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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장석준(張錫駿)이 연경으로 갈 때 철종의 하사물품을 적은 문서. 장석준의 자는 견가(見可), 호는 춘고(春皐)이다. 장호추(張好樞)의 아들이다. 1852년(철종 3)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기주관, 전적, 정언, 장령, 북평사(北評事), 교리, 수찬, 사간, 사성, 집의, 서장관, 우부승지, 좌승지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한 후에 병조참지 및 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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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정원용이 장진홍을 효행으로 증직해 줄 것을 요청한 글. 정원용(鄭元容, 1783~1873)은 본관이 동래(東萊), 호는 경산(經山)이다. 1802년(순조 2) 정시 문과를 통해 출사하여 1837년 예조판서에 이어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848년 영의정이 되었다. 「정원용 유묵」은 영의정 정원용이 장진홍을 학행과 효행으로 추증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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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정조 21)에서 1854년(철종 5) 사이에 선산부사의 요청으로 중앙에서 관인을 주조하여 내려 보낸 기록. 『인신등록』은 조선시대에 관인(官印)을 관장하는 예조와 인신(印信)을 만드는 공조에서 각 중앙 관서와 지방관의 요청으로 인신을 주조하여 내려 보냈을 때의 기록을 모은 책이다. 『인신등록』권1, 1797년(정조 21)에서 1817년(순조 17)에는 선산부사(善山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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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 직후 선산은 길재(吉再)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길재의 관료 생활은 길지 않았고 정계에서 주목받은 것도 아니었다. 34세가 되던 1386년(우왕 12) 문과에 합격한 이후 1387년(우왕 13) 성균관 학정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낙향하는 1390년(창왕 3)까지 4년 동안, 길재는 성균관의 박사(博士), 교수(敎授)와 같은 교육 관련 하위직에서 근무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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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신천(信川). 할아버지는 승랑장 강인석이고, 아버지는 강윤리이다. 강거민은 태종 대에 반역죄로 죽임을 당한 영의정 심온의 아들 심회(1418~1493)를 양자로 키웠다. 유모가 심회를 데리고 선산 땅에 도착하였을 때, 마을에 살던 강거민과 부인 전씨가 앞들 삼밭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같이 꾸고서 마을에 와 있던 심회를 양자로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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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초명은 대진(大進), 자는 면재(勉哉)·학안(學顔), 호는 춘간(春磵)·한사(寒沙)·정와(靜窩). 증조할아버지는 강인수(姜仁壽)이고, 할아버지는 강세탁(姜世倬)이다. 아버지는 사간 강익문(姜翼文)이며,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로 이후신(李後臣)의 딸이다. 강대수는 1610년(광해군 2)에 진사가 되고,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을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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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수보(壽甫), 호는 도천(道泉). 증조할아버지는 강재발(姜再發)이고, 할아버지는 강집일(姜集一)이다. 아버지는 강헌(姜瀗)이며, 어머니는 신광주(申光周)의 딸이며, 아들은 강시환이다. 강로는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으로 1774년(영조 50)에 증광시 병과 29위로 합격하여 별감을 지냈다. 1784년에 좌장예에 제수되었으며,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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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온(子韞), 호는 무명재(無名齋)·효량(孝良). 증조할아버지는 함양군수 강윤리(康允釐)이고, 할아버지는 영덕현감 강거례(康居禮)이다. 아버지는 용양위부사과 강척(康惕)이며, 어머니는 김숙자(金淑滋)의 딸이며, 동생은 강중진(康仲珍)이다. 강백진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1472년(성종 3) 생원이 되었으며, 1477년(성종 8) 문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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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신천. 자는 명지(明之), 호는 죽간(竹磵). 증조할아버지는 강중진(康仲珍)이고, 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다. 강복성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참봉·직장·찰방 등을 지냈다. 1595년(선조 28)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장수현감이 되었다가 김제군수로 옮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남원에 주둔한 왜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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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인동현감. 본관은 신천. 아버지는 강득화(康得和)이고, 아들은 강기(康耆)이고, 손자는 강치성(康致誠)이다. 강생민은 1426년(세종 8) 인동현감으로 있으면서 의주판관 노승덕(盧承德)과 해미현감 강이(康履) 등과 세종에게 수령의 직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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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원보(遠甫). 증조할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고, 할아버지는 강복성(康復誠)이다. 아버지는 강권(康錈)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이정란(李廷鸞)의 딸이며, 부인은 한숭인(韓崇仁)의 딸이다. 강수학(康邃學)은 1665년(현종 6)에 실시된 온양별시에 급제하였고, 같은 해에 금부도사에 임명되었다. 1666년(현종 7)에 사헌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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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증조할아버지는 강인석(康仁碩)이고, 할아버지는 강윤리(康允釐)이다. 아버지는 부사 강거의(康居義)이고, 어머니는 아주신씨(鵝州申氏)로 안렴사 신우(申祐)의 딸이며, 부인은 경주부윤 오식(吳湜)의 딸이다. 강신(康愼)은 1397년(태조 6) 출생하여 1414년(태종 14)에 생원이 되었으며, 1420년(세종 2)에 문과에 동진사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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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원숙(元叔), 호는 주천(舟川). 아버지는 창원도호부사 강의(康顗)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로 헌납 정사걸(鄭士傑)의 딸이다. 강유선은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성균관의 유생이 되어 당시 좨주[祭酒] 송인수(宋麟壽)에게 아낌을 받았다. 1545년 인종이 즉위하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상소하여 조광조(趙光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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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자도(子鞱)·자일(子逸), 호는 임경당(臨鏡堂). 증조할아버지는 강윤리(康允釐)이고, 할아버지는 강거례(康居禮)이다. 아버지는 교위 강척(康惕)이고, 어머니는 김숙자(金叔滋)의 딸이며, 외숙부는 김종직이다. 형은 강백진(康伯珍)이며, 부인은 최정(崔淨)의 딸이다. 강중진(康仲珍)은 1480년(성종 11)에 진사가 되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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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한 강호의 선정비. 강호(姜鎬)는 문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656년(효종 7)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57년(효종 8) 필선(弼善)으로 승배되어 떠났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의 선정을 기려 주민들이 비를 세웠다.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 입구에 인동 각지에 산재해 있던 역대 현감과 부사의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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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건대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통신 시설 터. 구미시에서 구미대교를 건너 동쪽으로 가다가 지방도 90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공단 끝 지점에 얕은 고개가 있고, 봉수 터는 이 고개의 정상인 해발 250m 정도의 건대산 정상에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일부 유구가 남아 있었다고 하나 최근 헬리콥터 이착륙장으로 이용되면서 삭평되어 지금은 1~2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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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과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는 조선시대 선비 이맹전의 유허비와 묘비. 이맹전은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벽진(碧珍)이고, 선산 출신이다. 길재의 제자이기도 하다. 1427년(세종 9)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부자와 평생을 가까이 지냈다. 승문원정자를 거쳐 1436년(세종 18) 정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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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까지 구미 지역의 역사. 선산 지역에서는 초기 국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이 설치되었다. 눌지왕 때에는 일선군의 모례(毛禮)의 집에 묵호자(墨胡子)가, 소지왕 때에는 아도(阿道)가 와서 불교를 전하기도 하였다. 일선군은 614년(진평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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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하구미면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구미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개칭된 데서 비롯되었다. 독립된 지방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구미시로 승격되면서 성립되었고, 1995년에 선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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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삼국시대의 무덤. 막연히 고분(古墳)이라고 하면 오래된 무덤을 일컫는 것으로 여겨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전문적 입장에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을 일컬어서 고분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서도 봉토가 높고 내부에 금·은·금동으로 만들어진 금속 공예품과 같은 화려한 껴묻꺼리[副葬品]를 가진 무덤을 특별히 고총고분(高塚古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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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좌명(佐明), 호는 두곡(杜谷)·취병(翠屛). 증조할아버지는 만호 고석동(高碩仝)이고, 할아버지는 고식업(高識業)이다. 아버지는 고몽담(高夢聃)이고, 어머니는 정세형(鄭世亨)의 딸이며, 부인은 남극문(南克文)의 딸이다. 해평 문량에서 태어났다. 고응척(高應陟)은 김범(金範)의 문인으로 1549년(명종 4)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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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지석묘라고 불리기도 하는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이다. 고인돌은 하천변이나 하천을 끼고 있는 구릉지대에 입지하고 있고, 마치 뚜껑돌처럼 생긴 상석(上石)과 이 상석을 받치는 고임돌[支石]로 구성되어 있다. 고인돌은 연구자에 따라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되지만 겉모습을 기준으로 하면 3종류로 나뉜다. 고임돌을 4장의 널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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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룡(子龍). 할아버지는 고몽담(高夢聃)이고, 아버지는 풍기군수 두곡(杜谷) 고응척(高應陟)이며, 어머니는 남극문(南克文)의 딸이다. 고한운(高翰雲)은 1573년(선조 6)에 진사가 되었고,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에 갑과 1위 장원으로 급제하여 부안현감이 되었다. 부안현감으로 있을 당시 왜병이 침략했다는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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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곽우현은 고려 전기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문하시중평장사 겸 태자첨사를 지냈고 선산군(善山君)에 봉해졌다. 곽우현의 후손들이 선산(善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에 있으며, 매년 11월 둘째 일요일에 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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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구미지역에서 활약한 의병장.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는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금오산성 과 천생산성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이고, 부인의 외할아버지는 조식(曺植)이며, 동서는 동강 김우옹(金宇顒)이다. 곽재우는 1585년(선조 18) 별시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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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광평동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광평동 새터마을 뒤편에 해당하는데, 경부고속도로 구미 나들목 뒤편의 해발 62~50m의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 민묘 조성과 밭 개간으로 인하여 곳곳에 토기편·자기편·기와편 등이 산재하고 있다.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들이 산포하고 있으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확하게 유적의 성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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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떼. 선산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북쪽 상주 방면으로 3㎞ 정도 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용동지가 나타나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오른쪽 구릉에 2기의 고인돌이 위치해 있다. 상석은 화강암으로, 크기는 150×120×80㎝, 130×20×60㎝이며 하부 구조는 매몰되어서 알 수 없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과 부정형이며 장축 방향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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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의 교지. 교지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문무관 4품 이상의 관리에게 주던 사령(辭令)을 일컫는 것으로, 개국 초에는 왕지(王旨)라고 하다가 1425년(세종 7)에 교지로 개칭하였고 한말에는 칙명(勅命)이라고도 하였다. 구미 지역의 교지로는 154점 정도가 전해진다. 이들 교지를 시호가 내려진 시호교지, 후대에 추증되어 관직에 제수되는 추증교지,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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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내려진 교첩. 교첩은 주로 5품 이하의 문무관리를 임명할 때 사용되었다. 5품 이하는 낭계(郞階)라 하며, 대간(臺諫)의 서경을 거친 뒤 왕명을 받아 이조 또는 병조에서 발령하였다. 연호 위에는 이조지인(吏曹之印) 또는 병조지인이 찍혔다. 교첩의 서압(署押)은 참의 이상의 당상관에서 1명, 정랑·좌랑 중에서 1명, 모두 두 사람만이 담당하였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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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있었던 교통 통신 기관. 구며역(仇旀驛)은 오늘날 구미시 선산읍 화조리에 설치되었다. 구며역 외에 구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으로는 상림역(上林驛, 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 연향역(延香驛, 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 안곡역(安谷驛, 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양원역(楊原驛, 현 구미시 진평동) 등이 있었다. 왕래하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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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구미 낙산리 고분군은 해평면 낙산리에 위치하며, 대형분·중형분·소형분 20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해평면 소재지에서 상주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25호선의 구도로가 고분군의 중심을 가로 질러 통과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낙동강에 접해 있다. 고분군은 낙산3리 원촌마을의 북쪽 능선에 대형 봉토분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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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구미 황상동 고분군은 낙동강의 동안에 위치하고 있다. 구미에서 구미대교를 건너 해평면으로 가는 지방도 907호선을 따라 작은 고개의 동쪽 능선, 곧 건대산 정상에서 서향하고 있는 능선(1군)에 대형 봉토분 20여 기, 건대산 정상에서 남향하고 있는 황상마을 서쪽으로 길게 내리뻗은 능선(2군)에 대형분 20여 기, 황상마을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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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성수리 연봉산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박운이 강학과 휴식을 하던 장소에 있는 암벽. 구미 용수암은 박운(朴雲)이 강학 및 휴식을 하던 곳이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있는 큰 암벽이다. 박운은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 출신으로 1519년(중종 14년)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명종 때 부사용을 지냈다. 박영(朴英)[1471~1540]의 문도이며, 만년에는 퇴계(退溪)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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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구사평(丘思平)은 고려 후기에 진사에 올랐지만, 벼슬을 사양하고 임천(林泉)에서 학문을 탐구하였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시서(詩敍)에서 진사 구사평은 어릴 때 함께 놀다가 서로 이별한 지 오래 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상주 김직지(金直之)는 구사평이 선주지현(善州支縣) 화곡(華谷)에 한가히 살고 있으며, 서재를 정리하고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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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구미시 인동에서 장천 방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904호선을 따라 가다가 유봉주유소를 조금 지나 우회전하면 학루지에서 발원하는 이계천(飴溪川)이 백곡골에서 흘러 내리는 작은 수계와 합수하여 서쪽으로 흘러가면서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에 구평동 화암마을(불바위마을)이 있다. 고인돌은 이 충적지대를 향한 봉두미골의 서쪽 구릉 하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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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국윤신의 애휼비(愛恤碑). 조선 후기 금오산성의 별장을 지낸 인물인 국윤신이 재임 중 백성들을 진휼(賑恤)한 공로를 칭송하기 위하여 선각한 비석이다.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성 내성 아래 동록 700m 기슭의 암벽에 새겨져 있다. 비석은 높이 120㎝, 너비 43㎝이며, 자연석의 암벽에 선각하였다. 비석의 형상과 비문은 박락이 심하여 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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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삼한시대 소국. 우리나라 역사에서 1~3세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북쪽에는 낙랑군이 위치하고, 남쪽에는 삼한이 형성되는 시기로, 철기가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청동으로 이기를 만드는 전통은 소멸하는 단계이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면 중국 한(漢) 계통의 자료를 부장하면서 목관 또는 목곽을 매장의 주체로 사용하는 철기시대 초기 단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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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선산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상주로 가다 도개면 신림리에서 일선교를 건너지 말고 직진하여 도개제를 따라 분지된 국도 25호선을 따라가면 궁기리 재궁마을 진입로에 못가서 도로 좌측 편에 1기가 유존하고 있다. 이외에 농바위마을 앞에도 2기가 있었다고 하나 확인되지는 않으며, 촌로들에 의하면 이외에 10여기 가 있었으나 개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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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열(景說). 아버지는 권순(權純)이다. 권응기(權應箕)는 1549년(명종 4) 식년 생원·진사시에서 진사 1등 2위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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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만(九萬). 증조할아버지는 권국평(權國平)이고, 할아버지는 권치(權錙)이다. 아버지는 권운서(權雲瑞)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김삼귀(金三貴)의 딸이고, 부인은 충주최씨(忠州崔氏) 최엽(崔燁)의 딸이다. 권진한(權震翰)은 1663년(현종 4) 식년문과에서 49세의 나이로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전적·정언·지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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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금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장천면 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 구 도로를 따라 가다 군위군 소보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에서 오른쪽으로 오로천을 따라 들어가면 금산리 숯골마을의 북쪽 맞은편에 위치한 두 곳의 능선 남사면에 금산리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지표조사에서 대호편, 짧은목항아리편 등의 신라 토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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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 금오산에 축조한 이중의 석축 산성.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금오산(金烏山)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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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가구(可久). 아버지는 금연(琴衍)이고, 어머니는 예안(禮安)의 호장 김담(金淡)의 딸이다. 금치담(琴致湛)은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관품이 통훈대부에 올랐고, 사도시첨정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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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국도 25호선을 따라 선산 방면으로 가다가 도라사 진입로 조금 못 미쳐서 좌회전하여 낙동강변 금호1리 쟁골마을로 가면 마을의 북서편,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송암천의 남쪽에 해발 60m의 얕은 독립 구릉이 형성되어 있다. 유물산포지는 이 독립 구릉의 남서와 남동 사면에 위치한다. 밭으로 개간된 구릉 남동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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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익(士益). 야은 길재의 6세손으로 증조부는 길인종(吉仁種)이고, 조부는 길대연(吉大淵)이다. 아버지는 진사 길면지(吉勉之)이고, 외조부는 최이한(崔以漢)이며, 부인은 배관(裵寬)의 딸이다. 길겸은 1546년(명종 1) 생원이 되었고, 1548(명종 3) 무신별시에 병과 12위로 급제하여 병조정랑, 청홍도평사, 당진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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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 의 문신. 길당은 중국 당나라에서 열경의 벼슬을 지내다가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와서 해평백에 봉해졌으며, 문종 때 은청광록대부 참여정당문학에 올랐다. 길당의 후손들이 해평을 관향으로 삼았으나, 이후의 전승 기록이 없을 뿐 아니라 보첩마저 전쟁 등으로 소실되어 사실과 세대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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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길재는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조선 건국 후에는 친교가 있던 태종 이방원에 의하여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다. 특히 김숙자에게 성리학을 가르쳤으며, 그 학통은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등에게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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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시대 길재의 묘. 여말선초 문인인 길재의 묘로, 구미시 오태동에 있다. 구미시 오태동 오태마을 왼쪽편 동북으로 뻗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 묘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길재 묘의 왼쪽에는 묘비, 오른쪽에는 석등이 있다. 묘의 앞부분에는 좌우로 문인상이 2기 있다. 길재의 묘소 주변에는 묘비가 2기 있다. 길재 묘 앞쪽 낙동강을 내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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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야은 길재 선생 추정 묘비. 길재의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며,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말년에는 선산의 향리에서 강학을 베풀어 그 학통을 김숙자(金叔滋)에게 전하고 이를 다시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이 이었다. 길재 묘비는 충의를 기리고, 학문적 성과를 기리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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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길재의 유허비(遺墟碑). 야은 길재는 고려 후기의 인물로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서 배웠으며, 벼슬이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개창된 후 태종이 태상박사(太常博士)라는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여 절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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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 자는 사가(士可), 호는 징강(澄江).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6세손이며, 형은 현감 길겸(吉謙)이다. 길회는 1570년(선조 3)에 진사가 되었으며, 1577년(선조 10)에 문과에 급제하여 삼사(三司)를 역임하였다. 홍문관과 예문관의 문학 등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청간(淸簡)한 품위를 지켰으며, 임진왜란 때는 관서(關西) 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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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처남은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이다. 김감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사육신이었던 처남 단계 하위지와 함께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1982년 10월 31일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의 유림들이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동(校洞) 장아걸의 김감 유적지에 신도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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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할아버지는 문정공(文靖公) 김효정(金孝貞)이고, 아버지는 김한생(金漢生)이다. 김갑눌은 성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길주목사(吉州牧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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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정여(靜如), 호는 탄옹(灘翁). 증조할아버지는 김취기(金就器)이고, 아버지는 김석지(金錫祉)이다. 김경은 11살 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금오산 도선굴(道詵窟)로 피난하였는데, 할아버지와 부모가 역질(疫疾)로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어렸으나 전쟁의 와중에도 관(棺)을 마련하여 세 분의 장례를 치렀다. 장성해서는 의표(儀表)가 크고 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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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아버지는 문정공(文靖公) 김효정(金孝貞)이며, 형은 군수 김한생(金漢生)이다. 김경생은 영천군수(永川郡守)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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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덕승(德承), 호는 구암(龜岩)·문림처사(文林處士). 좌의정 김승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반월당(伴月堂) 김종효(金宗孝)이다. 김경장은 여헌 장현광의 문인으로, 향리에 은거하면서 예학을 강구하였다. 문림처사라고 자호하였으며, 한성우윤이었던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가 효성 및 학행을 조정에 천거하여 황산찰방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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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김경진의 선정비. 김경진(金敬鎭)은 음사로 관직에 진출하여 1853년(철종 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55년(철종 6) 상주목사로 이배되어 떠났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의 선정을 기려 비가 세워졌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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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선산. 자는 자량(子亮), 호는 욕담(浴潭). 할아버지는 문간공(文簡公)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이며, 아버지는 창의사(倡義士) 증이조판서 김종무(金宗武)이다. 김공은 12살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아버지 김종무(金宗武)가 경상북도 상주 북천전장에 의병을 일으켜 떠나게 되자,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금오산(金烏山) 도선굴(道詵窟)에 피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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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일선. 아버지는 판관 김사유(金思宥)이고, 아들은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이다. 김관은 1389년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성품이 침착하고 부지런하며, 자식과 조카를 훌륭하게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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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방현(邦顯). 우윤(右尹) 김득자(金得資)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판결사(判決事) 김정(金鼎)이다. 김광열은 성품이 관대하고 학문이 높았으며, 선조 때 천거에 의해 정헌대부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경암(敬庵) 노경임(盧景任)과 친교를 맺었으며, 집안의 재산이 부유하여 많은 곡식을 나라에 헌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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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으로 우거한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자야(子野), 호는 구와(龜窩). 오우당(五友堂) 김근(金近)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진사 김광헌(金光憲)이다. 김굉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문인으로 어릴 때부터 자질이 탁월하였다. 1763년(영조 39) 생원이 되었고, 1777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정자, 전적을 역임하였고,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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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일선. 자는 국보(國寶)·고경(高卿). 아버지는 일선부원군(一善府院君) 김시로(金時露)이다. 김교는 1444년(세종 26)에 진사가 되었으며, 학행으로 능참봉에 제수되었다가 영덕현령에 올랐다. 1452년(문종 2) 무과에 급제하여 평안절도사가 되었고, 1459년(세조 5)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올랐다. 1462년(세조 8) 강원도관찰사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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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일선. 아버지는 호양공(胡襄公) 김윤수(金允壽)이다. 김구정은 세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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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할아버지는 간의공(諫議公) 김우류이며, 아버지는 화의군(和義君) 김달상(金達祥)이다. 김군정은 1360년(공민왕 9) 동당시(東堂試)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좌대언(左代言)으로 공을 세웠다. 