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李珥)가 열 살에 지은 부(賦)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1748년 경포대가 기울자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누각의 모습을 옛 모습 대로 단장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오죽헌에 보관 중이던 「경포대부」를 찾아 그 내용을 가래나무에 새겨 경포대 기둥과 기둥 사이인 문설주 윗부분에다 걸었다고 한다. 「경포대부」는 『율곡전서(栗谷全書)』에 실려 있...
-
조선 중기의 문인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로 강릉 등 동해안의 절경을 읊은 작품. 정철[1536~1593]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인종의 귀인이 된 첫째 누이와 계림군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 덕택으로 어려서부터 궁중 출입이 잦았는데, 1545년 을사사화 때 계림군이 연루되면서 아버지가 유배되고 큰형이 죽는 화를 당하였다. 이때...
-
충열공 박제상의 행적을 기록하고 가치를 평가한 글. 관설당은 신라시대 눌지왕 시절의 충신인 대아찬 박제상(朴堤上)[363~419]이다. 조선시대 유학자이며 정치가인 율곡 이이(李珥)[1536~1584]가 1566년에 신라시대 충신으로 이름난 박세상의 충렬을 기리며 쓴 서(序) 형식의 문학작품이다. 이 글은 박제상의 후예들이 그의 행적과 충렬의 실제 일들을 기록...
-
조선 중기 난설헌 허초희가 1570년에 지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허난설헌은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지었다고 믿기 힘든 이 상량문을 짓고 여 신동이라 칭송되었다. 이것은 목판본 『난설헌집』에 유일하게 전하는 산문으로 그의 아우 허균이 1605년 충천각에서 석봉 한호에게 부탁하여 그의 글씨로 써서 1차로 간행되었다. 이 목판본은 1606년 우리나라에 왔던 중국 사신...
-
금란반월회 모임의 모습을 담은 그림. 금란반월회는 1466년(세조 12년) 강릉에서 15명의 지역 문인들이 최응현을 스승으로 모시고 조직되었으며 춘추 가절에 한 차례씩 계회를 열었다. 「금란반월회 계회도」는 당시 계회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주변에 숲이 우거진 기와지붕의 누정이 화폭의 중심을 이루었고, 누정에는 세 개의 반상을 중심으로...
-
1582년 율곡 이이가 강릉 출신의 김시습에 관하여 쓴 인물전. 율곡 이이(李珥)[1536~1584]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으며,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며 사상가이다. 「김시습전(金時習傳)」은 『율곡전서(栗谷全書)』권14 「잡저(雜著)」에 실려 있는 이이의 작품이다....
-
1477년(성종 8) 강릉대도호부에서 상원사에 발급한 문서. 입안(立案)은 개인의 청원(請願)에 따라 특정 사안, 즉 토지·노비 등의 매매(賣買)·양도(讓渡)·소송(訴訟)의 판결, 특전(特典)의 인정 등을 관청에서 확인하여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발급해 준 공증문서(公證文書)이다. 예종의 원찰(願刹)인 낙산사와 세조의 원찰인 상원사를 지계승인(持戒僧人)으로 하여금 입대...
-
1481년(성종 12) 8월 24일 내수사에서 상원사에 발급한 문서. 입안(立案)은 개인의 청원(請願)에 따라 특정 사안, 즉 토지·노비 등의 매매(賣買)·양도(讓渡)·소송(訴訟)의 판결, 특전(特典)의 인정 등을 관청에서 확인하여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발급해 준 공증문서(公證文書)이다. 크기는 79×120.5㎝이고, 사방 7.5㎝의 '내수사인(內需司印)' 9개가 찍혀 있다....
-
1469년(예종 1) 강릉대도호부에서 상원사에 발급한 문서(文書). 입안(立案)은 개인의 청원(請願)에 따라 특정 사안, 즉 토지·노비 등의 매매(賣買)·양도(讓渡)·소송(訴訟)의 판결, 특전(特典)의 인정 등을 관청에서 확인하여 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발급해 준 공증문서(公證文書)이다. 세조대 원찰로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 상원사는 각종 경제적 특권을 누리게 되...
-
효자 김담(金譚)의 행적과 효행을 찬(撰)한 서문(序文). 「서김효자행실(序金孝子行實)」은 원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지어 현판에 새겨 걸었는데, 훼손되자 1933년 13세손 김익성(金益成)이 다시 새겨 걸었다. 현판은 가로 96㎝, 세로 29㎝이다. 봉래 양사언이 김담의 효행을 칭찬하고 영원히 기리기 위해 서술하였다. 김효자의 효행을 먼저 기록한 후...
-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李珥)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의 행적을 기록한 글. 선비란 남에게 세상을 떠난 자기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고, 행장이란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의 일생의 행적을 적은 글이다. 신사임당은 1551년 5월 17일에 4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때 이이의 나이는 열여섯 살이었다. 신사임당이 세상을 뜨자 어머니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이이가 쓴 글이 「선비행장(先...
-
조선 중기의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오빠 허봉(許篈)이 유배되는 아픔을 쓴 시. 허난설헌은 함경남도 북동부 두메산골인 갑산으로 귀양 가는 둘째오빠 하곡을 생각하며 중국 전한 때의 문장가 가태부(賈太傅)가 장사로 귀양을 가다가 죽은 것을 생각하며 지은 혈육애가 담긴 시이다. 경기도 순무어사로 나갔던 하곡 허봉은 병조판서 이이(李珥)를 탄핵하다가 창원부사로 좌천되고, 종...
