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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2195
한자 閔東亮-
영어의미역 The Tale of Min Dongryang and Tiger
이칭/별칭 「민동량과 대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집필자 안상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효행담
주요 등장인물 민동량
모티프 유형 효자 이야기|호랑이의 도움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전해 내려오는 민동량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2005년 발행된 『음성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민동량은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5세 때 글을 읽고 그 뜻을 해독하니 마을 사람들이 “민씨 문중에 신동이 나타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효행 또한 지극하여 민동량이 8세 때 그의 노모가 병석에 눕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어머니를 간호하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그 지극한 효행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항상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내나 하인이 들 시중마저 민동량 스스로 하는데 정성을 드렸다.

하루는, 문중 어른이 문병을 왔다가 어머니의 시중을 드는 광경을 보고는 “왜 그런 지저분한 일을 하인에게 시키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민동량은 “지저분한 일일수록 남에게 시키지 않아야 정성을 다하는 것이고, 어버이 눈앞에 자식이 있어 보이도록 해야 마음을 안정할 수가 있는 법이니 어찌 그 곁을 떠나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또한, 민동량의 부모가 노환으로 병석에 있을 때, 갑자기 증세가 위독해지자 민동량은 서슴지 않고 단지진혈(斷指進血)하여 왼손의 손가락 네 개가 모두 절단되었다. 이를 보고는 감동하며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14세 때인 1673년(현종 14), 시세(時歲)로 인해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그 병증이 심상치 않아 노심초사하고 있던 민동량은 괴산읍 내에 있는 한약방에 명약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때는 벌써 초경을 넘겨 밖은 이미 깜깜해진 뒤였다. 그러나 민동량은 행전을 차리고 길 떠날 차비를 갖추었다.

아내 무송윤씨는 나이 어린 신랑이 50리 길을, 더구나 야행을 하게 됨을 걱정스럽게 생각하고는 날이 밝은 뒤에 다녀옴이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민동량은 “아버님 병환이 경각에 이르러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데 어찌 지체할 수 있겠소?” 하고는 발길을 재촉하여 떠났다.

민동량이 막 당골(하당리) 동구 밖에 이르렀을 때, 앞을 보던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성황당 느티나무 밑에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눈에 등잔불 같은 인광을 켜고 길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마음이 급해진 민동량은 큰 소리로 꾸짖으며 “나는 당골에 사는 민동량으로 지금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해 괴산 땅으로 명약을 얻으러 가는 길이다. 그러니 가는 길을 지체하지 말도록 썩 길을 비켜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호랑이는 민동량 쪽으로 등을 돌려 꼬리로 등을 가리키며 그 위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호랑이 하는 거동을 알아 챈 민동량은 잠시 망설이다가 호랑이 등에 탄 후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귓전에서 바람소리가 일더니 곧 다시 잠잠해졌다.

잠시 후, 눈을 뜬 민동량이 주변을 살펴보니 눈앞에 인가의 등불이 총총하고 바로 곁에 향교가 있어 이곳이 괴산 땅임을 알 수 있었다. 민동량은 황급히 호랑이 등에서 내려 개울을 건너 약방에 들어가 명약을 구한 후 다시 향교 근처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까의 그 호랑이가 아직도 냇가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 민동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민동량이 그 뜻을 알아채고는 이번에는 서슴지 않고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한번 몸을 움직여 솟구쳐 바람을 일으키더니 곧 민동량을 처음 만났던 당골 성황당에 그를 내려놓고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민동량이 집에 도착했을 무렵은 불과 밥상을 받아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숭늉을 마실 정도의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문밖에서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란 아내가 아내는 밖으로 뛰어나가며 물었다. “아니, 서방님. 어찌 길을 떠나지 않고 되돌아오셨어요?” 그러자 민동량은 “자세한 얘기는 이따 할 테니 어서 약을 달여 주시오.” 하며 약 다리는 법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이리하여 그날 밤 무사히 아버지에게 명약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이야기가 다시 마을에 펴지자 고을 사람들은 “대효(大孝)에 대호(大虎)가 시중을 들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민동량이 세상을 떠난 지 백년 만인 1806년(순조 6) 민동량의 효행이 상계되어 정려가 내려지고 호조좌랑을 추증하였다. 민동량의 정려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 석정에 전한다.

[모티프 분석]

효자 이야기 중 하나인 「민동량과 호랑이」는 단지(斷指) 모티브에 의한 효행의 강조와 효자인 민동량을 도와주는 호랑이 모티브가 전후반의 주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등장한 호랑이는 산신령으로 효성이 지극한 인물을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 효성으로 정려문이 내려졌다는 실재 증거를 제시하여 유교 덕목인 효사상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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