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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천 출신의 동학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영원(永元), 호는 석남(石南)·계헌(溪軒). 아버지는 강휘국(姜彙國)이다. 강기선(姜基善)[1846~1894]은 1894년(고종 31) 5월 9일 음직(陰職)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다. 동학에 가담하여 강평접주(江坪接主)로 활약하였다. 1894년(고종 31) 9월 농민군을 일으켜 선산의 일본 군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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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의사.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강석준이고 형은 강중구(姜重求)이다. 특히 근현대 시기 진주 강씨 집안은 김천 지역에서 의사 집안으로 유명하다. 아버지와 형, 그리고 강영구(姜英求) 모두 의사로, 이들은 김천 지역에서 인술을 베푸는 집안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형 강중구는 김천문화원장과 한국문화원연합회장을 지내면서 김천 문화의 장을 연 인물이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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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의사이자 초대 김천문화원장. 강중구(姜重求)[1920~1979]는 본관은 진주(晉州)로, 1920년 4월 29일 김천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뒤 김천에서 선업을 이어받아 인선의원을 경영하였으며, 1952년에는 인선병원장이 되었다. 1952년 김천에서 처음으로 열린 문화 운동 시민 집회를 주도하였으며,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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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가·사회 활동가. 광복 후 김천 지역에는 고덕환(高徳煥)을 중심으로 하는 고파(高派)와 심문(沈文)을 중심으로 하는 심파(沈派) 사이에 대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파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고씨 파에서는 유교계 인사 김은배를 지원하고, 심씨 파에서는 기독교계 인사 권태희를 내세워 권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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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종교인·정치가. 광복 후 김천 지역에는 고덕환(高徳煥)을 중심으로 하는 고파(高派)와 심문(沈文)을 중심으로 하는 심파(沈派) 사이에 대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파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고씨 파에서는 유교계 인사 김은배를 지원하고, 심씨 파에서는 기독교계 인사 권태희(權泰羲)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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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사업가. 김동환(金東煥)은 1928년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밤실마을에서 태어났다. 김천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학전문학교[약칭 대구의전],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조선대학교를 수료하였다.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여 한일건설산업 대표, 대신토건 대표, 한국건설협회 이사, 대신전연 대표 등을 맡아, 건설업과 전자공업계 회사를 성공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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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가이자 사업가. 김세영(金洗榮)[1920~2010]은 호는 세심(洗心)이며, 본관은 함녕(咸寧)이다.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39년 김천중학교를 제4회로 졸업하였다.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소재 함태탄광을 경영하였다. 그 뒤 대한석탄협회 및 대한광업회 이사와 가야산업주식회사 및 근해상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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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출신의 농민 운동가. 김윤하(金潤河)는 1905년에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철호의 감화를 받아 농촌 계몽 운동을 결심하였다. 졸업 뒤 농촌 계몽 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1928년 고향으로 돌아온 김윤하는 젊은 나이에 농사일에 뛰어들어 농사 개량과 근검절약으로 20년을 한결같이 농사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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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김철기(金哲基)[1901~1989]는 1901년 6월 25일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덕가리에서 태어났다. 1918년 상주시 함창보통학교, 1921년 대구보통교원양성소를 졸업하였다. 1921년부터 1935년까지 김천보통학교, 1935년부터 1937년까지 포항 곡강보통학교,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상주 화동보통학교,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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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정치인. 김철안(金喆安)은 1912년 4월 4일 김영순의 2녀 중 큰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계 때문에 어머니를 따라 영덕으로 갔다가 영덕소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인 1930년 김천으로 왔다. 금릉학원 부설 금릉유치원 선생[보모]으로 취직한 김철안은 유치원 보모 시절인 1932년경 황상덕이 관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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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의사이자 교육자. 김태수(金兌洙)는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와 대구의학전문학교[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김천시 용두동에 김외과의원을 개원하였다. 1956년 6월 1일 경상북도 김천의료원 원장 및 부설 김천간호고등기술학교 제2대 교장을 겸직하였다. 1975년 7월 10일 김천간호전문학교 신축 부지로 약 1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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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운동가. 김학래(金學來)는 1920년 대구에서 김성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평양법원에서 검찰서기로 근무했다. 아버지가 김천에서 김천해륙물산주식회사를 운영하면서 김천으로 이거했다가 정착했다. 1947년 청년 운동이 활발할 때 이청천 계열의 대동청년단 김천지부단을 조직하여 단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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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여성 운동가. 김혜경은 1927년 9월 2일 근우회 김천지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당시 근우회 김천지회 발족 모임은 금릉회관에서 열렸는데, 서무 임지정 외 2명, 교양 김태선 외 1명, 선전 조직 김철순 외 1명, 조사 연구 김길선 외 1명을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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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기업인. 