-
강릉에 부임해온 어사 이현로(李賢老)를 기생 옥영(玉英)이 훼절시킨 이야기. 이 설화는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던 어사 이현로를 옥영이 유혹하여 정을 통한 뒤, 어사가 속았음을 깨닫게 한다는 내용의 훼절설화이다. 이 이야기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향렴조(香奩條)」에 실려 있으며,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구전으로도 상당수 전하고 있다. 조선 세종 때 강릉에...
-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지은 규방가사. 허난설헌의 본관은 양천이며, 본래 이름은 허초희(許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이다.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허엽(許曄)의 딸이고,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염지봉선화가」는 『난설헌집』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봉선화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던 고유한 풍속을 소재로 하여 여인의 아...
-
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金時習)이 쓴 소설. 「용궁부연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들어 있는 5편 가운데 하나로, 주인공이 용궁에 다녀온 일을 삽입시로 표현하며 서술한 소설작품이다. 글재주가 뛰어난 한 인물이 용궁에 초대받아 누각의 상량문을 써주고 돌아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용궁부연록」은 생육신의 한...
-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는 조선 중기 회화작품. 「월하고주도(月下孤舟圖)」에는 나지막한 산들이 옆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수면을 따라 전개되는 공간은 폐쇄됨이 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또한 토파(土坡)나 산의 묘사에는 당시 크게 유행되지 않고 있던 절파계(浙派系)의 필묵법이 구사되어 있다. 그 구도와 인물 중심의 표현을...
-
1541년(중종 36)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지은 한시. 「유대관령망친정시」는 신사임당의 아들 이이(李珥)가 지은 「선비행장(先妣行狀)」에 실려 전한다. 신사임당의 부모는 딸만 다섯 두었는데, 신사임당이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신명화(申命和)가 세상을 떠났다. 신사임당은 홀로 된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친정에서 지내는 때가 많았는데, 이 시도 어머니와 함께 친...
-
조선 전기 문인 율곡 이이가 강릉 청학동 소금강의 절경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이이(李珥)[1536~1584]는 강릉 오죽헌에서 출생했으며, 1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16세에 어머니를 잃고 3년 시묘 생활을 했으며, 이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다. 1564년 식년 문과 장원 급제까지 9번에 걸쳐 장원을 했다고 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도 있...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1리에 전해지는 당신화. 「주문리 당신화」는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1리 1반에서 동북쪽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마루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엔 서낭당이 있고, 서낭당 주변으로 전형적인 어촌마을이 밀집해 있다. 한국 전통건축 양식인 우진각지붕으로 되어 있는 당집 외부의 벽은 어촌 서낭당을 암시하듯 문어, 소라,...
-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지은 한시. 여인의 내면을 연꽃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채련곡」을 지은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본관은 양천이며, 본래 이름은 초희(楚姬)이며,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이다.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으로 허엽(許曄)의 딸이고,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남편에게 소박맞고 자식마저 잃는 불행한 생애를 보냈...
-
조선 중기의 문인 하곡(荷谷) 허봉(許篈)[1551~1588]이 36세 때에 쓴 편지. 허봉은 강릉 출신으로 초당 허엽(許曄)의 둘째아들이다. 1568년(선조 1)에 생원, 1572년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사가독서를 했다. 33세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기행문 「하곡조천기(荷谷朝天記)」를 1574년에 썼으며, 이듬해 이조좌랑, 1577년 교리,...
-
조선 중기의 문인 허봉(許篈)이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온 과정을 쓴 기행문. 하곡 허봉[1551~1588]의 기행문인 「하곡 조천기」는 귀양길에 얻은 병으로 객사한 형 허봉을 대신하여 동생 허균(許筠)이 1605년에 편찬한 것이다. 허균의 문집 「학산초담(鶴山樵談)」에는 “둘째 형이 남긴 글이 임진왜란에 불탔는데, 강릉에 살 때 5백여 편을 모아 세상에 사라지지 않도록...
-
조선시대 강릉김씨의 족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계보를 정리하여 간행한 족보.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은 크게 족도(族圖)·대동보(大同譜)·파보(派譜)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족도는 족보의 초기 형태로 일반 족보처럼 정간(井間)을 지어 기록하지 않고 단지 계보만을 알 수 있도록 붉은 선으로 연결시켜 가계를 기록한 것이다. 대동보가 전국적으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파보...
-
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1434~1493]의 시문집. 김시습(金時習)은 자를 열경(悅卿)이라 했고, 관향은 강릉이며, 호를 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매월당(梅月堂)이라 했고 한때 불교에 귀의한 바 있어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했다. 어려서 세종대왕 앞에서 시를 지어 놀라게 했고 상으로 받은 비단을 이어 끌고 가지고 나와 그 지혜가...
-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주택 별당 건물. 조선 시대 상류 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던 전통 건축물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李珥)가 태어난 곳이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이이의 사촌인 권처균(權處均)의 호에서 유래했다. 권처균은 외할머니인 용인이씨에게서 집을 물려받았는데, 집 주위에 줄기가 손가락만하고 색이 검은 대나무[오죽(烏竹)]가 많이 자라는 것을 보고...
-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475-3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통 가옥. 조선 선조 때 문신인 허엽[1517~1580]이 살던 집으로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허엽의 딸이며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허난설헌[1563~1589]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475-3에 위치한다.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3...
-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雲亭洞)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해운정은 1530년(중종 25) 어촌 심언광이 강원도감찰사로 있을 때 건축한 상류 주택의 별당이다.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125[운정동 256번지]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 형식이다. 자연석과 사괴석의 두겁대 기단을 쌓고 화단을 꾸민 후 다시 자연석 초벌대 기단을...
