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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안 스님을 부모처럼 여기며 살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C020305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고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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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스님 일대기 06

희원 스님은 오랜 병으로 약을 먹다 보니 위도 좋지 못할 뿐더러 살이 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의사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프게 지낼 때에는 열아홉 살까지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소원이 열아홉 살까지 사는 것이 소원이었었어. 너무 아파가지고 내가 죽는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에 열아홉 살이면은 엄청 어른인 줄 알고, 열아홉 살까지만 살아봤으면은 소원이 없겠다고 했어. 열아홉 살 되니까는 스물한 살까지만 살아봤으면 했는데, 지금은 내가 육십이 다 돼 가잖아.”

스님은 일찍 부모님 곁을 떠나 명안 스님을 부모님처럼 여기며 살아왔다고 한다.

“나를 그렇게 살려주려고 스님이 나를 붙잡고 울기도 많이 울고, 참 나는 부모한테 받아보지 못한, 부모한테 받지 못한 사랑을 스님이 다해서 날 살려주신 거야. 내가 항상 스님한테 생명의 은인, 부모, 그렇게 의지하면서 여태까지 살아왔거든, 작년 여름에 갑자기 돌아가셨지만.”

희원 스님은 작년에 돌아가신 명안 스님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명안 스님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자비심이 누구보다 뛰어난 분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명안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온 사리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명안 스님의 사리는 연꽃 봉오리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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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스님이 가지고 있던 신문기사

“어느 누가 그래도, 거지가 차비가 없어도 먼저 주고 보는 그런 분이었어. 이 분이. 이루다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보통 분이면 저런 사리가 나올 수 없는 거거든.”

희원 스님은 어릴 때부터 미타사의 주지 스님이 되기까지 힘들고 고단했던 삶의 발자취에 대해 기억을 되짚어 보며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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