고려 후기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신돈(辛旽)에 의해 아버지 김달상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홍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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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김균은 해평김씨의 시조인 장렬공 김훤술의 9세손이며, 관직은 밀직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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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김극유는 해평 사람으로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성균사예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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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매부는 농암 김주이다. 김기는 고려 말에 등제하여 정순대부 광주목사에 이르렀으며 화의군에 봉해졌다. 고려가 망한 것을 슬퍼하며 개경에서 경상북도 선산 옥성으로 둔거하였으며, 선산김씨의 입향 시조가 되었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 하송에 있으며, 신도비와 하송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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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여(德汝), 호는 동곽(東郭). 문충공(文忠公)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8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의성김씨 선산 입향조 김몽해(金夢海)이다. 김기찬은 1773년(영조 49) 진사가 되었으며, 1777년(정조 1) 문과에 급제하여 장릉별검·박사·직장·전적을 지냈다. 이후 종부시주부, 예조정랑, 경상도사, 정언, 지평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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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12세손이며, 대장군 김창서(金昌緖)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승사랑 김지탁(金之卓)이다. 김남보는 고려시대 과거에 급제하여 판도판서시호위대장군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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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여화(汝和), 호는 돈봉(遯峰). 오로재(吾老齋) 김성미(金成美)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습독(習讀) 김숭렬(金崇烈)이다. 김녕은 1610년(광해군 2)에 진사가 되었고, 1612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인목대비를 폐하자는 논의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623년 인조반정 뒤 임실현감으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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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간의공(諫議公) 김우류이다. 김달상은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공민왕 때 좌대언, 한성부윤, 응양상호군 양광도도순무사, 판밀직부사 등을 지내면서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으며, 일선김씨의 화의군파의 파조(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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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한 문신. 김두남은 1702년(숙종 28) 12월에 인동부사에 부임하였으며, 1703년(숙종 29) 7월 경상도관찰사와의 상피(相避)로 체거(遞去)되었다. 인동읍민이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죽전2동 도로변에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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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12세손이며, 일선김씨 우윤공파의 파조이다. 김득자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으며, 급제하여 관직이 삼사우윤에 이르렀다. 장차 고려가 망할 것을 알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으며, 일선김씨 우윤공파(右尹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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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김득충은 선산김씨의 시조인 순충공 김선궁의 9세손이며, 고려조에 등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 평장사, 수문관태학사, 판이부사, 감수국사, 상주국태자태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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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김명진의 선정비. 김명진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부사김후명진청덕선정비(府使金侯明鎭淸德善政碑)’는 김명진(金明鎭)은 나주목사로 재임하다가 조카인 김계온(金啓溫)이 전라감사로 부임함에 따라 1814년(순조 1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16년(순조 16) 이임한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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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성신(聖臣), 호는 칠암(七巖). 문간공(文簡公) 김취문(金就文)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만와공(晩窩公) 김유수(金裕壽)이다. 김몽화는 어려서부터 근면성실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 1754년(영조 30) 진사가 되고 이어서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4월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설서·승지를 거쳐 한성좌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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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일선. 자는 창중(昌中), 호는 매돈(梅墩). 검교위대장군 김창서(金昌緖)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인의(引儀) 김몽정(金夢丁)이다. 김번은 1558년(명종 13) 진사가 되었으며, 간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보고 진정사(陳情辭)를 짓고 스스로 관직을 버렸다. 이후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임진왜란을 당하여 청송(靑松)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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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치능(致能), 호는 학파(學坡).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복영(金福永)이다. 김병용은 1876년(고종 13)에 진사가 되었고, 1887년(고종 2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문관에서 수찬·교리를 역임하였으며, 비서승장례, 예조참판, 태의원소경 겸 장례원장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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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 아버지는 해평군(海平君) 김수(金洙)이다. 김복상의 벼슬은 한성판윤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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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아버지는 일선김씨 시조 순충공 김선궁이며, 동생은 삼사우윤을 지낸 김봉문이다. 김봉술의 벼슬은 시중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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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선장(善長), 호는 만성재(晩惺齋). 돈봉(遯峰) 김녕(金寧)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용응(金龍應)이다. 김상원은 1800년(정조 24)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지평·정언 등을 지냈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문하에 학문을 배웠으며, 평소에 의지가 굳고 덕을 많이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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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대가(待價). 아버지는 김우현(金遇賢)이다. 김선은 1468년(세조 14)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강원감사를 지냈다. 중종이 즉위하면서 정국훈(靖國勳)으로 함원부원군(咸原府院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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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구미 지역의 호족. 선산김씨의 시조. 본관은 선산.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29세손이며, 문성왕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신라의 마지막 왕손 체의공이다. 첫째 아들은 시중을 지낸 김봉술이고, 둘째 아들은 삼사우윤을 지낸 김봉문이다. 김선궁은 고려 태조가 팔공산 전투에서 패하고 경상북도 안동 병산에서도 패한 후에 선산 지역에 와서 숭신산성을 쌓고 마지막 결전을 벌여 대승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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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는 비. 김선궁(金宣弓)은 후삼국 시대 왕건(王建)과 연결된 선산의 강력한 호족으로 고려 태조의 공신이다. 김선궁 신도비(神道碑) 및 유허비(遺墟碑)는 2009년 8월 31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54호로 지정되었다. 김선궁 신도비 및 유허비는 구미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인 선산 김씨(善山金氏)[일선 김씨(一善金氏)]의 시조 김선궁을 추모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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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아버지는 좌찬성 김지(金地)이다. 김성경은 1472년(성종 3) 진사가 되었으며,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헌납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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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옥여(玉汝), 호는 오로재(吾老齋). 할아버지는 삼사우윤 김득자(金得資)이며, 아버지는 삼사좌윤 김천부(金天富)이며, 사위는 생육신 이맹전(李孟專)이다. 김성미는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예문관직제학 겸 군기시판사를 지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보고 사위 이맹전(李孟專)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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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 자는 성천(成天). 구암(龜巖) 김경장(金慶長)의 후손으로, 형은 좌랑 김성흠(金聖欽)이다. 김성용은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통훈대부에 승서(陞敍)되고, 병조정랑을 거쳐 고성현령에 이르렀다. 김성용이 고성현령으로 있을 때 베푼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당시 주민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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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유진(幼進), 호는 농은(農隱). 교위 김취연(金就硏)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구(金銶)이다. 김성진은 1801년(순조 1)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천거에 의해 경상도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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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 자는 군천(君天), 호는 남곽(南郭). 구암(龜巖) 김경장(金慶長)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식(金埴)이다. 김성흠은 1715년(숙종 4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 통훈대부에 올랐다. 이후 서천군수·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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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김세균의 선정비. 김세균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60년(철종 11)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여 도내를 순력하였으며, 백성들에 피해를 주고 있는 많은 폐단을 시정하여 주었다. 경상도관찰사로서 치적을 쌓은 것을 기려 백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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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도원(道原), 호는 동명(東溟). 할아버지는 성암(省庵) 김효원(金孝元)이며, 아버지는 통천군수 김극건(金克鍵)이다. 김세렴은 1616년(광해군 8)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들어갔으며, 수찬과 지제교를 거쳐 정언이 되었다. 1617년(광해군 9) 폐모를 주장하는 자를 탄핵하여 곽산에 유배되었다가 강릉에 이배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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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김수는 고려 후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대사간·직제학·개성윤을 지냈고,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을 토벌한 공으로 해평군(海平君)에 봉해졌고, 조선왕조가 개국한 후에는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구미의 선산에 우거하면서 매월 초하루에 학생들을 모아 학문을 강론하였고, 성산(星山)으로 이사해서 이숭인(李崇仁)과 도의로 사귀면서 녹봉서당(鹿峯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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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 자는 용재(龍在), 호는 서강(西岡). 좌의정을 지낸 김승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순정(金順挺)이다. 김수담은 1684년(숙종 10)에 진사가 되었고, 1687년(숙종 13)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좌랑을 거쳐 고령현감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에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인동 땅에 은거하였으며,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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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아버지는 직제학 김성미(金成美)이다. 김수정은 세종 조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사헌부감찰로 있을 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매부인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과 함께 관직을 버리고 오로촌(吾老村)으로 돌아와 학문에 열중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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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자배(子培), 호는 강호(江湖). 순충공 김선궁(金宣弓)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진사 김관(金琯)이다. 김숙자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총명하고 용모 또한 단정하였다.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한 후 사관이 되었으나, 시기하는 무리가 많음을 알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부모 봉양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431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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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헌가(獻可). 도감판관 승의랑 김완식(金完湜)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동래교수 김백경(金伯卿)이다. 김순은 1537년(중종 32) 문과에 급제하고, 형조정랑과 충청도사를 지냈다. 천성이 강직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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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문간공 김완(金琬)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연안부사 김겸(金兼)이다. 김시로는 태종 때 생원이 되었으며, 음사로 동래부사를 지냈다. 이후 나주목사를 거쳐 한성좌윤에 올랐다. 보조음극공신에 녹훈되어 일선부원군(一善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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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아버지는 문정공 김효정(金孝貞)이다. 김안생은 1429년(세종 1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홍문관수찬,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어사로 민정(民情)을 살피다가 병을 얻어 비안공관(比安公館)에서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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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여함(汝涵), 호는 양탄(瀁灘). 교위 김취연(金就硏)의 증손이며, 아들은 삼매당(三梅堂) 김하정(金廈梃)이다. 김양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되었다. 병자호란의 소식을 접한 이후 누차 벼슬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면서 서사(書史)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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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아버지는 농암(籠巖) 김주(金澍)이고, 손자는 김지경(金之慶)이다. 김양보는 문과에 등제되고 사인(舍人)으로 충주판관을 지냈으며, 울산(蔚山)에서 선위사(宣慰使)로 있었다. 자헌대부이조판서 겸 경연의금부사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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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성백(成伯), 호는 다병옹(多病翁). 증조할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김광좌(金匡佐)이며, 아버지는 직강 김석광(金錫光)이다. 김양선은 재주가 탁월하여 동강 김우옹의 총애를 받았다. 1616년(광해군 8)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전적·감찰·형조좌랑을 거쳐 경상도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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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선산. 자는 천개(天開). 돈봉(遯峰) 김녕(金寧)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김정삼(金鼎三)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정희량(鄭希亮) 등이 난을 일으켜 영남 일대가 혼란에 빠졌을 때, 김여건은 중군장으로 반란군을 금릉(金陵), 지례(知禮)에서 대파하고 정희량 일당을 생포하였다. 이인좌의 난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양무원종공신중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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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외암(畏菴). 아버지는 찰방 김훈(金壎)이고,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류(金瑬)이다. 선산 연봉리에서 태어났다. 김여물은 1577년(선조 10) 문과에 장원으로 등제하였으며, 충주도사를 거쳐 담양부사를 지냈다. 1591년에는 의주목사로 있을 때, 서인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되고 의금부에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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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순충공 김선궁의 후손이며, 손자는 김은유이다. 선산김씨 정조공파의 파조이다. 1383년(우왕 9) 지주가 이득진이 선산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할 때, 김연은 관리의 책임자로서 백성들을 금오산에 피신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문서와 서적을 동굴에 감추어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하는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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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양온공(良醞公) 김균(金均)의 후손이다. 김완은 고려 때 판밀직사사, 상호군, 양광도도순무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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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대장군을 지낸 김창서(金昌緖)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판서 김남보(金南寶)이며, 아버지는 중랑장 김승만(金升萬)이다. 김완식은 1393년(태조 2) 중진사를 지냈으며, 1398년(태조 7) 개국공신으로 도감판관에 제수되고 의창현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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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우경(羽卿). 할아버지는 김봉선(金奉先)이고, 아버지는 김집(金㙫)이며, 형은 김수장(金壽長)이다. 외할아버지는 구완(具浣)이며, 장인은 정홍보(鄭弘輔)이다. 김운장(金雲長, 1610~1687)은 1633년(인조 11) 진사가 되고, 1639년 식년문과에서 갑과 1등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1662년(현종 3) 양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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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아들은 고려 말 충신으로 이름이 높은 백암(白巖) 김제(金濟)와 농암(籠巖) 김주(金澍)이다. 김원로(金元老)는 고려 말 정순대부(正順大夫) 예의판서(禮儀判書),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지춘추사(知春秋事)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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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지화(至和), 호는 만오(晩悟). 할아버지는 김경(金澃)이고, 아버지는 김하량(金廈樑)이며, 장인은 권기(權愭)이다. 김원섭(金元燮, 1640~1710)은 1669년(현종 10) 생원이 되고, 167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에 들어갔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실세하자 관직에서 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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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김위의 선정비. 김위(金偉)는 남원 출신으로서, 성혼의 문인으로 이이(李珥)와 교유하였으며, 1558년(명종 1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내외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선산부사도 역임하였다. 벼슬이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이르렀으며, 그가 이임한 뒤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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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선산(善山). 할아버지는 화의군(和義君) 김기(金起)이며, 아버지는 김가명(金可銘)이다. 김유찬(金有瓚)은 세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김종서(金宗瑞, 1390~1453)와 더불어 북방 평정에 공을 세워 정평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에 제수되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적개원종공신(敵愾原從功臣)에 녹선(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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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김조(金銚)이다. 김윤(金輪)은 1460년(세조 6)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었으며, 1474년(성종 5)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에 포상의 기준을 정하자는 안을 왕에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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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형은 호양공(胡襄公) 김윤수(金允壽)이다. 김윤덕(金允德)은 세종 대에 하동현감을 지냈고, 문종 대에 남해현령을 지냈으며, 세조 대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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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이정(而靜), 호는 동리(東籬). 할아버지는 김자순(金自順)이며, 아버지는 김박(金博)이다. 외할아버지는 이의(李漪)이며, 장인은 구봉령(具鳳齡)이다. 김윤안(金允安, 1562~1620)은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88년(선조 21)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윤명(金允明)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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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할아버지는 정조공(正祖公) 김연(金延)이다. 김은유(金恩宥)는 고려 말 동면도감판관(東面都監判官)과 중정대부(中正大夫) 동재령(同宰令)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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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백춘(伯春), 호는 병암(屛庵). 아버지는 경질공(景質公) 김지경(金之慶)이다. 김응기(金應箕)는 1477년(성종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교리·전교·직제학을 거쳐 좌부승지를 지냈다. 1499년(연산 5) 동지중추부사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0년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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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1587~1667)는 유성룡(柳成龍, 1542~1607)과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23년(인조 1)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1633년(인조 11) 선산부사로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파직되었다. 이후 시강원보덕·사간원사간·동부승지·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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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김응조의 선정비. 김응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640년(인조 18)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42년(인조 20)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이 이를 기려서 선정비를 세웠다. 김응조 거사비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공직자 상을 생각하게 한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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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인동부사를 역임한 무신. 김응해(金應海, 1588~1666)는 1630년(인조 8) 인동부사(仁同府使)에 임명되었으며, 1632년 정주목사(定州牧使)에 제수되었다. 이후 순천군수·강계부사(江界府使) 등을 거쳐 어영대장(御營大將)을 역임하였다. 인동부사 재직 기간에 선정을 베풀어 당시 읍민이 세운 유애비(遺愛碑)가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인동시립도서관의 정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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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김응해의 선정비. 김응해(金應海)는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630년(인조 8)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32년(인조 10) 정주목사로 승배되어 떠났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133㎝, 너비 64㎝, 두께 19.5㎝의 비신을 세우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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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초명은 신원(信元), 자는 수백(守伯), 호는 소암(素庵). 형은 성암(省庵) 김효원(金孝元, 1532~1590)이다. 김이원(金履元, 1553~1614)은 1583년(선조 16) 알성문과에 병과 6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호조좌랑·홍문관수찬·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593년 의주목사에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형조참판·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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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아버지는 백암(白巖) 김제(金濟)이다. 김자연(金自淵)은 태조 대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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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할아버지는 문정공(文靖公) 김효정(金孝貞)이며, 아버지는 김안생(金安生)이다. 김장눌(金長訥)은 1489년(성종 20)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헌부집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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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공후(公厚). 김전(金㙉)은 덕망으로 추천되어 벼슬이 가선대부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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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김원로(金元老)이며, 동생은 농암(籠巖) 김주(金澍)이다. 김제(金濟)는 고려 공양왕 때 조봉랑(朝奉郎)으로 평해군수에 재직하다가 망국의 소식을 듣고 깊이 통곡하였으며, 중국 제나라 때 나라를 위하여 바다에 빠져 죽은 노중련(魯仲連)의 고사를 본받아 이름을 제해(濟海)로 고쳤다. 이후 시 한 수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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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호는 강헌(岡軒). 아버지는 김방로(金邦老)이다. 김종리(金從理)는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 12등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임실현감(任實縣監)·진산도사(珍山都事)·고부도사(古阜都事) 등을 거쳐 예문관직제학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효정(孝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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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의백(毅伯). 김종무(金宗武, 1548~1592)는 1591년(선조 24) 학덕으로 천거되어 남원의 오수도찰방(獒樹道察訪)을 지냈으며, 이어서 함양의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로 가서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진에 들어가 상주판관(尙州判官) 권길(權吉)과 함께 의병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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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아버지는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 1389~1456)이며, 동생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다. 김종석(金宗碩)은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고 1455년(세조 1)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성균관직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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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부사를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길재(吉再, 1353~1419)―김숙자(金叔滋, 1389~1456)로 이어지는 한국 유학의 정통을 계승한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이다.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사후에 문제가 되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부관참시(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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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호는 농암(籠巖). 아버지는 김원로(金元老)이며, 형은 백암(白巖) 김제(金濟)이다. 김주(金澍)는 1392년(공양왕 4)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내며 하절사(賀節使)로 명나라에 갔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압록강에 이르러 망국의 소식을 듣고 명나라로 다시 돌아가 명나라 황제에게 조선을 정벌하고 고려를 다시 건국해줄 것을 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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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 농암마을에 있는 고려 충신 농암(籠巖) 김주(金澍)의 유허비. 김주의 관향은 일선(一善)으로, 호는 농암이다.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후손으로 백암(白巖) 김제(金濟)의 아우이다. 1392년(공양왕 4) 예의판서로 명나라에서 하절사(賀節使)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중 압록강에 이르러 조선 건국의 소식을 들었다. 이때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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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할아버지는 농암(籠巖) 김주(金澍)이며, 아버지는 김양보(金揚普)이다. 김지(金地)는 세종 대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사헌부장령을 역임하였다. 사후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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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유후(裕後). 증조부는 농암(籠巖) 김주(金澍)이며, 아버지는 김지(金地)이다. 