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파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226
한자 竹坡齋
이칭/별칭 죽파서실,죽파서옥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1550[금곡동 산 209-5]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1년 - 죽파재 건립
현 소재지 죽파재 -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1550[금곡동 산 209-5]지도보기
성격 초당
소유자 남평문씨 문중
관리자 남평문씨 문중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초당.

[개설]

죽파재(竹坡齋)는 조선 후기 문용현(文龍鉉)이 건립하고 강학 활동을 펼친 곳으로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중의 소유이다. 문용현은 5대조 문필상(文弼尙)이 '수헌(水軒)'이라는 초당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면서 많은 후학들을 가르쳤던 뜻을 이어 죽파재를 지었다. 문용현은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여 글로 이름을 떨쳤던 처사(處士)이다. 이에 대한 기록은 기정진이 문용현에게 써준 '죽파서옥기(竹坡書屋記)'가 『노사집(蘆沙集)』에 남아 있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동네에서 제4수원지 쪽으로 경열사(景烈祠)를 지나쳐 가면 왼쪽으로 '생태문화마을', 오른쪽으로 '신촌마을' 초입에 표석이 보인다. 팽나무가 늘어선 신촌마을 안쪽으로 냇가인 석곡천이 흐른다. 석곡천을 건너면 초입에 균산정(筠山亭)이 있고, 그 주변이 죽파재가 있던 곳이다.

[변천]

문용현은 아들 문인환(文仁煥)에게 '수헌'의 복구를 당부하였으나, 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여러 해를 끌어오다 아버지가 작고한 지 36년 만에 1921년 '수헌' 서쪽 인근에 죽파재를 다시 건립하였고, 본래 죽파재가 있던 자리에는 아버지의 호를 딴 균산정을 지었다. 균산정은 1937년 지붕 기와를 보수하고, 2001년 후손들이 중수하였다.

[형태]

작은 초당으로 고광선(高光善)의 '괴양정(槐陽亭) 기문(記文)'에는 죽파서실(竹坡書室), 죽파서옥(竹坡書屋)으로 나와 있다. 기록에는 괴양정 주변으로 좌측에는 석축 토담이 둘러 있고, 그 옆에 노암 괴석이 있으며, 담 밖으로 열 걸음 정도의 거리에 죽파재가 있었다 한다.

[현황]

현재는 퇴락하고 현판만 전한다. 죽파재가 있던 인근에 균산정과 위쪽으로 괴양정서석단(瑞石壇)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강학의 공간으로 호남의 문맥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 죽파재가 있던 일대가 '지오(Geo)빌리지 1호'로 선정되어 무등산권 지질공원 세계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문화예술 관광 사업의 답사지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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