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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국립광주박물관에 기탁된 노인(魯認)이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일본에 사로잡혀 가 일본과 중국의 피로(被虜) 생활을 담은 일기. 『노인 금계일기』는 정유재란 때에 일본에 사로잡혀 갔던 사인(士人) 노인(魯認)[1566~1623]의 일기이니, 금계는 그의 호이다. 노인은 1566년(명종 21)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공식(公識),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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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송달수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갑인초하 유서석산(甲寅初夏遊瑞石山)」을 지은 송달수(宋達洙)[1808~1858]의 호는 수종재(守宗齋),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이며, 아버지는 송흠학(宋欽學)이고, 어머니는 정치환(鄭致煥)의 딸 연일정씨(延日鄭氏)이다.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에게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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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고려 말기 정지장군 사당. 경열사는 고려 말 무신 정지(鄭地)[1347~1391]를 비롯하여 정충신, 유사, 고중영 등 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 뒤쪽 언덕 위에는 정지의 묘가 있는데, 전형적인 고려시대 방식의 예장석묘(禮葬石墓)로서 '정지장군예장석묘'라는 명칭으로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지는 본관 하동(河東), 시호는 경렬(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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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행정구역 변천 등을 살필 수 있는 광주목의 읍지. 백영태가 등초(謄抄)한 '『광산읍지』-고2746-2'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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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학자인 김창흡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이다. 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 지돈녕부사 등을 지낸 김창협(金昌協)이다. 1673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과거에 뜻이 없어 더 이상 과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백악 기슭에 낙송루(洛誦樓)를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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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본촌동 대원정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불상. 대원정사(大圓精舍)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1955년경에 승려 안덕이 밀봉사(密蜂寺)로 창건하였고, 196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1977년 승려 상원이 보문사(普門寺)로 이름을 고쳤고, 1989년 승려 일화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지금의 이름인 대원정사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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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김만영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그린 한시. 「구우희견무등산(久雨喜見無等山)」을 지은 김만영(金萬英)[1624~1671]의 자는 영숙(英叔), 군실(郡實), 호는 남포(南圃), 본관은 당악(唐岳)이다. 아버지는 송호(松湖) 김태흡(金泰洽)이며,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경전을 탐독하였고 시문에 능하였다. 남포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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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충장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덕령은륜비(金德齡恩綸碑)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42년에 세운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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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1974년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400년 전의 의복들이다. 출토된 유물은 철릭 2점과 장옷 1점, 과두 3점, 그리고 저고리 1점과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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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예조정랑, 평안도사, 은율현감 등을 지낸 문신. 김치광(金致光)[1732~?]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국빈(國賓), 호는 충효당(忠孝堂)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인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의 먼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수신(金守信), 할아버지는 김영복(金榮復), 아버지는 김도명(金道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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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승문원정자, 별검, 사변가주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치덕(金致德)[1764~?]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수신(金守信), 할아버지는 김영진(金榮晉), 아버지는 김택명(金擇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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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조인영이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오르고 쓴 한시. 「등광주무등산(登光州無等山)」을 지은 조인영(趙寅永)[1782~1850]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희경(羲卿), 호는 운석(雲石)이다. 아버지인 이조판서 조진관(趙鎭寬)과 어머니 홍익빈(洪益彬)의 딸 사이에서 1782년에 태어났다. 형은 국구(國舅)[임금의 장인] 조만영(趙萬永)이다. 1819년 식년문과(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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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인 양경지가 서석산을 유람하고 쓴 2수의 한시. 「등서석(登瑞石)」을 지은 양경지(梁敬之)[1662~1734]의 본관은 제주(齊州), 자는 중직(仲直), 호는 방암(方菴)이다.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의 5대손이자 고암(鼓岩) 양자징(梁子澂)의 현손(玄孫)[4대손]이다. 소쇄원에 거처하면서 제주 양씨 문중을 이끌었다. 문집으로는 「등서석」이 실린 『방암유고(方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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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의 문인이자 조선시대 문신인 김부륜이 무등산을 유람한 내용을 쓴 한시. 「등서석산(登瑞石山)」의 저자인 김부륜(金富倫)[1531~1598]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돈서(惇敍), 호는 설월당(雪月堂)이다. 