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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884
한자 張忠範
영어음역 Jang Chungbeom
이칭/별칭 효칙(孝則)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종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의병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성별
몰년 1597년연표보기
본관 단양(丹陽)
대표관직 이조참판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가계]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효칙(孝則).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며, 부인은 청풍유씨(淸風劉氏)이다.

[활동사항]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채유종(蔡有終), 조웅(趙熊) 등 여러 사람과 의병을 일으켜 5백여 명을 모아 6년간 싸우면서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하였다. 1597년(선조 30) 음성의 생골 전투에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절(殉節)하였는데, 시신을 찾지 못하여 의관으로 허묘(虛墓)를 만들었다.

[묘소]

묘소와 충신문 등이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산소날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3등에 녹권(錄券)되고, 1857년(철종 8)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철종은 “창의(倡義)하여 순절한 충(忠)은 일월(日月)을 관통하도다”라고 하였으며, 정려를 내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충신문을 세웠다.

1860년(철종 11)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에 가증되었고, 1870년(고종 7)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정려문(旌閭門)이 건립되었다. 광산 김재현(金在顯)이 정려기를 찬술(撰述)하고, 김학수(金鶴洙)가 신도비명, 김구수(金龜洙)가 묘지명, 최병심(崔秉心)이 유허비문, 이은상이 기념비문 등을 각각 찬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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