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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및 성장과정1 - 네 살 때 어머니를 잃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E020502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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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리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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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리 마을회관 평면도

경로회관에 들어서자 아직 농사철이 아니기 때문인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모여 계셨다. 간단한 인사를 한 뒤 할머니들 방으로 들어서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꺼려하셨지만 ‘솔방울 장사를 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꽁꽁 숨겨 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 풀어 놓았다. 그러다 한 할머니가 “여기 아버지를 네 번이나 결혼을 시킨 할머니 있슈, 그 얘기 한번 해봐”라며 놀리듯 말하였다.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을 때, 이야기의 당사자인 김숙자 할머니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며 마구 웃었다. 그리고는 “콩쥐팥쥐도 나한테서 나와야 해요.”라며 목청을 가다듬고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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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말 혼례이야기

김숙자 할머니는 1936년에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창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성함은 의성김씨 ‘김제동’씨이고, 어머니 성함은 ‘송씨’라는 것만 기억한다. 외가댁은 이천 뱀골(지금의 사동리)로 18살 때 혼인하기 전에 딱 한 번 가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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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할머니

어릴 때 이름은 ‘갓난이’인데, 혼인을 하기 위해 호적을 보니 이름이 없어서 사촌오빠가 ‘김숙자’라고 지어서 올렸다고 한다. 이야기하던 중에 불현듯 생각이 난 듯 깔깔깔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시집와서 호적을 올렸어 열여덟에. 이장한테 부탁했는데 이장이 안 해가지고, 가보지를 안 해가지고. 혼인하려고 갔는데 사춘 올케가 일로 오랴. ‘작은아씨는 때려 죽여도 살인이 없어.’ 호적이 없으니깐 장난으로 그러는 거야. 그래서 사촌오빠가 보고선 호적에 올렸대요.”

친어머니는 4살 때 돌아가셨다. 김숙자 할머니까지 3남매를 낳고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돌아가신게 부정 탓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부정이 많았어요. 지금은 병원에 가서 애기를 낳아서 부정이 없지, 옛날에는 애기 낳으면 삼날꺼정 일주일꺼정 못 들어오게 새끼줄에다 고추, 거멍(숯)을 이렇게 매달아뒀지. 고 앞뒷집에서 돼지를 잡아가지고, 그게 부정이 타가지고. 내 동생을 하나 낳고서 병이 거기서 더 해가지고선 세상을 갔어.”

어머니가 이불에 기대어 있던 모습과 돌아가시던 모습은 기억이 나지만,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뒤로 12살차이 언니와 오빠와 셋이 살았는데, 언니를 어머니처럼 따랐다. 그래서 언니가 시집갈 때 할머니 등에 업혀서 시집가지 말라고 울며 떼쓰고, 오빠는 굴뚝 밑에 가서 형부가 자전거 타고 들어오는 거 보고 몰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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