-
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곽경(郭鏡)으로 송나라 관서 홍농(弘農) 지방의 명문가 후예였다. 1133년(고려 인종 11)에 고려에 건너와 정착하였다. 1138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평장사, 문하시중 등의 관직을 거쳤고, 이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작위와 함께 포산군(苞山君)에 책봉되었다. 강릉 입향시조는 곽경의 13세손인 곽거완(郭居完)이다....
-
강원도 강릉시 금학동의 관음사에 있는 목조 불상. 강릉관음사소장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관음사를 개창할 때 월정사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2007년 11월 23일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되었다. 중앙에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비한 아미타여래 입상이 있는 화려한 관을 쓰고 있는 목조 관음보살 좌상이다. 이마에는 백호...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분청사기 도요지. 강릉시내에서 구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약 10㎞가면 우측으로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다. 그 포장길을 따라가면 삼왕동 명주군왕릉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북쪽의 좌측 소로를 따라 약 1㎞쯤 가면 베리안 마을이다. 이 마을의 산기슭에서 아래쪽 계곡에 닿는 경작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61번지에 있는 강원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된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落葉喬木)으로 암·수꽃이 따로 피는 암수딴그루의 나무인데, 강릉 옥천동 은행나무는 수나무로서 열매를 맺지는 않지만, 강릉의 명목(名木)이며 신목(神木)으로 관리되고 있다. 1993년 12월 23일 강원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시대의 한 사냥...
-
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강릉유씨 시조 유전(劉荃)은 송나라 인종 때 도학과 문장에 뛰어나서 병부상서(兵部尙書)와 한림학사를 지냈다. 고려 문종 때 팔학사(八學士)의 일원으로 고려에 들어 와 이단을 배척하고 유학을 천명하였으며 선성 및 72현의 상(像)을 국자감에 봉안케 하였다. 충렬왕 때 문양(文襄)의 시호를 받았다. 고려 태조와 함께 7왕을 모신 개...
-
공자의 위패를 모신 강릉향교 문묘의 정전(正殿). 1313년 충선왕 때에 당시 강릉도존무사(江陵道存撫使)였던 김승인(金承印)이 화부산 밑에 현재 모습과 같은 문묘를 건립하였다. 강릉시 명륜로 29[교2동 233번지] 화부산이 둥글게 에워싼 내부의 북측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 향교가 있는 지역은 명륜고등학교의 교정이 되었다. 1313년 문묘를 건립하였으...
-
조선 중종 때 강릉 사람인 효자 김덕장(金德璋)의 효행을 적은 효자비. 이 비석은 조선 중종 때 강릉 사람 김덕장(金德璋)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이 세웠다. 김덕장은 어릴 적부터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였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侍墓)를 살던 중, 하루는 산불이 나서 묘소에까지 이르자 통곡하며 하늘에 비니 돌연 비바람이 일어나 산불이...
-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마소(司馬所) 건물. 강원도 내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고제(古制)의 사마소(司馬所) 유적(遺蹟)이다. 당명(堂名)인 '계련(桂蓮)'의 '계'는 '계림(桂林)' 또는 '절계(切桂)'에서 따온 말로 '계림'은 문인 사회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이름이고 '절계'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뜻한다. '연(蓮)'은 중국 송나라의 육현...
-
조선 전기의 문신. 1399년(정종 1)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고, 1414년(태종 14) 문과에 올라 좌랑(佐郞)에 제수(除授)되었다. 1427년(세종 9)에 제천현감(堤川縣監)을 거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를 역임했다. 강릉곽씨의 입향시조이다. 1411년(태종 11)에 화재로 전소된 강릉향교를 중건(重建)하기 위해 강릉유림(江陵儒林) 66인과 함께 계(啓)를 올렸다....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안동. 예판전교시사(禮判典敎寺事) 권숭(權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권륜(權綸)이고 아버지는 참봉인 권송(權悚)이며,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청송심씨(靑松沈氏) 심산보(沈山甫)의 딸이다. 문장에 능숙하여 1519년에 사마시에 응시하였는데 회위(會圍) 김모재(金慕齋)가 그의 글을 보고 “금년 장원은 반드시 자네에게 돌아갈 것이네.”라...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안동권씨 시조인 권행(權幸)의 19대 손으로 안동권씨 복야공파(僕射公派) 대사성공(大司成公) 후손의 입강시조(入江始祖)이다. 고조인 권시중(權時中)은 문과에 장원하여 서주목사(瑞州牧使), 증조인 권업(權業)은 문과급제하여 선교랑(宣敎郞), 조부인 권심(權深)은 승훈랑(承訓郞)과 강릉대도호부판관을 각각 역임하였다. 1477년(성종 8)에 성균진사시에...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사중(士中), 호는 오죽헌(烏竹軒). 감사인 권륜(權綸)의 증손이고 세마(洗馬)인 권연(權璉)의 손자이며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이종제(姨從弟)이다. 정시(庭試)에 수석으로 올랐으나 허균이 권처균은 율곡 이이의 무리라고 하면서 조정에 글을 올려 관로(官路)를 저지하였다. 권처균은 세상의 도가 어지러움을 개탄하면서 과거를 단념하고 벼슬을 구...
