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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886
한자 鄭孝憲
영어음역 Jeong Hyoheon
이칭/별칭 행원(行源),농은(農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종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성별
생년 1867년연표보기
몰년 1943년연표보기
본관 초계

[정의]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초계. 자는 행원(行源), 호는 농은(農隱). 내급사공파의 참봉 정국로(鄭國櫓)의 11세손이다. 조부는 중추부사 정민수(鄭民秀), 아버지는 정인희(鄭寅羲)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내송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인은 성주현씨(星州玄氏) 현광일(玄光一)의 딸과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활동사항]

을사륵약 이후 전국 곳곳에서 의병들이 궐기할 때 정효헌도 삼종제 정이헌(鄭履憲)과 함께 동지를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 이강년(李康秊)과 연합하여 왜적과 싸웠다. 1907년 이강년이 순절하자 의병이 와해 직전에 처하여 할 수 없이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 우목동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밀고한 자가 있어 왜병이 동구를 포위하고 쳐들어와 반격할 사이도 없이 정이헌은 순국하였고 정효헌도 붙잡혔다. 피살 직전에 열여덟 살의 큰아들 정용준이 몸으로 총구를 가로막고 “아버지 대신 나를 죽이라”고 울부짖자 왜병도 처리하기 어려워 자기 대장이 있는 읍내까지 끌고 갔다.

엄동설한에 밤새 끌려가 7일간을 시달린 후 왜군이 아들 정용준의 효심에 감동하여 풀어주므로 사람들이 효성이 하늘에 이르렀다며 감탄하였다. 그 후 왜인의 주목을 피하여 안성으로 이사해 살면서 빈민을 구휼하다가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내송리 냉천(冷泉)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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