아버지는 생원 김유(金綏)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김수홍(金粹洪)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5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2년 유일遺逸)[학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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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에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형제들과 함께 전라도 광주 지역 무등산을 유람하면서 쓴 오언배율의 한시. 「등서석산(登瑞石山)」을 지은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서울 근교의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때 문신으로 벼슬살이를 하였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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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이자 화가인 이하곤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보고 느낀 정취를 노래한 한시. 「마상망서석산(馬上望瑞石山)」을 지은 이하곤(李夏坤)[1677~1724]의 자는 재대(載大), 호는 담헌(澹軒)·담헌거사(澹軒居士)·담옹(澹翁)·소금산초(小金山樵)·계림(鷄林),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버지는 이인엽(李寅燁)이고 어머니는 조현기(趙顯期)의 딸이다. 1708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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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김도수가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에 있는 원효사를 방문하고 쓴 한시. 「무등산(無等山)」을 지은 김도수(金道洙)[?~1742]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淸風)이고 자는 사원(士源), 호는 춘주(春洲)이다. 음보(蔭補)로 공조정랑, 지례현감(知禮縣監), 통천군수, 금산군수 등을 지냈다. 노론·소론·남인·승려에 이르기까지 당색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많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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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나도규가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무등산(無等山)」을 지은 나도규(羅燾圭)[1826~1885]는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치문(致文), 호는 덕암(德巖)이다. 1826년 부친 나희집(羅禧集)과 모친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서로는 나도규의 손자인 나종우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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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신익황이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대상으로 쓴 한시. 「무등산(無等山)」을 쓴 신익황(申益愰)[1672~1722]은 1672년 신명전(申命全)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명중(明仲), 호는 극재(克齋)이다. 1692년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는 단념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병조에서는 신익황의 재주를 아껴 과거에 응시할 것을 종용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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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신 최희량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무등산봉우(無等山逢雨)」를 지은 최희량(崔希亮)[1560~1651]의 자는 경명(景明), 호는 일옹(逸翁), 시호는 무숙(武肅),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조부는 최영(崔瀛), 아버지는 최낙궁(崔樂窮)으로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1594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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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정홍명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에 머물며 지은 한시. 「병서서석소감제벽(病棲瑞石小龕題壁)」을 지은 정홍명(鄭弘溟)[1582~1650]의 자는 자용(子容), 호는 기암 또는 삼치(三癡),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아버지는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고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 유강항(柳强項)의 딸이다. 정홍명은 구봉(龜峯) 송익필(宋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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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사암 박순의 문집인 『사암집(思庵集)』을 발행하기 위한 만든 목판. 사암집목판각(思庵集木版刻)은 1648년(인조 26)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의 후손들이 박순의 문집인 『사암집(思庵集)』을 발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이다. 1857년(철종 8) 중간하였고, 총 180장,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눌재집목판각(訥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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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정지준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서석산은 무등산의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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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임상덕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의 지공너덜을 노래한 한시. 「서석산 지공력(瑞石山 指空礫)」을 지은 임상덕(林象德)[1683~1719]의 자는 윤보(潤甫)·이호(彛好), 호는 노촌(老村),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명재(明齋) 윤증(尹拯)에게 수학하였다. 1705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문학(文學), 진산군수(珍山郡守), 능주현감(綾州縣監), 대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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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병이자 문인인 고부민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서석산(瑞石山)」을 지은 고부민(高傅敏)[1577~1642]의 자는 무숙(務叔), 호는 탄음(灘陰), 본관은 장흥이다. 고성후(高成厚)의 아들이다. 강항(姜沆)에게 글을 배우고, 김장생(金長生) 밑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고부립(高傅立), 고부필(高傅弼) 등과 함께 의병장 고순후(高循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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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인 신즙이 정양필의 시 「서석산」을 차운하여 쓴 한시. 「서석산(瑞石山)」을 지은 신즙(申楫)[1580~1639]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섭(汝涉), 호는 하음(河陰)이다. 정경세(鄭經世)와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4년 이언적(李彦迪)을 변무(辨誣)[사리를 따져서 억울함을 밝힘]하는 일로 한양에 머물던 중 유생들을 위한 시험에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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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김수항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 원효암 노승과의 인연을 그린 한시. 「서석산원효암노승영한위래상방(瑞石山元曉菴老僧永閒委來相訪)」을 지은 김수항(金壽恒)[629~1689]의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안동이다. 