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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721
한자 朴世和
영어음역 Bak Sehwa
이칭/별칭 연길(年吉),의당(毅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경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함경남도 고원군
성별
생년 1834년연표보기
몰년 1910년연표보기
본관 밀양
대표관직 영능참봉

[정의]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묵재(黙齋) 박경상(朴景祥)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함경남도 고원군 남흥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860년(철종 11)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870년(고종 7) 향리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동하여 포상을 진정하려 하자 부끄럽다며 진정서를 빼앗아 불살라 버리고 안변으로 이사하였다. 다시 충청도 청풍 장선리로 이사해 서당을 세워 많은 학자를 길러냈다.

1882년(고종 19) 영능참봉을 지내다가 2년 뒤 사직하고 태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자 도사(都事) 윤응선과 함께 문경에서 창의하여 일본군과 싸우다가 체포되었다. 그 후 석방되어 지금의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에서 학문에 전심하였다.

1910년(순종 4) 7월 한일합방이 되자, “나라도 망하고 도(道)도 망하였으니 장차 어찌할고?”라는 글로 결별 인사를 한 후 음식을 전폐하다가 단식 23일만에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 창동에 있는 아버지 묘 아래에서 순절하였다.

[학문과 사상]

영남에 있던 전우(田愚)와 성리학에 관해 많은 토론을 하였으며,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과 영향을 주었다.

[저술 및 작품]

유작으로 『의당집(毅堂集)』4책과 『육례홀기(六禮笏記)』1책이 있다.

[묘소]

원래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새터에 있던 것을 1932년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 오리나무골로 이장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을 추서받았고, 1964년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충룡사가 세워져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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