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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 마을 유래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E010301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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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동 마을 유래비

음성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50여국 중 하나인 지침국에 속했으며, 신라의 영토가 되면서 음성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4개 면을 이루었고 그 중 사정리(沙亭里)는 근서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일제하에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벌터, 안말, 강당말, 용대동 등의 마을이 합쳐 지금의 사정리(沙丁里)로 명명되었다.

용대동사정1리의 제일 위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신라시대부터 이곳을 퉁뱅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당시 농기구 등을 퉁쇠로 제작하던 퉁뱅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전해지며, 1960년대 용대동이라고 개명하였다. 용대동은 경기도와 충북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노령산맥의 한 줄기인 오갑산[609m]에서 시작한 부용산[644.3m]이 마을을 감싸안고 있으며, 마을 바로 앞 동쪽에 두리봉과 멀리 남쪽에는 투구봉산[330m]이 감우리와 경계로 길게 펼쳐 있다.

이곳 용대동에 처음 발을 들인 경주이가(慶州李家)의 조상님은 익재공(益齋公) 이제현(17世) 할아버지의 7世孫인 사미정공(四美亭公) 이구(李龜)의 5世孫 이운용(李雲龍) 할아버지가 당시 병자호란이 끝난 후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당파싸움의 정변을 피해 며느리인 정부인(貞夫人) 밀양박씨 할머니 홀로 어린 두 아들 이황곤(李黃坤), 이후곤(李厚坤)을 데리고 충주 단월동에 전혀 연고가 없던 퉁뱅이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 부용산 기슭에 자리잡고 살았지만,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된 것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 후 약 300여 년에 걸쳐 자손들이 번창하면서 지금의 용대동 위치로 터를 닦아 이전함으로써 慶州李氏의 집성촌이 이루게 되어 지금은 8가구가 선영과 고향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250여년 전부터 용대동 마을 풍년 및 문중의 안녕과 무운을 빌고자 해마다 음력 정월 초이렛날, 산제당골에서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오늘날 각계각층에서 자손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데에는 이곳 용대동에서 정착한 이래 숱한 어려움과 시련을 이겨 내셨던 조상님들의 음덕과 보살핌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우리 후손들이 뜻을 모아 용대동 마을의 유래를 후손에게 전하고자 이곳에 마을유래비를 세웁니다.

2001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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