김지경(金之慶, 1419~1485)은 1439년(세종 2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감찰좌랑(監察佐郞)·직제학·대사성·대사간·평안도관찰사·전라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강원도관찰사·개성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김종직(金宗直, 1431~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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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이옥(而玉), 호는 은곡(隱谷). 김진구(金振久, 1744~1786)는 1774년(영조 50) 식년문과에 갑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벼슬이 통훈대부와 병조좌랑에 이르렀다. 병조좌랑으로 재직하던 중 동명이인의 관원이 법을 어겨 방(榜)이 붙자 선비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후 두문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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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효숙(孝叔). 할아버지는 김성경(金成慶)이고, 아버지는 김보(金甫)이며, 동생은 김진종(金振宗)이다. 김진조(金振祖)는 1510년(중종 5) 식년문과에 병과 8등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성균관사성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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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효선(孝先), 호는 신재(新齋). 할아버지는 김성경(金成慶)이고, 아버지는 김보(金甫)이며, 형은 김진조(金振祖)이다. 김진종(金振宗, 1496~1557)은 1528년(중종 23) 식년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홍문관응교, 경성판관(鏡城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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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고풍(古風), 호는 활계(活溪). 아버지는 매돈(梅墩) 김번(金蕃)이다. 김진호(金震頀, 1571~1615)는 평생 동안 학문 연구에 노력하였으며, 만년에는 역학(易學)에 통달하여 「방원도(方圓圖)」와 「범주도(範疇圖)」를 저술하였다. 저서로는 『활계선생집(活溪先生集)』이 있다. 구미의 화강서원(華江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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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달부(達夫), 호는 초각(草閣). 아버지는 서강(西岡) 김수담(金壽聃, 1646~1712)이다. 김집(金㙫)은 1723년(경종 3) 식년문과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내고 신창현감(新昌縣監)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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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아버지는 김득자(金得資)이다. 김천부(金天富)는 고려 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삼사좌윤(三司左尹)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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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자연(子挻), 호는 백담(栢潭). 할아버지는 김취빈(金就彬)이며, 아버지는 김도(金燾)이다. 김천영(金天英)은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병과 8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성균관전적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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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선산김씨의 시조. 김추(金錘)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여덟 번째 아들로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선군(一善君: 일선은 선산의 옛 이름)에 봉해졌으며, 그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선산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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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庵). 아버지는 김광좌(金匡佐)이다.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은 1537년(중종 32) 별시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과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이후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외직으로 나가 비안현감(比安縣監)을 지냈다. 1544년 강원도도사를 거쳐 이듬해 홍문관수찬을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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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성지(成之), 호는 진락당(眞樂堂) 또는 서산(西山). 아버지는 김광좌(金匡佐)이다. 김취성(金就成, 1492~1550)은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마을 뒷산에 서산재(西山齋)를 지어 다섯 아우와 많은 후학을 교육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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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정지(精之). 아버지는 김광필(金匡弼)이다. 김취정(金就精)은 1510년(중종 5)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함께 생원시에 공동으로 장원 급제하였으며, 1519년(중종 14) 별시에 병과 7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병조좌랑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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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김치(金峙)는 1388년(우왕 14)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사간·김해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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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지역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여임(汝任), 호는 강탄(江灘). 할아버지는 김석지(金錫址)이며, 아버지는 탄옹(灘翁) 김경(金澃)이다. 김하량(金廈樑)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2년 식년문과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안동부사·판결사(判決事)·한성부우윤 등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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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아버지는 김효정(金孝貞)이며, 형은 김안생(金安生)이다. 김한생(金漢生)은 조선시대에 합천군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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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구미출신 무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선원(宣源). 아버지는 김복기(金復其)이다. 김한손(金漢孫)은 중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냈고,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어 통훈대부에 올랐으며, 남포현감(藍浦縣監)·홍주진관(洪州鎭管)·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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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고조부는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직계로 경순왕(敬順王)을 따라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여 공신이 된 김유렴(金庾廉)이며, 아버지는 김행공(金行恭)이다. 김한충(金漢忠, 1043~1120)은 문과에 급제한 뒤 1087년(선종 4)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어서 형부시랑·예부상서 등을 거쳐 추밀원사와 상서좌복야를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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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경부(敬夫), 호는 주촌(注村). 할아버지는 백암(白巖) 김제(金濟)이며, 아버지는 김자연(金自淵)이다. 김효정(金孝貞)은 1399년(정종 1) 진사가 되고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등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중시(重試)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추밀원(樞密院)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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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해평김씨의 시조. 김훤술(金萱述)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삼중대광보국문하시중(三重大匡輔國門下侍中)에 오르고 해평군(海平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에 따라 본관을 해평으로 하였다. 시호는 장렬(壯烈)이며, 후인들이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수호신으로 추앙하고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영응사(靈應祠)에 석상을 만들어 모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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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죽헌(竹軒). 할아버지는 김세권(金世權)이다. 김희설(金希楔)은 선조 대에 통훈대부에 오르고 낙안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사들을 지휘하여 수차례 전공을 세웠다. 왜군의 숫자가 많아 전세가 불리해졌으나 나라를 위하여 순절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여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후 임난공신록에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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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해평면 낙산리 후곡지 오른쪽에 소를 키우는 축사로 이용하고 있는 곳의 뒤편에 1기가 남아 있다. 또 다른 1기는 일선분교에서 500m 남쪽 평지의 논에 위치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관찰되지 않는다. 남아 있는 1기는 현재 낙산리 사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한데, 최근 이를 제거하기 위하여 깊이 7㎝의 구멍을 가로로 약 20개 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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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가다 해평면 소재지에 이르면 오른쪽에 해평초등학교가 있고, 그곳을 지나 면 소재지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서쪽의 낙성1리로 들어가 앞들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상리마을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해발 60m 정도의 얕은 구릉이 나온다. 유물산포지는 이 구릉의 동쪽 사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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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북쪽 기슭 바위벽에 새겨진 글자. 금오산 삭도 승차장에서 등산로로 150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오른쪽 바위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큰 바위벽에 조선 중기 명필인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67)가 새긴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금오동학’이란 네 글자는 가로·세로가 2척(二尺)이나 되는 대자(大字)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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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앞 자연바위에 새겨진 글자. 남통동 금오성 수축 구정칠택 암각은 1596년(선조 29) 금오산성 내에 아홉 개의 샘과 일곱 개의 못을 파고 금오산성의 수축을 완료한 기념으로 새긴 것이다. 금오성 수축 구정칠택 암각은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앞에 있다. ‘선조 병신(宣祖 丙申) 선산부사 배설(善山府使 裵楔) 축 금오성 천 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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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왼쪽 암벽 위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의 왼쪽에 위치하는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통동 오금포 암각은 금오산 대혜폭포 왼쪽 암벽 위에 ‘오금포’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다. 폭포의 표고는 400m, 낙차 28m로 영남 8경에 속한다. 오금포의 자경은 30×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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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도선굴 아래에 새겨진 글자. 조선시대 1592년(선조 25)에 경상좌도 함안 사근도역(沙斤道驛) 찰방(察訪)을 지낸 김종무(金宗武)의 막내아들인 욕담(浴潭) 김공(金羾)은 2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도선굴(道詵窟) 아래 움집을 짓고 은둔하였다. 조정에서 아버지 김종무의 공훈으로 벼슬에 제수해도 “벼슬하러 한양 가는 길은 상주 땅을 밟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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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대혜폭포 옆 암벽에 새겨진 글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중에 금오산 도선굴 아래 움막을 짓고 학문에만 전념하던 선산인(善山人) 김공(金羾)이 암벽에다 ‘욕담(浴潭)’이라고 새기고 자호(自號)를 욕담이라 했다고 한다. 남통동 욕담 암각은 금오산 대혜폭포에 아래 욕담이라 불리는 못[沼] 부근 암벽에 새겨져 있다. 남통동 욕담 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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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내예리의 자연석에 새겨진 글자. 내예리 연화장 암각은 1990년 6월 소하천 및 도로를 정비할 때 노출되어 발굴하게 되었다. 발굴 이후 구미시 고아읍 내예리에 재건해 놓았다. 내예리 연화장 암각은 ‘안토락천 연봉국지(安土洛天 蓮峰局地)’라는 제명으로 각자(刻字)되어 있다. 덕산황씨(德山黃氏) 문중에서 1521년(중종 16)에 높이 1.15m 폭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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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명중(明仲) 또는 이중(彛仲), 호는 역락당(亦樂堂).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성(盧守誠)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다. 노경륜(盧景倫, 1566~1655)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뛰어나고 기상이 온화하여 당시 사우(師友)들의 모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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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서오(瑞伍), 호는 사헌(士軒). 아버지는 노상표(盧尙標)이다. 노경엽(盧慶燁, 1794~1861)은 1825년(순조 25) 무과에 급제하여 1837년(헌종 3) 황해도중군에 제수되었고, 1844년 오위장(五衛將)에 올랐다. 1861년(철종 12) 통진도호부사(通津都護府使)를 거쳐 1864년(고종 1) 공주영장(公州營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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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함[(盧守諴), 1516~1573]이다.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며, 부인은 풍산유씨(豊山柳氏)로 유운용(柳雲龍)의 딸이다.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은 장현광(張顯光, 1554~1637)과 유성룡(柳成龍,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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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성(盧守誠)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다. 노경필(盧景泌, 1554~1595)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73년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능서랑(陵署郞)으로 천거되었으나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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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휴(國休), 호는 죽월헌(竹月軒). 노경필(盧景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노성빈(盧聖賓)이고, 어머니는 이선지의 딸이다. 노계정(盧啓禎, 1695~1755)은 1725년(영조 1)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732년 서추(西樞) 김취로(金取魯)의 천거에 의해 수문장이 되었다. 1734년 훈련주부·도총부도사를 지냈고, 이듬해 박천군수에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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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자허(子虛). 할아버지는 노종선(盧從善)이고, 아버지는 노소종(盧紹宗)이며,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이완규(李完圭)의 딸이다. 노관(盧綰)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이후 병절교위(秉節校尉)와 충좌위(忠佐衛)의 중부장(中部將)을 역임하였으며, 덕망과 행실로 천거되어 무과를 거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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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용겸(用謙), 호는 서산와(西山窩)이다. 노상추(盧尙樞, 1746~1829)는 1780년(정조 4) 무과에 급제하여 1784년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다. 1787년 진동만호(鎭東萬戶)를 역임하였으며, 1792년 선전관을 거쳐 1793년 삭주부사에 임명되었다. 1800년 홍주영장(洪州營將)을 거쳐 1805년(순조 5)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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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미언(美彦). 노경필(盧景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노이원(盧以元)이며, 부인은 완산이씨(完山李氏) 이선(李繕)의 딸이다. 노성빈(盧聖賓, 1658~1718)은 부모의 상을 당하여 효성을 다하였고, 형제 사이의 우애를 돈독히 하였으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사후 호조판서·의금부동지사·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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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행원(行遠). 아버지는 노이진(盧以晋)이다. 노성여(盧聖與)는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반대 당파의 방해로 삭탈관직되었으며, 이후 은거하여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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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강(安康)[경주(慶州)]. 자는 경부(敬夫), 호는 송암(松庵). 할아버지는 노소종(盧紹宗)이며, 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다. 노수함(盧守諴)은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40년(중종 35)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서에 『성리군서잠명(性理群書箴銘) 』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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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경려(敬勵). 아버지는 노상추(盧尙樞)이다. 노익엽(盧翼燁, 1771~1851)은 1804년(순조 4) 무과에 급제하여 1814년 수문장에 임명되었다. 1822년 훈련원주부를 거쳐 1825년에 중추부도사를 역임하였으며, 1826년 흥덕현감에 임명되었다. 1832년 경상감영의 좌별장에 제수되고 절충장군의 품계가 추가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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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별칭은 이성(利城) 또는 이성백(利城伯)이다. 노종선(盧從善)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세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이원현감(利原縣監)을 지냈으며, 이후 벼슬이 조봉대부와 군기시첨정에 이르렀다. 만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금오산 아래에 은거하며 야은(冶隱) 길재(吉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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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극수(克秀). 아버지는 노명찬(盧明瓚)이며, 부인은 문소김씨(聞韶金氏)로 김필교(金弼敎)의 딸이다. 노진교(盧鎭嶠, 1819~1868)는 1846년(헌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적순부위(迪順副尉)로 용양위부사정(龍驤衛副司正)이 되었으며, 1854년(철종 5) 효력부위(效力副尉)로 수문장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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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군징(君澄), 호는 양실당(養失堂). 아버지는 노계정(盧啓禎)이다. 노철은 부모에게 효성스러웠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부부간에 예를 다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있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1738~1816)가 행장과 묘갈명을 지었다. 사후 호조참판겸의금부동지사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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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양호(養皓), 호는 백송대인(白松大人). 아버지는 노계조(盧啓祚)이다. 노호(盧澔, 1765~1833)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의 안강노씨 세거지에 세워진 문산서원(文山書院)이 서원으로 승격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평생 동안 학문에 전념하여 많은 유림으로부터 존경받았으며, 학문과 행실이 뛰어나 존노(尊老)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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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강(安康)[경주(慶州)]. 아버지는 노인도(盧仁度)이다. 노호(盧浩)는 1419년(세종1) 식년문과에 병과 6등으로 급제하였고, 이후 여러 고을의 교수관을 거쳐 벼슬이 장흥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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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낙동강변의 통로 암벽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하농소마을에 있는 양수장 북편 낙동강변의 통로 암벽 돌출된 부분에 있다. 돌출된 약 3m 크기의 바위 가로 1.2m, 세로 2m의 평면을 다듬은 곳에 ‘석문(石門)’이라는 글자가 자경 15㎝ 크기로 새겨졌으며, 서체는 행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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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낙동강변의 절벽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하농소마을에 있는 양수장 북편 낙동강변 절벽에 있다. 가로 5m, 세로 10m 크기의 암벽의 약 1~2m의 벽면에 ‘운도(雲島)’라는 글자가 자경 약 20㎝ 크기로 새겨져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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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서 상주 방면으로 통하는 국도 33호선을 따라 가면 천연기념물 제225호로 지정된 농소리 은행나무가 있는 농소2리 이실마을이 나타난다. 유물산포지는 이 마을 서쪽의 구릉에 상당히 넓게 분포하고 있다. 산포지의 입지는 이실마을 서쪽에서 동쪽 낙동강으로 뻗어 내린 해발 100~50m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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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떼. 구미와 선산 사이의 국도 38호선을 따라 선산 방면으로 5㎞를 가다가 문성교를 건너면 인노천을 따라 우회전하여 왼쪽에 구운초등학교가 있는 곳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다식리 모산마을이 나오고 송림리 무지개아파트가 나타난다. 고인돌군은 무지개아파트 남쪽에 있는 소나무 숲 안에 7기가 있다. 인노천의 자연 제방에 형성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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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완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사육신이던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의 유허비. 하위지의 자는 천장(天章), 호는 단계(丹溪)이다. 1412년(태종 12)에 선산 영봉리에서 출생하여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을과 제1인으로 급제, 부제학,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거사에 실패하여 1456년(세조 2)에 참형을 당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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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선산에서 상주로 통하는 국가지원지방도 68호선을 따라 가면 무을면과 옥성면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지방도 916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대원저수지가 나타난다. 이 저수지의 북동편 도로 건너에 고인돌 1기가 위치한다. 덮개돌의 평면은 장방형에 가깝고 하부는 매몰되어 있어서 구조 형식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장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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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산포지. 선산에서 상주로 통하는 국가지원지방도 68호선을 따라 가다 무을면 방향과 옥성면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지방도 916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대원저수지가 나타난다. 산포지는 두 곳에서 확인되었는데, 한 곳은 저수지 못 미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나오는 새마을마을의 왼쪽에 남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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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산포지. 선산에서 상주 방면으로 통하는 국가지원지방도 68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무을면과 옥성면으로 가는 분기점에 이르게 되고, 여기에서 왼쪽으로 봉곡천에 설치된 덕촌교를 건너면 덕촌1리 하미고개마을·등넘마을·살월마을이 나타난다. 등넘마을에서 다시 봉곡천을 건너서 북쪽으로 지방도 902호선을 따라 봉곡저수지 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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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산포지. 국도 25호선을 따라 산동면사무소를 지나 조금 가다보면 적림제2교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우회전하여 소로를 따라 끝까지 가면 도중리 도리미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의 앞과 우측 능선상의 논과 밭으로 경작되는 곳에 삼국시대에 속하는 개편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속하는 토기편·자기편이 다수 산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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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의 돌출된 암벽에 새겨진 글자. 독동리 문산동문 암각은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암벽에 있다. 독동리 문산동문 암각은 가로 세로 약 20m 크기의 돌출된 암벽에 ‘문산동문’이라는 글자가 자경 약 20㎝ 크기의 해서체로 각자 되어 있다. ‘문산계(文山界)’의 ‘계(界)’자가 메워져 후대에 동문(洞門)으로 새로 새긴 흔적이 보이며, 서체는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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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낙동강변 암벽의 돌출된 부위에 새겨진 글자. 독동리 북암 암각은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강창마을 낙동강변 바위에 있다. 독동리 북암(北岩) 암각은 약 20m 높이의 암벽에 돌출된 부위의 가로 약 5m, 세로 약 4m의 벽면에 자경이 약 20㎝인 해서체로 각자(刻字)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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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문산 동문 아래 바위 벽면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강창마을 낙동강변 바위에 있다. 독동리 송범대 암각은 문산 동문 아래 가로 1m, 세로 1.5m 크기의 바위 벽면에 ‘송범대(送帆臺)’라는 글자가 자경 약 13㎝ 크기로 새겨져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이다. 왼쪽 아래로는 ‘황학거사제(黃鶴居士題)’라고 새겨져 있다. 하운에서 돛단배를 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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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국도 25호선을 따라 가다 산동면사무소 조금 못 미쳐 우회전하여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에 마상골마을이 나타난다. 고분군은 이 마상골마을 좌측의 서쪽으로 뻗은 능선상에 위치한다. 현재는 민묘가 조성되거나 밭으로 개간되어 있어서 토기편과 자기편이 산재하고 있다. 주변에 소형분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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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고려시대 토성 터. 선산읍 동부리 남쪽 구릉과 동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300m 정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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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 선산출장소 내 자연석에 새겨진 글자. 확실한 연대는 미상이다. 삼형제가 함께 선산(善山)·금산(金山)·순천(順天)의 수령(守令)이 되어 부임(赴任)하면서 이곳에 와서 놀았는데, 이때 차고 있던 관인(官印)을 이 돌 위에 끌러 두고 놀았다고 하여 ‘삼인석’이라 새겼다 전한다. 동부리 삼인석 암각은 구미시 선산출장소 청내에 있다. 동부리 삼인석 암각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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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고려시대 읍성 터. 비봉산 능선에는 성벽이 남아 있으나 평지에는 성벽의 흔적을 전혀 확인할 수 없어 비봉산성과 읍성의 관련성을 유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읍성조」에 따르면 “고려 후기에 이득진이 쌓았는데, 토축으로 둘레가 2,740자이고, 내부는 9천(泉) 3지(池)로 퇴락한 지 오래이며, 조선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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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노헌영 가에 있는 조선 전기 서거정이 엮은 시화집. 『동인시화』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편찬하고 1477년(성종 8) 밀양에서 간행한 초간본이다. 2011년 4월 29일 보물 제1712호로 지정되었다. 책 앞에 강희맹(姜希孟)과 김수온(金守溫)이 1474년(성종 5)과 1475년(성종 6)에 각각 쓴 서문이 있고, 본문 상·하권이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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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 모례(毛禮)는 눌지왕 때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로 온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墨胡子)를 집안에 굴을 파서 3년 동안 숨겨주었다. 소지왕 때에는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로 오자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하고, 모례(毛禮)는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가 되었다. 그때 모례의 누이 사씨(史氏)도 아도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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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구미시 무을면에서 선산 방면으로 통하는 지방도 68호선을 따라가다가 무이리를 조금 지나면 오른쪽에 무이농산물간이집하장이 나타난다. 산포지는 이 집하장 뒤편의 남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의 동에서 서로 완만하게 펼쳐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에서 토기편과 자기편 등이 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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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묵어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묵어2리로 가는 소로를 따라가면 윗머들마을과 치박골 사이에 형성된 비교적 완만한 구릉이 있는데, 산포지는 이 구릉 말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묵어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현재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서 자기편과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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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무신 문관도(文貫道)는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하양현감과 경주판관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문희성(文希聖)·문희현(文希賢)·문희철(文希哲)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경상도순찰사로 재직하던 중 별세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독용산(禿用山)에 있다. 사후 호조참찬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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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자화(子華), 호는 해은(海隱). 할아버지는 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이다. 문영(文英)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393년(태조 2)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를 지냈으며, 이후 선산부사를 거쳐 홍문관직제학을 역임하였다. 형 문래(文萊)가 목화에서 실을 뽑는 물레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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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왕비. 