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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고치기 위해 단양 구인사를 찾아가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C020301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고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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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스님 일대기 02

스님은 늘상 병원 신세를 지며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단양 구인사에 가면 병을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의 권유로 하는 수 없이 단양 구인사를 찾아 갔다고 한다. 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 단양 구인사를 아픈 몸으로 찾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웬일인지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고 한다.

“거기를 가는데 그때만 해도 단양에서, 내 집이 충주거든, 충주에서 구인사를 가려면은 버스를 탄 채로 배를 타고 두 번을 건너야지만이 단양 영춘이라는 데를 도착했어. 도착을 해서 영춘에서 구인사까지 걸어가. 차가 없어가지고 그래서 집에서는 바깥 출입도 못하고 수저질도 못하던 사람이 영춘에서 거기까지 걸어가도 괜찮아. 안 아픈 거야. 너무 신기하잖아. 내가 꾀병인가 아닌가 할 정도로.”

구인사에는 영춘 스님이 있었는데 스님의 말을 따라야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여 스님이 기거하라고 일러주신 딱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구인사에 있을 때는 몸이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

“사흘 있는 동안은 깨끗하니 괜찮은 거야. 안 아픈 거야. 너무 신이 나서 집으로다가 왔어, 집에 오니까는 ‘아무개는 단양 구인사에 가서 병을 고쳤더라.’ 하고, 우리집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많이 와서 거기를 어떻게 찾아가는 거냐고, 그 때가 단양 구인사 초창기 때야. 사람들이 한 번 갈 적마다 몇 십 명이 갔다 왔느니 버스를 대전해서 갔다 왔느니 하는 거야.”

스님의 병이 호전된 것을 안 사람들이 소문을 타고 버스를 대전해 가며 단양 구인사를 오갔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은 이후에 병이 재발하여 몸이 아파왔으나 일파만파 퍼지는 소문 때문에 아프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스님은 예전처럼 몸이 아파 다시 단양 구인사를 찾아 갔다고 한다. 그러자 처음 왔을 때와 같이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고 한다. 이렇게 오가기를 몇 번 하다가 병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스님의 부모님은 단양 구인사에 가서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근데 나는 그런 생활은 싫더라고. 그 인제 집에서 있자니까는 모, 꼼짝을 못해. 더운 여름에도 문밖을 나갈 수가 없는 거야. 일어났다 앉았다를 할 수가 없어.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개집 딸이 단양 구인사가서 병을 고쳐가지고 왔다고 해서 나는 다 나은 사람이 되어 버린 거야. 소문에 의해서, 정신 나간 사람이나 병 걸린 사람이니 다 고친다고 난리가 났어. 나는 집에서 막 앓고 있고.”

스님은 너무 많이 퍼진 소문 때문에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채로 매일 매일을 병마와 싸우며 지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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