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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효선(孝先), 호는 신재(新齋). 할아버지는 김성경(金成慶)이고, 아버지는 김보(金甫)이며, 형은 김진조(金振祖)이다. 김진종(金振宗, 1496~1557)은 1528년(중종 23) 식년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홍문관응교, 경성판관(鏡城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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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고풍(古風), 호는 활계(活溪). 아버지는 매돈(梅墩) 김번(金蕃)이다. 김진호(金震頀, 1571~1615)는 평생 동안 학문 연구에 노력하였으며, 만년에는 역학(易學)에 통달하여 「방원도(方圓圖)」와 「범주도(範疇圖)」를 저술하였다. 저서로는 『활계선생집(活溪先生集)』이 있다. 구미의 화강서원(華江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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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달부(達夫), 호는 초각(草閣). 아버지는 서강(西岡) 김수담(金壽聃, 1646~1712)이다. 김집(金㙫)은 1723년(경종 3) 식년문과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내고 신창현감(新昌縣監)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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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아버지는 김득자(金得資)이다. 김천부(金天富)는 고려 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삼사좌윤(三司左尹)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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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자연(子挻), 호는 백담(栢潭). 할아버지는 김취빈(金就彬)이며, 아버지는 김도(金燾)이다. 김천영(金天英)은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병과 8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성균관전적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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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庵). 아버지는 김광좌(金匡佐)이다.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은 1537년(중종 32) 별시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과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이후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외직으로 나가 비안현감(比安縣監)을 지냈다. 1544년 강원도도사를 거쳐 이듬해 홍문관수찬을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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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성지(成之), 호는 진락당(眞樂堂) 또는 서산(西山). 아버지는 김광좌(金匡佐)이다. 김취성(金就成, 1492~1550)은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마을 뒷산에 서산재(西山齋)를 지어 다섯 아우와 많은 후학을 교육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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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정지(精之). 아버지는 김광필(金匡弼)이다. 김취정(金就精)은 1510년(중종 5)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함께 생원시에 공동으로 장원 급제하였으며, 1519년(중종 14) 별시에 병과 7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병조좌랑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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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김치(金峙)는 1388년(우왕 14)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사간·김해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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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지역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여임(汝任), 호는 강탄(江灘). 할아버지는 김석지(金錫址)이며, 아버지는 탄옹(灘翁) 김경(金澃)이다. 김하량(金廈樑)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2년 식년문과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안동부사·판결사(判決事)·한성부우윤 등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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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아버지는 김효정(金孝貞)이며, 형은 김안생(金安生)이다. 김한생(金漢生)은 조선시대에 합천군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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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구미출신 무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선원(宣源). 아버지는 김복기(金復其)이다. 김한손(金漢孫)은 중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냈고,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어 통훈대부에 올랐으며, 남포현감(藍浦縣監)·홍주진관(洪州鎭管)·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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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경부(敬夫), 호는 주촌(注村). 할아버지는 백암(白巖) 김제(金濟)이며, 아버지는 김자연(金自淵)이다. 김효정(金孝貞)은 1399년(정종 1) 진사가 되고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등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중시(重試)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추밀원(樞密院)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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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해평김씨의 시조. 