본관은 일선(一善). 아버지는 시중(侍中)에 추증된 김원숭(金元崇)이며, 어머니는 화의군대부인(和義郡大夫人)에 봉해진 왕씨(王氏)이다. 문화왕후(文和王后)는 고려 성종(成宗)의 두 번째 왕비로 연흥궁주(延興宮主)·현덕궁주(玄德宮主)로 불리다가 원정왕후(元貞王后: 현종의 왕비)를 출산한 후 1029년(현종 20) 대비(大妃)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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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경수(敬修), 호는 지헌(止軒). 아버지는 문관도(文貫道)이며, 동생은 문희현(文希賢)이다. 문희성(文希聖)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공을 세웠다. 이후 서생포첨사와 고령첨사를 거쳐 수원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1614년(광해군 6) 역모를 꾀하였다는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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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아버지는 문관도(文貫道)이며, 형은 문희성(文希聖)이다. 문희현(文希賢)은 1611년(광해군 3) 제주판관으로 있을 때 명나라·일본·유구(琉球) 사람들이 탄 상선이 제주도에 표류해오자 제주목사 이기빈(李箕賓)과 함께 선원을 모두 죽이고 화물을 탈취하였다. 이후 왜구의 배를 공략하여 침몰시켰다고 보고하였다가 왜적선이 아니었음이 밝혀져 경성(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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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세자빈. 본관은 금천. 강감찬의 19세손이며, 아버지는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이다. 민회빈 강씨는 1627년(인조 15) 소현세자와 가례를 올렸으며,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瀋陽)에 볼모로 갔다가 1645년 귀국하였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심관(瀋館)에서 국왕의 대리자로서 많은 재량권을 행사하였고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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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형보(亨甫). 할아버지는 박영(朴英)이다. 박경지(朴敬祉)는 1635년(인조 13)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듬해 무과중시(武科重試)에 장원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무관직을 거쳐 1643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냈고, 1648년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654년(효종 5)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658년 경상우도병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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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공익(公益), 호는 만오(晩悟).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선호(朴善浩)이다. 박래겸(朴來謙, 1780~1842)은 1809년(순조 9) 증광문과에 병과 23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호조참판과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829년 영의정 이상황(李相璜)이 심양정사(審陽正使)로 갈 때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수행하였고,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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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오초(烏樵).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도호(朴道浩)이다. 박래면(朴來冕, 1823~1879)은 1858년(철종 9) 식년문과에 을과 6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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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영서(永瑞).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문호(朴文浩)이다. 박래명(朴來命, 1797~1875)은 1824년(순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전라우도수군절도사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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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서(命瑞).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문호(朴文浩)이다. 박래영(朴來永, 1793~1846)은 1823년(순조 23) 무과에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충청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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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치수(穉受).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응호(朴應浩)이다. 박래익(朴來益, 1796~1862)은 1823년(순조 23) 무과에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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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揚). 자는 공서(公瑞), 호는 오송헌(五松軒). 고조부는 박수홍(朴守弘)이고, 할아버지는 박증휘(朴增輝)이며, 아버지는 박성익(朴成翼)이다. 박봉령(朴鳳齡, 1671~1718)은 1699년(숙종25) 식년문과에 병과 14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병조참판과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인현왕후(仁顯王后)의 국상(國喪) 때에는 빈궁도감(殯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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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구(成九), 호는 동정(東井).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래겸(朴來謙)이다. 박봉하(朴鳳夏, 1809~1881)는 1852년(철종 3) 음사(蔭仕)로 은진현감을 지냈으며, 이후 벼슬이 광주목사에 이르렀다. 경상북도 영천시에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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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장인은 생육신인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 1392~1480)이다. 박사제(朴斯悌)는 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보덕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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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영가(寧可). 호는 율정(栗亭). 박서생(朴瑞生)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음보(蔭補)로 성균학정이 되었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 3등으로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서 을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조참판과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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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선산박씨의 시조. 박선민(朴善敏)은 음보(蔭補)로 목사를 지냈으며, 선산(善山)을 관적(貫籍)으로 받아 후손들이 선산을 관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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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관(汝寬), 호는 근와(芹窩). 증조부는 박수홍(朴守弘)이고, 조부는 박진환(朴震焕)이며, 아버지는 박경휘(朴景輝)이다. 박성유(朴成裕)는 1711년(숙종 37)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부사과(龍讓衛副司果), 동호군(同護軍), 철산진관(鐵山鎭管), 장자둔별장(長者屯別將), 동여덕진관(同如德鎭管), 구산수군첨절제사(龜山水軍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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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물 박소용(朴韶鏞)의 송덕비. 박소용은 지산동에 거주한 밀양인(密陽人)으로, 박동보(朴東輔)의 증손자이다. 박동보의 구황비(救荒碑)에 의하면 그는 아들 박도환(朴道煥)에게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유언하였으며 박도환은 부친의 뜻에 따라 흉년에 많은 사람들을 구하였다. 이후 손자 박효달(朴孝達), 증손자 박소용(朴韶鏞) 대에 이르기까지 재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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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순백(純伯), 호는 건재(健齋). 박수일(朴遂一)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암(敬庵) 노경임(盧景任, 1569~1620)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웠다. 이후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임명되었고,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의병을 모아 여러 곳에서 전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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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유언(裕彦), 호는 봉곡(蓬谷). 아버지는 박정실(朴鼎實)이며, 어머니는 벽진이씨(碧珍李氏)로 북봉(北峰) 이민선(李敏善)의 딸이다. 박수홍(朴守弘, 1588~1644)은 매돈(梅墩) 김번(金蕃)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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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료 박수홍의 묘비. 박수홍의 자는 유언(裕彦), 호는 봉곡(蓬谷)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권지부정자에 보임되었으며, 외직을 거쳐 성균관전적, 예조좌랑을 역임하였고, 예조정랑겸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강화로 호종하였으며, 그 뒤 경외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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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실(子實), 호는 송당(松堂). 좌찬성 박호문(朴好問)의 증손이다. 외할아버지는 양녕대군(讓寧大君), 아버지는 이조참판 박수종(朴壽宗)이다. 박영은 어릴 때부터 활 쏘기와 말 달리기를 연마하여 무예가 특출하였다. 1492년(성종 23) 22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조방장·황간현감·동부승지·김해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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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구평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박영의 묘. 조선 전기의 대표적 무인으로, 대대로 선산에 거처하면서 『송당집』, 『경험방(經驗方)』, 『활인신방(活人新方)』, 『백록동규해(白鹿洞規解)』 등과 같은 걸출한 저서를 남긴 송당 박영의 묘이다. 박영의 할아버지는 안동대도호부사 박철손(朴哲孫)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박수종(朴壽宗)이며, 어머니는 양녕대군(讓寧大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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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에 있는 조선시대 선비 박운의 묘. 이회재, 이퇴계, 김취성과 학문을 서로 강론하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자양심학론』, 『격몽편』, 『경행록』, 『삼후전』, 『위생방』 등 많은 저서를 남긴 박운의 묘이다. 박운 묘는 장천면 상림마을의 북쪽으로 난 도로를 약 1.5㎞ 정도 따라가 보면 나타나는 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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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오(聲吾).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박천건(朴天健)이다. 박응호는 1784년(정조 8) 무과에 25세로 급제하였고 1786년 중시 무과에도 급제하였다. 이후 충청우후, 경주영장, 벽동군수, 여산부사, 파주목사, 충청수군절도사, 황해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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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揚). 자는 중겸(仲謙), 호는 겸암(謙庵).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남헌(南軒) 박성집(朴成集)이다. 박익령은 1725년(영조 1) 진사에 급제하였으며 음사(蔭仕)로 서부봉사를 역임하였다. 글씨, 문장, 학행이 뛰어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유고(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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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인구(仁九), 호는 동석(東石).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 박래겸(朴來謙)이다. 박인하는 1849년(헌종 15) 사마시에 급제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옥당(玉堂, 홍문관)에 들어갔다. 이후 홍문관의 박사·부수찬·수찬·부교리·교리, 사간원의 정언·헌납, 사헌부의 지평·집의 등 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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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군선(君善).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수사(水使) 박래영(朴來永)이다. 박장하는 1838년(헌종 4)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수안군수·만포첨사·청송부사·충청도수군절도사·전라도병마절도사·한성좌윤을 거쳐 벼슬이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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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지낸 박중규의 애휼비(愛恤碑). 박중규는 1701년(숙종 27) 3월 10일에 도임하여 이듬해인 1702년(숙종 28) 윤6월 29일까지 선산부사로 재임하면서 수령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애민(愛民), 진휼(賑恤)함으로써 읍민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이러한 그의 선정에 보답하고자 백성들이 금오산성 내의 암벽에 선각한 비이다.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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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박증휘는 유배를 감수하면서 용기 있게 많은 상소를 올려 국정 쇄신에 힘을 보탠 인물로, 현종조에 유명한 칠간신(七諫臣) 중의 하나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회중(晦中), 호는 낙정(洛汀). 할아버지는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 아버지는 효자 남강(南江) 박진환(朴震煥), 어머니는 김선(金璇)이다. 박증휘는 1648년(인조 26) 식년문과에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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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술(明述), 호는 와유당(臥遊堂)·소암(巢巖). 용암(龍巖) 박운(朴雲)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건재(健齋) 박수일(朴遂一)이며 어머니는 평양조씨(平壤趙氏) 인의(引儀) 조인복(趙仁復)의 딸이며, 장인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다. 박진경은 1596년(선조 29) 16세에 장인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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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여건(汝健).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박춘보(朴春普)이다. 박천행은 1774년(영조 50) 45세의 만학으로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의 문학·사서·필선, 사헌부의 지평·장령·집의, 홍문관의 부수찬·수찬·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 승정원의 동부승지·좌부승지, 사간원의 대사간을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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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혁(士赫), 호는 해강(海岡).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박춘보(朴春普)이다. 박천형은 1773년(영조 49) 37세로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 호남어사, 제주어사, 접위관, 사간원정언, 세자시강원문학·필선·보덕, 사헌부장령·집의, 홍문관수찬·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 황해도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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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찬성 박호민(朴好閔)이다. 박철손은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대도호부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실록에 따르면, 1457년(세조 3) 평양판관을 역임했으며 1471년(성종 2)에는 검참의(檢參議)로서 고향 선산에 물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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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길(子吉).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예안현감을 역임한 만취헌(晩翠軒) 박학령(朴學齡)이다. 박춘보는 1717년(숙종 43) 사마시에 급제하여 음사(蔭仕)로 적성현감을 제수받았다. 1737년(영조 13) 9월 9일 영조가 반궁(泮宮, 성균관의 별칭)에서 실시한 알성시 제술과에서 44세의 만학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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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명경신당(明鏡新堂) 박율(朴慄)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박사철(朴思澈)이다. 박춘수 1816년(순조 4) 문과에 급제하여 유곡도찰방(幽谷道察訪, 유곡도는 조선시대 경상도 문경의 유곡역(幽谷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 사헌부지평, 돈녕부도정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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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백인(伯仁). 할아버지는 대사헌 박서생(朴瑞生)이다. 박효원은 1464년(세조 10)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 사간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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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여순(汝順), 호는 설강(雪岡). 백수화는 임진왜란 당시 전몽운(全夢雲), 이의정(李義貞), 장사진(張士珍)과 함께 형제의 의(義)를 맺고 금오산에 들어가 초막을 짓고 왜군을 섬멸하니, 왜군들은 그들을 백호(白虎), 전웅(全熊)으로 비유하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네 사람 모두 전장에서 순국하였고 사후에 사의사(四義士)로 칭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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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떼. 선산읍에서 대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국가지원지방도 68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옥성면·무을면을 지나 상주 방면으로 가다가 봉곡2리 입구에서 좌회전하여 포상1리를 돌아 서쪽으로 진행하여 군도 15호선을 만나 남쪽으로 가다 보면 소재리 울고개를 넘으면서 오른골의 작은 수계를 따라 내려가면 대조지가 형성되어 있다. 고인돌군은 대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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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비산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경부고속국도 구미나들목에서 직진하여 구미공과대학을 지나 금오공대아파트에서 국도 33호선에 접속하여 동쪽으로 국도 33호선 쪽으로 가서 북동쪽으로 난 작은 포장길을 따라 가다가 주공아파트를 가로 질러 비산동주민센터로 가면 낙동강의 서안에 형성된 비산동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고분군은 비산동의 북쪽에 있는 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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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산양리 고분군은 Ⅰ, Ⅱ로 나누어 위치한다. 고분군Ⅰ은 국도 25호선 구 도로변의 향산초등학교 서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뻗은 능선의 끝 부분에 해당된다. 고분군Ⅱ는 고분군Ⅰ의 남쪽으로 펼쳐진 낙동강변 들판의 독립된 구릉에 위치한다. 2002년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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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산포지 구미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가다 도리사 진입로를 지나 송암천을 건너면서 제방을 따라 낙동강 쪽으로 가다보면 송암천 북쪽에 낙동강에 접하여 동-서로 향하고 있는 해발 75m 정도의 독립 구릉이 나타난다. 유물산포지는 이 구릉 정상부의 동쪽에서 확인되었다. 서쪽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지만, 주변은 모두 낙동강의 범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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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상림리 고분군은 구 국도 25호선을 따라 가다 지방도 923호선을 만나 북쪽으로 조금 가다 좌로 돌아 계속 가면 소로의 끝에 못골마을이 나타난다. 못골마을의 서쪽에 위치하는 야산의 능선 말단부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지표조사에 의하면 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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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구미시 장천면 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묵어리를 지나 문수휴게소가 나오는데, 유적은 이 휴게소 맞은편에 형성된 해발 100~80미터 정도의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서 삼국시대 토기편들이 다량 산재하고 있다. 주변에서 고분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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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선산읍에서 상주로 이어지는 국도 25호선을 따라가 일선교를 건너 상주 방면으로 가다가 군도 1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생곡리 원당마을과 솝실마을이 나타난다. 고분군은 이 두 마을을 끼고 분포하고 있다. 솝실마을 고분군은 국도 33호선을 경계로 동-서로 갈라져서 분포하고 있다. 동쪽 고분군은 할석을 이용하여 만든 세방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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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떼. 선산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상주 방면으로 4㎞ 정도 가다 보면 국도 25호선과 만나기 직전 도로 우측에 생곡리 마을이 위치한다. 고인돌은 생곡리 마을 뒤쪽으로 형성된 감나무 단지가 있는 국도 33호선 좌우측에 3기 정도가 하나의 군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한 군은 솝실마을 뒤편의 조장골 입구의 남쪽 능선에 몇 기 분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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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인 서경순의 선정비. 서경순(徐經淳)은 1858년(철종 9)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60년(철종 11)에 이임한 인물로서, 선산부사를 역임하면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23㎝, 너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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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에 정착한 유생. 서석년은 창원서씨(昌原徐氏)로서 그에 행적에 관해서는 『옥산지(玉山志)』에 다음의 기록이 전한다. "창원 사람인 진사가 과거 길에 인동(仁同) 부지암(不知岩)의 경승(景勝)을 보고 돌아가는 것을 잊고 가속을 데려와 이곳에서 살다가 별세하였다. 지금 묘우 뒤에 오래된 무덤이 있으니 그를 장사한 것이다. 서씨가 죽고 후손이 없다(昌原人 進士 赴擧 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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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의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유적과 유물. 선사시대는 역사시대에 상대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글자로 기록된 역사가 없는 시기를 일컫는 시대구분 명칭이다. 선사시대는 날 달린 연모[道具]의 재질에 의하여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로 나누어진다. 곧 뗀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면서 용기를 가지지 못한 구석기시대, 일부 간석기를 사용하면서 빗살무늬토기[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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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조선시대 객사. 객사는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 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패를 두어 예를 행하였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사신들이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객관(客館)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지금의 선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914년 현재 위치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완전리 59-3[선산중앙로 73]으로 옮겼다. 고려와 조선시대 각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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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소재한 고전적자료전시관의 노진환(盧鎭桓)이 소장한 고전적. 선산 노진환 전적은 17세기 이후 조성된 전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집류로는 영남·기호 지역의 학자들의 문집을 합하여 3,000여 종 총 20,000여 책에 달한다. 그 외 잡저류로는 250여 종 1,600여 책이 있다. 고문서로는 13,000여 점이 있는데 이에는 교지, 호구단자,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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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에서 일어난 반봉건(反封建) 농민항쟁. 구미시 선산은 18세기 이래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상품유통경제가 발달하는 추세 속에서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였다. 선산에서는 쌀과 면화 및 면포가 상품화되어 경상도는 물론, 물길로 서울·강원도·충청도·함경도까지 판매되었다. 쌀과 면포 외에 마포·콩·보리 등도 상품화되어 장시에서 거래되었다. 이 같은 상업적 농업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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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년부터 1894년까지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설치된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도호부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본래 중국 당나라에서 새로 정복한 이민족을 다스리기 위하여 변경 지방에 설치하였던 군사적 성격의 행정기관이었다. 시행 초기에는 중국과 같이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하였으나, 성종 때 5도호부 체제가 정비되면서 일반 행정구역으로 변모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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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유생.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숙(健叔), 호는 대곡(大谷). 아버지는 선공감부정 성세준(成世俊), 어머니는 사간 박효원(朴孝元)의 딸로서 비안박씨(比安朴氏), 숙부는 대사헌 성세순(成世純)이다. 성운은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1545년(명종 1) 을사사화(乙巳士禍)로 형이 화를 입자 속리산(俗離山)에 은거하였다. 이후 선조가 몇 차례 불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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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소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떼. 선산에서 국가지원지방도 68호선을 따라 상주 방면으로 가다 포상리로 들어서면 군도 15호선을 만나게 되고 이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포상리를 지나 소재리 소재마을 앞에 있는 소재지가 오른쪽에 나온다. 소재지 뒤편에 1기가 있으며, 여기에서 소재마을을 지나 봉남리로 가는 길을 따라 남으로 계속 가다 보면 울고개에 못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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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구미시지』에는 해평면 창림리(昌林里) 고분군으로 소개되어 있으나 행정구역상 송곡2리에 해당되므로 송곡리 고분군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인근에 위치하는 낙산리 고분군 조영 집단의 하위 집단에 의해 6세기를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곡리 고분군은 구 국도 25호선에서 도리사 방향으로 갈라지는 도로의 동쪽에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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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송산리 고분군은 산동면 송산리 산동초등학교 송백분교와 송산리 정실마을 사이의 능선 끝 부분에 위치한다. 고분군의 동편에는 소규모 저수지인 점곡지가 위치하고 있다.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지표조사에 의하면 능선 말단부에 10여 기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파괴된 채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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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선산읍에서 국도 68호선을 이용하여 대천을 거슬러서 무을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무을면 송삼리가 도로 오른쪽에 나온다. 고분군은 두 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송삼2리 거치골의 좌우(고분군1)와 송삼1리의 송삼아랫말 서쪽 능선(고분군2)에 분포하고 있다. 송삼2리에 있는 고분군1은 중·소형 고분으로 수십 기 분포하고 있는데 돌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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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야로(冶爐). 자(字)는 천장(天章), 호는 야계산옹(倻溪散翁). 송수겸(宋守謙)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송소(宋紹), 아버지는 부사직 송방현(宋邦賢)이며, 어머니는 황진(黃珍)의 딸이다. 장인은 선산 사람 증이조참판 김광좌(金匡佐)이다. 송희규는 1513년(중종 8) 향시에 합격하고 이어 151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는데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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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습례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선산에서 김천으로 통하는 지방도 910호선을 따라 가다 보면 오른쪽에 습례1리가 있다. 이 마을 뒤쪽에 해발 220m의 정상에서 뒷골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덕골마을로, 다른 갈래는 산양골마을로 뻗어 내리는데, 고분군은 동(고분군1)-서(고분군2)에 있는 2개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중부내륙고속국도 개설시 한국문화재보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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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과거시험 응시자들이 제출한 답안지 또는 채점지. 시권은 시지(試紙) 또는 명지(名紙)라고도 한다. 시권의 종류는 시험의 종류에 따라 제술(製述) 시권, 강서(講書) 시권, 사자(寫字)·역어(譯語) 시권으로 나누어진다. 제술은 문장 구사 능력과 대체의 요점을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을 선발하는 시험으로서 시(詩)·부(賦)·송(頌)·책(策) 등을 시험하였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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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학덕이 높은 인물이 그의 행적에 따라 죽은 뒤에 국왕으로부터 받은 이름. 시호는 조선 초기까지는 왕과 왕비, 왕의 종친, 실직에 있었던 정2품 이상의 문무관과 공신에게만 주어졌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대상이 완화, 확대되었다. 이에 생전에 낮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도 증직되어 시호를 받는 일도 있었다. 이 때 시호 내리는 일을 증시(贈諡)라 하고, 후대에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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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호조판서 신효창(申孝昌)의 후손이다. 신건은 중종조에 인동현감(仁同縣監)으로 부임하여 1535년(중종 30)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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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신곡리 사일마을 뒤편에 있는 사곡지의 남쪽 능선에는 고분군과 유물산포지가 함께 분포하며, 전체가 고분군 범위에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도개면 면소재지에서 상주 방면으로 통하는 국도 25호선 구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다 보면 월림리 앞의 신곡교에 이르며, 신곡교를 건너기 전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2㎞ 정도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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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있는 고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서 상주 방면으로 가는 국도 25호선을 따라가다가 궁기리 윗장터에서 낙동강 지류인 신곡천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사곡저수지 아래에 정화동과 사일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신곡리가 나온다. 