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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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서 김세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세필의 일화」는 음성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 김세필(金世弼)[1473~1533]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김세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왔다. 그후 기묘사화 때 조광조가 사사되자 중종의 과오를 규탄하다 유춘역에 장배되었다가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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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에 간행된 조선 전기 문신 이자(李耔)의 시문집. 6대손 이도흥(李道興)과 족종손(族從孫) 영남백(嶺南伯) 이이장(李彝章)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유고(遺稿)를 수록하고 제가(諸家)의 문집(文集), 야승(野乘), 패설(稗說) 및 『인가고첩(人家古帖)』, 『충재일록(冲齋日錄)』 등에서 채록하여 4권 2책으로 편집하고, 새로 편집한 연보를 합하여 1754년(영조 3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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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세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 두문동충신 김자수(金自粹)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영유(金永濡)이고 아버지는 충주목사 김훈(金薰)이다. 어머니는 진천송씨로 군수 송학(宋翯)의 딸이고, 부인은 고성이씨로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아들은 김숙(金䃤), 김구(金瞿), 김저(金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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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15세손이다. 1920년 32세 때 맹동면장이 되어 주민들의 복리 증진에 힘썼다. 퇴임한 뒤 1940년부터 맹동초등학교 설립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임야와 전답을 학교 부지로 기증하였다. 또한 면소재지에 시장을 개설하였다. 가난한 학생을 위하여 해마다 2명씩 장학금을 지급하였으며, 육영 사업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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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을 시조로 하고 김준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의성김씨(義城金氏) 시조 김석(金錫)은 경순왕(敬順王)의 다섯째아들이자 왕건의 외손이다.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으며 이에 후손들이 본관을 의성으로 하였다. 의성김씨 가문의 조선시대 인물로 김안국(金安國)[1478~1543]은 연산군 때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와 전라도관찰사(全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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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풍림거사(楓林居士).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참판 이형증(李亨增)의 손자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부인은 인천채씨로 채수(蔡壽)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이후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어, 천추사(千秋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