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壬亂功臣 張忠範將軍紀念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D010404
한자 壬亂功臣 張忠範將軍紀念碑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기범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1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2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3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4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는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 문화마을 소공원에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본래 생극면 소재지인 신양리 삼거리에 1971년에 세워져 있었는데 도로의 확포장공사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장충범 장군은 조선 중기의 충신으로 자(字)는 효칙, 본관은 단양이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적과 싸우다 부상을 당하여 고향인 음성읍 삼생리로 와서 치료를 하였다. 그 후 1597년(선조30)에 의병을 모아 오늘날 생극면 생리 구진터에서 왜병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장군이 구진터에서 전사하자 그의 애마는 장군의 옷을 입에 물고 한숨에 고향인 삼생리 옛집으로 달려와서는 마당을 빙빙 돌며 소리 내어 울었다. 집에 있던 부인과 마을 사람이 몰려들었다. 부인이 말이 물고 온 웃옷을 확인해보니 장군의 웃옷이었다. 부인은 집안사람과 마을사람들과 함께 이 피 묻은 옷과 집에 있던 유물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장충범 장군에게는 1605년(선조38)에 선무원종공신록권이 하사되고, 1857년(철종8)에 이조참판에 증직되고 충신의 정려가 내렸다.

현재 장충범 묘소는 원남면 삼용리 산소날이라는 곳에 있으며, 충신문은 음성읍 삼생리에 세워져 있고, 신도비는 원남면 삼용리에 세워져 있다.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문은 다음과 같다.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壬亂功臣 張忠範將軍紀念碑)」

슬프다. 1592년 임진란이 일어나자 지위 높은 이들은 피난하기에 바쁜데 군자감주부 장충범공은 의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뛰쳐나 죽음을 맹서하고 채유동, 조태와 함께 의사 오백 명을 이끌고 수많은 왜적을 무찌를 적에 혹은 산 위에서 포위를 당하면 흰 쌀로 말을 씻어 물이 있는 듯 꾸며 보이고 풀을 묶어 군병처럼 늘어세우는 등 지혜와 용기로써 왜적을 물리쳤던 것이다. 1597년 정유 가을 충주성동에는 적세가 크게 뻗쳐 모두들 주저할 적에 공이 앞서서 적진으로 달리자 모든 군사들도 의기를 내어 적의 뒤를 쫓더니 문득 위에서 복병이 나타나 공의 목을 찍어 고대 쓰러지게 되였건마는 공이 오히려 왼편 손으로 적을 붙들고 바른편 손에는 칼을 쥐고 휘두르며 십 리 남짓 적을 쫓아가 십여 명을 죽이고 장렬히도 몸을 던지니 7월7일 어지러운 싸움터라 불행이 공의 육신은 거두지 못하고 다만 옷과 갓을 싸서 음성 용당 선영 아래 장례 모시니 이 또한 옛 충신의 몸 버리는 본원이던가. 가신 지 260년 철종8년에 통정대부 좌승지경경연참찬관을 증직하고 익년에 가선대부 이조참판 가증 선무원종공신 추록과 함께 정려를 세웠는데 공은 본시 고려 공신 충헌공 정필의 후예요 뒤에 단양으로서 본관을 삼았고 부친은 진사 언구공 모친은 충주최씨이며 부인은 청풍류씨로서 장운한, 장운핵 두 아들의 자손이 퍼져 오늘에 이르렀으니 실로 축복받은 가문임을 알겠다.

나라와 겨레 앞에 살과 뼈 피를 받쳐

의로운 넋이 되어 길이 여기 계시옵기

이 앞을 지나는 이들 머리 숙이옵니다.

1972년 월 일

후학 이은상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