김훤술(金萱述)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삼중대광보국문하시중(三重大匡輔國門下侍中)에 오르고 해평군(海平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에 따라 본관을 해평으로 하였다. 시호는 장렬(壯烈)이며, 후인들이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수호신으로 추앙하고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영응사(靈應祠)에 석상을 만들어 모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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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죽헌(竹軒). 할아버지는 김세권(金世權)이다. 김희설(金希楔)은 선조 대에 통훈대부에 오르고 낙안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사들을 지휘하여 수차례 전공을 세웠다. 왜군의 숫자가 많아 전세가 불리해졌으나 나라를 위하여 순절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여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후 임난공신록에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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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북쪽 기슭 바위벽에 새겨진 글자. 금오산 삭도 승차장에서 등산로로 150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오른쪽 바위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큰 바위벽에 조선 중기 명필인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67)가 새긴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금오동학’이란 네 글자는 가로·세로가 2척(二尺)이나 되는 대자(大字)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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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앞 자연바위에 새겨진 글자. 남통동 금오성 수축 구정칠택 암각은 1596년(선조 29) 금오산성 내에 아홉 개의 샘과 일곱 개의 못을 파고 금오산성의 수축을 완료한 기념으로 새긴 것이다. 금오성 수축 구정칠택 암각은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앞에 있다. ‘선조 병신(宣祖 丙申) 선산부사 배설(善山府使 裵楔) 축 금오성 천 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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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왼쪽 암벽 위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의 왼쪽에 위치하는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통동 오금포 암각은 금오산 대혜폭포 왼쪽 암벽 위에 ‘오금포’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다. 폭포의 표고는 400m, 낙차 28m로 영남 8경에 속한다. 오금포의 자경은 30×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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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도선굴 아래에 새겨진 글자. 조선시대 1592년(선조 25)에 경상좌도 함안 사근도역(沙斤道驛) 찰방(察訪)을 지낸 김종무(金宗武)의 막내아들인 욕담(浴潭) 김공(金羾)은 2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도선굴(道詵窟) 아래 움집을 짓고 은둔하였다. 조정에서 아버지 김종무의 공훈으로 벼슬에 제수해도 “벼슬하러 한양 가는 길은 상주 땅을 밟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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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옆 암벽에 새겨진 글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중에 금오산 도선굴 아래 움막을 짓고 학문에만 전념하던 선산인(善山人) 김공(金羾)이 암벽에다 ‘욕담(浴潭)’이라고 새기고 자호(自號)를 욕담이라 했다고 한다. 남통동 욕담 암각은 금오산 대혜폭포에 아래 욕담이라 불리는 못[沼] 부근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통동 욕담 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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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내예리의 자연석에 새겨진 글자. 내예리 연화장 암각은 1990년 6월 소하천 및 도로를 정비할 때 노출되어 발굴하게 되었다. 발굴 이후 구미시 고아읍 내예리에 재건해 놓았다. 내예리 연화장 암각은 ‘안토락천 연봉국지(安土洛天 蓮峰局地)’라는 제명으로 각자(刻字)되어 있다. 덕산황씨(德山黃氏) 문중에서 1521년(중종 16)에 높이 1.15m 폭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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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낙동강변의 통로 암벽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하농소마을에 있는 양수장 북편 낙동강변의 통로 암벽 돌출된 부분에 있다. 돌출된 약 3m 크기의 바위 가로 1.2m, 세로 2m의 평면을 다듬은 곳에 ‘석문(石門)’이라는 글자가 자경 15㎝ 크기로 새겨졌으며, 서체는 행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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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낙동강변의 절벽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하농소마을에 있는 양수장 북편 낙동강변 절벽에 있다. 가로 5m, 세로 10m 크기의 암벽의 약 1~2m의 벽면에 ‘운도(雲島)’라는 글자가 자경 약 20㎝ 크기로 새겨져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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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송천마을 입구에 있는 2기의 선돌. 도개리 선돌 2기는 도개리 송천마을 입구에서 80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쪽 벌판을 향해 위치하고 있다. 궁기리 고인돌과는 약 1.5㎞, 신림리 고인돌군과는 약 1.3㎞의 거리에 있다. 선돌 1기는 사과밭으로 경작되는 밭 언저리에 있어 천석(川石)이 덮여 있다. 높이 1.5m, 폭 60㎝로 전체적으로 사다리 형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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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의 돌출된 암벽에 새겨진 글자. 