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송정(松亭). 김영하(金榮夏)[1878~1920]는 1910년 경술국치에 분개하여 항일 비밀 결사인 광복단 전남 지단에서 활동하였다. 1917년 5월경 동지인 고성후(高成厚)·김교락(金敎洛)·문재교(文在敎)·양기중(梁基重)·양재홍(梁在鴻)·정동근(鄭東根)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여 해외 독립 운동가들에게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
근대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거나 타지 출신으로 화순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 화순에서의 독립운동은 한말의 의병 투쟁과 자결 순국, 일제 강점기 3·1 운동과 광주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화순에서 전개된 각종 독립운동은 물론, 지역적으로 인접한 광주에서의 각종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도 여럿이다....
-
개항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字)는 세원(世元), 호(號)는 춘산(春山). 민치도(閔致道)[1868~1921]는 1907년 일제에 의해 고종이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아들과 친척들에게 100냥을 주어 심남일(沈南一) 의병진에 군자금으로 보냈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정재면(鄭載冕)·주창업(朱昌業) 등과 국민당 및 대동단을 조직하였으며, 1920...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 운동가. 본관은 밀양. 박원경(朴元景)[?~1928]은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 大學]을 졸업하고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 대학에서 수학하고 상항 조선 회사에 입사하였으며, 서재필(徐載弼)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이다 1928년 9월 29일 사망하였다. 미국에서 발간된 『국민보』와 『신한 민보』에 따르면, 유럽을 거쳐 19...
-
근대 화순 출신의 계몽 운동가. 본관은 밀양. 호(號)는 효강(曉岡). 박원조(朴元祚)[1884~1923]는 일본 큐슈[九州] 대학을 수료하고 도쿄 메이지[明治] 대학 재학 중 노백린(盧伯麟)을 만나 교유하였다. 귀국 후 그는 비밀 결사인 화순 우국 동지회를 조직하고 노채필(盧彩弼)·안교일(安敎日) 등과 함께 1919년 3월 24일 화순 장날에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화순 탄광을 개광한 실업가. 박현경(朴賢景)[1883~1949]은 7세부터 김여빈(金汝彬)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누이 박농선과 인척 박영효(朴泳孝)의 후원을 받으며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1905년 4월 5일 광업권을 등록하여 정부의 허가를 받아 1908년 채탄을 시작하였으며, 1909년 2월 탄광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도일하였다....
-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경제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박현채(朴玄埰)[1934~1995]는 광주 서중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화순 백아산에 입산하여 빨치산 소년 돌격 부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52년 하산하다 군경에 체포되었다. 1954년 전주 고등학교 3학년에 편입한 그는 1955년 서울 대학교 경제학과에...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으로 학생 운동과 건국 운동에 참여한 인물. 박형기(朴炯琦)[1909~1950]는 광주 고등 보통학교 5학년 재학 중이던 1929년 광주 학생 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11월 3일과 12일의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0년 2월 26일 광주 지방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금고 4개월 집행 유예 5년을 언도받아 3개월간 옥고를 치렀...
-
근현대 화순 출신의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 변극(邊極)[1903~1980]은 20세 경 불교 단체의 후원으로 상해에 유학하여 동제 대학(同濟大學)에서 수학하였다. 1923년 10월 24일 상해 교민단 동구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25년 5월 30일에는 중국인 학생들과 함께 상해역 앞에서 제국주의 타파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배영 시위(排英示威)에 참여하였다. 1923년...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민족 교육 운동가.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익중(翼仲), 호(號)는 운인(雲人). 아버지는 송용진(宋容鎭)이고 어머니는 나주 박씨이며 부인은 창령 조씨이다. 송홍(宋鴻)[1872~1949]은 한말의 애국 지사인 송병선(宋秉璿)에게 수학하였다. 1904년 9월 그는 홍종영(洪鍾榮)·이범창(李範昌)·윤흥섭(尹興燮)·윤영섭(尹寧燮) 등과 일본...
-
1919년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으로 화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字)는 길중(吉仲)·경조(景朝), 호(號)는 지강(芝江). 아버지는 양상태(梁相泰)이고 어머니는 낭주 최씨(郎州崔氏)이고 부인은 풍산 홍씨이다. 양한묵(梁漢默)[1862~1919]은 1895년 탁지부 주사가 되어 1895년 능주에서 세무관으로 근무하였다. 1897년 사직한 뒤...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회총(梁會鏦)[1919~?]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 공립 보통학교 재학 중인 1936년 동맹 휴학을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국내 진학이 어렵게 되자 도일하여 동경 정칙 중학교(正則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1937년 항일적 내용이 담긴 일기장이 발각되어 40일간 구금되고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지바현[千葉縣] 소재 명륜...
-
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장. 이관회(李貫會)[1871~1910]의 본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이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후 보성에서 봉기한 안규홍(安圭洪) 의병 부대에 가담했다. 1908년 2월부터 1909년 7월까지 선봉장으로 활동하며 보성·고흥 일대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1908년 8월에는 파청에서 수호(水戶)와 평정(平井)이 지휘하는...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 운동가. 이덕우(李德宇)[1908~1950]는 전라남도 화순군 출생으로, 본적은 전남 화순군 동면 대포리 292번지이다. 전남 공립 사범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7월 초순 수피아 여학교 뒷산에서 송동식(宋東植)·이신형(李信珩)·홍귀주(洪貴周) 등 10여 명과 함께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들은 다시 9월...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정(李承正)[1871~1924]은 1910년 8월 경술국치 직후 “남아가 세상에 태어나 국수(國讐)를 갚지 못하고 어찌 가히 집에 거(居)하여 도식 투생(徒食偸生)하리오”라며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서울 동대문 김태영(金泰榮) 집에 기숙하며 1914년 9~11월 김규석(金圭錫)·유병하(柳秉夏) 등에게 “국권 회복...
