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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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생골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저의 묘. 송저는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본관은 진천이다. 상산백 송인(宋仁)의 8세손이며, 낭장 송광도의 아들로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사인동(지금의 생골)에 살았다. 문과에 급제한 뒤 1422년(세종 4)에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지보성군사(知寶城郡事)로 있을 때 백학자[새매]를 바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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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 시호는 정간(貞簡). 정혁선(鄭赫先)의 아들이며 진주목사를 지낸 정동협(鄭東協)은 정석오의 손자이다. 정석오는 1715년(숙종 41)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문학을 거치고 경종이 즉위하면서 부수찬·교리를 지냈다. 1721년 30세 때 지평으로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 사대신(四大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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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석오의 묘. 정석오는 조선 영조 때 소론의 대표적인 인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이다. 1746년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였고, 1748년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로 청나라로 가던 중 병사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묘역은 약 600㎡로, 묘비, 문인석, 망주석, 상석 등을 갖추었다. 비제(碑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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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공(聖功)이라 하다가 후에 회숙(晦淑)으로 고쳤다, 할아버지는 정혁선(鄭赫先)이며,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냈던 정석오(鄭錫五)이다. 1745년(영조 21)에 음보(蔭補)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5년 뒤인 1750년(영조 26)에는 광흥창수(廣興倉守)가 되었다. 이듬해 개령현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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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양순의 묘비. 정양순은 좌의정 정석오(鄭錫五)의 아들이다. 자는 성공(聖功)이라 하다가 후에 회숙(晦淑)으로 고쳤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1745년(영조 21)에 음보(蔭補)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1750년(영조 26)에 광흥창수(廣興倉守)가 되었다. 세자우익위(世子右翊衛), 군위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