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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 딸을 낳았을 때도 아들 금줄을 걸었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D020205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정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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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결혼하고 8개월 만에 시댁으로 김금자 할머니가 오고, 그 다음해 9월에 큰 딸이 태어났다. 친정이 서울로 이사를 가서 김금자 할머니가 봄에 올라갔는데 가을에 아이를 낳고 내려 왔다.

“애기 낳으러 간 게 아니고, 처갓집이 장모님이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우리 처외숙이라는 분이 우리 장모님 남동생이 이양반이 사장이야. 1·4 후퇴, 6·25 때 내려가서 대구에 공장을 차린 겨. 장모님이 동생네 집에 가니깐 올라간 겨 애기 갖고선. 가가지고 거기서 있다

보니깐, 여름에 가고선 가을에 아이 낳아서 내려왔지. 처갓집에선 맏딸이걸랑. 아래 딸들은 서울로 직장 다니고 어머니가 거 가계시고 하니깐 내려올 수가 없었던겨. 우리 집은 형수가 있고 하니깐.”

그렇게 해서 김금자 할머니 21세 때 낳은 큰 딸이 올해 53세이다. 둘째딸 역시 할머니 혼자 낳았다. 할아버지가 군대 가서 첫 번째 휴가를 나와 보니 둘째 딸이 태어나 있었다.

오덕욱 할아버지가 31세에 넷째를 낳았는데, 위로 딸을 셋을 낳아서 넷째로 또 딸을 낳았을 때 남편과 시부모님 얼굴 보기가 죄송했다. 그래도 시부모님이 아들 못 낳고 딸만 낳는다고 구박하거나 서운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셔서 늘 감사했다. 그래서 아들 낳으려고 따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큰 아들을 낳고, 아래도 또 아들을 낳았는데 파상풍으로 생후 10일 만에 죽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또 딸을 낳아서 현재 1남 5녀를 두었다.

딸을 낳았을 때도 항상 아들 금줄을 걸어 놓았는데,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물어보면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다.

아이를 낳고 3일 동안 산밥을 지었는데, 애기 앞에 엄마 속치마 깔고 애기 잘 크게 해달라고 삼신할머니께 빌었다. 막내를 낳을 때까지 시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항상 시어머니가 산밥를 다 해주셨다.

여섯 남매 모두가 착하고 건강해서 자식들 때문에 따로 마음고생을 한 적은 없었지만, 다섯째 딸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을 뻔 했을 때 너무 속상했었다고 한다. 당시 당숙모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모시고, 장례 때 쓴 건과 행장을 뜯어서 보자기로 쓰려고 집에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다섯째 딸이 젖을 자꾸 외면해서 병원에 가보니 아기가 변을 못 봐서 그런 것이라고 했는데, 병원에 다녀온 후에도 젖을 먹지 않아서 시어머니와 무당을 찾아 갔더니 살이 껴서 그렇다며 살풀이를 해주고 건과 행장을 태웠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기가 젖을 물고 잘 놀았는데, 그때 한번 크게 고생하고 지금까지 무탈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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