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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D020601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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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농사

병암1리는 오늘날 뚜렷한 주산업이 없이 일반적으로 벼농사와 밭농사로 고추, 콩, 참깨, 인삼 등의 농사로 경제적 생활을 하고 있지만,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참외농사가 주산업이었다. 음성 생극 참외 하면 알아줄 정도로 경작을 많이 하고 참외 맛도 뛰어났었다. 이진말을 비롯한 이 지역 사람들은 참외농사를 지어 생활을 하고 자식들 공부도 시켰을 정도로 참외농사를 많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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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욱 할아버지

병암1리의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는 이진말에서의 참외농사의 시작과 규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내가 딴 사람들에 비해 늦었지. 늦었는데 내가 한 가지가 73년도부터 했어요. 73년도부터 해서 한 이십년 했으니까 아마 90년도까지 한 거 같아요. 한 20년까진 하고서 힘이 달리니깐 못했지. 이 동네 참외 한 사람이 거의 한 반은 했었어요. 그때 참외 한 사람들이 한 대략 한 열댓 가구 될 거에요. 아마. 땅 좀 가진 사람들은 거의 다 했으니까. 그때는 마을 가구 수가 40호가 넘었었어요.”

이렇게 시작한 이진말의 참외농사는 이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산업이 되었다. 이진말 참외농사의 경제적 규모와 혜택에 대해 오덕욱 할아버지는 “참외농사 해가지고 참 많은 혜택을 봤어요. 아이들 교육문제 공부를 순전 참외 때문에 가르친 거요. 따른 데서는 돈 나올 데가 없잖아. 지금 말하면 특수작물이지. 참외가 저그 애들 그래도 8남매에서 대학교 반을 가르쳤으니까.” 했다.

이렇듯 이진말의 참외농사로 이 마을 사람들이 먹고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에 대해 오덕욱 할아버지는 “참외로 먹고 산 거죠. 일 년 참외 하면 그때 수확이 딴 농사의 배 이상 나왔으니까. 돈이 그래도 나오고 하니까 현금 거래가 막 되니까 애들 가르치는 데 큰 도움이 됐지.”라고 하였다.

또한 농사를 지은 참외의 판로에 대해서 오덕욱 할아버지는 “서울 가락동 시장이 없구 그때는 용산시장 서울청과. 저기 지금도 서울청과가 지금 용산 저기 전자상가 있는데요. 그때 시장터에요. 용산시장 과일 시장에서 거래되었지. 또 거기 시장사람들 상인이 여기 와서 샀어.” 하였다.

밭떼기 즉 포전 매매는 하지 않았으며 박스 즉 큰 박스로 포장을 해서 팔았다고 하면서 “밭떼기는 안 팔고. 싹 따서 싸놓으면 한 박스 얼마 이렇게 해서 팔아먹는겨. 그래서 진짜 애들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었지. 큰 박스가 지금 이런 참외 박스보다 크지. 지금 개수로 웬만한 거 한 주먹만 한 거 육십 개씩 들어가고 그랬었지. 우리는 큰 가구박스가 섬유박스거든. 그 박스로 할 적에는 한 박스가 가져가면 보리쌀 한 짝 값이 나왔었지. 그때 시절로.” 하였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참외농사를 얼마나 지었는지 여쭈니 규모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도 적어도 천 평은 했으니까. 참외를 최고 많이 딸 때는,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일제 구가네 구박스래서 원래가 컸어요. 그건 뭐 한 박스 웬만한 장정도 두 개를 못 져. 하도 커서. 그런 후 박스 크기가 줄어 가지구서 박스가 나오고서 보통 딸 때는 칠십 박스로 딴 겨.”

병암1리의 참외농사에 대해 오덕욱 할아버지가 들려준 참외농사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묘 키우기

참외 씨를 묘판에 부어(뿌려)놓고, 참외 부어서 어지간히 클 때쯤이면 호박씨를 넣는다. 대목이란 호박이 나와. 대목인 호박 줄기에 참외 접을 붙힌다.

2) 묘 접붙이기

호박에다 참외 접을 붙여. 그리고 나서 하우스에 심고, 키운다.

