다. 191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연면적 132.2㎡ 규모로서 벽...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고인돌. 인천광역시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유적으로는 간 돌도끼, 간 돌살촉, 반월형 돌칼 및 토기 조각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역시 고인돌 떼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지역 외에 원인천(原仁川) 지역인 학익동에 7~8기, 주안동에 2기, 문학동에 1기가 조사·보고되었지만 현재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건 학익동 고인돌 2기, 주안동 고인...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절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의 문학산 북쪽에 있었던 절터라고 하나 현재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조선 시대 각종 문헌 자료에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어 창건과 폐사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1949년에 인천 시립 박물관의 조사에서 백자 향로 1점과 분청 상감 국화문 접시 편 2점, 토...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산 정상에 있었던 봉수의 터. 봉수란 봉(峰)과 수(燧)로 급보를 전하던 고대의 통신 방법으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불빛과 연기로 신호를 전달하던 것이다. 야간에는 횃불이 잘 보이지만 주간에는 잘 보이지 않아 대신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대략 3,927m[10리]마다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었다. 문학산 봉수(文鶴山 烽燧)는 문학산 마루에 높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문학 산성의 건립 연대는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잘 알 수 없다. 다만, 문학 산성 안팎에서 삼국 시대 백제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으며 문학산 동쪽 구릉 지대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문학산 일대에 청동기 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며, 문학산 주변에서 초기 백...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사진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옛 인천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그 기원은 백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관교동과 문학동을 중심으로 인천도호부 관아와 인천 향교가 있던 곳으로 선비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문화·예술은 상당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부용사는 1930년 승려 만성이 지은 작은 암자로 시작하여 부용암, 부용 선원이라 불렸다. 부용사는 1957년 나한전, 1979년 법당을 중건하였다. 부용사는 2018년 현재 대웅전, 요사채, 응진전 등의 건물이 있으며, 주지는 연경이다. 부용사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수봉 공원에 위치한 인천 최초의 비구니(比丘尼)[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우리나라 불교는 삼국 시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신앙과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면서 발전하였다. 삼국 중 불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전진(前秦)의 순도(順道)에 의해 불교가 공인되었다. 그러나 이미 유학이 유입되고 교육 기관인 태학이 성립되어 있어 불교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승려와 신자들이 거처하면서 불도를 닦고 교리를 설파하는 건축물 혹은 건축물 소재 영역. 불교 사찰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의 상가라마(Sañghãrãma)이다. 교단을 구성하는 비구(比丘)[남승]·비구니(比丘尼)[여승]·우바새[優婆塞][남자 신도]·우바이[優婆夷][여자 신도]의 사중(四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한국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서광사는 1947년 김고암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법화종 소속 사찰이었으나, 1970년 태고종으로 종단을 변경하였다. 서광사의 신도 수는 1,000여 명이다. 2018년 현재 서광사에는 1985년 건립한 목조의 관음전(觀音展)과 1995년 8월에 조성한 석조의 미륵불, 근래 조성한 와불전(臥佛展), 콘크리트 구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의 서광사 안에 있는 박물관. 서광사 사리 박물관은 누구나 쉽게 사리를 보고 접하며 불심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 부처와 제자들의 사리와 사리 장엄구를 전시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2002년 10월 16일 개관한 박물관으로, 전시·소장된 사리는 서광사 주지인 김영웅[경봉(鏡峯), 지환(智幻)]이 미얀마에서 국내로 들여온 것들이다. 총면적은 49.5㎡[15...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백성들이 관직에 있던 자의 은혜와 덕을 기려 세운 비(碑). 일명 선정비(善政碑)·유애비(遺愛碑)·공덕비(功德碑)라고도 한다. 지방 수령 등의 관직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을 때 백성들이 비를 세워 그 덕을 기리는 것이다. 해당 사실을 심사하여 왕의 칙령으로 허가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세울 수 있었다. 송덕비는 주로 관아 근처에 사람이 많...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는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수도사는 1967년 7월 24일[음]에 승려 김혜운(金慧雲)에 의하여 창건되었고, 1978년에 재단 법인 불이원 수도사(不二院修道寺)를 등록하였다.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로서 신도 수는 1만 3000여 명에 달한다. 2018년 현재 수도사 경내에는 대웅전, 삼천불전(三千佛殿), 극락보전, 칠성각, 추모관 등의 건...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위치한 해방 전후의 건축물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6번지 일대에는 1960년대에 증·개축을 거듭하여 상업 건축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구조 형식으로 보아 해방 이전의 건물로 추정되나, 당시 이 일대가 모두 논과 밭이었다는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해방 이후의 건축물로도 추정할 수 있다. 