유물산포지는 사일마을의 동쪽과 남서쪽에 형성되어 있는 4개소의 구릉과 정화동에서 신곡천을 건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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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신당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신당리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감말지가 있고, 산포지는 이 감말지의 북쪽에 있는 동쪽으로 길게 흐르는 해발 70~50미터 사이의 얕은 구릉에 위치한다. 여기서 다시 500미터 정도 남쪽으로 가면 뒷골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 남쪽 해발 1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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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 칠곡군 가산에서 구미 방면으로 가다 구미고속주유소 앞에서 북쪽으로 꺾어 마을 안으로 진입하면 남쪽으로 완만하게 뻗은 구릉이 나타난다. 이 구릉은 인동 바깥말에서 새마을을 지나 안마을 쪽으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구릉으로, 여기에 돌덧널로 판단되는 고분 1기가 위치한다.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지표조사에 의해 삼국시대 호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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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구미시 신동 구미고속주유소 맞은편 마을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논으로 경작되는 곳에 고인돌 1기가 유존한다. 장축은 남동-북서이고 덮개돌의 크기는 250×310×210㎝이다. 하부는 매몰되어서 받침돌이 있는지 알 수 없으며 덮개돌의 표면 4~5곳에서 성혈이 확인된다. 마을 주민에 의하면 경지 정리 시 주변의 소형 암괴들은 모두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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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림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신림리 고분군은 낙동강변의 국도 25호선과 일선대교 방향이 갈라지는 속칭 ‘돌고개’로 불리는 지점에 위치하며, 일선리 문화마을과 인접하여 있다. 고분군은 국도 25호선에 의해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도개면 신림리 용산마을 북쪽의 능선 서쪽 사면과 도로 건너편의 능선 정상부에 위치한다.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신림리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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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떼. 해평면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상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일선교와 도개면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우회전하여 도개면 쪽으로 가면 곧바로 용산마을이 나오고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산재마을이 나온다. 고인돌은 용산마을 앞의 해발 40m 정도 되는 능선에 2기가 있으며, 산재마을 뒤에 있는 뒷밭골의 북쪽 구릉에 8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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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해발 400m 위치의 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경천애인 암각은 천생산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해발 400m 지점의 천생산성 내 반석에 있다. 신장리 경천애인 암각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글자가 자경 30㎝의 크기로 각자되어 있는데,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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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신장리 고분군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와 구미시 금전동에 걸쳐서 위치한다. 천생산성 외성 내부와 외성의 북쪽 성벽으로 난 오래된 산길을 따라 가면 남북으로 뻗은 천생산성 북쪽 능선 상에 소형 돌덧널무덤 수십 기가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외성의 동쪽 능선에도 다수의 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1993년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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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에서 북동쪽 사면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기암기석천년구 암각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성에서 북동쪽으로 해발 380m 위치의 사면반석에 있다. 사면반석에 자경 15×17㎝ 크기로 각자되어 있는데, 서체는 해서체이다. 좌측에 1938년 5월 19일(一九三八年五月十九日) 장주석(張柱錫) 등 인명 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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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부 남서쪽에 있는 미득암에 새겨진 글자. 구미시 천생산성 내 정상부에서 남서쪽으로 해발 400m 위치의 미득암(米得岩) 위에 새겨져 있다. 신장리 남현 암각은 자경 15㎝의 크기로 각자되어 있으며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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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 정상에서 북동쪽 사면반석에 새겨진 글자. 신장리 천산녹수 암각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천생산성에서 북동쪽으로 해발 380m 위치의 사면반석에 있다. 신장리 천산녹수 암각은 자경 15㎝의 크기로,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사면반석 왼쪽에 ‘송평종태(松平鍾泰)’라고 각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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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심경택의 선정비. 심경택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간 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대사헌으로서 오랜 기간 활약하였다. 1858년(철종 9)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여 도내를 순력하였는데, 이때 선산부 백성들의 민폐를 시정하는 데 노력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부임한 다음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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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화(聖和), 호는 유암(悠庵). 심구현(沈龜賢)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심찬(沈鑽), 아버지는 심석지(沈䄷之)이다. 심능섭은 1790년(정조 14) 춘당대시(春塘臺試)에 을과 1위로 급제하였고 벼슬은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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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긍백(兢伯). 심구현(沈龜賢)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심도(沈鍍), 아버지는 심대지(沈大之)이다. 심능식은 1801년(순조 1) 별시문과에 병과 14위로 급제하여 홍문관·사헌부·사간원에서 관직을 역임하고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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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에서 성장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청보(淸甫). 청화부원군(靑華府院君) 심용(沈龍)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 심덕부(沈德符), 아버지는 영의정 심온(沈溫), 어머니는 돈녕부사 안천보(安天保)의 딸이다. 세종 비 소헌왕후(昭憲王后)가 누나이다. 심회의 아버지 심온은 태종 때 왕명을 받고 중국에 사은사(謝恩使)로 갔을 때 좌의정 박서(朴壻)가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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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양원역(楊原驛)은 현 구미시 진평동에 설치되었다. 양원역 이외에 구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으로는 구며역(仇㫆驛, 현 구미시 선산읍 화조리), 상림역(上林驛, 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 연향역(延香驛, 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 안곡역(安谷驛, 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등이 있었다.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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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양일한은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가 1661년(현종 2) 7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재임중에 인풍루(仁風樓)를 중건하고 찰미루(察眉樓)를 이건하였다. 1664년(현종 5) 2월 공주영장으로 승진하였으며 훗날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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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에 태조 왕건이 머물렀다고 전하는 유적. 선산의 진산인 비봉산의 동쪽 줄기에 해당하는 태조산에서 이어지는 선산읍 생곡리 앞 낙동강 변의 조그마한 구릉 위에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선산부읍지』에 따르면 한 그루의 나무가 무성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수레의 일산(日傘)과 같아 사람들이 어성정(御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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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무신. 어수일은 무과에 급제하여 훗날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1686년(숙종 12) 11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689년(숙종 15) 4월에 옮겨 갔다. 재임 중인 1687년 별당(別堂)을 건립하고 대동고(大同庫)를 중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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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시조는 당(唐)의 한림(翰林)을 역임한 어매(禦梅)로서 874년경 황소(黃巢)의 난을 피하여 신라로 왔다는 8학사(八學士) 중의 하나이다. 대광부군(大匡府君) 여양유(呂良裕)를 중시조로 한다. 여위현은 경상도 성주성(星州城) 북쪽의 야동(冶洞)에 살았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친구로 지냈다. 이성계가 왜장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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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여인길은 무과에 급제하여 훗날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 2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617년 9월에 교체되어 옮겨 갔다. 재임 중 삼우당(三友堂)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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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장학(張澩)의 강학 시설. 여차정은 남파 장학이 1659년 제자들과 공부하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여차정(如此亭)’이란 이름은 바깥 세상은 시끄럽지만 현재의 이곳은 맑다는 뜻으로 지었다. 마당에 있는 백일홍은 장학이 건립 당시에 심은 것이라 전한다. 1659년(효종 10)에 건립하였으며, 1959년 복원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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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구미시의 역사. 구미 지역은 전근대 사회에서는 선산과 인동이 중요한 행정구역이었다. 선산은 삼국시대부터 일선, 숭선, 선주로 불리다가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 때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2년 뒤 선산도호부로 개칭되었다. 인동은 삼국시대에 사동화로 불렸고, 1604년(선조 37)에 인동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 뒤 1978년 인동면이 구미읍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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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교통·통신기관으로 설치된 역(驛)과 원(院). 역은 전통시대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통·통신기관이다.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그리고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통신기관이다. 흔히 우역(郵驛)·역관(驛館)이라고도 하였다. 원나라 참적(站赤) 제도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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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을 중심으로 성리학통을 전개한 유학자들. 해평길씨 길재가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 받아 고향 선산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고 선산김씨 김종직 부자가 그의 학통을 계승하면서 선산은 15세기 영남사림파 형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고려 말에 성주·선산 등지 토성들의 상경종사(上京從仕)가 활발해지자 재경 관인이나 혹은 타읍 출신의 사족들이 대거 선산 지방으로 모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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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에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감천의 동안에 위치한 고아읍 오로리 함안마을 오른쪽의 동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에 100여 기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노출된 내부 상태로 보아 구덩식 돌덧널로 판단된다. 고분군 주변에는 경질토기, 연질토기편들이 관찰된다. 오로리 고분군은 동쪽으로는 감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면서 형성된 충적대지를 바라보는 해발 135m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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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오상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해평면 소재지로 가다보면 면 소재지 못 미쳐서 가망못을 오른쪽에 끼고 작은 수계를 따라 동쪽으로 들어가면 오상리 다시말이 왼쪽에 있다. 산포지는 이 다시말 뒤쪽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말 뒤쪽의 서남으로 뻗은 해발 75~45m의 능선은 현재 논과 밭으로 개간되어 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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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위숙(渭叔), 호는 임계(臨溪). 오식은 1400년(정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문과에 급제하였다. 연산목사·남원목사·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제주목사·인령부윤·중군동지총제·좌군총제를 거쳐 경주부윤으로 재직하다가 죽자 세종이 부의(賻儀)를 내렸다.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로 재직 시 “속공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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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무신. 오진영은 무과에 급제했으며 1850년(철종 1) 1월 29일 인동현감(仁同縣監)으로 부임하여 1851년(철종 2) 6월 이조에서 폄파(貶罷)하였다. 인동현감 재임 중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852년(철종 3) 3월 인동현민이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동에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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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옥관리 고분군은 옥성면 옥관1리 우리목마을 뒷산 일대에 길게 분포하며, 낙동강 서쪽의 상주-선산 간 도로변에 접하여 위치한다. 구미옥성화훼단지 서쪽에 해당된다. 『문화유적분포지도』(구미시)에는 옥관리 고분군Ⅰ로 기록되어 있다.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전체 규모가 확인되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지표조사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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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서 상주 방면으로 통하는 국도 33호선을 따라가다 낙동강의 소지류를 건너는 제2구봉교에서 서쪽으로 통하는 지방도 912호선으로 들어서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하천이 남쪽으로 크게 만곡하는 지점의 북쪽에 옥관1리 윗죽전마을이 나타난다. 유적은 이 마을 서쪽에 있는 남동으로 뻗은 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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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주원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원남동 고분군은 금오초등학교와 비둘기아파트 뒤편의 동쪽과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 수십 기 정도만 확인되고 있으며 도굴과 민묘 조성, 등산로 설치 등으로 인해 파괴가 심하다. 능선을 따라 파괴된 고분의 덮개돌과 벽석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다. 금오산저수지에서 발원하는 금오천변의 구릉지대에 형성된 소규모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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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선산읍에서 감천의 지류인 단계천을 따라 만들어진 군도 1호선을 따라 가다 보면 원리 장아질마을(1군), 강창마을(2군), 서원마을(3군)이 나오는데 고분군은 이들 자연마을을 하나씩 끼고 3개 군으로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다. 3개 군 가운데서 장아질마을 고분군은 봉토 직경 10~15m의 주영분 10여 기가 확인되며, 서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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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남산 봉수의 터. 원리 남산 봉수는 조선 세종 때 정한 5간선(幹線)의 하나로, 제2선인 동래선에 속하며, 약목의 박집산, 인동의 건대산, 해평의 석현 봉수 신호를 개령의 감문산, 김천의 소산, 상주의 회룡산으로 전달하는 직봉(直烽)이다. 원리 남산 봉수는 산정에 띠를 두른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봉돈 1거(炬)가 남아 있다.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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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55년(철종 6) 7월 27일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였다. 1859년(철종 10) 6월 충주영장으로 승진되었다. 1859년(철종 9) 7월 선정비가 세워져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 내에 있으며, 1859년(철종 10) 세워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의 도로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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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원세정의 선정비.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55년(철종 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9년(철종 10)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였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비를 세웠다. 원세정 거사비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공직자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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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원세정의 불망비.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55년(철종 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9년(철종 10)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였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비를 세웠다. 높이 116㎝, 너비 54㎝, 두께 27㎝의 비신을 세우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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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왕후. 본관은 일선(一善). 본명은 김국(金國). 외할아버지는 시중(侍中)에 추증된 김원숭(金元崇), 외할머니는 화의군대부인(和義郡大夫人)에 봉하여진 왕씨(王氏)이다. 아버지는 고려 성종, 어머니는 성종의 제2비 문화왕후(文和王后) 김씨(金氏)이다. 모후의 성을 따라 김씨로 하였다.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하여 왕비로 삼고 현덕왕후(玄德王后)라 하였다. 1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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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국도 38호선을 따라 가다 문성교를 건너서 좌회전하여 계속 가면 원호리 보원사가 나오고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민가가 있는데 고인돌은 민가 입구에 있다. 민가의 대문을 만들기 위하여 원래 위치에서 10m 정도 이동된 상태이며, 덮개돌의 크기는 210×120×110m이다. 덮개돌 아래는 현재 시멘트 파편과 잡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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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대원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처사 원호식의 송덕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대원마을 지방도 916호선 도로변 숲속에 세워져 있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가 없고, 비석의 윗부분이 둥글게 되어 있는 원수(圓首) 형태의 비신만 남아 있다. 비신은 높이 74㎝, 너비 43㎝, 두께 12㎝이다. 비의 앞면에는 ‘처사원주원공호식만세불망지비(處士原州元公浩植萬世不忘之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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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월곡리 고분군은 해평면 소재지에서 상주 방향으로 6㎞ 정도 떨어진 국도 25호선의 북쪽에 위치하는 능선에 분포한다. 낙동강을 향해 뻗어 내린 능선의 좌우 비탈과 아래 부분에 위치하는 고분군은 월곡리 고분군Ⅰ,Ⅱ,Ⅲ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월곡리 고분군Ⅰ은 『문화유적분포지도』(구미시)에서 낙산리 고분군Ⅳ로 부르고 있으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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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군. 도개면 면소재지에서 상주 방면으로 국도 25호선을 따라 가면 신곡교가 나오고, 이를 지나면 월림2리 임호마을이 나타난다. 월림리 고분군은 이 마을의 뒤편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2002년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물은 없다.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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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가다가 월림리 신곡교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으로 난 도로로 들어와서 조금 가다보면 왼쪽에 한실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산포지는 이 한실마을의 왼쪽 능선의 남사면 말단부에 위치한다. 현재 민가 앞의 밭 주위와 민묘 등에서 토기편과 자기편 등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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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해평초등학교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상주 방면으로 1㎞ 정도 가면 도로 우측의 구릉 상에 고분군이 위치한다. 창림저수지의 남쪽에 해당되며 능선의 맞은편 구릉에도 구덩식 돌덧널이 수 기 분포한다.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지표조사에서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편, 짧은목항아리편 등이 확인되었다. 봉토분은 직경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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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해평면 면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북으로 약 500m 가면 해평초등학교에 이른다. 여기서 북으로 400m 정도를 지나면 오른쪽에 해평농공단지가 나타나고, 이곳에 있는 동방섬유공장의 오른쪽 능선 상에 위치한다. 고인돌이 있는 주변은 현재 과수원과 논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원래는 2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기뿐이다. 덮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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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유면은 기계유씨(杞溪兪氏)로서 당시 경상도 인동현에서 태어났다. 1405년(태종 5) 진사에 입격한 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을 역임하고 흥해군수 재직시에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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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무덤, 집터 등과 같이 사람이 살았다는 분명한 흔적은 알 수 없지만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다.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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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유성채는 무과에 급제하여 당하관을 역임하였다. 1685년(숙종 11) 12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686년(숙종 12) 9월 부친상을 당하여 교체되어 떠났다. 재임 중 인동부의 관아인 사무당(使無堂, 외동헌)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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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신이자 인동유씨 시조. 인동유씨(仁同兪氏)는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진 유승단의 후손들이 인동에 세거함에 따라 후대에 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세거지 인동을 관향으로 삼으면서 생겨났다.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유원순(兪元淳). 인동유씨는 유승단 이후 세계가 끊어졌으며, 고려조에서 예부시랑을 지낸 1세손 유승석을 중시조로 대를 잇고 있다. 유승석의 동생인 유성렬의 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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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유승서는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에 살았으며 후에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으로 이사했다. 무관으로서 1604년(선조 37) 12월 부산첨사가 되고 이듬해 초대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제수되어 곽재우(郭再祐)가 축조했다는 천생산성(天生山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소재)의 조방장을 겸임하였으며 1607년(선조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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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인물 유운용의 선정비. 유운용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菴)이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공을 세운 유성룡(柳成龍)의 형으로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경사(經史)를 통독함으로써 사문의 촉망을 받았다. 1572년(선조 5) 친명(親命)으로 음사(蔭仕)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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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유호원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26년(순조 26) 1월 24일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830(순조 30) 2월 24일 암행어사의 계청(啓請)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인동읍민에 의해 유호원을 기리는 흥학선정비(興學善政碑)가 세워졌으며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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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유호원의 선정비. 유호원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26년(순조 2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30년(순조 30) 암행어사의 서계(書啓)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었으며, 재직 중에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비를 세웠다. 윗부분이 둥글게 생긴 원수(圓首) 형태의 비신만이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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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평(海平).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윤석(尹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지문하성사 윤지표(尹之彪), 아버지는 대호군 윤보(尹寶)이다. 윤가관은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가까이서 보필했는데 1373년(공민왕 22) 공민왕이 한안(韓安)·홍륜(洪倫) 등으로 하여금 모든 비빈들을 욕보이게 하면서 익비(益妃)를 범하도록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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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 자는 태승(泰升), 호는 하곡(霞谷).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 아버지는 윤면지(尹勉之), 어머니는 참판 경섬(慶暹)의 딸이다. 윤계는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그 뒤 3인을 선발하기로 한 알성문과에 급제했으나, 4등을 한 김석주(金錫胄)를 참방(參榜)시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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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해평윤씨의 시조. 본관은 해평(海平). 아들이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이며, 손자가 충숙왕대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를 역임한 윤석(尹碩)이다. 손자 윤석이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짐에 따라 그의 후손들이 소급하여 윤군정을 해평윤씨의 시조로 삼았다. 윤군정은 1257년(고종 44) 원주에서 안열(安悅) 등이 고성(古城)에서 반란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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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형이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이다. 윤근수는 김덕수(金德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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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경유(景孺), 호는 근암(近菴).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5대손이며, 윤면지(尹勉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계(尹堦),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윤세수(尹世綏), 어머니는 이하(李夏)의 딸이다. 윤급은 1725년(영조 1)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좌랑·집의·부응교를 역임하였다. 1737년 문과중시에 다시 등제한 후 이조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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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여승(汝昇), 호는 죽창(竹窓). 윤돈은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 교리, 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였다. 1594년 부제학에 오르고, 명(明)나라 도독(都督) 유정(劉綎)의 접반사관(接伴事官)으로 군량 보급에 노력했다. 이어 대사간, 이조참의, 강원도관찰사, 병조참판, 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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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상(伯常), 호는 방간(方間). 아버지는 윤득민(尹得敏)이다. 윤동은 1754년(영조 30) 문과에 급제하여 다음해 설서(說書)를 거쳐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를 거쳐 좌부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그 후 정조 때에 경기도관찰사, 개성부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탕평책(蕩平策)에 순응하지 않고 당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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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동생이 윤근수(尹根壽)이다. 윤두수는 이중호(李仲虎),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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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아버지는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으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이다. 아들이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윤석(尹碩)이다. 사위는 판밀직사사 이천(李梴)이다. 윤만비는 충렬왕을 섬겨 1269년(원종 10) 일등공신이 되었다. 1277년(충렬왕 3) 낭장으로서 국자좨주 김서(金㥠)를 따라 하정사(賀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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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언국(彦國), 호는 석유(石有). 아버지는 윤면동(尹冕東), 생부는 윤기동(尹紀東)이다. 윤명렬은 1795년(정조 19) 문과에 급제하였다. 감찰, 지평, 장령, 집의 등을 거쳐 우승지에 올랐다. 1805년(순조 5) 이래 동래부사, 광주목사, 형조참의, 대사간,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1821년 호조참판으로 동지부사(冬至副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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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가회(可晦), 호는 치천(稚川). 