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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2327
영어의미역 Public parks in Eumseong, offering a great venue for cultural and recreational activities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예경희

[개설]

공원이란 공공 녹지로서 자연지(自然地)나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를 말한다. 흔히 전자, 곧 자연지를 자연공원이라 하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를 도시공원이라고 부른다. 음성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은 설성공원큰바위얼굴조각공원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도시공원으로 음성군민이 즐겨 찾는 쉼 터이자 자랑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설성공원-음성의 대표 공원으로 자리잡다]

음성읍 읍내리는 동쪽으로는 한벌리, 서쪽으로 신천리, 남쪽으로는 하당리, 북쪽으로는 용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음성군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설성공원은 바로 읍내리의 817-35번지 일원 시가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 근린 공원이다.

도시 계획 시설 공원 면적은 32,600㎡이지만 실제로는 27,669㎡ 정도 된다. 공원이 시가지의 중심부에 있어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음성천 연변의 남천동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음성군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1. 설성공원은 어떻게 조성되었나?

일제강점기인 1934년, 음성군수 권종원(權鍾源)이 수정교에서 남쪽으로 500m 떨어진 지점의 연못 안 섬에 경호정을 짓고 주변에 9.9174m²의 운동장을 조성하였는데, 이 운동장이 1960년대 초기 3만3천m²의 음성공설운동장으로 발전하였다. 1990년 12월 새로운 부지에 음성종합운동장이 준공되면서 음성공설운동장의 일부는 임시주차장으로 이용되었고, 가장 넓은 체육 용지에는 수영장과 테니스장을 비롯하여 철봉, 윗몸 일으키기 기구, 평균대 등의 운동 시설이 설치되었다.

1996년 8월의 「음성 운동공원 조성 기본계획」에 의하여 공원의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고, 1998년 이후 공원의 공식 명칭이 운동공원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음성군의 옛이름이 설성(雪城)이고, 운동공원에서 설성문화제가 개최되면서 음성 지역 사람들은 운동공원 대신 설성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2. 설성공원의 시설들

직사각형 모양의 부지 위에 조성된 설성공원 북부에는 게이트볼장을 중심으로 체육공간이 자리잡고 있고, 공원의 중앙에는 중앙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중앙광장 남쪽에는 야외공연장이 있고, 야외음악당 앞에는 광장이 조성되어 있어 야외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야외음악당 남쪽에는 역사가 깊은 경호정이 조성되어 있는데, 경호정에는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독립기념비 등이 설치되어 있다.

경호정 서쪽의 도로 변에는 청소년문화의집이 건립되어 있고, 그 옆의 모퉁이에는 음성 오층모전석탑이 서 있다. 설성공원의 남단에는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이 건립되어 있는데,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옆에는 음성군 여성단체협의회가 입주한 음성여성회관이 있다. 음성여성회관 뒤에는 수영장이 건립되어 있다.

설성공원 서단의 무영로에는 설성공원의 북단에서부터 남단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도로원표와 군기제작 기념비, 6·25전쟁 참전기념비, 무영로 표석, 이무영 문학비, 음성군 유래비, 청소년문화의집 표석과 석비, 설성공원 표석 등의 석조 조형물이 있어 음성군의 문화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문화의 거리로 기능하고 있다.

3. 설성공원의 자랑거리들

조선 전기 음성현의 객관 동쪽에는 의송정(倚松亭)이라는 정자가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호정잡기(景湖亭雜記)』에 의하면 1933년 황태자가 없어 안절부절 못하던 일본 황실에서 황태자가 태어났는데, 당시 음성의 지역 경제를 쥐고 있던 일본인들이 군수였던 권종원(權鍾源)에게 황태자 탄생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하여 일본 황실에 충성심을 보이라는 권유를 하였다.

이에 권종원은 1934년에 음성읍 읍내리 817번지에 약 1,500평 규모의 연못을 파고 그 안에 다시 약 200평 규모의 섬을 조성한 뒤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그리고 황태자 탄생을 축하하는 비석을 세운데 이어 정자 주변에 3,000여 평의 운동장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당시 권종원은 정자에 인풍정(仁風亭)이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권종원은 정자를 건립하면서 연못을 건너 인풍정으로 들어가는 곳에 목교를 가설하고, 평곡리 탑정의 옛 절 터로부터 고려시대 작품인 삼층석탑 1기를 가져와 정자 앞뜰에 이전하였다. 그때 지방 유지들이 연못 주위에 나무를 심는 등 조경 사업을 도맡았다고 한다. 그후 1950년대 중반에 음성군수로 취임한 민찬식(閔燦植)이 인풍정경호정(景湖亭)이라 고쳤다고 하며, 현재의 경호정설성공원 조성 공사 때 약간 남쪽으로 옮기어 중건한 것으로, 현재 음성군향토문화유적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1982년 12월 1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된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부를 갖춘 일반형 석탑으로서 상륜부가 결실되었을 뿐 원래의 조각과 현재의 보존 상태는 모두 양호한 편이다. 기단부가 단층으로 축소된 점이나 탑신의 각부서 양식화의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옆에 있는 음성오층모전석탑은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75년 8월 2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음성읍에 있는 옥녀봉 아래 향교말의 음성향교수봉초등학교 뒤에 있던 것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지금의 묘정사 자리의 밭 가운데 있었던 홍천사 터(일명 교동 사지)라는 큰 사찰 내에 있었던 석탑으로 추측되고 있다.