-
조선시대 강릉 지역 유학자들의 계회(契會). 조선 초기의 재지사족들은 중앙의 숭유억불 정책에 힘입어 성리학을 수용하여 정착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강릉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리학을 수용한 재지사족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을 교양으로 하여 입신출사를 지향하였으며, 나아가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추구하였다. 강릉 지역 금란반월회의 성향도 이와 같았다. 한편, 조선 초기에 강...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호는 청원정(淸遠亭). 증조부는 금진고(琴進高), 조부는 금조(琴操), 아버지는 금극해(琴克諧), 아들은 금이영(琴以詠)이다. 외조부는 이인실(李仁實)이며 박천석(朴天錫)의 사위이다.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大司諫)과 대사성(大司成) 등 청환직(淸宦職)을 거쳤다. 1419년(세종 1) 참의(參議)로서 강릉부사에 임명되어...
-
조선 전기의 효부. 95세를 살면서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김담(金譚)의 어머니 심씨(沈氏)에게는 눌질정(訥叱丁)이라는 여종이 있었는데 이 여종은 84세를 살면서 심씨를 정성껏 봉양했고 죽은 뒤에도 3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사람들이 “소리(所里)의 딸은 오래 살면서 효성을 다했고 심씨의 종은 90세가 가깝도록 충성을 다하였다.”고 하면서 칭송하였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등가(登可), 호는 반곡(盤谷). 진사출신으로 전객령(典客令) 김천(金蕆)의 5대손으로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현령인 김윤귀(金允貴)이며, 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고 어머니는 강릉왕씨(江陵王氏)로 현감 왕갱(王䡖)의 딸이다. 김대(金臺)는 명주군왕인 김주원의 21대 후손으로 생몰연대는 알 수가 없고,...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무반 계통의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이고, 어머니는 선사장씨(仙槎張氏)이다. 김시습은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는데, 생지지질(生知之質)이 있었다 할 만...
-
조선 전기의 무신. 김여명의 증조는 정순대부전객령(正順大夫典客令)으로 진사에 입격한 김천(金蕆), 조부는 봉정대부지통주사를 지낸 김용수(金龍壽), 아버지는 현신교위좌군중랑장(顯信校尉左軍中郞將)을 지낸 김중상(金仲祥), 어머니는 손씨로 조봉대부전의소감(朝奉大夫典醫少監) 손륜(孫倫)의 딸이다. 부인은 선교랑홍원현감(宣敎郞洪原縣監)을 지낸 김지(金輊)의 딸이며, 이름은 김단묘...
-
조선 전기 무신인 김여명(金汝明)의 묘비. 강원도 강릉시 저동 숭덕재 근처의 김윤신 묘 앞에 김윤신 신도비와 함께 있다. 화강석 재질의 방형비좌 위에 오석 재질의 비신이 놓여 있다. 비신의 높이는 96㎝, 비신 너비 42.5㎝, 비신 두께 5.5㎝이다. 비문은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 同副承旨兼)를 지낸 최응현(崔應賢)이 짓고,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 권적(權迪)이...
-
조선 전기 강릉 출신의 문신. 김윤(金贇)은 1392년(태조 1)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풍저 부사(豊儲副使)·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판교동현사(判喬桐縣事)를 역임하였다. 1419년(세종 1) 대마도 정벌에 참여하였으며, 1421년(세종 3)에 양양 부사(襄陽府使)를 지냈다....
-
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덕수(德叟), 호는 괴당(槐堂).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부친은 김여명(金汝明)이고, 모친은 김지(金輊)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6년(성종 7)에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사록(司祿), 전적(典籍), 주부(主簿), 경상도사(慶尙都事)를 거쳐 전중감찰(殿中監察)이 되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지(金輊)이고 어머니는 전공총랑을 역임한 고첨(高瞻)의 딸이다. 1411년(태종 11)에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414년에 문과에 올라 예문관·춘추관에 기용되었다. 1421년(세종 3)에 전농시주부(典農寺主簿)로 있다가 춘추관의 관직을 겸대(兼帶)하고 1422년에 사헌부감찰이 되어 겨울에 내간(內艱)을 당하였다. 1425년에 다시 감찰에 제...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지(金輊)이며 어머니는 전공총랑을 역임한 고첨(高瞻)의 딸이다. 형은 김자갱(金子䃘)이며 아우는 김자현(金子鉉)이다. 1444년(세종 26)에 식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이르렀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안국(安國). 할아버지는 김을후(金乙侯)이고 아버지는 김근(金墐)이며,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465년(세조1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72년(성종 3)에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에 합격하고 출사하였다. 교서정자(校書正字)를 시작으로 전중(殿中)을 지냈으며, 재주가 문무를 겸하였으므로 영안북도평사(永安北道評事)에 제수되었고 사헌...
-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513년(중종 8)에 실시한 문과·무과·잡과에 급제한 사람들의 명단. 사마방목(司馬榜目)은 옥산서원 소장의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보물 제524호]이 유일한 진본이고 문무잡과방목(文武雜科榜目)으로는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 소장의 『문무잡과방목(文武雜科榜目)』이 유일한 진본이다. 1513년 문무잡과시(文武雜科試...
-
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회양교수를 지낸 박영근(朴榮根)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사직(司直) 최방(崔滂)의 딸이다. 박승소(朴承紹), 박승서(朴承緖), 박승필(朴承弼) 등 3명의 동생을 두었다. 부인은 영해이씨 이중원(李仲元)의 딸이다. 기묘사림이며 효자정려를 받았던 박수량(朴遂良)의 아버지이다. 강원도 강릉시 시루봉길68번길 18[난곡동...
-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소(子昭). 강릉박씨 양주파(襄州派)의 파조이다. 고조는 박연(朴演)으로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였고, 증조 박지계(朴之桂)는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냈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으로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
-
조선 전기의 무신. 고조는 고려 때 국자박사(國子博士)였던 박연(朴演), 증조는 고려 때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이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낸 박중신(朴中信)이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 김예(金輗)의 딸과 광주이씨 이초지(李初之)의 딸이다. 박시창(...
