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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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역사. 고대 말기 지방 호족의 성장으로 통일신라가 분열되면서 시작된 후삼국시대에서 음성 지역은 서기 900년경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에 예속되었다. 그후 폭정을 일삼던 궁예가 쫓겨나고, 서기 918년 왕건이 여러 지역 호족들을 규합하고 인심을 수렴하는 데 성공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음성군이 속한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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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망이산에 있는 전통시대의 통신 시설. 망이산 봉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망이성은 충주목 관내에 속하며, 동으로 음성의 가섭산에 이어지고, 서로는 경기도의 죽산 검단산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역시 망이성 봉수는 충주목에 소속된 봉수로서 동으로 음성현 가섭산으로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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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는 동일 혈연 집단. 성씨에서 성(性)은 혈연관계를 나타내며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본관·관·관향이라고도 한다. 음성 지역에는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성씨를 가진 씨족이 지속적으로 이주하여 와서 살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토성(土姓)으로 박(朴)·채(蔡)의 두 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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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따라서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음성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면 용성리에서 석영질 암석으로 만든 찍개와 긁개, 밀개 등의 연모가 출토됨으로써 음성 지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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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설치된 통신 및 교통 제도. 역원(驛院)은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이라고도 하였는데, 신라 소지왕 때인 487년(소지왕 9) 처음으로 우역(郵驛)이 설치되었다. 그 뒤 통일신라시대 이후 9주(九州) 5소경(五小京)이 설치되는 등 지방 제도가 확립되고 중앙 관리의 지방 출장 및 상인과 여행자의 왕래가 증가함에 따라 그 기능이 활발해졌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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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망이산 일원에 축조된 고대 국방 시설. 그간 봉수대로 알려져 왔으나 1980년 단국대학교 학술 조사단에 의해 고구려의 남진 기지로 쓰인 산성으로 추정되었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주로 조선시대에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록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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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신라 경덕왕 16)에서 1895년(고종 32)까지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음성현의 지명으로는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의 향교말과 감원역에서 유래한 역말 등이 남아 있고 음성향교가 아직 현존하고 있지만 음성현시대의 유적과 유물 등은 거의 사라졌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확대된 영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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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음성군의 역사. 조선 초기 음성 지방은 고려의 지방제도와 같이 충주목에 속한 4속현(영춘·제천·음성·연풍)의 하나였다. 음성현은 1413년(태종 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현감을 두었으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충주 제천에 이르기까지 7리, 서쪽으로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