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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잘라 어머니 살린 효자(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B030200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박종호

※ 조사일: 2007년 2월 19일

※ 조사지: 음성군 감곡면 문촌4리 윤희 할아버지 댁

※ 조사자: 황경수, 박종호, 고유리, 윤정아

윤희 할아버지는 칠원윤씨의 12대 손으로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서 나고 자랐다. 마을에 있는 칠원윤씨의 효열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으며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 해 주었다. 과거에 선생님을 하여서 그런지 정확한 기억력으로 재미있게 이야기 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웃오갑주추배기 사이에 있는 칠원 윤문 효자·열녀각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윤희 할아버지는 댁으로 방문을 했을 때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아직도 젊은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놀라웠다. 할아버지는 많은 연세에도 과거에 있었던 일을 또렷이 기억하여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할아버지, 여기 마을 위편에 보니까 열녀문이랑 효자각 있던데. 칠원윤씨에서 세워진 거더라구요. 말씀 좀 해주세요.”

“응, 그거 우리 집안 꺼 맞아.”

“언제 세워진 거예요?”

“그게, 영조의 아들 있지? 사도세자의 아들, 수원을 왔다갔다한 효자라고 알려진 정조대왕 시절에 세워진 거야.”

“보니까 비가 세 개 서있던데, 다 할아버지 문중에서 세워진 거예요?”

“그럼, 형제 두 분이 효자고 며느리가 열녀고.”

“어떻게 해서 세워지게 되었는지 이야기 아세요?”

“그게, 형제의 어머니가 아주 병이 위중하셨대. 여름에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나봐. 그런데 여름에 꿩이 없걸랑, 할 수 없이 산에 가서 기도를 드리니까 꿩이 날아 왔다는 거야. 그래서 잡아서 봉양을 하고, 그리고 임종 때가 되니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서 어머니를 구원했다. 그러더라고.”

“아.”

“그래서 효자문을 하사하고 또 그 분의 며느리기 청풍김씨인데, 남편이 일찍 돌아가셨어. 그런데 아들을 못 낳았던 거야, 그런데 남편이 죽고 보니까 잉태를 했는데 나아보니까 딸이라 이거야, 그래서 계통이 안서니까 ‘윤씨네 와서 며느리 노릇 제대로 못했다.’해서 음독자살을 했다는 거야.”

“남편이 죽고 나서 대를 못 이으니까 자살한 거예요?”

“그렇대. 그렇게 죽고 나서 열녀문을 받았지. 그래서 효자각 두 개, 열녀문 하나 해서 세 개야.”

“이거는 언제 있었던 일이예요?”

“이거? 아마 7대조 쯤에 있었던 일이 될꺼야 아마.”

할아버지는 칠원윤씨 문중의 자랑인 효자와 열녀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할아버지가 보관해 오던 칠원윤씨 문중의 소장품을 꺼내 보여 주었다.

[정보제공]

  • •  윤희(8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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