-
조선 전기의 무신. 호는 수암(修庵).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낸 박연(朴演)이 고조이고,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가 증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된 박중신(朴中信)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 남매(南邁)의 딸이다. 형으로는 박시원(朴始元), 박시창(朴始昌), 박시형(朴始亨)이 있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추장시(秋場試)에 올라 벼슬이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이르렀다. 젊었을 때 강릉의 기생 옥반주(玉盤珠)와 서로 사랑하였다. 감사(監司)가 강릉에 머물 때...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이고, 어머니는 김지(金祉)의 딸이다. 박시원(朴始元), 박시창(朴始昌)이 형이고 박시형(朴始亨)이 동생이다. 1456년(세조 2)에 생원·진사시에 동시에 합격하였고, 1459년에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 호조좌랑, 홍문관 박사·교리, 동부승지, 안동부사, 예문관직제학을 역임했고 후에 후원공신(厚原功臣)에 올...
-
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이며 종성부사(鍾城府使) 박희유(朴希有)의 5대손으로 중서령 박종대(朴從台)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전객(典客)인 박령연(朴令演)이다. 아버지는 참지정사인 박지계(朴之桂)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김언지(金彦之)의 딸이다. 1364년에 태어나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충효를 잘 실천하였고 백성들에게는 덕을 세우는 데에 힘써서 백성들...
-
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이다. 문과부정(文科副正) 박연(朴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지계(朴之桂), 아버지는 단천군사(端川郡事)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이다. 어머니는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밀성김씨(密城金氏) 김지(金祗)의 딸이다. 1447년(세종 29)에 생원에 입격하였으며 군위현감과 영월군수를 지냈다.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이 「취옹가기(醉翁家記)」를...
-
조선 전기의 문신. 자(字)는 숙립(叔立). 할아버지는 봉선대부서운부정(奉善大夫書雲副正) 박지계(朴之桂)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지단천군사(通政大夫 知端川郡事)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이며 어머니는 봉정대부 봉상부령지제교 겸 예문춘추관편수관 성균직강(奉正大夫 奉常副令知製敎 兼 藝文春秋館編修官 成均直講) 밀성김씨 김지(金祗)의 딸이다. 먼저 강릉김씨 김예(金輗)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
-
조선 전기의 문신인 박중신(朴中信)이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시(式年文科試)에 정과(丁科)로 합격하고 국가로부터 받은 합격 증서. 발급 시기는 1438년(세종 20)이다. 수급자는 단천 군수(端川郡守)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의 아들 강릉박씨 박중신(朴中信)이다. 박중신은 1390년 강릉에서 출생하여 143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 등을 역임하였으나, 부모를...
-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고려 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 아버지는 1392년(태조1) 문과에 급제하고 단천군수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이다. 어머니는 밀성김씨로 봉상부령(奉常副令) 김저(金袛)의 딸이다. 박중실(朴中實)은 박자검(朴自儉)의 장남이었고 동생으로는 판관이었으며 이조참판에 증직된 박중신(朴中信)과 군수를 역임한 박중경(朴中敬)이 있다. 박중실(朴...
-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호조전서(戶曹典書) 서의(徐義)의 증손으로, 목사(牧使) 서미성(徐彌性)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4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다. 그 뒤 집현전박사·경연사경(經筵司經)이...
-
강릉김씨 평의공파 종중 소유의 숭덕재 건립 내력과 중수 사실을 적은 기문. 숭덕재(崇德齋)는 일명 두호미재(豆乎彌齋)로 강릉김씨 평의공파(評議公派)의 파조(派祖)인 김지(金輊)를 모신 곳으로 1564년에 건립되었다. 1564년 김지의 후손들이 숭조애친사상(崇祖愛親思想)을 고취하고 종친화합(宗親和合)을 도모하며, 종토(宗土)에서 생산되는 도조(賭租) 및 기타 수...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영월. 아버지는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를 지낸 신응명(辛應命)이다. 당종(堂從)인 아호공(丫湖公) 신경진(辛慶晋)이 강릉에 부임해 올 때 같이 따라와 거주하였다. 일찍이 사마시에 올랐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산수를 찾아 유람하며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
-
조선 중기 강릉 출신의 여류 예술가. 본관은 평산(平山). 사임당(師任堂)은 당호(堂號)이다. 증조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신자승(申自繩)이고, 조부는 영월군수를 지낸 신숙권(申叔權)이다. 아버지는 신명화(申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 이사온(李思溫)의 딸이다. 남편은 증좌찬성 이원수(李元秀)이고, 조선 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신사임...
-
조선시대 여류서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 초서로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 6수의 8폭 병풍. 「신사임당 초서 병풍」은 신사임당이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五言絶句) 6수의 초서를 뒤에 병풍으로 꾸민 것으로 강원도 강릉시 두산동의 최돈길(崔燉吉) 고가(古家)에서 지속적으로 전해내려 왔으며, 1971년에 강릉시가 넘겨받아 현재 율곡기념관[현 강릉시오죽헌시...
-
조선시대 여류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 풀과 벌레를 소재로 종이에 채색하여 그린 병풍그림. 「신사임당 초충도병」은 신사임당이 그렸다는 여덟 폭의 초충도(草蟲圖)와 두 폭의 발문이 함께 병풍으로 꾸며진 것이다. 발문은 양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제2폭에서 제7폭까지가 초충도이다. 초충도 자체는 수본(繡本)으로 사용되도록 제작되었음이 확실하다고는 하지만 초...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무절(武節). 판개성부사 신부(辛富)의 아들이다. 신유정(辛有定)은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되었고 용맹이 뛰어났다. 1386년(우왕 12)에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어 족형인 충청도도원수 이승원의 휘하에서 남해의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1397년(태조 6)에 이산진 첨절제사가 되었고, 1400년(정종 2)에 왕세자가 된...