아버지는 김광찬(金光燦)이고, 어머니는 김내(金琜)의 딸이다. 우의정·좌의정·세자부(世子傅) 등을 지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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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신완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서석산입석(瑞石山立石)」을 지은 신완(申琓)[1646~1707]의 자는 공헌(公獻), 호는 경암(絅庵), 시호는 문장(文莊),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여식(申汝拭)이며, 어머니는 이기조(李基條)의 딸이다. 후에 삼촌 신여정(申汝挺)에게 입양되었다. 박세채(朴世采)에게 수학하였으며, 영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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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병조정랑,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송만(宋墁)[1663~1721]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자미(子美)이다. 송정황(宋庭篁)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제민(宋齊民), 할아버지는 송집(宋楫), 아버지는 송흡(宋熻)이다. 부인은 박수소(朴守素)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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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수원백씨충효정려각(水原白氏忠孝旌閭閣)은 충신 백홍암(白弘嵒)과 효자 백찬수(白讚洙)[1822~1858]의 충효 정신을 기려 세웠다. 백홍암은 병자호란 때 이흥발(李興勃)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나아갔다. 돌아와서는 부모님을 섬기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3년 동안 했는데 범이 늘 호위하였다 하여 호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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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있었던 인조의 넷째아들 용성대군의 태를 묻은 곳. 태실(胎室)이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胎)를 봉안하는 곳을 말하며, 태를 묻은 산을 태봉산이라 불렀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여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태를 보관하는 방법도 신분의 귀천이나 계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달랐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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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1605년 선조가 무장 신여량에게 발급한 밀부유서. 「신여량 밀부유서」는 1605년 12월 19일 선조가 부산첨사에 재임 중인 신여량에게 행전라우도수군절도사(行全羅右道水軍節度使)로 부임하는 신여량(申汝樑)에게 사명훈유교서(使命訓諭敎書)와 함께 내린 밀부유서(密符諭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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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 소재한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무장 신여량의 상가교서(賞加敎書). 상가교서는 공이 있는 관원을 포상하거나 품계를 올려 줄 때 발급하는 문서로, 「신여량 상가교서」는 경상우도 수군우후 신여량(申汝樑)[1564~1606]이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의주까지 보필하였으며, 권율을 따라 행주산성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에는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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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무장 신여량이 참전한 당포해전 승첩을 기념한 기록화. 1604년 당포해전에 참가한 28명의 인물에게 이를 기념하는 「당포전양승첩지도」를 분급(分給)하였다. 현재는 신여량(申汝樑)[1564~1606]의 「당포전양승첩지도」 외에 진주박물관에 기탁된 함평노씨 노홍의 「당포앞바다승첩지도」가 남아 있으며, 「신여량당포전양승첩지도」는 국립광주박물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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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중기 무장 신여량이 참여한 잔치를 그린 기록화. 「신여량주사선연지도」는 1603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무공을 세운 수군에게 베푼 잔치를 기념하여 그린 그림으로, 신여량(申汝樑)[1564~1606]은 중군어모장군 경상우수영 우후로서 이 잔치에 참여하였다. 「신여량주사선연지도」는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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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에 있는 조선 후기 금성범씨 재실. 용호재는 생용동에 있는 복애(伏厓) 범세동(范世東)을 주벽으로 하는 금성범씨 재실이다. 범세동은 고려 말엽 정충탁절(貞忠卓節)[충성심이 깊고 절조가 굳음]로 이름이 높은 인물이다. 조선 순조 때 범세동 및 범세동의 6세손 범가용(范可容), 학행이 높은 범천배(范天培)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순국한 범기생(范起生), 범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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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이민서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그린 한시. 「우음(偶吟)」을 지은 이민서(李敏敍)[1633~1688]의 자는 이중(彛仲), 호는 서하(西河),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극강(李克綱), 할아버지는 동고(東皐) 이유록(李綏祿), 아버지는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 어머니는 박임경(朴任景)의 딸이다. 뒤에 이후여(李厚輿)에게 입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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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송제민 등을 배향한 서원. 운암사(雲巖祠)는 운암서원이라고도 하며 1708년 지역 유림들의 청원으로 광주광역시 북구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이 배향되어 있다. 그 후 1709년(숙종 35)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제봉(霽峯) 고경명의 사촌동생이자 조선 선조 때의 유생인 창랑(滄浪) 고경리(高敬履)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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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와 무애암 갈림길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도. 원효사(元曉寺)와 원효사 인근에 위치한 십수 기의 부도와 비는 원효사동부도(元曉寺東浮屠)를 제외하고 모두 조선 후기 이후에 건립된 것이다. 부도와 비들은 고승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단지 고승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도 있으며, 원효사의 불사에 많은 공덕이 있는 재가자(在家者)들을 기리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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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이시성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 내의 원효사를 묘사한 한시. 「원효사(元曉寺)」를 지은 이시성(李時省)[1598~1668]의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기봉(驥峯),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종손으로 이항복에게 수학하였다. 