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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및 성장과정 - 커서 뭐가 되려고 그렇게 총기가 좋으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E020602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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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순 할머니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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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순 할머니 댁 평면도

용대동에서 노래를 제일 잘한다고 마을 분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 ‘전라도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마을로 찾아갔다. 강당말 입구에서 넓게 퍼져있는 주목밭을 지나 도보로 10분 정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용대동이 나온다. 제일 먼저 보이는 파란색 대문집에서 할머니 댁을 물어보자 ‘바로 뒷집’이라고 알려주었다.

전라도 할머니를 처음 보고 ‘저렇게 작고 갸날픈 체구에서 어떻게 노래가 나올까’하고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의 노래를 듣기 위해 찾아 왔다고 하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노래 하나 해줘?”하며 사기가 충만한 모습으로 대답하였다. 이어 “내 이야기 하면 끝도 없어요. 그때가 이 세상만 같으면 이런 데로 시집 안와요. 소리로 나갔지.”라며 시대를 잘못 태어난 끼 많은 전라도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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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 뭐가 되려고 그렇게 총기가 좋으냐

강정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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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순 할머니

는 1929년에 순천군 황전면 금평리 동주골, 일명 ‘지리산 빨갱이터’에서 태어났다. 황전면과 구례 사이에 있는 찬수강과 기차역이 보이는 곳이다. 아버지 성함은 진주강씨, ‘강문경’씨이고, 어머니는 순천 태생으로 ‘순천김씨’이다.

“입구 있으면 집에서부터 뺑 둘러서 저 입구까지 병풍 딱 쳐 놓은 것 마냥, 돌이 하늘 끝까지 닿은 마냥, 꼭 병풍 쳐 놓은 것 마냥. 거기서 이렇게 들어오면 우리 동네. 거기서 한참 들어가면 한복판에서 물이 막 개울물 마냥 떨어지고, 그 밑에는 한강마냥. 그래가지고 그 옆에다가 아주 놀이터를 잘 지어놨어요. 와서 놀다 갈 사람 놀다 가고, 자고 갈 사람 자고가고, 방도 들여놓고.”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에 살아서인지, 마을 사람 모두가 풍류를 즐겼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동네잔치를 벌이고, 잔치 때면 마을 반장과 회장들이 술을 담궜다. 그리고 다 같이 폭포로 가서 노래를 부르고 물놀이를 즐겼다. 경치가 좋아 입소문을 타고 서울에서도 많이 놀러 왔었다. 어느새 5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시절이 생생히 떠오르는 듯 잠시 추억에 잠겨 있다가 “여기는 놀지도 몰라.”하고 말하였다.

어릴 때 마을에 소리를 가르치는 ‘갈보’들이 들어왔었다. 친구가 강정순 할머니에게 “소리 잘하는 실력 썩히지 말라”고 해서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손길 한번만 잘못 넘어가도 회초리로 때렸는데, 어쩌다 한번 맞고 그 뒤로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맞은 것보다 아버지가 아시는 날에는 “양반이 어디서 그런 걸 하냐”고 쫓아낼 것만 같아서 더 배우러 갈 수가 없었다. 노래를 굉장히 잘해서 동네 할머니들에게 큰 귀여움을 받았다. 틈만 나면 불러서 이것저것 흉내 좀 내보라고 하였다.

“노인네들 명절 때 놀면 애들 시켜서 나 데리고 오라고 해서, 왜 그러냐고 하면 ‘아이고 니가 와 소리를 해야 시간 간 줄 모르고, 때 가는 줄 모른다.’고. 극장에서 가서 보고 오면 오늘 와서 그 할머니들한테 그 흉내를 다 냈어. 그 할머니들이 ‘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렇게 총기가 좋으냐.’고.”

아버지가 학자여서 말을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글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몇 년에 한 번씩 집으로 오셨는데, 아버지 앞에서도 흉내를 잘 냈다.

“아버지가 몇 년에 한 번씩 집에 오셨는데, ‘나 어제 지리산에 가서 극장가서 보고 온 거 내 흉내 내 아부지?’ 아부지, 어머니 앞에서 흉내를 내면 엉덩이를 토닥거리시면서 ‘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 라고 그러니? 어떻게 한번 본 걸 죄 그렇게 흉내를 다 내니.’ 그래도 밖으로 구경 가거나 하는 건 못하게 하더라고.”

총기가 좋아서 한번만 보고 들으면 다 기억을 하고 흉내도 곧잘 내었다. 슬픈 부분에서는 실제로 눈물까지 흘리며 흉내를 냈었다. 마을 사람들이 “뭐가 되려고 한번 듣고 한번 보면 다 배우냐”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면서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그때가 이 세상만 같으면 이런 데로 시집 안와요. 소리로 나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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