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숙(聲叔), 호는 청해(靑海). 강난수(姜蘭秀)는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대장 유인석(柳麟錫)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재정을 담당하였다. 1896년(고종 33) 3월 박종문과 함께 단양에 있는 역토(驛土)에서 도조를 거두는 일을 하였고, 청풍의 오산(伍山) 쪽에 주둔하던 이강년(李康秊...
-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
개항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전형적인 산간 고을이었던 제천은 근대를 거치면서 항일 의병의 본산이 되어 탄압을 받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저항 운동을 경험하였다. 경제면에서는 밭곡식을 주로 재배하였는데 점차 담배 재배 등 수익성 작물의 재배 비중이 높아졌다. 또한 철도·도로 등 산업 기반 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침탈...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과 이범윤 의진의 의병. 김교헌(金敎憲)[?~1908]은 단양군 영춘 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관료이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전군장인 정운경(鄭雲慶)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다가, 후에는 제천 의병을 치러 오는 관군이 출동하였을 때 원주 신림 쪽을 방어하는 파수장으로 임명...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성홍(聖洪). 남필원(南泌元)[1856~?]은 강원도 영월군 출신으로 제천 장담에서 유중교(柳重敎)의 가르침을 받은 선비이다. 단발령 이후에 호좌의진의 영남 소토장 서상렬(徐相烈) 휘하의 소모중군을 맡아 영남 지역에서 의병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그 후 영월군 상동면장을 역임하다가 1905년 원용팔(元容...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만초(萬初)[?~1907]는 성을 알 수 없다. 겸동(傔童)이라고 부른 점으로 보아 이강년(李康秊) 의진 중군장 김상태(金尙台) 집안의 하인으로, 의진에서 심부름을 하던 소년으로 짐작된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봉기한 이강년 의진은 제천에서 유인석(柳麟錫)의 의병과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의병 부대는 1907년(순종 1)...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관여(觀汝), 호는 회당(悔堂)·학림(鶴林). 박정수(朴貞洙)[1859~1917]는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난 화서학파의 선비이다. 영월의 주천면 금마리, 단양의 석교, 제천의 청풍 등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장담의 선비들이 모여 처신 방법을 두고...
-
천등산 아래 자리한 공전리는 주포천[일명 공전천]이 마을 전체를 휘돌아 흐르는 아늑한 산골 마을이다. 공전리에서 지방도 38호선까지 이어진 길은 예전에는 우마차조차 다니기 어려운 소로(小路)였다. 공전삼거리에서 구불구불 좁은 오솔길을 따라 마을까지 들어오려면 도보로 1시간 남짓 소요된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고갯마루는 일제 강점기 순사들의 발길도, 6·25 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은(景殷·敬殷), 호는 경암(敬菴).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한 무인 출신이다.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나아갔다가 이후 제천으로 낙향한 뒤 장담마을로 이주하여 유중교(柳重敎)...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자유(子由). 서상철(徐相轍)[1860~1896]은 청풍의 국사봉 아래 안간이마을에 살았다. 장담에서 유중교(柳重敎)가 주관하는 강회에 참석하던 보수적 유생으로, 1894년(고종 31) 가을 안동향교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접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청풍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패배한 후에 은거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성문(聖文), 호는 옥파(玉坡). 원규상(元圭常)[1868~?]은 제천시 봉양읍의 공전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할 때 전투 부대 중 하나인 좌군을 이끄는 좌군장으로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충주에서 돌아와 제천을 중심으로 방어전을 벌이던 1896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의병론자.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운거(雲居), 호는 치당(恥堂). 원용갑, 원용대, 원용일, 원용현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의병 운동을 펼쳤다. 원도상(元道常)[1848~1937]은 영춘의 보발마을에 살던 유학자이다. 재산가이었지만 배일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인근의 의병 지도자인 정운경(鄭雲慶)·장익환(張益煥...
-
1895년에서 1911년 사이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을미년[1895년] 말의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한 이래 1905년(고종 42)의 을사의병, 1907년(순종 1)의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에서는 의병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895년(고종 32)에 있었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정병철(鄭炳喆)의 자는 수봉(壽鳳)이다. 평민 출신의 의병으로 능력을 크게 인정받은 경우이다. 단발령 이후에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방에 소토장으로 파견한 서상렬(徐相烈)의 휘하에서 중군 참모로 활동하였다. 좌부장(左副長)으로 제천 본진과 연락을 담당하였고, 조령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유격장 이강년(李康秊) 휘하에서 부총(副總...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조후룡(趙後龍)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의 대표적 평민 출신 의병이다. 중군 안승우(安承禹) 친척 집안의 하인이었다고 하는데, 수안보 전투에서 이춘영(李春永)이 전사하였을 때 배시강과 함께 시신을 운구해 왔다. 후에 안승우의 지시를 빙자하여 김백선(金伯善)의 군사가 경작하던 논을 빼앗아 중군장 안승...
-
구한말 유인석(柳麟錫)이 조직하여 충청북도 제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 조직. 호좌의진은 단발령 이듬해인 1896년 초에 강원도 영월에서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여 조직된 의병 조직이다.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화서학파 선비와 지평 출신의 포군이 주축이 되었으며 제천 지역을 근거지로 항일 투쟁을 전개하여 제천 의병이라고도 한다.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였고, 제천을 비롯한 충청북도·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