사용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국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관찰사 황기(黃琦)의 손녀이자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동생이 정민공(靖敏公) 윤흔(尹昕),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이다. 윤방은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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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윤봉소의 선정비. 윤봉소(尹鳳韶)는 1726년(영조 2) 12월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727년(영조 3) 8월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윗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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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해평부원군에 봉해진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 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이다. 윤석은 고려 충선왕 때 별장을 거쳐 충숙왕이 즉위하자 호군(護軍)에서 대언(代言)에 올랐다. 1320년(충숙왕 7) 총부전서(摠部典書)로서 천추사(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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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字)는 자일(子一), 호는 남악(南岳). 군기시첨정 윤훤(尹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윤은필(尹殷弼),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 어머니는 장림수(長臨守) 이순민(李舜民)의 딸로서 전주이씨이다. 동생이 문숙공(文肅公) 윤승훈(尹承勳)이다. 윤승길은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장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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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술(子述), 호는 청봉(晴峰). 군기시첨정 윤훤(尹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윤은필(尹殷弼),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 어머니는 장림수(長臨壽) 이순민(李舜民)의 딸로서 전주이씨이다. 형이 숙간공(肅簡公) 윤승길(尹承吉)이다. 윤승훈은 1573년(선조 6) 문과에 급제되어 정언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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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윤신준은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해평윤씨의 원조(遠祖)가 되는 인물로,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해징부원군(海澄府院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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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우(仲又), 호는 연초재(燕超齋). 사용 윤희림(尹希琳)의 현손이자 국자감정 윤변(尹忭)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아버지는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이다. 윤신지는 선조와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소생인 정혜옹주(貞惠翁主)와 결혼하여 해숭위(海嵩尉)에 봉하여졌다. 선조가 때때로 시를 지어 바치게 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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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아버지는 현감 윤달성(尹達城)이다. 형이 해평위(海平尉) 윤연명(尹延命)이다. 윤연년은 조선 태종 때 창원대도호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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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수(伯修), 호는 만하(晩霞). 윤의지(尹誼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연(尹堧), 아버지는 지평 윤세희(尹世喜), 어머니는 이동규(李同揆)의 딸이다. 윤유는 1718년(숙종 44)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언관직을 거쳐 경종 때 수찬, 부교리, 이조좌랑, 동래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대사간에 승진한 후 부제학, 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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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상경(商卿). 수원부사 윤처성(尹處誠)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승문원참교 윤면(尹沔), 아버지는 첨정 윤훤(尹萱), 어머니는 현감 김모(金模)의 딸이다. 동생이 헌간공(憲簡公) 윤은필(尹殷弼)이다. 윤은보는 1494(성종 25)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관을 거쳐 교검(校檢)으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하면서 『성종실록(成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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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상로(商老). 수원부사 윤처성(尹處誠)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승문원참교 윤면(尹沔), 아버지는 첨정 윤훤(尹萱), 어머니는 현감 김모(金模)의 딸이다. 형이 정성공(靖成公) 윤은보(尹殷輔)이다. 윤은필은 1504년(연산군 10)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부교리, 장령, 부응교 등을 거쳐 1530년(중종 25) 도승지, 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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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소(仲素), 호는 추봉(秋峰). 국자감정 윤변(尹忭)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아버지는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 어머니는 판관 한의(韓漪)의 딸이다. 윤이지는 1600년(선조 33) 문음(門蔭)으로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된 뒤 양구현감·은산현감·적성현감·통진현감·용안현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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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임경(任卿), 호는 성와(省窩). 훈재(塤齋) 윤홍선(尹弘宣)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돈재(遯齋) 윤상로(尹商老)이다. 윤중방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시 선산부사(善山府使)였던 박필건(朴弼鍵), 중군장(中軍將) 김여건(金汝鍵)과 함께 출정하여 그의 지략으로 금릉(金陵, 현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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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린(叔麟), 호는 동산(東山). 윤엄(尹儼)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민헌(尹民獻), 아버지는 판서 윤강(尹絳), 어머니는 정광성(鄭廣成)의 딸이다. 형이 좌의정 윤지선(尹趾善)이다. 윤지완은 1662년(현종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 10월 수찬에서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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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 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이다. 형이 문영공(文英公) 윤지현(尹之賢)이며, 아들이 대호군 윤보(尹寶)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좌찬성 윤근수(尹根壽)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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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 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이다. 동생이 해평군(海平君) 윤지표(尹之彪)이다.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집현전대제학지춘추관사상호군사(政堂文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上護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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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현손이며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 아버지는 해평군(海平君) 윤지표(尹之彪)이다. 윤진은 1382년(우왕 8)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재임 시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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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능(士能), 호는 석취(石醉). 아버지는 윤경렬(尹慶烈)이다. 윤치정은 1829년(순조 29)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1843년(헌종 9) 홍문관에 들어갔다. 1847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淸)에 다녀왔다. 1850년(철종 1) 이조참판이 되었고, 다음해 대사성에 이어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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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초명은 윤치수(尹致秀), 자는 성여(成汝), 호는 금범(錦帆). 윤득녕(尹得寧)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백동(尹百東), 아버지는 참판 윤명열(尹命烈), 어머니는 정태화(鄭泰華)의 딸이다. 후에 윤경열(尹敬烈)에게 입양되었다. 윤치희는 1827년(순조 27) 문과에 급제하고 사관(史官)을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뽑혔다. 18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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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임(伯任), 호는 훈재(塤齋). 형조판서 윤상저(尹尙著)의 후손이며 묵헌(黙軒) 윤희빙(尹希聘)의 증손이다. 윤홍선은 8세에 『소학(小學)』의 대의에 통달하고 오직 학문을 탐구하는 데 뜻을 두었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금오산(金烏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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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선산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윤황동은 1556년(영조 32)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776년 1월에 선산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로 부임하여 같은 해 5월에 모친상을 당하여 교체되어 떠났다. 1778년(정조 2) 사직으로 있을 때 칠곡의 가산산성(架山山城), 선산의 천생산성(天生山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소재), 상주의 화산성(華山城), 성주의 독용산성(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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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정춘(靜春), 호는 장주(長州). 증찬성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형이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 정민공(靖敏公) 윤흔(尹昕)이다. 윤휘는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94년(선조 27) 문과에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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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시회(時晦), 호는 도재(陶齋). 증찬성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형이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 동생이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이다. 윤흔은 1595년(선조 28)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 전적 등을 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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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개 무덤. 연향(延香)에 사는 우리(郵吏) 노성원(盧聲遠)은 영리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노성원이 술에 취해 돌아오다가 말에서 떨어져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때 들불이 나서 주인이 타죽을 위험에 처하자 개가 꼬리에 물을 적셔와 불을 꺼 주인을 살리고는 기진하여 죽었다. 그 뒤 깨어난 노성원이 감동하여 장사를 지내주었다. 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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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국가와 향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민병.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진을 침략하면서 북상하자 구미 선산에서는 노경임(盧景任)을 대장으로 하는 선산향병(善山鄕兵)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들이닥치면서 곧 무너졌다. 그리고 해평 출신 부안현감 고한운(高澣雲)이 군졸과 흩어진 의사들을 모아 금오산성에서 진을 치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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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소 무덤. 문수점(文殊店)에 사는 김기년(金起年)이 암소와 함께 밭을 갈고 있는데 호랑이가 소에게 달려들었다. 김기년이 호랑이에게 달려들자 호랑이는 소를 버리고 김기년에게 달려들어 김기년이 위험에 빠지게 되자 소가 호랑이를 떠받아 목숨은 구했다. 김기년은 상처가 깊어져 며칠 뒤 숨을 거두면서 소를 팔지 말고 수명이 다해 죽으면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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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치삼(穉三). 이정유(李挺儒)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문보(李文普), 외할아버지는 김록화(金祿和), 아버지는 이극문(李克問)이다.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에 병과 6위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승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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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길보(吉甫). 증참찬 이천(李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元秀)이고, 아버지는 옥산(玉山) 이우(李瑀)이며, 어머니는 진사 황기로(黃耆老)의 딸로 덕산황씨(德山黃氏)이다. 삼촌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이경절은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15년(광해군 7) 문과 회시에 통과했다. 광해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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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경지(敬止). 이군상(李君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희경(李希慶), 아버지는 이심지(李審之), 어머니는 여극회(呂克誨)의 딸이다. 형이 생육신 이경은(李耕隱)이다. 형곡 사창리에서 태어났다.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직학·사헌부감찰·예조정랑·승정원좌부승지·경기관찰사 등을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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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결보(絜甫). 아버지는 통덕랑 이진화(李晋華)이다. 이광구는 1705년(숙종 31) 증광시에서 생원 3등 44위로 합격하였으며 현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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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신지(新之), 호는 신암(愼庵). 할아버지는 이동명(李東溟), 아버지는 이정화(李鼎華)이다. 아들로 대간 이수해(李壽海)와 우승지 이덕해(李德海)가 있다. 이광구는 숙종조에 도정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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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좌찬성 이계린(李季璘)이다. 이규는 벼슬이 부안현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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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방형(邦衡). 이집(李集)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이극균의 형제 이극배(李克培), 이극감(李克堪), 이극증(李克增), 이극돈(李克墩)은 모두 세종 및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극배와 이극균은 정승이 되었고 4형제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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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자범(子範). 북봉공(北峰公) 이민선(李敏善)의 후손이며 이상질(李尙質)의 8세손이며 이정룡(李挺龍)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길보(李吉普), 외할아버지는 박래경(朴來慶), 아버지는 이극례(李克禮)이다. 이기준은 1805년(순조 5) 별시 문과에서 병과 1위로 급제하였다. 훗날 정언, 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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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육여(六如), 호는 간암(艮庵). 이동명(李東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정화(李鼎華), 아버지는 이광의(李廣義), 장인은 황유목(黃有牧)과 조창유(趙昌裕)이다. 형이 대간 이수해(李壽海)이다. 이덕해는 1726년(영조 2) 진사에 합격하여 장녕참봉을 역임했으며 1745년(영조 21) 정시 문과에 병과 1위로 급제하여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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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백종(白宗), 호는 학정(鶴汀).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경절(李景節), 아버지는 군수 이즙(李楫), 어머니는 심광세(沈光世)의 딸이다. 이동명은 1652년(효종 3) 진사에 합격하고 10월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조좌랑,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안주목사, 강릉부사, 상의원정, 사간, 안동부사, 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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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지선주사를 역임한 문신. 이득진은 1383년(우왕 9)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재임 중 관심평(觀心坪)에서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고 읍성을 구축하여 방비하여 왜구의 침공이 없게 하였다. 선주읍민이 이득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화상(畵像)을 만들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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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대재(大才). 이유강(李惟康)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인손(李麟孫), 아버지는 이운(李運), 장인은 성윤(成允)과 최호(崔湖)이다. 아들로 이언영(李彦英)이 있다. 이등림은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3년(선조 6) 식년 문과에서 병과 16위로 급제하였다. 1584년에 인동현감(仁同縣監)으로 부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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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이맹전은 조려(趙旅),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성담수(成聃壽), 남효온(南孝溫)과 함께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백순(伯純), 호는 경은(耕隱). 지밀직사 이견간(李堅幹)의 후손이며 이군상(李君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희경(李希慶), 아버지는 이심지(李審之), 어머니는 공부전서 여극승(呂克勝)이다. 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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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8세손이다. 이민무는 평소 무예가 뛰어났으며 병자호란 때인 1637년(인조 15) 어가를 호종하여 강화도에 무사히 모신 공으로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책훈되었다. 또 그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곽산군수에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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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이 당숙이며 형은 성리학자 이진(李軫)이다. 이보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5년 친구인 영남좌도의병대장 김해(金垓)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 부대의 모의사로서 군위 지역의 정제장(整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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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인동현감 이보의 송덕비. 이보(李輔)의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군위 소보 출신으로 유성룡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0년(선조 2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해(金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면서, 1594년 인동현에서 둔전관겸가수(屯田官兼假守)로 근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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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용암(龍巖). 평정공(平靖公)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이며 승지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수 이석명(李碩明), 아버지는 현령 이민선(李敏善), 어머니는 김봉(金崶)의 딸이다. 이상일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광해군의 문란한 정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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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7대손이다. 이선기는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금오산성(金烏山城) 축성에 군관으로 참여하였으며 임진왜란시에는 의병을 모아 적병을 무수히 물리치고 장태곡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내금위장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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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지밀직사 이견간(李堅幹)의 5세손이며 이군상(李君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병마도원수 이희경(李希慶), 아버지는 이심지(李審之), 어머니는 공부전서 여극승(呂克勝)의 딸이다. 형은 생육신의 한 명인 이맹전(李孟專)이고, 동생은 병조참판 이계전(李季專), 현감 이말전(李末專)이다. 형곡 사창리에서 태어났다. 이숙전은 일찍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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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지밀직사 이견간(李堅幹)의 4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군상(李君常), 아버지는 경상병마도원수 이희경(李希慶), 처는 공부전서 여극회(呂克誨)의 딸이다. 혼인 뒤 처가 고을인 형곡동에 와서 살았다. 아들로 생육신 이맹전(李孟專), 상호군 이숙전(李叔專), 병조참판 이계전(李季專), 현감 이말전(李末專)이 있다. 이심지는 조선 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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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강(驪江). 초명은 이적(李迪),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할어버지는 참군 이수회(李壽會), 아버지는 이번(李蕃), 어머니는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의 딸로 경주손씨(慶州孫氏)이다. 경주손씨 가문은 일찍이 경주 양동에 자리 잡은 세력으로, 손소 손중돈(孫仲暾) 등 현달한 관료를 배출하였다. 이언적은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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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평양소윤 이문광(李文廣)이다. 이여량은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좌랑에 제수되었다. 1386년 사간원좌정언에 올랐다. 이 무렵 우왕이 놀이에만 여념이 없었고 폐신(嬖臣) 노영수(盧英壽) 집에 자주 행차하여 정사를 소홀히 하는 일이 허다했다. 이에 이여량은 다른 신하와 더불어 배종했다가 간관으로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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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이위(李瑋)·이후(李珝),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奇窩). 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장인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이다. 형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이우는 1565년(명종 20) 진사에 입격하여 비안현감, 괴산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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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신오(愼五). 근곡(芹谷) 이관징(李觀徵)의 현손이며 이협(李浹)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만용(李萬容), 아버지는 현감 이지수(李之受)이다. 1813년(순조 13) 증광 문과에 을과 7위로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교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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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의백(宜伯).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俊), 아버지는 장령 이흡(李洽), 어머니는 예조판서 이우직(李友直)의 딸로서 여흥이씨(驪興李氏)이다. 이의배는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당상관에 이르렀다. 1626년(인조 4) 3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이듬해 1월 노적(奴賊)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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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의배의 선정비. 이의배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한 무신으로서, 인조반정에 참가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되었고, 1626년(인조 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27년(인조 5) 1월에 신병으로 체임(遞任)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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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중섭(仲涉), 호는 풍뢰당(風雷堂). 할아버지는 현감 이증화(李增華)이다. 이익수는 1773년(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고 동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저서로 『풍뢰당유고(風雷堂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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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아버지는 이수억(李秀億)이다. 형으로 이문해(李文海), 이관해(李觀海), 이득해(李得海)가 있다. 이익해는 1704년(숙종 30) 춘당대정시(春塘臺庭試) 무과에 병과(丙科) 6위로 급제하여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1716년(숙종 42) 10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이듬해 6월에 어사(御史)의 서계(書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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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이진회는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11년(순조 11) 8월 24일에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814년 6월 24일 도정(都政)에 의하여 충청도 홍양영장(洪陽營將)으로 승진되었다. 1814년(순조 14) 인동부민이 세운 선정비(善政碑)가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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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이상규(李尙規), 장인은 황준경(黃浚瓊)이다. 형은 이암(李馣)이다. 이하는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 갑과 2위로 급제하여 동부승지, 장령, 형조참의, 강진현감, 동래부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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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이항은 문과에 급제하여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1656(효종 7) 3월 15일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9월에 벼슬을 그만두면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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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이형회의 선정비. 이형회(李亨會)는 음사로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24년(순조 2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27년(순조 27)까지 3년여 동안 재임하다가 죽었다. 재임 기간에 그는 빙허각(憑虛閣)을 건립하였고,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선산향교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청아루(菁莪樓)를 다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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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 연안군(延安君) 이숙기(李叔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수찬 이세범(李世範), 아버지는 이천현감 이국주(李國柱), 어머니는 사직 박여(朴旅)의 딸로 정경부인 비안박씨(比安朴氏)이다. 이호민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9년(선조 12) 진사에 합격하고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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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동부사 이희면(李熙冕)의 선정비. 비신의 앞면이 훼손되어 있어 영세불망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뒷면의 1840년(헌종 6) 즈음에 부임한 인동부사로는 1838년(헌종 4)에 부임하여 1842년(헌종 8)에 이임한 이희면(李凞冕)이 유일하므로 인동부사 이모는 이희면으로 추정된다. 인동부사 이희면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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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이희원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34년(순조 34) 7월 26일 인동도호부사로 부임하여 1837년(헌종 3) 12월 도정(都政)에 의하여 훈련원정으로 승진되어 이임하였다. 1838년(헌종 4) 1월에 인동부민이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새마을회관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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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희원의 선정비. 이희원(李熙遠)은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34년(순조 3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37년(헌종 3)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98㎝, 너비 42㎝, 두께 12㎝의 비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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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인덕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산동면 면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성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발원지인 인덕지가 나오고 이 인덕지의 동쪽에 서쪽으로 뻗은 완만한 구릉의 말단부에 수십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형태는 구덩식 돌덧널로 추정되며, 40~50여 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봉분은 거의 삭평되어 버렸지만 지름 5~8m이고, 돌덧널의 크기는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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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의 군위현조에 이보의 약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후 인동현감으로 재임하면서 당시 인동은 왜구의 중요 통로가 되어 왜구의 피해가 특별히 심하여 전야(田野)가 비었고 사는 사람이 없는지라 관찰사가 논계하여 읍을 혁신하고 공으로써 임시 현감을 차임하고 또 과곡관을 겸임하니 추절을 당하여 득곡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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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명. 인동은 외부의 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교통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명이 발전하였으며, 풍부한 물산과 군사적 요충지로 인해 조선 후기까지 도호부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철도가 약목을 통과하게 되고 운하 교역이 감소하면서 칠곡과 선산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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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년 고려와 후백제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싸운 전투. 신라 하대에 들어오면서 골품제가 붕괴되고 중앙귀족이 왕위쟁탈전을 벌이자 주군현이 공부(貢賦)를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되었다. 