인근 주민들의 말이 일치하지 않고 정부 기록에도 나와 있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8-22번지 일대에 있는 근대 주택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8-22번지 주변 일대에 조금씩 남아 있는 집합 주택들이다. 이 건물들은 조선 알미늄의 사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8-22번지[미추로 19번길 10-11] 일대이다. 대체로 일본식 주택인데, 바닥의 다다미를 나무 마루로 개조한 것 이외에는 개조 및 증...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42번지 일대 밀집해 있는 일제 강점기 관사. 숭의동 42번지 일대 집합 주택군에는 주로 나가야[長屋] 주택이 많다. 나가야 주택이란 한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밀집해 거주하는 일본식 다세대 주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변 공장 지대의 종업원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위의 건물들이 이와 비슷한 덧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주변에 공장...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절터. 문학산 서쪽 자락의 연경산 중턱에 있었던 절터라고 하나 현재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조선 시대 각종 문헌 자료에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어 창건과 폐사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1949년 인천 시립 박물관의 조사에서 출토된 와편을 통해 고려 시대의 절터로 추정하고, 30...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는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연화사(蓮花寺)는 1965년에 창건된 사찰로 창건 당시는 법화종(法華宗) 소속의 사찰이었으나, 2004년 승려 무각(無覺)이 부임하면서 태고종 소속이 되었다. 연화사의 신도회는 관음회를 중심으로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있으며, 총신도회를 중심으로 무료 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로 관음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영산 정사는 1976년 6월 1일 승려 박정우와 학부형 10여 명이 인천 지방의 불교 청소년들의 교화를 위해 불교 청소년 단체 전용 법당으로 창건하였다. 현재는 일반 대중의 교화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8년 현재 콘크리트 구조의 3층 건물에 법당, 요사채 등이 있다. 현재 주지는 종호이며 신도 수는 400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의 창고 건물. 용현동 415-23번지 건축물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용현 사거리 물텀벙이 거리로 들어서 서쪽 방향으로 하나 교회를 지나 20m 진행하면 나오는 용현 2동 주민 자치 센터 옆에 있는 건물이다. 일본에서는 진흙을 다져 벽과 구조물을 만든 창고들이 화재에 잘 타지 않는 점에 착안하여, 쿠라츠쿠리(藏造り)[일본 고건축...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조선 주택 영단(朝鮮住宅營團)에서 1940년대에 건설한 영단 주택. 영단이란 국가의 정책에 따른 공익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정부와 민간인이 각각 반 정도씩 자본을 대어 설치하는 특수 재단을 말한다. 용현동 조선 주택 영단은 미리 계획된 것처럼 비슷한 규모와 형태의 건물이 열을 지어 늘어선 것이 특징이다. 한 골목만이 아닌 꽤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수원을 연결하는 협궤 철도인 수인선의 용현역이 있던 자리. 수인선은 1937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경기도 수원을 연결하는 협궤 철도였던 수여선을 인천까지 확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궤 철도이다. 수인선은 수원에서 인천까지 총 52㎞의 구간에 17개의 정류장을 설치하였다. 당시 열차를 타고 수원에서 인천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으며 17개의 정류장 중 10...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1950년에 청신녀(淸信女) 정금강심이 기린산 남측 주안 신사 터에 용해사(龍海寺)를 창건하였고, 1955년 승려 정전강(鄭田岡)을 조실로 추대하고 용화사(龍華寺)로 개칭하였다. 1961년 용화 선원(龍華 禪院)으로 개칭하여 참선 도량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68년에는 용화 선원을 중건하였다. 1975년 정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던 조선 시대 국왕의 안위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제단의 터. 원도(猿島)는 낙섬이라 불리던 인천의 섬으로 여기에는 조선 시대 왕의 안위와 백성의 안녕을 위하여 악해독(嶽海瀆)[나라에서 신성하게 여겨 제사를 지내던 큰 산과 바다와 강] 등의 산천에 봄, 가을로 제사하던 곳의 하나이다. 원도의 제사는 지방 관아에서 주재하는 주현제(州縣祭)가 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조선 시대 인천 부사 및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들의 선정비군. 선정비(善政碑)는 일명 송덕비(頌德碑), 유애비(遺愛碑)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관직에 있는 사람이 백성들에게 은혜와 교화를 끼쳤을 때 이를 기념하고 칭송하는 의미에서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송덕비는 주로 관아 근처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나 고개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 산재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천 향교에 세워져 있는 조선 후기 비석. 하마비는 신성한 장소에 출입할 때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의미에서 세운 일종의 경계비로, 말을 타고 그 장소를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또 임금이나 성현들의 출생지, 무덤 앞에 세워 놓기도 하였다. 인천 향교 하마비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의 감리교회. 인천 은혜 교회는 불신자를 전도하고 영감 있는 예배와 역동적인 소그룹 안에서 양육하고 파송하여 가정과 세상을 살리는 생명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를 이루고자 설립되었다. 1956년 6월 3일에 삼농원 교실 한 칸을 빌려 12명이 김영숙 전도사의 인도로 삼농원 교회 창립 예배를 가졌다. 1962년 5월 30일에 삼농...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조선 시대 국립 교육 기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인천 향교의 설립...
