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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용을 시조로 하고, 신영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고령신씨(高靈申氏)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은 고려시대에 문과에 급제,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다. 그의 선계(先系)는 신라의 공족(公族)으로, 누대에 걸쳐 고령(高靈)에 세거(世居)하면서 호장(戶長)을 지냈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고령으로 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에 예의판서(禮儀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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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금석문. 조선 후기 명신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1646~1715]은 남구만(南九萬)과 박세채(朴世采)의 학문을 이었으며, 현종·숙종 대에 고위 관료로 활동하였다. 만년에 낙향하여 금곡에 태극정(太極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금곡리 옥천병자(琴谷里玉川屛字)는 그와 관련된 유적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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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부락에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금한동 천제는 초평면 금곡리 악세봉 산허리의 천제단(天祭壇)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하늘의 신께 드리는 마을 제사이다. 이를 금한동 천신제, 금한이 천제라고도 부른다. 300여 년 전부터 마을 고유의 의식으로 매년 정월 초에 봉행했던 금한동 천제는 주민들이 고령화된 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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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변신의 묘소. 변신(邊信)[1570~1643]의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군실(君實)로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광해군 통치 때 낙향하여 지내던 중 인조반정 공신 이귀(李貴)의 부름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후진 양성으로 만년을 보냈다. 변신의 묘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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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변화를 일으키거나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집단적으로 전개하는 일체의 행동. 진천군의 사회운동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곧 시대를 관통하는 격동기에 펼쳐진 역사·정치·경제 등의 제 분야를 포괄한 당대의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로 자발적, 집단적으로 일어났다. 근대기 진천군 내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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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상산벼루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상산벼루 전설」은 1999년에 발간된 『상산문화』5호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한양에 있는 재상집에서 진천의 한 선비에게 진천의 명물로 알려진 상산벼루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진천의 선비는 얼마 후 좋은 벼루 한 개를 값을 많이 주고 구한 뒤에, 걸음이 잽싼 이웃 사람에게 노자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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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터. 소강정(小江亭) 터는 진천읍 신정리 소강정마을 백곡천 변에 있다. 마을 사람들이 유원지로 이용했던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곳에 있던 정자 터를 가리킨다. 백곡천의 옛 이름은 세금천으로, 이 세금천의 절벽 위에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이 정자를 세웠다고 전한다. 창건과 관련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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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 중방마을에 위치한 신상우 추모비. 신상우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문박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학에 심취하였고 성년이 되어서는 성리학에 입문하여 주기론 연구에 전념하였다. 진천군 이월면 은구리 처가로 이주하였다가 덕산읍 산수리 중방동 효자촌으로 이주한 뒤, 신상우의 학풍을 알고 모여든 문하생이 100여 명에 달하였다.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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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 원장관부락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원장관 산신제는 원장관부락 서편에 있는 상산(常山) 중턱에서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이를 산제사 또는 산제라고도 한다. 산신제는 마을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나 행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제관을 선출한다. 산신제일로부터 3~4일[음력 정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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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발생한 남·북한 전쟁 시기에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개된 7월 7일~10일의 싸움. 좌익과 좌우 합작파의 반발 속에서 출범한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는 경제난까지 겹쳐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까지 일어나고 지리산과 태백산 일대에는 1950년 봄까지 좌익 게릴라 활동이 계속되어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치달았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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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충청북도는 역사적·지리적으로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개신교 초창기부터 각 선교부의 선교 거점이 되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충청북도 지역 특히 청주 지역에는 장로교를 비롯한 감리교·침례교 선교사들의 간헐적 왕래를 통한 순회방식의 전도가 추진되었다. 순회방식의 전도란 결국 도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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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서 일어난 전투. 6·25전쟁을 도발한 북한군 주력부대는 6월 27일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하여 7월 3일 한강 방어선을 뚫고, 경부국도를 따라 남진하는 한편 경부국도 동쪽으로는 북한군 제2사단이 국군 제6사단 제19연대를 밀어제치고 이천, 장호원, 진천을 향하여 남진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의 이른바 제3차 침공계획을 보면, 중부 서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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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 또는 지비자(知非子). 증조할아버지는 채흥선(蔡興先)이고, 할아버지는 채정간(蔡廷侃)이다. 아버지는 진사 채진형(蔡震亨)이며, 어머니는 김몽정(金夢禎)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아버지 채진형이 우거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이 가문의 근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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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보를 시조로 하고, 오유종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해주오씨(海州吳氏)의 시조 오현보(吳賢輔)는 모든 오씨의 도시조인 오첨(吳瞻)의 24세손이며, 중시조인 문양공(文襄公) 오연총(吳延寵)의 6세손이다. 그는 1216년(고종 3) 두 형제 오현좌(吳賢佐)·오현필(吳賢弼)과 함께 거란군 토평에 공을 세워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지고 해주오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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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35년간의 일제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해방 후 국제정세는 우리민족의 자유로운 국가건설을 어렵게 만들어갔다. 일본을 패망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를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