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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일명 신기촌 일대에 있었던 큰 연못. 조선 시대 발간된 여러 종의 인천 지지(地誌)자료를 살펴보아도 대제(大堤)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천 조에 ‘대지(大池)’가 소개되어 있고, 그 풀이에 ‘대(大)는 방언의 한(韓), 한(漢), 한[干]과 음과 뜻이 같다’라 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여지도서(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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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에서 토지와 곡식을 맡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터. 사직단(社稷壇)은 종묘(宗廟)와 함께 나라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조선의 사직단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에 있는 사직단은 국가에서 건립한 것으로 1394년(태조 2) 현재의 자리에 세운 것이다. 규모는 단을 2개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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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수리봉에 쌓았던 성터. 18세기 중엽 간행된 『여지 도서(輿地圖書)』에 “동문[문학 산성]밖 100여 보에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기 위에 왜성(倭城)의 터가 남아 있다. 왜군이 성을 공격할 때 머물렀던 곳이다.”라는 것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이다. 임진왜란 당시 인천 부사 김민선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문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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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출신이거나 연고를 둔 자로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여자. 열녀(烈女)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열부(烈婦), 절부(節婦), 절녀(節女), 정녀(貞女)로도 불린다. 열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 진평왕 때의 설씨녀(薛氏女) 이야기, 백제 개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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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는 인천도호부에 설치된 지방 군사 조직. 조선 전기에는 함경도·평안도 등의 북방 국경 지대는 군익도(軍翼道) 체제로 국경 방어에 임하였고 그 밖의 남방 지대는 연해(沿海) 요지에 진(鎭)을 설정해 영진군(營鎭軍) 혹은 기선군(騎船軍)을 두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반면, 내륙 지방은 모든 지방 수령에게 병마직(兵馬職)을 겸하게 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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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세거하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사람들이 모여 이룬 마을. 집성촌(集姓村)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마을을 가리킨다. 집성촌은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 이미 형성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촌락을 형성한 것은 17세기 이후로 보인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경우에는 인천 이씨, 부평 이씨 등 인천을 본관으로 둔 성씨들이 고려 시대부터 등장하므로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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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출신이거나 연고를 둔 자로서 국가와 왕을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문학산 주변에서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 청동기 시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시대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와 연고를 갖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박약하여 충신을 살펴보기 어렵다. 다만, 『인천부 읍지(仁川府 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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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유교의 도리 중 하나로 충과 함께 중요시하였다. 가계(家系)의 연속을 중요하게 여긴 전통 가족 제도 아래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자 관계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