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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800
한자 趙惟顔
영어음역 Jo Yuan
이칭/별칭 탁이(卓爾),삼외옹(三畏翁)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병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성별
생년 1605년(선조 38)연표보기
몰년 1672년(현종 13)연표보기
본관 한양(漢陽)
대표관직 호조참판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한양. 자는 탁이(卓爾), 호는 삼외옹(三畏翁). 아버지는 조변(趙卞)이다.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가평(가래들)에서 출생하였다. 황실해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성품이 온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향을 피우고 아버지 대신 죽기를 하늘에 빌었으며, 대변을 맛보아 가며 아버지를 정성껏 간호하였다. 아버지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고 수혈하여 3년을 더 연명하게 하였다. 부친상이 끝나기 전, 어머니 또한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수혈하였다. 모친상을 당하여서는 잠시도 묘소를 떠나지 않고 시묘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을 당하여 90세의 할머니를 등에 업고 깊은 산 속으로 피난하였다. 피난 가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가례(家禮)대로 행하였으며 옛 성현의 글을 벽에 걸어 놓고 매일 반성하며 수행하였다. 자식을 잃고 화병이 난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8년 동안 시묘하는 데 한결같았다.

상을 마친 후, 후천(朽淺)가에 작은 집을 지었다. 이름은 군자가 두려워 할 세 가지인 천명(天命), 대인의 말, 성인(聖人)의 말을 가리키는 ‘삼외(三畏)’로 짓고, 그곳에서 성현의 글과 가언(嘉言), 선행을 읽으며 여생을 보내다 1672년(현종 13)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723년(경종 3) 향원(鄕員) 일동이 조유안의 효도와 학행을 칭송하자 백여 명의 선비들이 합사하여 공의로 조정에 상계(上啓)하였다. 이에 호조참판에 증직되고 한원군(漢原君)에 추봉(追封)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는 1724년(경종 4) 5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가평에 세워졌다.

내용은 ‘효자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한원군조유안지문숭정기원무진지후구십칠년갑진오월일명립(孝子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官漢原君趙惟顔之門崇禎紀元戊辰之後九十七年甲辰五月日命立)’이다. 1725년(영조 원년) 이세근(李世槿)이 「정려기문」을 찬하였다.

[묘소]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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