4. 설성공원에서 열리는 축제들

음성문화원이 주최하고 음성군과 동양일보사가 후원하는 무영제는 설성공원 안의 이무영 문학비 앞에서 개최되는데, 1994년 4월 20일 제1회를 시작으로 매년 추모제와 문학인 간담회, 문학강좌, 서예·꽃꽂이·자수 등의 전시회와 이무영백일장, 무영문학상 시상식 등의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무영제와 함께 열리는 전국품바축제는 꽃동네 설립의 계기가 된 ‘거지 성자’로 불렸던 고 최귀동 할아버지의 숭고한 박애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 2000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공동체의 두레정신을 되살려 향락적이고 이기적인 현대인들에게 사랑의 경종을 들려주기 위하여 마련된 전국적인 규모의 축제이다.

1982년부터 시작된 설성문화제는 1992년 제11회 축제까지는 설성공원과 인접한 음성공설운동장에서 개최하였으나 제12회부터는 주로 설성공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2003년부터 음성청결고추축제와 함께 개최되면서 9만 음성군민들의 한마당 잔치로, 음성 지역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발굴·계승하고 농심을 보듬는 생산적인 축제로 치러지고 있다.

[큰바위얼굴조각공원-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보다]

큰바위얼굴조각공원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9-1번지 및 25번지 일대에 위치한 56만m²의 부지에 조성되어 있는 일종의 관광 공원이다. 세계 185개 국의 정치인과 경제인, 종교인, 학자 등의 유명 인사는 물론 스포츠인과 연예인 등의 저명 인사를 비롯한 천여 명의 얼굴과 7백여 점의 동물상·인체상 등의 조각품, 다보탑·석가탑·침성대 등의 국보급 유물의 복제상과 광개토대왕비, 중원 고구려비 등의 모형 비석 등을 전시하고 있다.

1.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은 1974년 의료법인 음성현대병원을 설립한 정근희(鄭根喜)가 정신병원 환자들의 약물 치료와 병행해서 정서적 안정을 위한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음성현대병원 주변 정원에 말, 황새, 사자 등의 동물상과 인체, 큰 손 등의 소형 석재 조각품과 나무 조각품 등을 전시하고 석비, 팔각정 등을 건립하는 조경 사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러던 중 미국 여행을 하던 정근희는 러시모어의 바위산에 새겨진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의 큰바위얼굴 조각상에 감명을 받고는 1991년부터 국내는 물론 세계 185개 국의 조각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정근희는 ‘미련할 정도로 크기만 한 만리장성보다 그리고 미국의 큰바위얼굴 조각 몇 개보다 더 큰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만들고 싶다’는 결심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조각의 선정은 세계 180여 개국의 중요한 대종교가, 정치지도자, 발명·발견가, 작가, 철학자, 과학자, 탐험가, 예술가, 혁신가, 스포츠인, 노벨 수상자를 총 망라하여 인류의 운명을 좌우했고,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들을 기준으로 엄선하였다. 일단 대상이 선정되면 철저한 검증 작업을 마친 뒤 현지를 직접 방문하여 실물을 확인하고 자료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트로이 목마의 경우, 몇 차례 이집트를 방문하여 직접 실물을 확인하고 측정하는 등, 철저한 고증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큰바위얼굴조각공원에 있는 얼굴 조각상의 경우, 하나하나 돌을 붙여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돌덩어리를 깎아서 얼굴 형태를 만든다. 이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파손되면 무용지물이 되는데, 완성된 작품을 공원에 배치하다 사고가 나서 처음부터 다시 제작하는 일도 많았다. 특히 조각상을 만드는 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있는 돌산을 50년간 임차했다.

제작은 중국 현지 석공들이 한다. 4~5m 높이의 석상을 하나 만들려면 다섯 명의 조각가가 7개월은 꼬박 작업을 해야 한다. 작품이 완성되면 배에 실어 국내로 들여 온다. 2004년 5월 문을 연 후 세계 180여 개국의 인물 조각상 천여 점을 비롯하여 각종 동물과 민속 조각 등을 새긴 비 등 모두 3천여 점이 들어왔다.

2. 오감을 만족시키는 세계 유일의 인물 주제 공원

큰바위얼굴조각공원에 들어서면 먼저 3m 정도 되는 예수와 석가, 공자, 마호메트 등 4대 성인의 전신 석상(石像)이 눈에 띈다. 이곳이 모두 20관으로 이루어진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의 제1관이다. 그 뒤를 이어 이승만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 한국의 지도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 2관이 나온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서 있는 2관을 지나 안쪽으로 쑥 들어가면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 등 세계의 여성 지도자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린이의 꿈을 키워 준 동요작가와 선교사들이 자리잡고 있는 20관이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위인은 백범 김구라고 한다. 대부분 두꺼운 뿔테 안경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김구의 조각상 옆에서 이웃집 아저씨와 찍듯 바짝 붙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보통 공원이나 박물관에 가면 ‘손으로 만지지 마시오’나 ‘가까이 가지 마시오’, 또는 ‘파손시 변상’, ‘사진 촬영 금지’ 등의 문구가 여기저기 써붙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큰바위얼굴조각공원에서는 조각들을 만져 보는데 그치지 않고 껴안아 볼 수도 있다. 눈으로만 보지 않고, 가족과 연인·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이렇듯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은 관광객들이 인물 조각상에 대한 안내원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눈으로만 보는 관광에 거치지 않고, 관광객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의 인물들을 찾아내어 오감으로 체험하며 탐구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많은 조각상들이 좁은 장소에 나열되어 있는 등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공원의 조경 사업 역시 미흡하여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의 진가를 보여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의 인물 선정을 전문가의 도움 없이 설립자인 정근희가 주도한다는 점이다.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원의 부지를 확장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전문 분야의 인사를 보다 많이 참여시켜 조각공원을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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