-
1520년에 박수량(朴遂良)과 박공달(朴公達)이 세운 정자. 숙질간인 삼가 박수량과 사휴 박공달이 함께 한가로이 소요한 데서 유래한다. 박수량과 박공달이 관직에서 물러나 함께 소요하는 공간으로 건립하였다. 중수기가 두 개 걸려 있어 적어도 두 차례 중수되었음을 보여준다. 겹처마에 팔작 기와지붕이다. 정면은 8쪽의 세살문을 설치하였고, 측면에는 각 2쪽의 세살문을 설치하였...
-
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인데 신라 때에는 김씨였다. 본래 신라에 속하였고, 뒤에 후백제(後百濟)의 지배하에 있던 고창(古昌)[안동]의 수령(守令)으로 있다가 견훤(甄萱)이 신라 경애왕(敬哀王)을 자살하게 한 데 대해 분개하던 중 고려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무찌르는 데 가담하여 공을 세웠다. 왕건이 그 공적을 인정하여 권씨...
-
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본관은 청주.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 주부인 양희수(楊希洙)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에 문명을 떨쳤던 양사준(楊士俊)이 형, 양사기(楊士奇)가 아우이다.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현감(三登縣監)·평창군수(平昌郡守)·강릉부사(江陵府使)·함흥부윤(咸興府尹)...
-
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공자(孔子)의 제자 자건(子騫)의 후예이다. 고려 때 사신으로 왔다가 상의봉어(尙衣奉御) 벼슬을 하였고 그후 여흥에 정착하여 살았다. 낙향시조 민우중(閔友仲)은 강릉 오죽헌에 살던 공조참판(工曹參判) 함안(咸安)의 딸과 혼인하여 경기도 직산(稷山)에서 강릉으로 오던 중 원주 우관(郵官)에서 별세하였다. 아들 민익(閔...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옥산(玉山) 이우(李瑀)[1542~1609]가 어린 시절에 쓴 초서로 만든 병풍. 「옥산 서병(玉山書屛)」은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이자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사위인 이우가 어렸을 때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초서로 쓴 글씨를 뒤에 장황하여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민태식(閔泰植)이 원래 자기의 소유였던 것을 1965년...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고려 밀직사(密直使) 유계조(柳繼祖)의 아들이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고려 우왕 때 문과에 급제, 전의부령(典儀副令)을 거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가 되었다. 1392년 이조전서(吏曹典書)로 있을 때, 조선왕조 개국에 협력한 공으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이듬해 중추원 부사가 되어 강릉도관찰출척사를 겸임하였다....
-
조선 중기의 문신 율곡 이이가 사용하던 벼루와 토지양여문서.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의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0호로 지정되었다. 오죽헌 어제각(御製閣)은 율곡 이이의 벼루와 토지양여문서를 소장하라고 정조가 지어 준 것이다. 벼루는 율곡 이이[1536~1584]가 쓰던 것으로, 1788년(정조 12)에 정조가...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우계(羽溪). 할아버지는 우계[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출신 이지방(李之芳), 아버지는 참판 이광식(李光軾)이며, 어머니는 이세응(李世應)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에 생원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명종 연간에 정언을 비롯한 삼사(三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이언적(李彦迪)을 탄핵하는 등, 윤원형(尹元衡)을 좇아 사림파(士林...
-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영해. 자는 성시(聖始), 호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이장밀(李長密)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호장(戶長) 최하(崔河)의 딸이다. 강릉 호가리(虎街里)[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서 태어났다.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여 고을 사람들이 백원당(百原堂)이라 불렀다. 일찍이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학문이 깊었고 문장도 뛰어났으나 가훈(家訓...
-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문신 이수혼의 묘지명. 이수혼(李守渾)[1502~1577]은 본관은 안성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만호 이계량, 할아버지는 훈련참군 이득원,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이덕진이다. 강릉부 선무랑 종성 교수(宣務郞鍾城敎授)를 지냈다. 부인 최씨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이수혼 묘지(李守渾墓誌)는 1980년대 후반 강원도 강릉...
-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재산의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문서. 신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씨는 아버지 생원 이사온(李思溫)과 어머니 최씨(崔氏) 사이에 태어난 무남독녀(無男獨女)로 남편 신명화(申命和) 보다는 네 살 아래이다. 생전에 다섯 명의 딸들에게 재산을 분배하기 위해 분급문기(分給文記)를 작성하였다. 분배내용이 먼저 나오고 재주(財主)인 용인이씨를 비롯한...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우계(羽溪). 아버지는 참판 이광식(李光軾)이며, 어머니는 이세응(李世應)의 딸이다. 북도 절도사를 지냈다. 이용은 청백하고 엄정하여 아전과 주민들이 모두 공경하며 따랐다. 조·부·손 3대에 걸쳐 네 사람 모두 북문(北門: 함경도)을 진수하였는데, 위엄과 덕이 있었기 때문에 오랑캐들이 이용의 이름만 듣고도 겁을 먹었다고 한다....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덕수. 초명은 이위(李瑋),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 아버지는 증 좌찬성(贈左贊成)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형으로 이선(李璿)·이번(李璠)·이이(李珥)가 있다.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딸과 혼인하였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시에 입격하여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
조선시대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율곡 이이가 지은 책.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擊蒙要訣)』은 1577년(선조 10)에 이이가 직접 쓴 친필 원본으로 한지에 행서체로 단아하게 썼다. 책머리에는 1788년(정조 12)에 임금이 이 책을 친히 열람하고 글을 지어 문신 이병모[1742~1806]에게 명해 쓰도록 한 '제율곡수초격몽요결(題栗谷手草擊蒙要訣)'이 있다. 『...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1486년(성종 17)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1516년(중종 11)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1522년(중종 17)에 울진군수를 지냈으며, 이후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지냈다. 이전손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전기의 선비. 이자개(李自開)의 증손으로 이예하(李藝夏)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호군(護軍) 이곤(李琨)이며 어머니는 장수전(張守專)의 딸이다. 성균관 진사였으나 출사는 하지 않았다. 형제간에는 우애가 있었으며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모든 정성을 다했다. 79세의 생애를 살았다. 묘소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다....