나라 창고는 고갈되고 왕은 조세의 납부를 독촉하는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에 곳곳에서 도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도적이 상주의 원종·애노, 북원의 양길·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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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일선주군주를 역임한 인물. 일부는 614년(진평왕 36) 2월 신라가 사벌주(沙伐州)를 폐지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였을 때 일길찬(一吉湌)의 관등으로서 일선주의 군주(軍主)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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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대규모 고분군인 낙산리 고분군과 신림리 고분군 사이에 위치하는 소규모 고분군이다. 국도 25호선에 접해 있는 능선으로 일선리 문화마을의 남쪽에 인접하여 있다. 제2낙산교를 지나 도로 동쪽의 능선 서쪽 사면에 의구총이 위치하고 있으며, 고분군은 의구총이 위치한 능선 상에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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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해평·군위 일원을 관장하였던 신라시대 행정구역. 일종의 군관구로 설치된 일선주는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삼국 통일의 중요한 보급 기지가 되었다. 통일 전쟁 과정에 총관이 직접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일선주 백성들은 전쟁에 사용된 병력과 물자를 제공하였다. 신라의 영토 확장과 함께 선산 지역은 신라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이 설치되었다. 낙동강 동안의 낙산리 일대에 대형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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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할아버지는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중시조 임세춘(林世春), 아버지는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이다. 대대로 평성(平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우거하였으며 임견미는 훗날 평원부원군파(平原府院君派)의 시조가 되었다. 임박(林樸)이 아들이다. 임견미는 공민왕 초 중랑장(中郞將)에 등용되었으며 13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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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지역에서 우거한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원질(元質).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중시조 임세춘(林世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 아버지는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 임견미(林堅味)이다. 대대로 평성(平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우거하였다. 임박은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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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동쪽의 남서로 향하여 길게 뻗어 내린 해발 80~50m의 능선에 고분군(임수동 고분군1)이 위치해 있으며, 여기서 구미대교 쪽으로 가다 보면 구미대교를 건너기 직전 북쪽의 해발 60m 능선에 고분군(임수동 고분군2)이 분포하고 있다. 임수동 고분군은 도굴, 민묘 조성, 공장 건설 등에 의해 파괴가 심하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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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여차정 서쪽 낙동강변 큰 바위인 장암에 새겨진 글자. 낙동강변 큰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조선 후기 문신인 장학(張澩)의 친구 매은(梅隱) 전영(全榮)이 쓴 것으로 전한다. 임수동 장암 암각은 임수동 낙동강변의 여차정(如此亭) 서쪽에 있다. 임수동 낙동강변에 높이 약 5m, 넓이 약 3.5m가량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장암(壯巖)’이란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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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낙동강변의 동락서원 옆 2개의 바위에 새겨진 글자. 임수동 천연대 암각은 낙동강변의 동락서원 서편 바위에 있다. 동락서원 옆에는 2개의 바위가 포개져 있는데, 위에 얹혀 있는 큰 바위(높이 2m, 둘레 약2m)에 세로로 비스듬히 ‘천연대(天淵臺)’라고 새겨져 있다. 글씨 크기는 천(天)은 10×17㎝, 연(淵) 16×20㎝, 대(臺) 17×19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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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지역에 정착한 선산임씨의 시조. 임양저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손서(孫壻)로서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하고자 했을 때 그 부당함을 극간(極諫)하다가 경순왕의 노여움을 사서 선산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선산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뿌리를 내림으로써 후손들이 임양저를 시조로 삼고 본관을 선산(善山)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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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춘(大椿), 호는 석천(石川). 임득무(林得茂)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임수(林秀),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 어머니는 박자회(朴子回)의 딸이다. 임억령은 박상(朴祥)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25년(중종 20)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 때 금산군수로 있었는데 동생 임백령(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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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임영화는 공민왕 때 이방실(李芳實)을 따라 홍건적의 난을 평정할 때 큰 공을 세웠으나 폐신(嬖臣) 김용(金鏞)이 시기하여 축출되었고 이산영(伊山營)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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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낙동강의 지류인 한천(漢川)의 북쪽에 형성된 들판과 높은 산지가 만나는 능선 말단부에 위치하는 소규모 고분군으로 삼국시대(신라)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국도 25호선을 따라 가다 장천면 면소재지를 지나 2㎞ 정도 가면 구미국가산업단지 제4단지로 진입하는 도로가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이 도로에서 임봉초등학교에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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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숙여(肅與). 임윤원(任胤元)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임수적(任守迪), 아버지는 임용(任瑢)이다. 임희우는 1762년(영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779년(정조 3) 2월 고성현령에 임명되고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였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가 세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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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천개(天開), 호는 옥란헌(玉蘭軒). 할아버지는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부제학 장응일(張應一), 장인은 송석윤(宋錫胤)이다. 장건은 효종 3년(1652) 증광문과에 병과 20위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장령, 전라도사를 거쳐 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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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태래(泰來), 호는 만회당(晩悔堂). 덕령부군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 어머니는 진위장군 이운배(李雲培)의 딸로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장경우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인목대비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영남 유생들과 상소하여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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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인동장씨 직제학계의 시조. 본관은 인동(仁同). 인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14세손이다. 옥산군(玉山君, 옥산은 인동의 별호)에 봉해져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리와 송곡리 일대의 발영전(拔英田)에 터를 잡은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어 장계를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 장계계가 형성되었다. 장계는 1305년(충렬왕 31)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직제학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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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교위공 장진(張震)이다. 장국신은 고려 전기에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내사문하성내사령(內史門下省內使令)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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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장순(張純)이다. 고려 후기 문과에 등제하여 경주영장(慶州營將)을 역임했으며 3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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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인동장씨 상장군계의 시조. 본관은 인동(仁同). 인동장씨 장금용계의 시조이다. 장금용이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일대에 터를 잡기 시작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옥산장씨(玉山張氏, 옥산은 인동의 옛 지명)가 형성되고 후에 옥산이 인동으로 개명됨에 따라 인동장씨로 불리게 되었다. 장금용은 고려 전기에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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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정보(正甫), 호는 극명당(克明堂). 아버지는 판결사 장사영(張士瑛)이다. 장내범은 타고난 성품이 중후하여 어릴 때부터 행실이 남달랐으니, 9세 때 모친상을 당하여 비애하고 곡읍함이 어른과 같았다고 한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켰다. 장내범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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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화심(華深), 호는 신천(信天).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장광표(張光表)이다. 장동원은 영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경주영장(慶州營將)을 역임하고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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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고(好古), 호는 낙서(洛西). 증이조판서 장철견(張哲堅)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인(舍人) 장계문(張季文), 아버지는 군수 장기정(張麒禎), 어머니는 조광침(趙光琛)의 딸로 백천조씨(白川趙氏)이다. 장만은 1591년(선조 24)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있다가 예문관검열, 전생주부, 형조좌랑, 예조좌랑, 지평 등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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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숙겸(叔謙),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의 아들이다. 장만익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등제하여 훈련도감부사용, 주부, 도사, 훈련원정, 영장 등을 거쳐 장흥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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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유지(攸之).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장응일(張應一), 아버지는 진주목사 장건(張鍵)이다. 장만춘은 무과에 급제하여 영덕현령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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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윤(景胤), 호는 송설헌(松雪軒). 직제학 장계(張桂)의 후손으로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홍산현감 장안량(張安良),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말손은 1459년(세조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박사를 거쳐 사헌부감찰,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1463년 함길도병마도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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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풍저창승(豊儲倉丞)을 지낸 장보(張俌)이다. 장맹저는 성종 때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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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장수(張脩)이다. 장보는 풍저창승(豊儲倉丞)을 지냈으며 1460년(세조 6) 5월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진목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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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우문(遇文), 호는 성와(省窩). 심곡 장제원(張悌元)의 후손이며 장점(張點)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재옥(張在玉), 아버지는 장진구(張鎭九)이다. 재종숙 장진오(張鎭五)에게 입양되었다. 1810년(순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김천도찰방,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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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죽정(竹亭) 장잠(張潛), 아버지는 장윤(張崙)이다. 장사진은 당시의 인동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로 이사했다.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있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였으므로 이웃사람들은 의협인(義俠人)이라고 불렀다. 군위향교 교생으로 면학하던 중 임진왜란을 맞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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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운(師雲), 호는 연미정(戀美亭).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의 후손이다. 아버지 장시호(張時皥), 어머니는 김해배씨(金海裵氏)이다. 장석규는 1800년(정조 24) 양친이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 이갑회(李甲會)의 무고(誣告)로 죄인이 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옥중에서 태어났다. 그 후 어머니, 누이와 함께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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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용규(張龍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운전(雲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호(張濠), 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어머니는 김구운(金龜雲)의 딸로 선산김씨(善山金氏), 처는 허참(許傪)의 딸로 김해허씨(金海許氏)이다. 장학덕(張學㯖)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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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견가(見可), 호는 춘고(春皐).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동암(東巖) 장대방(張大方)의 5세손, 만인당(晩忍堂) 장지학(張趾學)의 현손, 장수형(張壽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윤구(張胤矩), 아버지는 장호추(張好樞), 어머니는 이동혐(李東馦)의 딸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장석준은 1852년(철종 3) 문과에 급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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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이다. 장선은 고려 전기에 금오위상장군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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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이며, 자는 자진(子陳)이다.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학거(鶴渠) 장순(張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심곡(深谷) 장제원(張悌元), 아버지는 지암(止庵) 장내겸(張乃謙)이다. 장세기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했으며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사후에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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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신원(張信元)이다. 장신원은 고려 전기에 봉어(奉御, 정6품)와 직장(直長, 정7품)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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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안세(張安世), 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이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었다. 태종 때에 칠원감무(漆原監務)를 역임하였으며, 사헌부지평과 집의를 거쳐 1430년(세종 12) 장령에 이르렀다. 간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인동으로 물러나 세상을 마쳤다. 『옥산지(玉山志)』에 인동부 동헌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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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중용(仲庸). 송와(松窩) 장영(張塋)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장몽규(張夢奎), 아버지는 장흥옥(張興玉)이다. 장수용은 1756년(영조 32)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전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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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유생이자 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앙(景仰), 호는 학거(鶴渠). 장금용(張金用)계로서 통찬(通贊) 장맹저(張孟儲)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인동장씨 진평파 파조 장신손(張信孫), 아버지는 장사랑 장항(張沆), 어머니는 이조참판 박추(朴鰌)의 딸로 울산박씨(蔚山朴氏)이다. 장순은 할아버지 장신손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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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장인숙(張仁淑)이다. 장순은 고려 후기에 밀직사부사(密直司副使)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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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호(士浩)·자활(子活), 호는 오재(悟齋)·송암(松庵).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군수 장중지(張重智),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순손은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480년(성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5년(성종 16) 문과에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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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교위 장진(張震), 아버지는 내사문하성내사령 장국신(張國伸)이다. 장신원은 당시의 인동현(仁同縣)에서 태어났다.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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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송은(松隱).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밀직사부사 장순(張純), 아버지는 장균(張均)이다. 장안세는 고려 후기 함주(현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갈한천(乫罕川)이 해마다 범람하여 재해가 연속되자 함주부사에 임명되었다. 10여 년 동안 재임하면서 치수에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70칸이 되는 만세교(萬歲橋)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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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화중(和仲). 아버지는 통선랑(通善郞) 장보한(張輔漢)이다. 장여간은 당시의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35년(인조 13) 증광 문과에 합격하였으며 판관과 현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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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명세(鳴世), 호는 소매당(訴梅堂).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장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 여헌 장현광에게서 학문을 이어받았다. 1662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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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이상(而相).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형이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이다. 장옥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음직(蔭職)으로 산음현감을 지냈다. 묘소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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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백응(伯應), 호는 남와(南窩). 장금용(張金用)계로서 남파 장학의 후손이자 장한시(張漢蓍)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온재(穩齋) 장수모(張守模), 아버지는 통덕랑 장인섭(張仁燮)이다. 백부인 통덕랑 장운섭(張運燮)에게 입양되었다. 장용팔은 1803(순조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806년 사헌부지평을 제수받았으나 이어지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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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인동장씨 남산파의 파조.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장수(張脩)이다. 훗날 인동장씨 남산파(南山派)의 파조가 되었다. 장우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사천진병마첨절제사겸현감으로 재임 중 해변에 성채를 쌓고 군량미를 비축하여 방비를 튼튼하게 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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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지(拱之).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삼우당(三優堂) 장해(張𣴴)이다. 장우극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수안군수, 삼수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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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우환(張羽寰), 자는 보경(輔卿), 호는 침류정(枕流亭)이다.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장원(張厡)이다. 장우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2년(현종 13) 무과에 급제한 뒤 오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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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봉거(鳳擧).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남파 장학(張澩)이다. 장우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현종조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승정원동부승지를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경상좌도수군절제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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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휘는 장우천(張羽天), 자는 제천(梯天).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삼우당(三優堂) 장해(張𣴴)이다. 장우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학식과 재덕을 두루 갖추고 있었으며 글씨에 재능이 있었으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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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중(經仲), 호는 귀로정(歸老亭).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이조참판 장계증(張繼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희(張熙), 아버지는 월포(月浦) 장현도(張顯道), 어머니는 도시인(都是仁)의 딸이다. 장우일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으며 종숙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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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두경(斗卿), 호는 임졸재(任拙齋).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장원(張厡)이다. 형으로 장우주(張宇柱), 장우상(張宇相)이 있다. 장우추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9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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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학부(學夫), 호는 동릉(東陵). 여헌 장현광의 후손으로, 사이당(四而堂) 장지덕(張趾德)의 6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장위(張瑋)이며, 할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장석이(張錫頤)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장인원(張仁遠)이다.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승정원가주서를 거쳐 승정원주서,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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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贇’은 속음이 빈이기 때문에 ‘장빈’으로도 불린다. 장윤(張贇)은 당시 일선주(一善州)의 속현인 해평현(海平縣)에 살았다. 고려 후기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안산군수를 역임하였다. 정인지(鄭麟趾)가 쓴 「해평향교기(海平鄕校記)」에 따르면 해평은 선산에 딸린 현이므로 향교를 설치하지 않았으나 부까지는 너무 멀어 당시 향선생(鄕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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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숙(經叔), 호는 청천당(聽天堂).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이조참판 장계증(張繼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열(張烈), 아버지는 월포(月浦) 장현도(張顯道), 어머니는 이부춘(李富春)의 딸이다. 종숙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에게 입양되었다. 장응일은 7세 때 장현광에게 입양되어 가학을 이었다. 1629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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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자유(子裕), 호는 지분헌(知分軒).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장곤(張崑), 아버지는 의병장 개옹(㝏翁) 장봉한(張鳳翰)이다. 장이유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효경(孝經)』과 『소학(小學)』을 익혔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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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장위(張偉)이다. 장인숙은 고려 후기에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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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공무(公武), 호는 운초(雲樵).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사이당(四而堂) 장지덕(張趾德)의 5세손이며 장윤문(張胤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장위(張瑋),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장석이(張錫頤)이다. 장인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839년(헌종 5) 별시에 급제한 후 1840년 승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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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원(浩原), 호는 죽정(竹亭).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 장맹저(張孟儲), 아버지는 충순위 장적손(張嫡孫), 어머니는 전호군(典護軍) 최한충(崔漢忠)의 딸로 화순최씨(和順崔氏)이다. 후손들이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일대에 세거함에 따라 훗날 인동장씨 황상파(凰顙派)의 파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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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인동. 자는 중순(仲順), 호는 심곡(深谷).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조부는 진평파 파조인 진사 장신손(張信孫)이고, 아버지는 생원 장순(張峋)이다. 어머니는 성산이씨로 진사 이태연(李泰然)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591년(선조 24)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에는 과거 공부를 폐하고 한강 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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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인동 남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장안세(張安世)이다. 고려 말에 김해부사에 이르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유명(遺命)으로 비석에 고려 때의 직함만 쓰라 하여 후손들이 유명을 받들어 그대로 하였다 한다.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있다. 매년 음력 10월 5일에 묘제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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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상장군 장선(張善)이다. 고려 초 교위(校尉)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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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자는 능운(凌雲). 장령(掌令) 장수(張脩)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충무위부사용(行忠武衛副司勇) 장찬(張燦)이다. 부사과(副司果)로 있다가 1678년(숙종 4) 증광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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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장령(掌令) 장수(張脩)의 후손이다. 장추(張湫)는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이 토포사(討捕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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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죽정 장잠(張潛)의 후손이다. 장필흥(張必興)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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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동. 자는 성원(聖源), 호는 남파(南坡).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증공조참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이며, 아버지는 증승정원좌승지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이다. 형제로는 형 장해(張𣴴))와 동생 장원(張厡)이 있다. 장학(張澩)은 11세의 나이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장현광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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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인동. 자는 거원(巨源), 호는 삼우당(三優堂).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22대 주손(冑孫; 제사를 잇는 맏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증공조참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이며, 아버지는 증승정원좌승지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이다. 형제로는 장학(張澩)과 장원(張厡)이 있다. 