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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670
한자 書院
영어의미역 Confucian Academy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상일

[정의]

조선시대에 향사 및 교육을 위해 충청북도 음성군에 설치되었던 민간 기관.

[개설]

조선왕조 최초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사림들은 성리학적 지배 질서를 확립하여 재지 사족층의 사회적 역할을 제도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서원 건립에 적극적이었으며, 실제로 서원은 그들의 사회적·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운곡서원]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운곡서원(雲谷書院)은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음성군 유림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본래는 1602년(선조 35) 충주목사 정구(鄭逑)가 이미 있던 백운서당에 주자를 배향하여 백운동서원으로 창설하였다. 1661년(현종 2)에 정구가 추가로 배향되었고 1676년(숙종 2)에 운곡(雲谷)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 후 1871년(고종 8) 사원 철폐령에 따라 폐지되었다가 1892년부터 지방 유림들이 단을 모아 제향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서원을 재건하였고 1963년 다시 중수되었으며 1974년 단청 공사를 하였다. 이 서원에는 주희와 정구를 배향하고 있는데 매년 3월과 9월 재정일(再丁日)에 향사하고 있다. 정구선조 때 사람으로 퇴계 이황(李滉) 밑에서 경학을 공부하여 강원감사를 거쳐 대사헌을 지낸 사람이다.

운곡서원은 강당 공간과 사우 공간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는데 사우 공간에는 현재 주초석만 남아 있고, 그 뒤편의 사우 공간에는 운곡서원(雲谷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사우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평면을 구획하고 그 안에 영정과 위패를 두었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주형 장초석과 덤벙주초석을 섞어 놓고 원형의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초익공 계통으로 꾸몄고 가구(架構)는 1고주 5량 집이며,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비교적 규모는 작으나 간결하고 소박하게 처리한 서원 건축의 한 특징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주위에는 토석 혼축의 담장을 쌓고 건물의 중앙에 솟을삼문을 세웠는데 경모각(景慕閣)이란 현판을 달았고, 사우 공간과 강당 공간을 구분한 중문은 솟을삼문으로 춘추문(春秋門)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서원의 입구에는 수령이 260년 된 면 지정 느티나무가 서 있다.

운곡서원 출신의 인물로는 의당 박세화회당 윤응선 등이 있다. 현재 운곡서원은 도유사 1인과 장의 2인, 색장 2인, 관리 5인이 운영하고 있다. 운곡서원에는 현재 청기와 석 장과 각종 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지천서원]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위치한 지천서원(知川書院)은 이조판서를 지낸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팔성산 아래에 초옥을 짓고 후학을 교육하였는데 이것이 지천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 유림과 후손들이 1893년에 축단하고 향사하다가 1906년 재건하였다.

1963년 중수된 지금의 건물은 사당은 정면 3간, 측면 1간반의 팔작집이며, 솟을삼문에는 경모문(景慕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으며, 공자당(工字堂)은 전면 4간, 측면 1간 반의 팔작집이다. 서원에는 김자수(金自粹)·김세필(金世弼)·김저(金儲)·김의(金嶷)·김정현(金鼎鉉)·김홍욱(金弘郁)·김종현(金宗鉉)·박상(朴祥)을 봉사하고 있다.

생극평야를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지천서원경주김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는 데 정화가 잘 되어 있다. 서원의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으며, 홍살문의 좌우에는 현감 김의(金嶷)의 청백선정비와 십청헌선생기념사업회에서 1985년에 세운 ‘문간공십청헌김선생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좌측 산기슭에는 상촌 김자수의 18세손인 김동간(金東幹)과 부인 청주한씨의 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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