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아직도 옷깃을 다시 만지게 하는 날씨이지만, 온돌방이라 그런지 추위는 별로 느끼지 못했다.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느낄 틈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갑산리의 근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권오성 할아버지의 시조인 안동권씨 문중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큰 관심거리였다. 동역 에서 만난 권오성 할아버지(77세)는 권씨 문중의 자손으로 현재...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응선(應善).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직 권익(權翊)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살았다. 음보로 기용되어 1590년(선조 23) 금산제원찰방,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역임하였으며 치적으로 비단을 하사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상주판관(尙州判官)으로 동래부(...
권오성 할아버지는 음성군 소이면 갑산2리 동역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소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할아버지는 혼자 독학을 하여 학력을 만들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군대를 다녀 온 후 줄곧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다가 정년퇴임 후 고향에서 노인...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익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의 본래 성은 신라 왕실의 후손인 경주김씨였다. 서기 930년 왕건의 고려군이 견훤의 후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겼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여 식읍으로 내림과 동시에 권씨...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1리에 속하는 동족 마을.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의 21대손 영풍군 권길(權吉)의 후손이 임진왜란 후에 소이면 갑산리에서 대대로 살게 되면서 안동권씨의 세거지가 되었으며, 갑산리 정자안 또는 정좌안, 동녘말이 안동권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상주 판관을 하던 권길(權吉)이 상주에서 전사한 후 덕고개 부근에 묘를 썼다. 후손들이 갑산리에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