-
조선 전기 선비인 이종손(李宗孫)의 묘비. 이종손 형제간의 우애와 덕행(德行) 및 지업(志業)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세웠다. 이종손의 묘가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다. 비문 제목은 ‘유명조선국성균진사이종손묘갈(有明朝鮮國成均進士李宗孫墓碣)[조선의 성균관 진사 이종손의 묘]’이다....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는 김광헌의 큰 아들 김열의 아호 임경당(臨鏡堂)과 관련된 문화재가 두 곳 있다. 강릉에서 가까운 금산리 445번지에 있는 것이 하임경당(下臨鏡堂)인데 대개 임경당이라 부르고, 마을 위쪽에 있는 것을 하임경당과 구분하여 상임경당(上臨鏡堂)이라 하는데 진사댁이라고도 한다....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 경휘옹주의 태실(胎室) 옆에 세운 비. 강원도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태봉산 정상부에 조선 9대 왕 성종의 소생인 경휘옹주의 태실비(胎室碑)가 위치하고 있다. 태실비 뒤편으로는 봉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오래전에 이미 파헤쳐진 상태이고 태실비 주변에서는 관련 석물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태실비의 재질은 화강편마...
-
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정선전씨의 시조는 전섭(全聶)이다. 전섭은 온조(溫祚)의 시종신하(侍從臣下)로서 부여에서 나라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운 십제공신(十濟功臣) 중의 한사람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전섭의 8세 손 전선이 백제에서 공주를 배종(陪從)하고 신라에 와서 봉익대부부지밀직사사전법판서(奉翊大夫副知密直司事典法判書)의 벼슬을 하였고 정선군(...
-
조선 전기의 선비. 자(字)는 성숙(盛叔). 이조참판을 지내고 강릉 향현사에 제향된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며, 생원 최진현(崔進賢)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죽산안씨로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안치강(安致康)의 딸이다. 부인은 강릉김씨로서 주부(主簿) 김곤(金坤)의 딸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에 올랐다. 성품이 호탕하고 고매하여 술과 시로써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강원도...
-
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주부(主簿) 김곤(金坤)이다. 남편은 최세창(崔世昌)이다. 남편이 죽자 따라 죽을 결심을 하여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관에다 넣고 손가락의 피를 내어 관에다 물들이고 같이 묻히겠다는 뜻을 표시하였다. 상중에는 세수도 빗질도 하지 않았고 치아가 보이도록 웃지도 않았다. 아침과 저녁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묘에 가서 10여 년을 울었다고 한다....
-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있는 최세창(崔世昌)의 부인 강릉김씨의 열행(烈行)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旌閭). 강릉최씨(江陵崔氏) 최세창의 처 강릉김씨는 효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겼으며, 남편에게 지극히 순종하였다. 남편이 죽자 며칠 동안 남편의 시신을 껴안고 자신도 따라 죽을 결심을 하여 치마 한 폭을 찢고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관에다 넣고 손가락의 피를...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종의(宗誼).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고,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맏아들이다. 셋째 아들인 최세절(崔世節)은 호조판서를 지냈다. 성종(成宗) 때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여 진사에 올랐다. 음직(蔭職)으로 울진현령(蔚珍縣令)과 금구현령(金溝縣令)을 지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강릉 12향현 중 한 사람이다.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敎授) 최여남(崔汝南)이고, 어머니는 정선전씨 생원 전무(全務)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1472년(성종 3)에 진잠현감(鎭岑縣監)으로 부임하였으나 병을 얻어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1466년(세조 12) 세조가 병을 치...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호는 학구(鶴衢). 목사(牧使) 최경지(崔景智)의 5대손이며 참봉(參奉)인 최계원(崔季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최홍(崔泓)이고 아버지는 훈도 최여림(崔汝霖)이다. 부사(府使)인 변효동(邊孝同)의 딸인 원주변씨(原州邊氏)와 혼인하였다. 1507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8년에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출사는 하지 않고 경학에 심취하여 인의도덕...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경열(景說).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漣)의 5대손이고 고조는 좌찬성(左贊成)인 최이(崔迤)이며, 목사 최경지(崔景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최계원(崔季元)이고 아버지는 문장령 최홍(崔泓)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현감인 김정(金精)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두루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실학(實學)에 뜻을 두고 성명(性命...
-
1395년(태조 4) 공신도감에서 조선 건국에 공이 있는 최유련에게 발급한 녹권. 조선왕조는 개국한 다음 달인 1392년 8월에 공신도감(功臣都監)을 설치하고 왕조 창업에 직접적으로 공을 세웠던 52명을 개국공신에 책록하였다. 뒤이어 건국의 거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잠저(潛邸) 때부터 이성계를 따르고 왕위에 오르는데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개국원종공신의 훈호(勳號)를 내렸다....
