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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468
한자 甫川場
영어의미역 Bocheon Markets
이칭/별칭 원남장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폐시된 재래시장
관련문헌 『음성지명지』|「조선후기 음성지역 장시(場市)연구」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개시되다가 1982년 폐시된 재래 시장.

[개설]

보천장의 1938년 거래액은 350,868원이었고, 1976년에 들어서는 1일 거래액이 69만 원, 일반 이용자 90명, 고정 상인 8명, 이동 상인 15명 등으로 나타날 정도로 쇠퇴하게 되었다. 보천장은 1980년 시장 면적이 4,455㎡이었으나 점포수는 9개에 불과하였다.

[형성 및 변천]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가자에 송병표의 무덤이 있으며, 송병표와 관련된 보천장의 유래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주막촌인 보천점이 번성하여 큰 가촌을 형성하게 되고 보천장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인 1885년(고종 22)에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에서 태어난 송병표는 재력가로서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보천주막을 중심으로 시장이 있으면 큰 이득을 볼 것으로 생각하고 시장을 세울 목적으로 보천에 시장이 들어설 것이라고 소문을 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시장이 없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자 행상들을 붙잡고 술대접을 하면서 보천에서 물건 거래를 부탁하였으나 실패하자, 1914년에 엽전 50량을 들고 보천주막으로 들어가서 행상들에게 술대접을 하고 주막지붕에 올라가 엽전을 뿌렸다고 한다. 이후 보천에 가면 술과 돈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어 보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보천장은 조선 후기의 문헌자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보아 소규모의 물물교환 형태의 장시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20년대 충북선의 개설로 보천역이 생기면서 교통이 편리해져 1920년대 후반부터 보천장이 번성한 것으로 보인다. 보천장은 1926년에는 5일과 10일에 개시되었으나, 1938년부터는 4일과 9일로 변경되었다. 1964년에는 보천장에서 원남장으로 개칭되었으나 보천장이란 명칭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보천장은 1960년대까지는 활발하게 유지되어 오다가 충청북도 청주시와 충청북도 음성군 간의 도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음성장에 흡수되어 쇠퇴하였다. 1980년대 초 보천장에는 4~5명의 행상만이 모여들었으며, 그 결과 1982년에는 폐시되었다.

[위치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주위에는 송오리현, 백마령, 행치 등의 고개가 있으며, 과거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에서 음성군 음성읍을 거치지 않고 직접 괴산군 괴산읍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었다고 한다. 음성장과의 거리는 30리, 청안장과의 거리는 40리, 괴산장과의 거리는 50리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과거 이러한 지형적 조건과 도로망으로 인하여 보천장이 개설되었다고 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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