나계찬(羅季燦)[1926~2004]은 1933년 3월부터 1939년 2월까지 아천보통공립학교[현 아천초등학교]를 다녔다. 1946년 1월 1일부터 1961년 12월 31일까지 김천경찰서에서 근무하였고, 1965년 1월 1일부터 1986년 12월 31일까지 대한교통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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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나복기는 광복 후인 1945년 11월 ‘건국준비위원회 김천위원회’ 간판을 내리고 대신 등장한 ‘조선인민위원회 김천위원회’의 산하 청년 조직으로 발족한 김천청년동맹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김천청년동맹은 나복기와 나정운 등의 주도로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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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나정운(羅鼎雲)은 1911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모암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학생·청소년을 모아 좌익 사상을 보급할 목적으로 김천독서구락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조선공산당 조직 운동에 가담했다가 검거되어 기소 유예로 풀려났다. 1935년에는 제2차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 산하 조직인 농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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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 학교를 설립한 일본인. 나카가와 타이헤이[中川太平]는 김천에서 임업으로 성공한 일본인으로, 임업과 농업 계통의 중등학교 설립을 시도하였다. 타이헤이는 금릉을 중심으로 한 산지 48.6㎢를 조림하여 임업왕으로 군림하면서 임업과를 포함한 실업학교 설립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당시 김천의 일본인들이 두 파로 갈리어 사사건건 대립해 결국 실업학교 설립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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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정치인. 본관은 밀양(密陽), 부인은 이범준(李範俊)으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다. 박정수(朴定洙)는 1932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김천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가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하였다. 1965년 부인과 함께 아메리칸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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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정치인이자 기업인. 박진호(朴鎭浩)는 1912년 부산에서 태어나 동래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 관리 등용문인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해 울산군과 창원군에서 근무를 했다. 1938년 마산세무서로 옮겼다가 1941년 김천세무서 간세과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밀양세무서로 전근이 되자 사업을 하기 위해 관직을 버리고 김천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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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교육자·공무원. 박희범(朴喜範)은 1922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968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부터 1957년까지 경북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이후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68년 문교부차관으로 재직하며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 실시, 국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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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효자이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성산. 자는 응문(膺文), 호는 긍석(肯石). 배덕회의 아들로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배선규(裵善圭)는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가 몸져눕자 친히 20여 년간을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그러나 효험이 없자 대덕산으로 들어가 간절히 기도해 산삼 한 뿌리를 캐어 다려서 부모를 살렸다. 그러나 부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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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1948년 가을에 여운형이 조직한 사회주의 온건파인 노동인민당 논설을 따르는 민주애국청녕동맹이 조직되었다. 백광진(白光鎭)은 당시 김천 지역 민주애국청년동맹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부위원장은 도경환이었다. 백광진의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도경환은 1949년 초 경찰서에 연행된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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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정치인. 백남억(白南憶)은 1914년 1월 11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일본 규슈대학[九州大學]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55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수학한 후 대구대학교 교수와 대구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1968년 영남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등고시위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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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백락도(白樂道)는 1920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신동[삼락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봉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민족주의 계열의 주동으로 조직된 금릉청년회가 사회주의 계열의 책동으로 김천청년동맹으로 바뀌었는데, 이때 백락도는 김천청년동맹의 집행위원이 되었다. 이 무렵 백락도는 사회주의 계열의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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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청년 운동가. 1947년에 이범석이 미군정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족청년단을 조직하고 전국적으로 그 하부 단위로 지부단을 조직하였다. 이때 김천 지역에서도 김천지부단이 설립되었는데, 백운학이 단장을 맡았다. 당시 김천지부단 회원들은 청색 단복을 갖춰 입고, 각지에 훈련소를 설치하여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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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성옥환(成玉煥)[1917~2005]은 호는 일직(壹直)이며,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1932년 4월 5일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938년 4월 1일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였다. 1941년 12월 8일 조선총독부 관방문서과 고원(雇員)이 되었다. 1943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관방조사과,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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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치과 의사이자 제2대 김천문화원장. 송재성(宋在星)[1913~1999]은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강진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1927년 3월 25일 충청북도의 상촌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0년 5월 15일 치과 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한 뒤 1942년 6월 1일 송치과의원을 개업하였다. 