-
조선 전기 강릉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강릉.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치운(崔致雲)이고, 어머니는 강릉함씨 현령(縣令) 함화(咸華)의 딸이다. 1448년(세종 3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4년(단종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저작·박사·전적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고, 1462년(세조 8) 강원도사(江原都事)가 되었다. 그 뒤 고성·영월 두 고을의...
-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유명(惟明), 호는 희경(僖景), 초명(初名)은 최원(崔遠).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璉)의 아들이다. 처음 벼슬로 도평의사사지인(都評議使司知印)을 지냈고, 1390년(공양왕 2)에는 사헌집의(司憲執義)가 되었다. 조선 개국 후 중추원우부승지를 거쳐 좌승지가 되었다. 1394년(태조 3)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승진하고, 1...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최문한(崔文漢)의 증손이며 직장(直長) 최윤행(崔允行)의 아들이다. 1465년(세조 11)에 진사와 생원 양시에 합격하였다. 1472년(성종 3)에 문과에 올라 사간원 정언으로 있었으나 간신들의 비위에 거슬려 고성군수로 나갔다. 이 때 강원도 감사 박원종(朴元宗)이 간신들이 사주를 받아 최자점을 파직시키기 위해 최자점의 재산을 조사하였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세계(世系)는 알려져 있지 않다. 손자 대에 이르러 연안차씨와 인척관계를 이루면서 집안이 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증손자 대부터 많은 관료를 배출하였다. 고려시대의 활동사항은 알 수 없으나 1392년(태조 1) 조선 왕조 창업과 더불어 실시된 문과 과거시험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성균관 대사성(大司成)까지 올랐으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국신(國臣), 호는 한송자(寒松子). 조선 세종조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崔致雲)의 아들이다. 부인은 죽산안씨 여흥부원군 안치강(安致康)의 딸과 강릉함씨 호장 함순(咸順)의 딸이다. 아들은 둘이었는데 첫째는 최세번(崔世蕃), 둘째는 최세창(崔世昌)이다. 1451년(문종 1) 생원에 입격하였고 음사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
-
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강릉(江陵).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최안린(崔安麟)이고, 어머니는 정선전씨 낭장(郞將) 전인구(全仁具)의 딸이다. 최치운은 1408년(태종 8) 19세 때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417년(태종 17) 27세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 정자(承政...
-
조선 전기의 문신인 최치운(崔致雲)의 행적을 기록한 묘비. 강릉최씨 필달계 후손으로 조선 세종 조에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의 상계(上系) 및 혼인관계, 출생과 관직경력, 후손, 명문(銘文) 등을 기록한 것으로 최치운의 아들 최진현(崔進賢)이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즈므마을 강릉최씨 필달계 선영에 있는 최치운의 묘 앞에 있다. 비석의 총 높...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최필숭(崔必崇)의 아버지는 최옥연(崔玉淵)이다. 1480년(성종 1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486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충청도사(忠淸都事)에 이르렀다. 최필숭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입지(立之). 교리(校理) 함승필(咸承弼)의 손자이며, 강릉함씨 예판공파의 파조(派祖)인 예조판서 함부실(咸傅實)의 아들이다. 아우는 함자명이다. 1419년(세종 1)에 율학(律學)으로 잡과(雜科)에 급제하여 사직(司直)에 제수되었다. 그 후 동부령(東部令)에 이어 문화현령(文化縣令)을 지냈다....
-
조선 전기의 문신. 1423년(세종 5)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426년(세종 8)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이르렀다. 함한(咸漢)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
조선 중종조 문신인 어촌 심언광의 별당에 걸려 있는 시문 현판. 해운정에는 명나라 사신인 공용경(龔用卿),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 박광우(朴光佑), 김창흡(金昌翕) 권숙(權潚), 심순택(沈舜澤), 이헌위(李憲瑋), 한정유(韓廷維), 윤봉구(尹鳳九), 채지홍(蔡之洪), 이민서(李敏叙), 일완(日暖) 낙중(樂仲), 조경망(趙景望), 김진상(金鎭商), 송규...
-
조선 중기의 강릉에서 태어난 여성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 중기의 강릉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蘭雪軒)이다. 초당 허엽(許曄)의 딸, 허성(許筬)과 허봉(許篈)의 동생이고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강릉 교산 애일당에서 태어나 초당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5세 무렵 김성립(金誠立)...
-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모안이굼에 있던 조선 시대의 정자. 환선정(喚仙亭)은 16세기 후반경 권협이 지은 건물로 아들 권수경, 손자 권칭(權稱)에게 물려준 누정 건축물이나, 지금은 없어졌고 그 터만 전해지고 있다. 환선정과 관련된 인물 중 대표적인 이는 권칭이다. 권칭은 안동 권씨로, 강릉 지방의 사족이었으며, 1627년(인조 5) 증광 초시 생원에 입격하였고,...
-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군옥의 시를 황기로가 초서로 쓴 서예 작품. 「황기로 초서-이군옥시」는 2010년 1월 14일 보물 제1625-1호로 지정된 황기로(黃耆老)[1525~1575]가 쓴 서예 작품이다. 16세기를 대표하는 명필 황기로가 당나라 시인인 이군옥(李羣玉)의 오언 율시를 초서로 쓴 것이다. 황기로는 조선 전기의 서...
-
조선 중기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1510년(중종 5) 74세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200여 명의 동갑들이 잔치를 베풀며 시를 지어 주었다. 이 시를 그의 손자 황계우(黃季友)가 가보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장(李璋)의 서문이 함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