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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정3 - 아버지를 네 번 장가보내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E020504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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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네 번 장가보내다

친어머니가 낳은 오빠는 의용군으로 갔다가 병이 걸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얼른 낳으라고 사다준 약이, 열이 들어가는 약을 사다줘야 하는데 열이 폭발하는 약을 사다줘서 집에 오고 3일 만에 죽었다. 당시에 올케가 아들을 낳았었는데 그 아들도 곧 죽고 말았다. 오빠가 그렇게 죽고 아들도 죽자 아버지가 소 판 돈 반을 주면서 친정으로 내쫓았고, 남은 돈으로 그때부터 부인을 얻기 시작했다.

두 번째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아들이 김숙자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았다. 아들을 학교에 안보내자 김숙자 할머니도 못 가게 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두 번째 엄마는 자신이 데려온 아들만 귀여워하고 김숙자 할머니와 친오빠를 구박했다.

“아들 하나 데리고 온 엄마가, 닭을 옛날에 먹였는데, 닭을 먹이면 알을 낳잖아? 그럼 알을 삶아서 자기 아들만 줘. 아부지가 장에를 가면, 마중을 나가서 눈치껏 돌아 댕기면서 아부지가 온다고. 펄쩍펄쩍 가서 부엌에 가서 디다보면은, 그 뒤에 가서 알을 삶아서 까먹고 앉았으면, 디다 보면서도 보고도 못 본체, 먹고 싶어도 못 먹고.”

심지어 자신이 데려온 아들 밥 속에는 쌀밥, 겉에는 지물을 퍼주고, 김숙자 할머니와 오빠에게는 겉에는 쌀밥을 푸고 속에는 지물을 넣었다.

“사는 거 괜찮았는데 왜 그랬는지 몰라. 남의 자식이라 미워서 그랬겠지. 밥을 푸면은 자기 아들은 속에다 쌀을 파묻고, 위에는 지물만 덮어줘요 자기 아들은. 언니는 시집을 갔으니깐 없고 오빠하고 나하고, 우리는 위에는 하얀 쌀밥이지. 그래니께 옛날에 콩쥐팥쥐, 여전한겨. 오빠가 숟갈 올라가는 거 보면 몰라유? 한상에서 먹는데. 보다보다 열불이 나니깐 밥을 퍼다가 놨는데 아부지는 안즉 마당에서 안 들어오시고, 이 상을 번쩍 들더니 오빠가 마당에다 팽개를 친겨. 그래도 아부지 말을 못해요. 처음에는 쌀밥이 나오다가 먹을수록 자꾸 지물밥이 나오니깐, 때때마다 그런게 나오니, 한두살 먹은 애 아니고 우리 오빠가 이십 살, 열여덟 열아홉됐는데 다 알잖아. 별 풍상을 다 겪었어요. 참말로.”

그 오빠가 자라서 군인으로 갔는데, 고등어를 ‘이만한 거’를 한 손 사고, 김숙자 할머니 먹으라고 과자를 사서 한 번 온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한번도 소식이 없다. 어머니 산소가 친정동네에 있어서 한번쯤은 올 텐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서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세 번째 엄마는 자꾸 졸기만 해서 아버지가 내쫓았다.

“삽작거리를 붙들고서도 졸고, 불을 때다가서도 졸고. 그래니깐 우리 아부지가, 이거는 불내서 못 산다고 내버렸지 또.”

네 번째 엄마는 외사촌 아저씨가 장가를 보내줬다. 그 엄마에게 빚이 좀 있어서 아버지가 갚아주고, 자식 2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동생을 하나 낳았다.

“애 먹고 살기가 힘드니깐 개가를 해온거유 우리집으로. 그랬는데 본내미(전남편)가 찾아와가지고 우리 동상까정, 젖을 먹으니깐 떼어놓을 순 없고, 다 데리고 갔지.”

할머니가 시집오기 전에 동생을 보러 옷 한 벌 사서 그 집으로 갔었는데 어머니가 양육비를 달라고 했다.

“세상에 그때는 왜 그렇게 빼룩(벼룩)이 많아요. 양육비 달랠 만도 해요. 가보니깐 그냥 덮을게 있나, 옛날 누렁 담요 있지. 그것만 두 장 있는데, 내가 가니깐 담요를 한 장을 주는데, 한대가서 털고 방에 가서 드러누면서, 어느 틈으로 일로 들어가서 깨물고 이틈으로 들어가서 깨물고. 나 생전 처음 봤잖아.”

하루는 아버지가 찾아가니깐 어머니가 일주일 동안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아버지가 끝내 그 어머니를 못 잊어서 마음고생하면서 밥도 못 드시고 해서 작은 할머니한테 부탁해서 김숙자 할머니가 다섯 번째 엄마를 얻어드렸다.

“아버지가 일주일이 돼도 밥을 안 잡숴요. 다 뺏겼으니 본남편한테. 다 뺏겼으니 밥이 넘어가겠어. 세 번째 들어왔는데 또 그러니.”

일주일이 넘도록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 딱해서 작은 할머니께 시집보내 달라고 청했다. 그때 나이가 열여덟 살이었다.

“작은 할머니들 보고 ‘아 할머니 나 시집 좀 보내줘.’ 엄마한테 하도 진저리가 나서. 어떻게 중신이 들어와서 여기로 해놨는데. 열여덟 먹어서. 거기 갔다 왔는데, 마누랄 또 얻어줬지. 작은 할머니 보고 ‘작은 할머니, 엄마 좀 또 얻어줘.’ 하니 ‘빌어먹을 년, 지 애미가 길거리에 널렸냐.’ 햐. 그래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요. 저기 섬(창골, 안순이)에, 애기를 하나 데리고 와서 엄마가 혼자 사는 이가 있다 그래유. 작은 할머니, 거기 가봐. 애기 데리고 온 이가 있대.’ 하니깐 작은 할머니가 가시더라고. 그랬더니 작은 할머니가 애기를 업고 들어오는겨. 엄마하고 우리집으로 시집을 오는 거지. 그런데 나는, 그때만 해도 호들갑을 떨고 그랬어요. 아유 동생 하나 생겨 좋다고.”

그렇게 아버지에게 다섯 번째 부인을 얻어주고서야 마음 놓고 혼인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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