장해(張𣴴)는 1642년(인조 20)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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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장현광(張顯光)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이기설에서 일본설(一本說)에 입각하면서도, 이이의 ‘기발이승’을 수용하는 등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힘을 기울였으며, 산림의 한 사람으로서 도덕정치의 구현을 강조하였다. 장현광의 강학 시설로 구미시 임수동에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가 있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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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순거(順擧). 고려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張潛)이며,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장곤(張崑)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로 내금위(內禁衛)를 지낸 이훈(李薰)의 딸이다. 장홍한은 임진왜란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산·개령·선산·지례 등지에서 왜적을 토벌하였다. 상주판관(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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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봉어 장세림(張世林)이다. 선의랑(宣議郞) 위위시주부동정(衛尉寺注簿同正)을 역임하였다. 위위시는 의장(儀仗)에 쓰이는 예기(禮器)와 병기(兵器) 등을 관장하였으며, 위위시주부는 종7품에 해당한다. 동정(同正)은 산직(散職)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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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적림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면사무소 뒤쪽으로 남향하여 흘러내리는 해발 60~50미터 정도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민묘가 조성되어 있거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서 토기편·자기편이 산재하고 있으며, 일부 민묘 위에서는 기와편도 관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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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미재(美哉), 호는 성암(省菴). 증조부는 문혜공(文惠公) 전귀생(田貴生), 할아버지는 전한(田漢), 아버지는 전무(田畝)이다. 1399년(정종 1)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정헌대부 예조판서를 역임했다. 태종의 세자 시절에 세자와 유일지사(遺逸之士)를 논하게 되었을 때 전가식은 “길재(吉再)가 강직하고 집에서는 효행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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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의연(毅然), 호는 가정(價亭). 증조부는 성암(性庵) 전좌명(田佐命)이며 아버지는 찰방(察訪) 전계경(田季耕)이다.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을 거쳐 귀후서(歸厚署)의 별좌(別坐) 및 직장(直長), 산음현감(山陰縣監)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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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보(公輔), 호는 송재(松齋). 증조부는 성암(省菴) 전좌명(田佐命)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로서 의령현감을 지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추모에 정성을 다하고 향사에 정성이 극진하여 많은 사람들이 효행에 감복하였다. 효자로 추천되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고 음직이 다시 내려졌으나 노모가 계시니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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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전익희의 선정비. 전익희는 본관이 옥천(沃川), 호가 망일당(望日堂)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서 인조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지평, 정언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는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서예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전익희는 선산부사로서 역역(力役)과 부세(賦稅)를 경감토록 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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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좌명의 묘비. 전좌명의 자는 충언(忠彦), 호는 성암(性庵)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양친 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하였다. 1472년(성종 3) 성종은 효자 정려를 내렸으며, 명종은 효행을 칭찬하는 어제시판(御製詩板)을 내렸다. 묘비의 뒷면에는 1762년(영조 38)에 해당하는 ‘숭정기원후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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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광. 자는 이회(而晦),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정몽응(丁夢鷹)이다. 정경달(丁景達)은 1570년(선조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1년(선조 24) 선산부사로 도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과 군민을 독려하여 왜적 방어에 공을 세웠다. 4월 28일 상주가 함락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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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곤양(昆陽).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경상남도 하동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판서 정의걸(鄭義傑)이고,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 정성호(鄭成浩)이다.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하였다. 왕명에 따라 정무수(鄭茂壽)를 정기룡(鄭起龍)으로 개명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방어사 조경을 따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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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주. 자는 위로(渭老). 정붕(鄭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병사(兵使) 정루(鄭縷)이다. 1592년(선조 25)에 출생하였다. 당시 임진왜란 영향으로 나라가 편안치 못한지라 스스로 무(武)를 택하여 1618년(광해 10) 무과에 등제하였다. 많은 도적패가 조령에 웅거하여 백성을 괴롭히자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서 평정에 나섰고, 공주에 토포사(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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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초계. 자는 군필(君弼), 호는 삼송당(三松堂). 임진왜란 때에 학봉 김성일의 휘하에 종군하여 의병장 김준민(金俊民)을 도와 단계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망우당 곽재우의 휘하에 종군하여 화왕산성에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강령현감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세 고을의 수령을 지낸 후 대구병마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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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운정(雲程), 호는 신당(新堂). 증조부는 정희언(鄭希彦)이고, 할아버지는 정유(鄭由), 아버지는 현감 정철견(鄭鐵堅)이다. 1467년(세조 12)에 출생하여 1485년(성종 16) 진사시에 입격하고 1492년(성종 23)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정자·지평·정언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교리로 있으면서 갑자사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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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건(子健), 호는 한벽재(寒碧齋).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정희언(鄭希彦)이며,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정유공(鄭由恭)이다. 정붕(鄭鵬)이 그의 조카이다. 성종조 준량(俊良)으로서 피소(被召)되어 비안(比安)·지례(知禮)·김산(金山)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학문과 덕행이 탁월하여 가는 곳마다 송덕비가 세워졌으며 청백리였다. 1474년(성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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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소의 선정비. 정소(鄭熽)는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43년(헌종 9)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45년(헌종 11)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111㎝, 너비 42㎝, 두께 16㎝의 비신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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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상보(尙甫). 해주에서 살았다. 증조부는 정경윤(鄭景倫), 할아버지는 정응탁(鄭應鐸), 아버지는 정문명(鄭文明)이다. 1606년(선조 39)에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1630년(인조 8)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1649년(인조 27) 8월에 인동부사로 도임하였다. 1653년(효종 4) 3월 24일 처의 묘소 자리를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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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정시선의 선정비. 정시선(鄭是先)은 1692년(숙종 18)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693년(숙종 19)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17㎝, 너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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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정영은 1610년(광해군 2)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자질과 기백이 남달라 누구도 그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신장이 8척에 도량이 넓고 활달하며 그 음성이 우렁차 집안에서 하인에게 명하는 소리가 몇 리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본관은 해주. 자는 화숙(和叔). 신당 정붕(鄭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병조판서(兵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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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서울에 거주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1851년(철종 2) 7월 30일 인동부사로 도임하였다. 학문을 장려하고 선정을 베풀어 1855년 6월에 있은 도정(都政; 근무 평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경기중군(京畿中軍)으로 승진되었다. 1855년(철종 6) 7월 인동부민들이 세운 흥학선정비(興學善政碑)가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의 인동향교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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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운기의 선정비. 정운기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51년(철종 2)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5년(철종 6)에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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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문신. 본관은 하동. 선산 영봉리에 살았다. 1405년(태종 5) 진사시에 합격한 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고을 부사에 올라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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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나주. 자는 복초(復初), 호는 향와(香窩). 초암(草庵) 정윤우(丁允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건수(丁建壽)이다. 벼슬은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거쳐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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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하동. 증조부는 정승경(鄭承慶), 할아버지는 정태보(鄭台輔), 아버지는 정희(鄭熙)이다. 1405년(태종 5)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조판서·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 세종 초의 과학 사업에 중요한 소임을 맡아 대통통궤(大統通軌)를 연구하고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편찬하였으며, 간의대(簡儀臺)를 제작하여 설치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그밖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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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 자는 일지(一之). 할아버지는 정언복(鄭彦復)이고 아버지는 정홍(鄭泓)이다. 1771년(영조 47) 문과에 병과 57위로 급제하였다.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숭릉별검(崇陵別檢)·전적(典籍)·병조좌랑(兵曹佐郞)·예조정랑(禮曹正郞)·지평(持平)·헌납(獻納)·경성판관(境城判官)·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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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초계. 자는 대수(大受). 할아버지는 정옥량(鄭玉良)이고 아버지는 정희길(鄭熙吉)이다. 1507년(중종 2)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허백기(許伯琦)·김취정(金就精)·송희규(宋希奎) 등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을 역임하고 여러 고을 부사(府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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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래. 자는 종지(宗之). 증조부는 의주부윤 정경업(鄭慶嶪), 할아버지는 정숙(鄭橚), 아버지는 정태구(鄭台耉), 어머니는 김진곤(金振坤)의 딸이다. 민정중(閔鼎重)의 문인이다. 1684년(숙종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1690년(숙종 16) 영산현감으로 재직 중 백성을 착취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699년(숙종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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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조박의 선정비. 조박(趙璞, 1577~1650)은 문과 갑과 3등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광해군 때의 대북파에 의해 여러 차례 탄핵을 받는 등 관직 생활이 순탄하지 못하였다. 배천현감, 무장현감, 평안도도사 등을 지낸 후 1623년(인조 1)에 선산부사에 부임하였으며, 부임한 지 2개월여 만에 파직되었다. 2개월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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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上龜尾面)·하구미면(下龜尾面)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하구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 개칭된 데 기인한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성립하였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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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에 있는 조선시대 길의 거리를 표시하여 세운 표석. 오늘날 시골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장승, 정자목, 돌무지[積石], 흙둔덕[堠] 등은 모두 고대의 도로 측량과 관련되는 유물로서 후에 도로 표지로 기능이 전환된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노폭, 이정(里程), 노표(路標) 등에 관한 정비계획이 수립되어 정책적으로 이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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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떼. 구미시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구미천을 건너 선산읍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하나마을아파트가 나오는데, 하나마을아파트 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하부는 매몰되어서 구조 형식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덮개돌은 남동-북서를 향하고 있으며 크기는 270×140×80㎝(1호), 360×150×160㎝(2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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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려 세운 비. 야은 길재는 고려 후기의 인물로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서 배웠으며, 벼슬이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 태종이 태상박사(太常博士)라는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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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시대 표석. 관결(官決)이라 함은 조선시대 관아에서 어떤 사안에 대하여 처분을 내리는 것을 말하며, 건립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토지의 경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관결표석을 세운 것으로 여겨진다. 표석은 자연석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 65㎝, 너비 38㎝, 두께 25㎝ 정도이다. 표석에는 ‘관결표석(官決標石)’이라 새겨져 있다. 표석은 구미시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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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구미중소기업지원센터 맞은편의 낙동강과 접해 있는 능선에 산포지가 위치한다. 고분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재 밭으로 경작되는 곳곳에 삼국시대 토기편·대호편·굽다리접시편·짧은목항아리편 등이 다량 산재하고 있어 고분이 분포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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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에 위치한 산성. 천생산성은 금오산성과 더불어 낙동강을 끼고 동서로 마주하면서 가산산성과 연결되는 국방의 요충지이다. 천생산은 정상이 일자봉(一字峯)으로 생김새가 특이하여 하늘이 내셨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속칭 함지박을 엎어놓은 듯하다 해서 방티산이라고도 부른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쌓았다는 기록이 『인동읍지(仁同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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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를 이어주는 청동기시대는 날이 달린 도구를 청동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면서 그릇으로는 겉에 아무런 무늬도 장식하지 않고 납작바닥[平底]을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민무늬토기[無文土器]를 사용하던 시기를 고고학적으로 부르는 학술 용어이다. 그러나 연구자에 따라서는 무문토기시대로 부르기도 하고 시기 폭도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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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공헌(公獻), 호는 이우정(二友亭) 또는 운엄(雲广). 부제학·강원감사를 역임한 인재 최현(崔晛)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최체건(崔體乾), 할아버지는 최두추(崔斗樞),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최수인(崔壽仁)이다.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59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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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무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698년(숙종 24) 8월에 인동부사로 왔다가 1700년(숙종 26) 7월 파직되었다. 재임중인 1699년(숙종 25)에 읍지인 『옥산지(玉山志)』를 간행하였으며, 생원과 진사들의 자체협의 기구인 사마소(司馬所)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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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입지(立之), 호는 우암(愚庵). 증조부는 최치운(崔致雲), 할아버지는 최해(崔海), 아버지는 최노(崔魯)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 참봉 잠(箴)의 딸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 문과에 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역입하였다. 진보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추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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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백옥(伯玉), 호는 낙남(洛南). 증조부는 증좌승지 최치운(崔致雲), 할아버지는 증좌참찬 최심(崔深), 아버지는 관찰사 인재(訒齋) 최현(崔晛),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창원부사 김복일(金復一)의 딸이다. 해평에서 출생하였다. 1627년 9월(인조 5) 이인거(李仁居)가 후금과의 화친을 비판하며 횡성에서 일으킨 반란에 관련했다 하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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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문신. 전주최씨의 입향조. 본관은 전주. 자는 윤보(潤甫). 증조부는 최택(崔澤), 할아버지는 최사비(崔斯泌), 아버지는 최자경(崔自涇)이고, 해평김씨 김영발(金英發)의 손자사위이다. 1447년(세종 29) 진사시에 합격한 후 1453년(단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를 역임하고 현풍·비안에서 선정을 폈으며, 성종 때 좌리원종공신(佐理原從功臣)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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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견숙(見叔), 호는 송정(松亭). 할아버지는 상서원정(尙書院正) 증승정원도승지 최수지(崔水智), 아버지는 증도승지 최이한(崔以漢), 어머니는 문이신(文以信)의 딸이다. 1537년(중종 32) 생원·진사 양과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546년(명종 1)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으나 아버지를 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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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계승(季昇), 호는 인재(訒齋). 현감 최수지(崔水智)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 최심(崔深)이고, 참판(參判) 최응룡(崔應龍)의 종손자이다. 1563년(명종 18) 해평에서 태어났다.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했으며, 1606년(선조 39)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에 들어갔고 홍문관의 고관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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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떼. 선산읍에서 국도 68호선을 따라 상주 방면으로 가다가 포상1리로 가는 길로 들어서서 대천을 건너면 마을 동남쪽의 쌀개산(223m)에서 뻗어 내린 능선 아래에 신당개마을을 중심으로 동쪽에 아랫신당개와 명티마을이, 서쪽에 윗신당개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고인돌은 이 마을 뒤쪽의 구릉 말단부에 수 기씩 있다. 아랫신당개의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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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양. 선산 영봉리 출생이다. 아버지는 군수 하담(河澹)이고 동생은 사육신인 단계 하위지(河緯地)이다. 1429년(세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과 동복현감을 지냈으나 동생 하위지와 함께 화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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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양. 아버지는 하담(河澹)이며, 단계 하위지(河緯地)의 동생이다. 1438년(세종 20) 하위지와 함께 문과에 등제되었으며, 형과 함께 화를 당하였다. 단종별단(端宗別壇)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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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양. 자는 천장(天章). 호는 단계(丹溪). 증조부는 하윤(河胤), 할아버지는 문하평리(門下評理) 하지백(河之伯), 아버지는 군수 하담(河澹), 어머니는 유면(兪勉)의 딸이다. 1412년(태종 12) 선산 영봉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형제가 문밖을 나오지 않고 독서에만 열중하니 이웃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1438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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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고방실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문인 하위지의 묘. 하위지는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노량진의 민절서원(愍節書院), 영월의 창절사(彰節祠), 선산의 월암서원(月巖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하위지 묘는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고방실마을 북서쪽 고방산(古方山)의 능선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방산에 자리 잡은 묘소에는 좌우로 각각 문인상과 석조물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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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고부(叩夫), 호는 운수당(雲水堂). 아버지는 현령 하계문(河繼文)이며, 경질공(景質公) 김지경(金之慶)의 사위로, 신곡(新谷)에 내거(來居)하였다. 1477년(성종 8) 생원시·진사시 양시에 합격하고 1483년(성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1489년(성종 20) 예조좌랑으로서 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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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왕비. 고려 태조의 29번째 부인이다. 해평(지금의 선산) 사람으로 대광(大匡) 벼슬을 한 선필(宣必)의 딸이다. 성씨는 알 수 없다. 선필은 신라의 장군으로 있으면서 태조를 도와 고려사신의 신라내왕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930년(태조 13)에 고려에 귀부하였는데, 이때 태조는 그를 상보(尙父)로 삼고 특별히 우대하였다고 한다. 태조는 고려를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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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 지역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이 지역은 낙동강 동쪽의 분지로 대구에서 다부를 거쳐 해평·낙동·태봉·문경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의성·군위·개령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교차하여 육상 교통로의 중요한 거점이면서 또한 낙동강 유역의 해상 교통로였으므로 일찍부터 창(倉)이 설치되어 물자 수송의 요충지가 되었다. 또한 해평(海平)이라는 지명처럼 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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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진(汝珍), 호는 호재(浩齋). 증조부는 허추(許錘), 할아버지는 허선(許譔), 아버지는 사정(司正) 허정(許禎)이다. 1519년(중종 14)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사관(史官)과 주서가 되었다. 조선 중종 연간 기호사림파를 대표했던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1524년(중종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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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심(士心), 호는 낙서(洛西). 죽암(竹庵) 허경윤(許景胤)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생원 남애(南厓) 허참이다. 문학과 행의(行誼)로 사우(士友)가 경복(敬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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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양민의 신분으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의 병마절도사 민영(閔泳)의 막하로 종군하였다. 척후장(斥候將)이 되어 광주(廣州) 쌍령의 경안교에서 청병(淸兵)을 만나 7~8명을 죽이고, 이튿날 적의 대규모 공격에 대항하여 군사를 이끌고 싸워 격퇴시켜 허장군(許將軍)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 공으로 훈련원첨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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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홍술조의 선정비. 홍술조(洪述祖)는 병자호란 때 청군에 항거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홍익한(洪翼漢)의 손자로서 음사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금천현감(衿川縣監)으로서 흉년에 봉록을 내어 진휼함으로써 선산부사에 승차하였다. 뒤에 순천부사로 있으면서도 진휼(賑恤)과 치적이 높이 평가받기도 하는 등 지방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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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불천위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지(應之), 호는 휴휴당(休休堂).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세종조부터 성종조까지 살았던 문인으로 문장과 글씨에 능했으며, 이름난 재상이었다. 1471년(성종 2) 익성 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유용(洪有龍), 할아버지는 증 영 중추부사 홍덕보(洪德輔)이고, 아버지는 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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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인.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태수(鮐叟), 호는 고산(孤山) 또는 매학(梅鶴). 할아버지는 경주부윤 황필이고, 아버지는 진사 황옥(黃沃)이다. 1521년(중종 16)에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대망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진사가 되어 여러 번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학문과 서도에만 정진하여 서예의 대가가 되었으며 특히 초서에 능했다. 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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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형중(瀅仲), 호는 국정(菊亭).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구미의 덕산황씨 입향조인 황정문(黃正文)이고,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황구수(黃龜壽)이다. 1449년(세종 31)에 태어났다.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직(內職)으로 교리(校理)와 승지(承旨)를 역임하였고, 외직(外職)으로 단양군수와 남원군수를 거쳐 상주목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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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지역 세심당 암벽에 새겨진 글자. 세심당은 1523년(중종 18)에 축조한 연당(蓮塘)으로 알려졌다. 죽정(竹亭) 장잠(張潛)이 지은 『세심당기문』이 있었으나 분실되어 사라졌다. 황상동 세심당 암각은 구미시 황상동 죽림정사(竹林精舍)의 오른편에 있다. 황상동 세심당 암각은 세심당의 암벽에 ‘세심당’이라고 세로로 새겨져 있다. ‘세심’이라는 말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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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지역에 있는 세심당 암벽에 새겨진 글자. 조선 중종 때 인동현감으로 있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은 공무가 끝나면 수레를 타고 죽림정사를 방문하여, 이 암벽에 앉아 죽정(竹亭) 장잠(張潛)과 학문을 강론하였다고 전한다. 이현(二賢)은 이언적과 장잠을 가리키는 것이다. 황상동 이현암 암각은 구미시 황상동 죽림정사 서편에 있는 세심당(洗心塘)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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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산. 자는 헌보(獻甫).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구미의 덕산황씨 입향조인 황정문(黃正文)이고,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황구수(黃龜壽)이다. 형으로 목사(牧使) 황린(黃璘)이 있다. 동생 황필과 함께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2년(연산 8)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校理)와 동래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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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인. 본관은 덕산. 자는 백견(伯見), 호는 구산(龜山). 황필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호군(護軍) 황하윤(黃河潤)이다. 1617년(광해군 9) 14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이첨(李爾瞻) 등이 폐비론을 선동하여 황진용에게 글을 지어 상소하라 하자 “사람으로서 어머니를 폐하는 것은 인륜에 어긋난 일이니 죽어도 글을 쓰지 못 하겠다” 하고 상소에 불참하고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