1952년 4월 10일부터 196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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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지도자. 광복 후 김천 지역에는 고덕환(高徳煥)을 중심으로 하는 고파(高派)와 심문(沈文)을 중심으로 하는 심파(沈派) 사이에 대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두 파 간에 다툼이 있었는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고씨 파에서는 유교계 인사 김은배를 지원하고, 심씨 파에서는 기독교계 인사 권태희를 내세워 권태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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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기업인. 안충기(安忠基)는 1907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개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주농잠학교 2학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자퇴를 했다. 이후 독학으로 법학 강의록을 공부하고 사법서사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얻어 김천에서 사법서사 사무실을 차렸다. 얼마간의 돈이 모이자 합작회사 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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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양갑석(楊甲錫)[1924~1977]은 호는 소봉(少峯)이며,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김천중학교와 일본 동경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야하다 철공소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1945년 우수 근무자로 장교 적영장을 받고 임관 직전 광복이 되어 귀국하였다. 1945년 9월 김천중학교 물리·수학 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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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출신의 관료·정치인. 엄민영(嚴敏永)은 1919년 2월 4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계면 태화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이름은 기지야마 도시오[雉山敏夫]이다. 김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일본 규슈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 법문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고, 일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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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국회의원·초대 민선 김천시장. 여영복(呂永復)은 1906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어릴 때 마을 서당에서 수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광복 후인 1946년 구성면장을 지냈다. 1950년 금릉군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2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에 등원하자마자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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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국회의원.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동생으로 우기식(禹沂植), 우문(禹文), 우돈식(禹墩植), 우윤식(禹潤植)이 있다. 첫째 동생 우기식은 3·1운동에 참여했고 개령면장을 지냈다. 둘째 우문은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대학 정경과를 수료했는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 때 김천시 선거구에 대한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하고 당선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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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단양(丹陽). 안정공(安靖公) 우홍강(禹洪康)[1357~1423]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우익선(禹益善)이다. 우상학(禹象學)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에서 태어났다. 빈농가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후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감문면 빈민들의 호구세를 대신 내주었고, 사재를 털어 감문면의 구야평과 하포평의 제방을 쌓았다. 또한 금오산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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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정치가. 할아버지는 유성남[요셉, 1858~1936]이고, 할머니는 서분준[아나다시아, 1861~1942]이며, 아버지는 유병직[바오로, 1884~1922]이고, 어머니는 김주익[마리아, 1883~1916]이다. 부인은 문정숙[도미딜라, 1922~ ]이다. 유창국(劉昌國)[1917~2009]은 호는 백파(白波)이며, 세례명은 야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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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우익 계열 청년 운동가. 광복 후인 1945년 11월 좌익 계열 청년들이 김천청년동맹을 조직하자 우익 계열에서도 청년 운동의 일환으로 김천청년회를 조직하였다. 이때 이갑득(李甲得)은 김천청년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김천청년회는 탁구와 테니스 등 운동 경기 행사도 열었고 저명인사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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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출신의 관료. 이근직(李根直)은 1903년 1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1928년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강원도에서 관리로 근무하다 1943년 평창군수, 1944년 원주군수로 임명되었다. 광복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강원도지사 비서과장 겸 철공과장으로 발탁되었다. 1946년 강원도 철공부장 토목국장을 지내면서 대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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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우익 청년 운동가. 이덕순(李德淳)은 1949년 10월 19일에 조직된 대한청년단 김천지부 초대 단장을 역임하였다. 부단장은 김갑순과 오형수가 맡았다. 대한청년단 김천지부 2대 단장은 박승달, 3대 단장은 오형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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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정치인. 이병관(李丙瓘)은 1908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태화리에서 태어났다. 1933년 일본 도쿄농업대학[東京農業大學]을 졸업하고 1939년 조선총독부 농업기사로 근무했다. 광복 후 2개월 동안 봉산면장으로 재직했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 을구에 무소속으로 단독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했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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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천 출신의 교육가. 이병재(李秉宰)는 김천초등학교의 전신 광흥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병재와 네 명의 유지들은 1907년 10월경 청소년들을 모아 광흥보통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하였다. 또한 1907년 3월 김천황금성당 아릭스 신부와 같이 황금동 76번지에 성의학당을 개설하고 학생을 모집하여 한문, 일본어, 산수 등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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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용. 