독동리 문산동문 암각은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암벽에 있다. 독동리 문산동문 암각은 가로 세로 약 20m 크기의 돌출된 암벽에 ‘문산동문’이라는 글자가 자경 약 20㎝ 크기의 해서체로 각자 되어 있다. ‘문산계(文山界)’의 ‘계(界)’자가 메워져 후대에 동문(洞門)으로 새로 새긴 흔적이 보이며, 서체는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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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낙동강변 암벽의 돌출된 부위에 새겨진 글자. 독동리 북암 암각은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강창마을 낙동강변 바위에 있다. 독동리 북암(北岩) 암각은 약 20m 높이의 암벽에 돌출된 부위의 가로 약 5m, 세로 약 4m의 벽면에 자경이 약 20㎝인 해서체로 각자(刻字)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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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문산 동문 아래 바위 벽면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강창마을 낙동강변 바위에 있다. 독동리 송범대 암각은 문산 동문 아래 가로 1m, 세로 1.5m 크기의 바위 벽면에 ‘송범대(送帆臺)’라는 글자가 자경 약 13㎝ 크기로 새겨져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이다. 왼쪽 아래로는 ‘황학거사제(黃鶴居士題)’라고 새겨져 있다. 하운에서 돛단배를 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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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 선산출장소 내 자연석에 새겨진 글자. 확실한 연대는 미상이다. 삼형제가 함께 선산(善山)·금산(金山)·순천(順天)의 수령(守令)이 되어 부임(赴任)하면서 이곳에 와서 놀았는데, 이때 차고 있던 관인(官印)을 이 돌 위에 끌러 두고 놀았다고 하여 ‘삼인석’이라 새겼다 전한다. 동부리 삼인석 암각은 구미시 선산출장소 청내에 있다. 동부리 삼인석 암각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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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해발 400m 위치의 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경천애인 암각은 천생산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해발 400m 지점의 천생산성 내 반석에 있다. 신장리 경천애인 암각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글자가 자경 30㎝의 크기로 각자되어 있는데,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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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에서 북동쪽 사면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기암기석천년구 암각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성에서 북동쪽으로 해발 380m 위치의 사면반석에 있다. 사면반석에 자경 15×17㎝ 크기로 각자되어 있는데, 서체는 해서체이다. 좌측에 1938년 5월 19일(一九三八年五月十九日) 장주석(張柱錫) 등 인명 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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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부 남서쪽에 있는 미득암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천생산성 내 정상부에서 남서쪽으로 해발 400m 위치의 미득암(米得岩) 위에 새겨져 있다. 신장리 남현 암각은 자경 15㎝의 크기로 각자되어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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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에서 북동쪽 사면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천산녹수 암각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성에서 북동쪽으로 해발 380m 위치의 사면반석에 있다. 신장리 천산녹수 암각은 자경 15㎝의 크기로,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사면반석 왼쪽에 ‘송평종태(松平鍾泰)’라고 각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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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여차정 서쪽 낙동강변 큰 바위인 장암에 새겨진 글자. 낙동강변 큰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조선 후기 문신인 장학(張澩)의 친구 매은(梅隱) 전영(全榮)이 쓴 것으로 전한다. 임수동 장암 암각은 임수동 낙동강변의 여차정(如此亭) 서쪽에 있다. 임수동 낙동강변에 높이 약 5m, 넓이 약 3.5m가량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장암(壯巖)’이란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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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낙동강변의 동락서원 옆 2개의 바위에 새겨진 글자. 임수동 천연대 암각은 낙동강변의 동락서원 서편 바위에 있다. 동락서원 옆에는 2개의 바위가 포개져 있는데, 위에 얹혀 있는 큰 바위(높이 2m, 둘레 약2m)에 세로로 비스듬히 ‘천연대(天淵臺)’라고 새겨져 있다. 글씨 크기는 천(天)은 10×17㎝, 연(淵) 16×20㎝, 대(臺) 17×19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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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지역 세심당 암벽에 새겨진 글자. 세심당은 1523년(중종 18)에 축조한 연당(蓮塘)으로 알려졌다. 죽정(竹亭) 장잠(張潛)이 지은 『세심당기문』이 있었으나 분실되어 사라졌다. 황상동 세심당 암각은 구미시 황상동 죽림정사(竹林精舍)의 오른편에 있다. 황상동 세심당 암각은 세심당의 암벽에 ‘세심당’이라고 세로로 새겨져 있다. ‘세심’이라는 말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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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지역에 있는 세심당 암벽에 새겨진 글자. 조선 중종 때 인동현감으로 있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은 공무가 끝나면 수레를 타고 죽림정사를 방문하여, 이 암벽에 앉아 죽정(竹亭) 장잠(張潛)과 학문을 강론하였다고 전한다. 이현(二賢)은 이언적과 장잠을 가리키는 것이다. 황상동 이현암 암각은 구미시 황상동 죽림정사 서편에 있는 세심당(洗心塘)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