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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난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865
한자 崔鸞壽
영어음역 Choe Nansu
이칭/별칭 언상(彦祥)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유봉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성별
생년 1543년연표보기
몰년 1592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최난수는 임진왜란때에 충청북도 음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서도 조정의 포상을 사양한 뒤 전사한 의인이다.

[가계]

최난수(崔鸞壽)은 고려 좌참찬 최유경(崔有慶)의 5세손이고, 선략부호군 최우령(崔禹齡)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최난수는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반인후(潘仁後)와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여 전과를 올렸다. 도(道)에서는 조정에 알려 포상하려 하였으나 “전에도 제수된 직에 나가지 않았는데 이제 창의(倡義)의 공이 있다고 하여 내 어찌 공명을 바라겠느냐”하고 거절한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말 채찍질하며 오다가 설성 보천과 조촌 사이 마라우(馬羅于) 협곡에서 적병 1진을 만나 기습당하자 필마 단기로 힘을 다해 수백 급을 베며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하였다. 그 후 그곳을 마라우(馬羅于)라 불렀다.

[묘소]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최난수에 대하여 그 후 임란의 공을 논공할 때 선무원종공신 3등 사약(司鑰) 최난수라고 논공되어 참으로 다행한 일인데, 일설에 나라에서 포상하였으나 받지 아니하였다고 함이 사실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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