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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장의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2205
한자 甫川場-由來
영어의미역 Origin of Bocheonjang Market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집필자 안상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담|기원담
주요 등장인물 송병표
모티프 유형 보천장의 유래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 전해 내려오는 보천장에 관한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2005년 발간된 『음성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기자터에 가면 보천장과 관련된 송병표(宋炳豹)의 무덤이 있다. 송병표는 1885년(고종 22) 원남면 보룡리 기자터에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재부를 이어받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던 송병표에게는 보천주막을 나올 때마다 한 가지 불만스러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보천주막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규모의 시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송병표는 ‘보천주막을 중심으로 시장이 서면 인근에서 수확한 각종 농산물을 유통시키는 데 얼마나 편리할 것이며, 또 거기에서 취할 이득이 얼마일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 보천 지방에서는 농산물 매매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시장을 찾아 가는데 청안장이 40리, 괴산장이 50리, 가장 가깝다는 음성장만 해도 25리나 되었다. 장터가 멀다 보니 노자도 많이 필요했고, 밤길을 걷는데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러 날 궁리를 하던 송병표는 보천 지방에 장터를 세울 목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보천 지방에 장이 선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처음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은 쉽사리 모여들지 않았다. 송병표는 행상인들을 붙잡고 술대접을 하면서 보천에서 물건 거래를 해서 장이 서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2년 동안 술대접으로 많은 재산을 잃고도 얻은 것이 없던 송병표는 1914년 고심 끝에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엽전 오십 냥을 둥구미에 챙긴 송병표는 하인과 함께 보천주막으로 들어갔다. 다른 때와 다름없이 행상인들에게 술대접을 하던 송병표는 점심때쯤 되자 갑자기 엽전 둥구미를 들고 주막 지붕에 올라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내가 여기서 돈을 뿌릴 터이니 모인 사람들은 엽전을 주어 가시오! 주은 엽전은 주은 사람 것이니 그리 알고 가져가시오!” 하고 송병표는 사방으로 엽전을 뿌리기 시작하였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엽전을 본 행인들은 저마다 엽전을 줍기에 정신이 없었다.

인근 고을에서는 드디어 송병표에 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보천장에 가면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 “보천장에 가면 돈을 마음대로 주울 수가 있다.”, “보천장에 가면 횡재를 한다.”, “새터 송부자 댁에서 활인적덕(活人積德)을 하느라 돈을 물 쓰듯 한다.” 등의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후, 보천장은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4일과 9일에 성시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비교적 근대의 이야기로 영험하거나 신묘한 이야기와는 달리 있을 법한 이야기로 전개되어 있다. 돈을 적선하는 행위는 예로부터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초반에 실제 인물의 묘소를 등장시켜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풍수에서도 적선이라는 방법으로 음덕을 쌓을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풍수적인 모티프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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