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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076
한자 趙潤湜
영어음역 Jo Yunsik
이칭/별칭 조중악(趙仲岳),송평(頌平),개옥(介玉),축숭(祝嵩)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박종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
성별
생년 1894년 9월 9일연표보기
몰년 1950년 7월 15일연표보기
본관 순창(淳昌)
대표경력 국민군 창설 준비위원장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94년 9월 9일에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서 조태영(趙泰永)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서울시 종로에서 살았다. 1950년 7월 15일 6·25전쟁 시에 폭탄에 맞아 57세로 전사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있다.

[활동사항]

조윤식은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독학하면서 주권 회복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대성학교를 거쳐 1916년 와세다대학 정치과를 졸업한 후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손문, 장개석과 친교하며 일본이 한국을 불법 강점하고 아시아를 제패하려는 야욕을 분쇄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고는 중국군 군대에 자원입대하였다.

중국군 보병 및 포병 군관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1922년 중국 보병군관학교 교관이 되어 중국군 양성에 노력하였다. 1926년에는 소장으로 진급하여 중국군 제2지대 사령관이 되었고, 1929년에는 중국 서북군 작전참모, 1933년에는 항일독립 제3로군 사령관으로 복무하였다.

1934년부터는 중국 육군대학 교관으로 근무하며 장교 양성에 노력하였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군 지휘관으로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여 광복군 전신인 민병대를 조직하여 사령관이 되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태평양 일대와 동남아 방면으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중국 방면에서의 일본 병력이 약화하는 틈을 이용하여 반격, 승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와서 국민군창설준비위원장으로 활약 중에 이승만의 천거로 경기도 경찰부장이 되었으나 사퇴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제4기 특별반을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령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여, 김포지구에서 북한군과 싸우다가 폭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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