증조할아버지는 이창하이다. 이안신(李安臣)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기개와 도량이 탁월하였으며 성품도 관대하고 어질어 권선을 낙(樂)으로 삼았다. 흉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우리만 배불리 먹는 일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라면서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사람들을 도왔다. 18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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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가. 1931년 김천고등보통학교[현 김천중학교, 김천고등학교]가 최송설당 등 조선인에 의해 설립되자, 김천 경제를 좌우하던 일본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대일본부인회 김천분회장 이와다(岩田)는 김천, 상주, 선산 등지의 대일본부인회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답지 않은 한국 여인이 학교를 세웠으니, 우리는 하루에 1전씩 모아 버젓하게 고등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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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모반자. 본관은 벽진(碧珍). 아버지는 재산가 이당춘(李堂春)이다. 아들로 이천건을 두었다. 이정(李瀞)[?~1631]은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신촌에서 태어났다. 1631년(인조 9) 양석천(梁錫天)과 더불어 반역을 도모하였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으며, 가택은 헐리고 그 자리에는 못이 파였다. 이때 이정의 아들 이천건도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천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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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활동한 모필장. 이팔개(李八介)[1914~2008]는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에서 태어났으며, 김천시 용두동에 있던 ‘이진희 필방’에서 붓 만드는 기술을 18세부터 3년간 익혔다. 이진희 필방에서 기술을 익힌 뒤 붓으로 성공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품고 전국에서 붓 제작 장소로 유명한 부산의 ‘대신당 필방’으로 가서 2년 6개월간 배웠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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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업가. 이한기(李漢驥)[1894~1955]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덕포동[현 감문면 곡송리]에서 태어났다. 1899년 1월 덕남서당(德南書堂)에서 수학한 뒤 1910년 3월 개령 개진학교를 졸업하였다. 1911년 3월 취성의숙 중학부 제2년을 수료하였다. 1912년 12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술원양성소, 1913년 12월 구국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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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김천초등학교를 졸업한 군인.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李應俊)[1891~1985]의 사위이다. 스승은 김철기이다. 이형근(李亨根)은 1920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김천에서 보냈으며, 김천초등학교[제22회]를 졸업하였다.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포병 대위로 복무하다가 태평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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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사회사업가. 본관은 죽산. 자는 치윤, 호는 죽정(竹汀). 전두면의 셋째 아들로 김천시 대광동에서 태어났다. 전재원(全在源)은 학덕을 겸비하였다. 묘광지에 작원정을 건립하여 시인 묵객의 유상소(遊賞所)를 마련하였으며, 영모재를 중수하였다. 또한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김산문묘의 수리를 주창하였다. 개령서부초등학교와 개령중학교 설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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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체육인. 정봉수(鄭奉守)는 1935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옥동마을에서 부유한 농가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증산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육상을 시작해 경상북도 내 크고 작은 육상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고 시온중학교에 진학한 후 16세에 경상북도 단거리 육상 대표로 선발되었다. 1950년 육군에 입대해 육군 육상 대표가 되었고 3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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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군인. 정승화(鄭昇和)는 1929년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서 출생하였다. 신리에 있는 봉계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7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48년 4월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백골부대 대대장으로 낙동강 전투와 기계·안강 전투, 형산강 도하 작전에 참가했다. 1967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하여 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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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언론인. 최석채(崔錫采)[1917~1991]는 호는 몽향(夢鄕)이며,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김천초등학교[제19회]를 졸업하였다. 1935년 일본 애지현 벽남상업을 나와, 1942년 동경 중앙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으며 일본에서 보통문관 시험에 합격하였다. 해방 후 『건국공론』 편집부장, 『경북신문』 편집국 차장, 『부녀일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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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사회사업가이자 한의사. 본관은 장수(長水). 아버지는 황재구이며, 장남으로 태어났다. 황인택(黃仁澤)[1888~1961]은 지금의 김천시 지례면 교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한학을 배워 지례에서 한의원을 개설하였다. 빈민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 주고, 산모에게 쌀과 미역을 빠짐없이 보내 주었다. 1930년부터 3년간 가뭄이 들자, 면에 사는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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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천 출신의 광흥보통학교 졸업자. 김천초등학교 전신 광흥보통학교가 1907년 5월 2년제로 2년간 운영하다가, 1909년에 경상북도로부터 승인을 받아 4년제 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황찬주(黃儧周)는 1909년부터 광흥보통학교를 다녔으므로, 2년제 1회 졸업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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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운동가. 황태성(黃泰成)은 1906년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청리리에서 태어났다. 황대용(黃大用)으로도 불렸다. 1930년대 초 김천에서 혁명적 비합법 조합인 적색노동조합과 농민 조합 결성에 힘쓴 사회주의 운동가 임종업(林鍾業)이 손위 처남이다. 황태성은 일제 강점기 선산의 박상희[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 김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