1650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회양부사,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천성이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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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숲속에 위치한 조선 후기 부도. 원효사 공양간 동쪽에 위치한 오솔길을 따라 100m 정도 걸어가면 원효사동부도(元曉寺東浮屠)의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약간 걸으면 원효사동부도를 살펴볼 수 있다. 원효사동부도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로, 원효사 인근에 있는 부도 중 가장 양식적으로 정연하다. 관련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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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에 있는 범종. 원효사(元曉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元曉寺所藏萬壽寺梵鍾)은 원효사의 원효전[옛 개산조당(開山祖堂)]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범종이다. 범종에 있는 명문으로 1710년(숙종 36) 전라도 담양도호부[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추월산 만수사(萬壽寺)에서 주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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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문신인 이안눌이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유무등산(遊無等山)」을 지은 이안눌(李安訥)[1571~1637]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이다. 좌의정 이행(李荇)의 증손이다. 18세에 진사시에 수석 합격하였으나, 동료들의 모함을 받자 관직을 포기하고 공부에 열중하였다. 이 시기에 동학인 권필(權韠)과 선배인 윤근수(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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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문신인 조팽년이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연작시. 「유무등산(游無等山)」을 지은 조팽년(趙彭年)[1549~1612]의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는 경로(景老), 호는 계음(溪陰)이다. 1573년에 생원이 되었고 1576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전의현감에 재임하였다가 조급하고 절도가 없다[조망(躁妄])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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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인 위백규가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유서석산(遊瑞石山)」을 지은 위백규(魏伯珪)[1727~1798]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자화(子華), 호는 존재(存齋)·계항(桂巷)이다. 장흥 관산에 있는 장천재(長川齋)에 기거하면서 공부에 전념하였고, 1750년 학행으로 향천(鄕薦)[지방 수령 등이 그 고을의 유능하고 평판 좋은 유생 등을 중앙에 천거하는 일]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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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인인 정운희가 무등산을 오르고 읊은 한시. 「유서석산(遊瑞石山)」을 지은 정운희(丁運熙)[1566~1635]의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지회(之會), 호는 고주(孤舟)이다. 1566년에 아버지 정호(丁浩)와 어머니 고성채씨(固城蔡氏)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1589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활동하면서 시인 백진남(白振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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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조찬한이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한시. 「유서석산(遊瑞石山)」을 지은 조찬한(趙纘韓)[1572~1631]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이다. 1572년에 아버지는 조양정(趙揚庭)과 어머니 청주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를 거쳐 형조좌랑, 호조좌랑, 사간원정언, 영암군수, 영천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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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양진영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글.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를 지은 만희(晩羲) 양진영(梁進永)[1788~1860]은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1488~1545]의 10세손이다. 1859년 사마시에 합격한 양진영은 제자백가(諸子百家)와 노불(老佛)의 학설을 섭렵하고, 특히 역(易)을 깊이 연구하여 『대연추책(大衍推策)』을 지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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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에 다산 정약용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서석산(瑞石山)[무등산의 다른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불림]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화순현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화순에 머물던 1778년에 형제들과 무등산을 등반하고 남긴 작품이다. 정약용은 총 60편 이상의 기문을 남겼는데, 그중 유산기가 10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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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문신인 강항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유인시무등산가구화(有人示無等山歌求和)」를 지은 강항(姜沆)[1567~1618]의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강희맹(姜希孟)의 5대손이며, 아버지인 강극검(姜克儉)과 어머니인 김효손(金孝孫)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혼(成渾)과 신응시(辛應時)의 문하에서 수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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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읍취정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읍취(挹翠) 이방필(李邦弼)[?~1592]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오치동 구릉 위에 반송(盤松)이 있어 ‘읍취’라 하였으며 이에 대한 기록은 노사 기정진의 『읍취정기(挹翠亭記)』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정명을 지었고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읍취 이방필을 기리며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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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학자 진경문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자서석규봉지염불사(自瑞石圭峯至念佛寺)」를 지은 진경문(陳景文)[1561~1642]의 본관은 여양(驪陽), 호는 섬호(剡湖)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재능이 있어 시인으로 명망이 높았다. 1689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으며, 1642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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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해김씨 사당. 