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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지게 받쳐놓고 ABC를 배운 사람이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E020403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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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 받쳐놓고 ABC를 배운 사람이야

할아버지는 8살 때 사정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일정 때여서 2학년까지밖에 못 다니고 6·25가 벌어졌다. 집이 워낙 가난해서 더 이상 진학도 못하고 진천 외가댁에 가 있다가 고등국민학교가 생기면서 3학년으로 들어갔다.

“고등국민학교 입학을 하는데 제 날짜에도 못가고. 국민학교 나온 학생들하고, 나는 4년을 놀았으니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죽자사자, 지게 작대기 받쳐놓고 에비씨디를 배운 사람이야, 땅바닥에 써놓고. 애들도 얼마 안 돼, 대개 읍내에 생겼었어. 36명 정도. 딴 사람 한 달을 배우고 늦게 들어갔어. 참 웃겼지. 열심히 하는 거지. 한 4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지게만 졌으니깐. 에이 놈 것 1등 한다고. 그래서 거기서 1등을 한 겨. 1학년 1등을 한 겨. 가만히 보니깐 웃기더라고? 4년이 넘었는데 거기서 1등을 하니깐.”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공부가 하고 싶어서 지게를 지면서도 알파벳을 외우고, 결국 더 많이 배운 학생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면서 들뜬 목소리로 자랑을 하였다.

고등국민학교를 다니다가 진천에서 음성으로 돌아오면서 음성고등국민학교를 다니기 위해 재학증서를 가져왔는데, 당시에는 재학증서를 먹으로 써줬는데 ‘1’자를 쓴 걸 긁어내고 ‘2’자로 고쳐서 2학년으로 다녔다. 남들보다 4년이나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졸업하고 싶어서였다.

“잊어버리지도 않아. 애플 있을 거야, 애플. 사과. 1학년 그거 에비씨디 배운 놈이 2학년에 갖다 넣으면 뭘 알아. 2학년으로 들어가자마자 시험을 보는데, 구경도 못한 게 나오는 데 뭐를 햐. 그려 안 그려? 생각해 봐. 그냥 무조건 하고 빵 하나에 젓가락 두개씩. 3학년으로 올라가서 검정고시를 보러 갔는데 뭘 알아야 검정고시 합격을 하지. 고등국민학교 애들이 공부를 못했어. 선생들이 시험평가문제를 내줬는데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하고 무조건 외운 겨. 그래서 영어 100점, 국어 100점해서 평균 87점으로 올랐어. 허허허허. 그게 공부여? 생각을 해봐. 아니 글쎄, 뭐가 뭔지도 모르고 미련하게 숙맥 같이 한 겨.”

3학년에 올라가서 검정고시를 보는데 될 리가 없었다. 그때 교장선생님이 같은 종씨 할아버지였는데, 그 분을 찾아가 고등학교에 넣어 줄 건지 안 넣어 줄 건지 따졌다.

음성고등학교를 들어가 첫 시험을 봤는데 남들에 비해 4년이나 늦게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석차가 30등 안쪽으로 나왔다. 중학교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1학년 때는 실장을 못 땄지만 새벽밥 먹고 고갯길을 넘어 다니면서 노력하여 2학년에 올라가서는 실장을 했다.

“세상에 머리 나쁜 놈이 어딨냐는 겨. 하면 돼.”

할아버지는 무조건 하면 되는 거라며 몇 번을 강조하였다.

방학이 되면 가출을 했다. 방학이라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공부를 못할 것 같아서 여러 번 도망을 가서 남의 집 심부름을 해주며 공부를 했다. 할아버지는 그때를 회상하며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눈빛으로 “방학 때 내빼다 붙잡혀 오고 그랬어. 재밌었어” 한다.

3학년 여름 방학 때 청주로 다니면서 해군 시험을 봤다. 고등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3학년이 되자 영장이 나왔다. 그 당시에는 군대에 가면 마을에서 조금씩 돈을 걷어 주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이 갖고 싶어서 그 돈으로 남은 학년 수업료를 냈다. 그래서 졸업장은 있지만 졸업사진은 없다. 군대에 가서도 공부 욕심은 줄어들 줄 몰랐고, 배를 타면서 진해에 있는 해양대학교 분교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입학원서만 내고 등록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국민학교 때부터 지게 지고 일을 해서 자녀들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내 새끼는 절대 일 안 시킨다고, 그래서 우리 애들 일 하나도 못 햐. 애들이 나오면 방학 때 일요일날 나오면 너 임무가 뭐야? 공부, 너 그것만 해. 일은 아버지 죽고 없으면 해라” 남들은 편하게 공부만 했는데 할아버지는 가난해서 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는 그런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식들을 다 대학교까지 보냈다.

“머리 나쁜 놈은 없어. 하기 싫어서 못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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