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2리에서 정월 대보름날 서낭제 뒤에 아이들이 행하던 민속놀이. 가재줄다리기는 감곡면 사곡2리의 토광곡(土廣谷), 곧 톡실과 너른골에서 정월 대보름날 지내던 서낭제 뒤에 아이들이 행하던 민속놀이이다. 충청북도 지역에서는 음성군 감곡면 사곡2리에서만 행해지던 독특한 놀이인데, 가재줄다리기란 명칭은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이 마치 가재들이 서로 당기는 모습과 비슷...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수절한 열녀. 박호식(朴鎬植)의 딸이며 본관은 밀양이고 죽산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출가하여 시부모를 극진하게 봉양하여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었다. 남편 강진영(姜鎭榮)이 일찍 병을 얻으니 약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여 1년을 연명하게 했으나 끝내 죽었다. 이때 나이 스무 살인 박씨는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어린 아들이 있어 죽지 못하고 대신 아...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박대식은 1939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밀양이다. 음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3년 충청북도 재정과 근무를 시작으로 1964년 음성군 재무과에서 근무하였으며, 1965년에는 진천군 재무과에서 근무하였다. 1972년 음성군 지적계장을 역임하였고 1976년 지적기사(地籍技士)로 승진하였다. 1990년 지방지적기좌...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묵재(黙齋) 박경상(朴景祥)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함경남도 고원군 남흥리에서 태어났다. 1860년(철종 11)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870년(고종 7) 향리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동하여 포상을 진정하려 하자 부끄럽다며 진정서를...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밀양. 자는 경견(敬絹), 호는 입재(立齋). 정조 대의 명신 매곡 박한규의 6세손이다. 아들로 박석원과 박두원이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로 이주하였다. 15~16세 때 회당 윤응선에게 수학하여 학문에 탁월하였다. 일제의 학정에 세상의 뜻을 버리고 은거하여 후세...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박정시는 1916년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수태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대소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금왕면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1957년 처음으로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대소면장으로 피선되어 고향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1961년 퇴임하였다. 퇴임 후 독농가로 영농에 힘쓰다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살았던 효부. 본관은 밀양(密陽). 박씨는 계모 슬하에서 자라다가 14세에 출가하였으나 26세에 남편을 잃었다. 가난한 집의 과부가 되어 많은 시집 식구를 봉양하느라 크게 고생하였다. 친정에서는 개가하기를 권유하였으나 이를 물리치고, 유복 아이를 길러서 은진송씨(恩津宋氏) 가문에서 일생을 마친다는 뜻에 따라 어려움을 참고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송영학...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순국 열사 박세화를 기리는 사당. 본관이 밀양인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1895년(고종 32) 일본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자 분개하여 도사 윤응선(尹膺善)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었다. 그후 석방되어 음성읍 동음리 등지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찾아오는 문도(門徒)들을 가르치다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