-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자는 치은(稚殷), 호는 현계(玄溪) 또는 청서(靑墅)이다.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의 문인인 영서(穎西) 임로(任魯)의 아들이다. 임익상(任翼常)[1789~?]은 1789년(정조 13)에 태어났으며, 1835년(헌종 원년) 음사(蔭仕)[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우량의 영정. 정우량(鄭羽良)[1692~1754]은 조선 숙종(肅宗) 때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낸 정수기(鄭壽期)의 장남으로, 호는 학남(鶴南)이며 본관(本貫)은 영일(迎日)이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합격한 후 대사성, 좌승지, 이조 판서, 우의정을 역임했다. 그의 글씨로는 개성의 계성사비(啓聖祠碑)...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있던 고인돌. 인천광역시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유적으로는 간돌도끼[마제석부], 간돌화살촉[마제석촉], 반월형 돌칼[석도] 및 토기 조각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인 역시 고인돌 무리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지역 고인돌 외에 원인천(原仁川) 지역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일곱~여덟 기, 주안동에 두 기, 문학동에 한 기가 조사·보고되었지만,...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철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어 쓴 시대. 고고학에서의 시대 구분은 19세기 덴마크 국립 박물관의 C. J. 톰센[1788~1865]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1836년에 간행된 덴마크 국립 박물관 안내 책자에서 무기와 도구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 도구에 따라 돌, 청동, 철의 순서로 계승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후 그의 제자인 V. 보르사에[1821~1885...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에 있는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청룡사(靑龍寺)는 일제 강점기에 양봉상이 창건하고, 1949년에 중건한 태고종 사찰이다. 2018년 현재 청룡사 경내에는, 창건 당시의 모습이 전면에 남아 있는 목조의 대웅전 1동과 콘크리트 구조의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신도회인 청룡회[수봉회]가 사찰 운영과 불우 이웃 돕기, 기도 법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주지는...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서 출토된 임오군란 당시 주한 일본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일행의 탈출을 기념하는 비.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주한 일본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모토[1842~ 1917]는 인천을 거쳐 일본으로 탈출하였다. 하나 공사 일행 조난지비는 탈출하기 전 인천도호부 관아에 잠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34년경 발견지 부근에 세워졌던 것으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사찰 터.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학림사라는 절의 터이다. 1945년 5월 조사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명문을 통해 1317년(충숙왕 4)에 중수되었던 사찰로 보고 있다. 학림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등에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그 변천 과정은...
-
고려 시대 인천광역시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학림사(鶴林寺)의 터에서 출토된 유물. 학림사는 1945년 5월 조사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명문(銘文)을 통해 1317년(충숙왕 4)에 중수된 사찰로 보고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등에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그 변천 과정은 알 수 없다. 학림사지 출토 유물들...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 인천 소년 교도소 관사 건물. 학익동 15-12 주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소로13번길 12-15[학익동 15-12]에 있던 인천 소년 교도소의 관사 건물로서, 이 건물 외에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주변에 관사 건물이 많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학익동 15-12 주택의 양식은 일본인들이 네덜란드 주택의 영향을 받아 지은 화란식...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고인돌. 인천광역시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유적으로는 간 돌도끼, 간 돌살촉, 반달형 돌칼 및 토기 조각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인 역시 고인돌 떼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지역 외에 옛 인천의 중심지였던 원인천(原仁川) 지역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7~8기, 주안동에 2기, 문학동에 1기가 조사·보고되었지만, 현재 그 현상을 파악할 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었던 조선 시대에 판의금부사를 지냈던 홍우순의 신도비. 홍우순(洪祐順)[1791~186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호는 성산(城山)이다. 성산이라는 호는 문학산의 별칭인 성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816년(순조 16) 진사과에 급제한 이후 관직에 나아가 강원도 관찰사,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거쳐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었던 인천의 독립운동가 홍진(洪震)의 묘비. 홍진 묘표라고도 한다. 만오(晩悟) 홍진[1877~1946]은 충청북도 영동군 태생으로 대한제국 시절 한성 평리원 검사, 충청 검찰청 검사를 역임하고 3·1 운동 후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 정부 법무 총장, 내무 총장, 의정원 의장, 국무령을 역임하였다. 또한 1928년 김구(金九)[1876~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