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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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맹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로, 1998년 발행된 『음성지명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원남면 하당리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소몰이꾼이 소들을 끌고 가려면 맹골이라는 고개를 거쳐 가야 했는데, 소가 지나갈 때면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소에게 모래를 막 끼얹으며 해를 끼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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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전해 내려오는 민동량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 2005년 발행된 『음성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민동량은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5세 때 글을 읽고 그 뜻을 해독하니 마을 사람들이 “민씨 문중에 신동이 나타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효행 또한 지극하여 민동량이 8세 때 그의 노모가 병석에 눕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어머니를 간호하는 데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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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字)는 군삼(君三), 호(號)는 송암(松巖). 첨정 민휘정(閔鰴鄭)의 아들이다. 민동량은 5세 때 글을 깨우쳐 주위에서 신동이라고 소문이 났으며 5~6세 때 부모가 병이 났을 때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병을 간호하였다. 10세에 어머니 병환이 위중하자 하늘에 기도하였고, 15세 때인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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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묘. 민동량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군삼(君三), 호는 송암(松巖)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민휘정(閔徽鄭)의 아들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누가 아버지를 부르면 문득 눈물을 흘렸다. 10살에 어머니가 아프자 향을 피워 하늘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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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유허비. 총 길이는 158㎝이고, 비신(碑身)의 높이는 116㎝, 앞면 47㎝, 측면 11㎝이며, 가첨석(加檐石)은 높이 38㎝, 앞면 61㎝, 측면 38㎝이다. 하단의 방부(方趺)는 높이 4㎝, 앞면 67㎝, 측면 40㎝이다. 비석 앞면에는 ‘효자증통훈대부호조좌랑송암민공동량유허비(孝子贈通訓大夫戶曹佐郞松巖閔公東亮遺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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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산. 삼신산 남쪽으로 큰 삼실, 작은 삼실이 있고 하당저수지 골짜기와 함께 세 골짜기라 하여 ‘삼실이’라고도 불렸다. 삼실산(三實山)은 삼실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세 봉우리로 되어 있어 산의 모양이 얼레빗처럼 생겼다고 한다. 하당저수지에서 음성읍 조천리 밤나무재로 넘어가는 곳에 삼실고개가 있다. 하당저수지는 풋내고개 아래의 음성읍 신천리 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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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불망비를 세웠다. 성규주 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충주로 가는 구 도로를 따라 1㎞쯤 올라가면 음성향교가 나오는데 그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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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를 세웠다. 성규주 선정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하당저수지로 올라가는 길옆 하당1리 마을회관 근처 비닐하우스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1매석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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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성기환(成耆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비. 성기환의 자는 경문, 호는 경은. 본관은 창녕이다. 성기환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자랐으나 근검절약하여 살림이 넉넉해지자 흉년에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였다. 충주시에서 청주시로 가는 국도 36호선 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2리에서 500m 못 미친 도로변 오른쪽에 위치한다. 성기환 구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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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열녀. 본관은 안동(安東). 성인하(成仁夏)의 처이다. 남편 성인하가 죽자 정절(貞節)을 지켰다. 1909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높이 210㎝의 비석을 세우고, 전면에 ‘성인하부인권씨정열비(成仁夏夫人權氏貞烈碑)’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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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인하 처 안동권씨가 정절을 지킨 것을 기리는 비. 성인하 처 안동권씨 정렬비는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청주로 가는 국도 36호선 변 원남면 하당리에서 왼쪽 하당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면 하당초등학교가 나오고 이 학교의 교정 끝부분에 있다. 비석은 방형(方形) 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대석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멘트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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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정서(廷瑞). 현감 신경진(申景進)의 증손이고, 용양위부호군 신상용(申尙容)의 아들이다. 신정은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관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번거롭게 공부하지 않아도 학문이 일취하였다. 20세인 1671년(현종 12)에 과거에 올랐는데, 이 해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두 아우와 한방에서 거처하며 효우가 독실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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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하당리 중앙부 지역에 위치하는 마을로 서쪽으로는 음달말·양지말, 북쪽으로는 뒷벌과 각각 접하고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 이 곳에 약방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음성군 남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당골의 아래쪽이 되므로 아랫당골 또는 하당동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음월촌·양촌·후촌·동양·당촌·가운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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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이의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는 고려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이문한(李文漢)이며, 그의 후손인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 이대영(李大榮)·봉승랑(奉承郞) 이중영(李仲榮)·문하시중평장사 이수춘(李守椿)을 각각 중시조로 하는 파가 있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9명을 배출했다. 대표적 인물로는 이종검(李宗儉)·이보흠(李甫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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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이규석은 고려시대 충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1907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京城中央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고, 충청북도 괴산군청에서 공무원을 시작하였다. 충청북도 도청 재정과장과 지방과장 등을 거쳐, 강원도 도청 문교사회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중앙 관청으로 진출하여 농림부양정국장(糧政局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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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이종달은 1927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서 출생하였다. 청주제일공립중학교(淸州第一公立中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45년 충청북도 음성군청에서 공무원을 시작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청 서무계장을 거쳐, 1954년에는 충청북도 괴산군청 농정계장을 역임하였다. 1955년부터 충청북도 음성군청의 농정계장, 사회계장, 서무계장, 행정계장, 농지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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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이종은은 1930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서 출생하였다. 1950년 청주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청주대학을 중퇴하고 한국미창(韓國米倉) 청주지점과 서울지점 경리계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부터 충청북도 음성군청 내무과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62년에는 충청북도 음성군청 내무과 기획예산계장에 이어 양정계장, 경리계장, 병사계장,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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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질서와 예절을 존중하고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진 어린이, 스스로 배우고 익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어린이, 기초 체력과 보건 위생의 철저한 지도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알뜰한 경제생활과 봉사의 실천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운 심성을 가진 어린이,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