3) 밭에 정식하기

키운 후 4월 20일경 밭에 정식을 한다. 밭에 정식을 하면 땅바닥에 비닐을 깔고 위에는 덧내 씌우고. 비닐 터널을 씌우고 기르지 시작한다. 5월 10일경 넘어서 비닐을 벗긴다.

4) 참외덩굴 순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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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덩굴 순치기

참외덩굴이 쭉쭉 뻗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순치기 시작한다. 순치기에 대해서 오덕욱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직접 그대로 옮겨 놓는다

“밭으로 나가면 밑으로 비닐을 깔고 위에는 덧내 씌우고. 이렇게 해서 제를 시작하지 인자 5월 10일경 넘어서 벗긴다구. 그때는 덩굴을 뻗으니까. 그때는 벗겨서 제 비닐을 깔고 전부 일꾼들 다 하지. 그럼 그때부터 순치기 시작하는 거야. 그때 접순이라고 해서 첨에 이렇게 나온 걸 대순인데 어떻게 보면 부목(父木)이라고 그랴. 이제 아버지 덩굴이지. 여기서 다시 덩굴이 나오는데 나오는 걸 자손, 자목(子木)이라고 하지. 아들 덩굴. 그래서 그거 나오면 딱 세 덩굴만 키우는 겨. 세 줄만 키우는 겨. 아부지 덩굴에서 순 나온 거. 그것이 어느 정도 한 접목은 한 열두순 이상 나가야 해. 열두순 열세순까지는 나가야 해. 처음에 한 세 순정도 짤라 치워주지. 거기서 손자덩굴이 나오는겨. 아들 나서 손자가 또 나오거든. 한 세손 나면 그때부턴 덩굴을 키우고선 덩굴을 봐가면서 한 일곱 내지 아홉 내지 가서 잘라버린다고. 더는 못나오게 그때부터 손자덩굴이 여섯 개 나온 걸 또 못마땅한 건 짤라 치워. 한 다섯 덩굴 정도 키우지.”

5) 참외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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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달기

참외달기에 대해 오덕욱 할아버지는 “많이 달리면 열 개도 넘게 달리는데. 그러니까 세 마디에서 다섯 개를 둔다고 보면 열다섯 개란 말이여. 열다섯 갠데 한 개에 한 개씩만 두지 그게 다 안돼. 시원찮은 건 버리고. 잘 달린 적은 열다섯 개씩 달리고 이렇게 나오죠.”라고 하였다.

6) 참외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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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수확

참외의 첫 수확은 6월 경에 한다. 수확 때가 제일 신나는 때로 가격이 맞으면 장사꾼들에게 주고 그렇지 않으면 서울로 올려보내서 팔았다고 한다.

“키워서 저기 오월 한 초순에 비닐을 벗기면 그때 가서 참외가 맺히고 맺힐 적에 비닐을 벗기고 유월경에 수확 봐요. 그때부터 첫 수확을 시작해요. 그럼 뭐 유월한 중순경 되면 대표적인 수확을 보기 시작하지. 그때는 밭이 노랗지. 그때는 제일 신나지. 그래서 한참 따서 장사꾼들 와서 가져가려고 하면 가격 맞으면 주고 안 맞으면 서울로 올려 보내고 그러거든.”

병암1리의 주 생업이었던 참외농사가 1990년대 이후로 쇠퇴되어 갔다. 쇠퇴되어 가는 과정에 대해 오덕욱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참외농사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왜 그렇게 됐느냐면, 하도 하다 보니깐 우리네 힘도 딸리지만 이상하게 물참외가 생겨. 상품 질이 떨어져. 하우스 재배가 아니고 노지 재배는 힘이 들어져 버렸어. 이상하게 비만 오면 물참외가 전부 생기는 겨. 상품 가치 없는 물건이 생기는 겨. 물건 자체는 좋아 보이는데 물에 담거 보면 물먹은 참외는 제 가라앉어. 무거워서. 맛도 달지를 않어. 맛도 속이 잘라보면 속이 상하는 거야 그냥. 그러니깐 참외농사가 그때부터 사양길로 접어든 거야. 그래 가지고선 그래서 접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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