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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 호박 “팍” 깨뜨리며 들어온 시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E020505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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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깨뜨리며 들어온 시댁

김숙자 할머니의 당고모부가 자기 며느리 친정에 중신을 넣어서 혼인이 이루어졌다. 울산이씨 ‘이윤섭’씨로 당시 23세였고 군인이었다. 남편은 할아버지 대부터 강당말에 살았다고 한다. 신랑은 4남 2녀 중 넷째로 시집을 왔을 때 시부모님과 형님 부부, 시동생 2명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혼인하고 3년 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 정을 못 붙여서 시어머니 정을 붙여서 살면 훨씬 좋았을텐데”라며 스스로 인복이 없다고 했다.

혼례는 친정에서 치렀는데, 풍습을 따르면 친정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야 하는데, 새로 얻은 어머니가 안 좋아하셔서 가마를 타고 그날 바로 시댁을 왔다.

“가마를 넷이 메잖아. 여기서 하나 여기서 하나. 메면은 흔들흔들 하면, 오강도 넣어줘요. 오줌도 누랴. 오강에 오줌 누는 소리 나지 말라고 목화씨를 거기다 넣으면은, 푹신 하니깐 한대서 들어도, 오줌을 마음대로 눠도 된다. 그래서 넣어서 넣어주는 거지 오강을. 멀리 가면, 할 수 있어 눠야지? 매려우면 넣어야지. 그치만 나는 가까우니깐 안 눴지. 이십 리인데 가마타고 온겨유.”

옆에서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한 할머니가 갑자기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이 났는지 크게 웃으며 “이이, 대단한 이유. 가마 타고 가는 걸 걸어가라고 했다가”하고 끼어들었다. 김숙자 할머니도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 듯 박장대소하며 말하였다.

“가마를 타고 오는데, 고개가 이렇게 생겼잖아. 동음리 질어택 고개가 있고 뱀거리 고개라고 있고, 고개를 넘어가는데 신랑이, 가마를 내려놓더니, 신랑이 가마 안을 보더니,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랴 나보고. 그때는 그래도 고런 거 지껄이는 거 보면은 아주 쑥막은 아니였었나봐. 여부케 그랬어. 우리 동네선 하인을 부렸거든. 아니, 품밥 들여서 하인 살 때는 타고 다닐려고 사는 건데 왜 걸어가라는 거냐고, 나 싫다고 타고 간다고. 아이 우리 동네는 하인이 아니고서 이집 저집 돌아가면서 연방계가 있댜. 요 집에서 인저 큰일하면 몇이 나와서 하고, 가마 메는 것도 동네사람이 다 메고 그랬더라고.”

그래서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걸어서 고개를 넘었다. 그때 가마를 맸던 사람들 중에 ‘용구 아버지’라고 입담이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가마는 안에 탄 사람도 조종을 해야 덜 무겁다면서, “오르막길입니다, 여기는 내리막길이고, 여기는 오르막길이고, 여기는 돌머리예요”라고 재치있게 알려주면서 가마를 메고 갔다고 한다.

가마를 타고 가던 중 앞에서 행상이 “어허어허어허어허~”하고 와서, 행상을 보면 부정 탄다는 속설 때문에 걱정을 했다. 시댁으로 들어서자 시어머니가 가마에서 내리기 전에 호박을 주었다.

“여기를 들어오니깐, 삽작거리 들어오는데 호박을 주더라고. 이런 걸 왜 주냐고 하니깐 가마 위에서 한데로 팍 집어 내버리면 땅바닥에서 팍 깨지면은 옛날에는 부정이 팍 깨져서 나간댜. 그래가지고 그거를 주는데, 호박을 내오라니깐 내 무릎팍 위로 뚝 떨어져. 이씨 이것도 속을 썪여. 번쩍 들어서 냅다 집어 던졌지. ‘팍’ 하더라고. 가마 타고 들어올 때, 집안으로 들어올 때는 시어머니가 호박을 주더라고. 며느리 부정 안타고 잘 살라고. 옛날에 부정이 엄청 심했어요.”

호박을 깨뜨리고 방에 가서 새댁 노릇을 하며 앉아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구경을 왔다. 하지만 할머니는 ‘새댁이 뭐고 시집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떠들던지 말던지 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혼인풍습에 대해 더 여쭤보자 “신랑이 집으로 들어서면 부엌으로 들여보내서 부뚜막에 다리 한쪽을 올려놓고 바가지에다 국수를 말고, 숟가락을 여러 개 넣고, 주걱으로 먹는 시늉을 했어”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이 많이 낳으라고 하는 뜻에서 숟가락을 여러 개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새신랑 다리를 묶어서 때리는 것도 했었다.

혼수로 버선 5켤레와 입을 옷을 해왔다. 아버지가 혼수로 궤짝을 사오셨는데 다섯 번째 어머니가 본 척도 안하고, 친어머니 같으면 좋아서 나와 볼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서운하다. 그리고 혼수 이불로 이불 두 채, 요 두 채로 ‘양금’을 해야 하는데 한 채씩 ‘단금’으로 해왔다. 시집을 왔을 때 시댁이 너무 가난해서 식구들이 이불 없이 잤다. 그래서 시어머니께 저녁에 와서 주무시라고 했더니 하루이틀 정도만 오시고는 안 오셨다. 큰 아들 손자를 데리고 자는데 오줌 쌀까봐 걱정 되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래서 혼수로 해온 이불을 드리고 입으려고 가지고 온 옷도 시어머니께 드렸다. 시집와서 처음에는 잘 몰라서 자기 빨래만 했는데, 새댁이 자기 것만 빨아 입는다고 흉을 봐서 시어머니 빨래도 같이 하게 되었다. 옷이 단벌이어서 본인 옷을 시어머니께 드리고 빨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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