-
일제 강점기 화순군의 관리. 본관은 장흥. 호(號)는 소산(小山). 임태현(任泰賢)은 방은(芳隱) 임호응(林鎬應)에게 수학하였다. 1921년부터 1924년까지 화순 군청 및 면사무소에서 근무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국민회 화순군 부회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희수(張熙洙)[1924~1986]는 1943년 10월 중순 경 일제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중국 산서성(山西省) 안읍 지구(安邑地區) 주둔 일본군 3541 부대에 배속되었다. 그러던 중 1940년 중경 임시 정부에서 광복군을 창설하였다는 것을 알고 광복군에 합류하기 위해 1944년 12월 부대를 탈출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1945년 4...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계몽 운동가. 정병의(鄭炳儀)[1905~1954]는 1932년 11월부터 1934년 7월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현 백아면]의 면서기로 근무하다 퇴직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6년 2월 5일 북면사무소에서 면장 박경조(朴炅朝)가 도로 공사비의 면민 부담을 위해 유지들을 소집하여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하여 상세한 예산 내역의 설명을 요구하면서...
-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항일 혁명 음악가. 본관은 하동(河東). 초명 부은(富恩). 아버지는 정해업(鄭海業)이고 어머니는 최영온(崔英溫)이며 부인은 딩쉐송[丁雪松], 외동딸은 정샤오티[鄭小提]이다. 정율성(鄭律成)[1914~1976]은 부친을 따라 1917년 광주에서 화순으로 이주하였고, 1922년 능주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년 다시 광주로 이주...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 운동가. 정찬규(鄭燦圭)[1913~1966]는 전남 목포 공립 상업학교에 3학년 재학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학교 최창호(崔昌鎬) 등과 수차 회합하여 목포에서도 같은 달 19일에 동조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총독부 폭압정치 절대 반대”, “피감금 학생 즉시 탈환”, “치안 유...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3년 5월 20일 출생. 본적은 전남 화순군 동복면 칠정 279번지. 주소는 경북 대구부 서성 39. 이명은 정대봉(鄭大鳳), 정찬(鄭贊), 송계(松溪). 정태봉(鄭太鳳)[1893~1942]은 1920년 10월경 상해 임시 정부 특파원으로 국내에 파견되어 김두환(金斗煥) 등과 함께 그해 11월 25일부터 1921년 2월까지 68...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 운동가. 아버지는 정해업(鄭海業)이고 어머니는 최영온(崔英溫)이다. 정효룡(鄭孝龍)[?~?]은 1917년 부친 정해업(鄭海業)을 따라 형제들과 함께 광주에서 화순군 능주면으로 이주하였으며, 여기서 1919년 3·1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50일간 수감되었다. 1920년 3월 상해로 건너가 임시 정부의 기관지인 『독립 신문』의 직원으로 근무...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계현(曺繼鉉)[1908~1937]은 광주 고등 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6월 무등산에서 성진회(醒進會) 출신인 광주 고등 보통학교 졸업생 장재성(張載性)의 지도로 김상환·오쾌일·주경석 등과 함께 광주 고등 보통학교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장재성 등이 같은 달 결성한 독서회 중앙 본부 산하에 두고 조사 선전부·...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녕. 자(字)는 남조(南助). 조병열(曺秉烈)[?~?]은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부터 국내에 잠입한 신덕영(申德永)을 도우며 1920년 7월 화순의 노석중(盧錫仲)·노형규(盧衡奎)·윤영기(尹永奇)·조병철(曺秉徹)·최양옥(崔養玉) 등과 함께 박현경(朴賢景) 등 부호로부터 군자금을 모으다 같은 해 11월 일경에 체포되었...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준기[1891~1929]는 1920년 능주 청년회 창립을 위한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1921년에는 능주 청년회 회장에 선출되어 계몽 운동을 벌였다. 이후 광주로 이주한 뒤, 1924년 7월 민족 차별 교육에 반대하여 동맹 휴학을 벌인 광주 고등 보통학교 학생들이 무기 정학 처분을 받자 그 수습을 위한 도민 대회 준비 위원으로 활동하였...
-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해방 이후 건국 운동에 참여한 인물. 본관은 해주(海州). 자(字)는 기운(起雲), 호(號)는 중오(中悟)이다. 최명수(崔明洙)[?~?]는 중일 전쟁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상해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국내에 잠입하여 은신하였다고 한다. 해방이 되자 귀향하여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전남 지부 총무부장, 국민회 전남 본부 사무국...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귀주(洪貴周)[1906~?]는 전남 공립 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7월 초순 수피아 여학교 뒷산에서 송동식(宋東植)·이덕우(李德宇)·이신형(李信珩) 등 10여 명과 함께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들은 다시 9월 중순 광주 형무소 뒷산에서 성진회(醒進會) 출신인 광주 고등 보통학교 졸업생 장재성(張載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