장열사는 광주광역시 두암동에 자리한 김해김씨 사당으로 김유신(金庾信)[595~673]을 배향하고 있다. 1850년에 지역 유림들이 우치동 죽방촌에 사우를 건립하여 향사하다가 훼철된 이후 1906년에 복원되었다. 본래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인조 때 안주목사와 황주목사를 지낸 망헌(望軒)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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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무등산에 있던 장흥임씨 묘에서 출토된 복식. 장흥임씨는 충장공 김덕령장군의 동생 김덕보(金德普)의 자부(子婦)이다. 장흥임씨의 남편은 김거(金璩), 자는 휴서(休瑞), 1553년생이다. 1615년 진사가 되었으나 백부 김덕홍이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하고 이어 백부 김덕령이 임진왜란 때 무공을 세우고도 오히려 참소되어 억울하게 죽자 충격을 받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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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장령, 경기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정덕필(鄭德弼)[1725~1800]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몽필(夢弼)·사량(士良), 호는 취은(醉隱)이다. 문절공(文節公) 정수충(鄭守忠)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정오도(鄭吾道), 아버지는 정대중(鄭垈重)이며, 어머니는 신즙(申楫)의 딸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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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신최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소재로 지은 한시. 「증별창평조사군자방지임(贈別昌平趙使君子芳之任)」을 지은 신최(申最)[1619~1658]의 자는 계량(季良), 호는 춘소(春沼),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조부는 상촌(象村) 신흠(申欽)이고, 아버지는 신익성(申翊聖)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이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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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신익전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 내의 증심사를 그린 시. 「증심사(證心寺)」를 지은 신익전(申翊全)[1605~1660]의 자는 여만(汝萬), 호는 동강(東江),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조부는 신승서(申承緖), 아버지는 신흠(申欽), 어머니는 이제신(李濟臣)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김상헌(金尙憲)에게 수학하였고, 1636년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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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학자인 고경리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증심죽루차구운(證心竹樓次舊韻)」을 지은 고경리(高敬履)[1559~1609]의 자는 이척(而惕), 호는 창랑(滄浪),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아버지는 고계영(高季英), 어머니는 양응기(梁應箕)의 딸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에게 수학하였다. 1591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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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덕령이 옥중에서 지었다는 시조. 「춘산곡(春山曲)」의 작가는 김덕령(金德齡)[1568~1596]이다. 자는 경수(景樹), 본관 광산(光山), 시호는 충장(忠壯)으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영남 서부 지역을 지켰다. 1596년 이몽학(李夢鶴)[?~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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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충민사 경내에 있는 정려각. 조선 중기의 무신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충절을 기려 세웠다. 전상의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희원(希元) 또는 환중(桓仲)이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구성부사로 좌영장을 겸하였는데 적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저서로 『구성공실기(龜城公實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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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와 비각. 충효동정려비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충효마을 입구에 있으며, 김덕령(金德齡)[1567~1596]과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 김덕령의 형 김덕홍(金德弘)[?~1593]과 아우 김덕보(金德普)[1571~1627]의 충효와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이다. 김덕홍은 고경명 휘하에 의병으로 참여하여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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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던 조선시대의 정자. 파취정은 약포(藥圃) 정오도(鄭吾道)[1647~1736]가 오치 서동 계산(溪山)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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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풍암정은 풍암(楓岩) 김덕보(金德譜)[1571~1627]가 두 형을 기리며 지은 정자이다. 김덕보는 큰형 김덕홍(金德弘)과 작은형 김덕령(金德齡)[1567~1596]이 사망하자, 세상을 등지고 향리에 가까운 원효계곡에 정자를 짓고 은둔하였다. 풍암정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임진왜란 이후 김덕령의 죽음을 기리고자 만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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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었던 필암서원(筆巖書院)의 운영과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 서적 일괄. 필암서원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70]와 고암(鼓岩) 양자징(梁子澂)[1523~1594]을 배향한 서원이다. 조선 후기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원사 가운데 하나이며, 2019년 7월에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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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유계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위치한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 「화함경기대이운(和咸卿寄大而韻)」을 지은 유계(兪棨)[1607~1664]의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1630년 진사과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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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와 무애암 갈림길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도. 원효사(元曉寺)와 원효사 인근에 위치한 십수 기의 부도와 비는 모두 조선 후기 이후에 건립된 것이다. 원효사 부도·비군(元曉寺浮屠碑群)은 고승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단지 고승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도 있으며, 원효사의 불사에 많은 공덕이 있는 재가자(在家者)들을 기리기 위한 부도와 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