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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 1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개최한 통일 궐기대회.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는 3·1절 제42주년을 맞아 통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고 대구 시민의 통일 의식을 고양할 목적으로 민족통일경북도연맹이 개최한 통일 궐기 대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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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 강대휘(姜大徽)[1918∼?]는 1918년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위천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 평양 기성 의학 강습소(箕城醫學講習所)에서 3년을 수료한 후, 1942년 조선 총독부 의사 시험에 합격하고 대구에서 내과 의원을 운영하였다. 6·25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2년 군대에 입대하여 약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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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통일운동가. 강신용(姜信用)[?~?]은 광복 후 언론인으로 종사하면서 평화와 자주의 민족 통일에 공감하여 경북민족통일연맹에 가입하여 교섭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3·1 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를 개최하여 가두시위를 전개하고, 2대 악법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4·19혁명 시기에 언론 활동과 민족·민주운동을 전개한 민족통일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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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강왕수(姜枉守)[1935-?]는 4·19혁명 시기 민주주의민족청년동맹 경북도연맹 사건을 일으킨 사회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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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대구에서 결성된 진보적 청년운동 단체. 민주민족청년동맹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6월 12일 부산에서 설립된 진보적 청년운동 단체이다. 부산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이종률의 지도 아래 결성된 민주민족청년동맹은 자주적 통일과 진보적 민주 체제를 지향하는 청년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민주민족청년동맹의 지역 조직인 경북 민주민족청년동맹은 1961년 1월 7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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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쿠데타 세력이 사회당 경북도당 간부들의 사회운동과 통일운동을 반국가 행위로 규정하고 탄압하였던 사건. 5·16쿠데타 세력이 설치한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는 1961년 7월 12일부터 1962년 4월 27일까지 활동하였다.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는 전국 각지의 혁신계 인사들이 제2공화국 시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벌였던 일을 두고 반국가 행위로 규정하여 체포, 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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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0월 안경근, 안민생, 김성달 등이 결성한 통일운동 단체. 경북시국대책위원회(慶北時局對策委員會)[이칭 시국대책위원회·경상북도 시국대책위원회]는 4·19혁명 시기 통일운동을 목적으로 안경근, 안민생, 김성달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인 안경근은 일제강점기 김구를 보좌하면서 밀정 숙청 작업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고, 안민생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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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6월 대구에서 6·25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가족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하여 결성한 조직. 경북피학살자유족회(慶北被虐殺者遺族會)는 1960년 5월 30일에 결성된 경북지구피학살자 합동 위령제 준비위원회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경북지구피학살자 합동 위령제 준비위원회의 활동은 1960년 6월 9일 경북피학살자유족회 준비위원회의 발족으로 연결되었다. 경북피학살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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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8월부터 1961년 5월까지 진행된 경북피학살자유족회의 6·25전쟁 전후 대구 지역 피학살자 유해 발굴 사업. 경북피학살자유족회(慶北被虐殺者遺族會)는 6·25전쟁 전후 대구 지역에서 국가 권력에 의하여 희생된 피학살자의 유해 발굴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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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8월 20일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3가에 있던 경북피학살자유족회가 피학살자 합동 묘비 건립을 위하여 구성한 조직. 경북피학살자유족회 합동묘비건립위원회(慶北被虐殺者遺族會合同墓碑建立委員會)는 1960년 8월 20일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3가에 있는 경북피학살자유족회가 피학살자 유골을 수습하여 합동 묘비를 건립하기 위하여 경북피학살자유족회 안에 구성한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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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7월 28일 경북피학살자유족회 결성 이후 최초로 열린 합동위령제. 경북피학살자유족회 합동위령제는 이승만 정권 시절 불법으로 자행된 대규모 학살 사건에 희생당한 원혼을 위하여 분노와 동족애를 발휘할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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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6월 대구 지역에서 국민 보도 연맹 사건과 한국 전쟁 전후 양민 학살 사건의 경상북도 희생자 유가족들이 결성한 단체.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4·19 혁명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6·25 전쟁 전후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등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긴급한 주요 사업으로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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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이후 6월 대구 지역에서 한국전쟁 전후 양민 학살 사건의 대구 및 경상북도 희생자 유가족들이 결성한 단체.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정부 혹은 미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학살자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 회복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 목적은 결성대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에 잘 드러난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들은 좌익분자라는 이름으로 처형된 자의 유족이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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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대구에서 학생들이 교원노동조합을 지원하기 위하여 벌인 사회운동. 1960년 5월 7일 대구에서 대구초등교원노동조합과 대구중등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이어 5월 30일 경북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대구지구 및 경북지구 교원노동조합연합회는 교원노동조합의 합법화를 위한 투쟁에 집중하였다. 투쟁에는 교원의 지위 향상, 교원의 사회보장제도 확립, 교원의 신분 보장 등의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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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출신으로 4·19혁명 시기의 민주민족청년연맹 활동가. 권달섭의 아버지는 경찰관 출신으로 시월항쟁 때 좌익에 의해 피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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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권용직(權容直)[1915~?]은 1961년 사회당 경상북도당의 당무부장으로서 대구에서 이대악법반대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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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권중락(權重樂)[1908~?]은 4·19혁명 이후 대구에서 경북피학살자유족회 활동과 이대악법반대운동을 펼친 사회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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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사회운동가. 김경구(金駉九)[1920~?]는 사회당 경북도당의 당무위원으로 활동하며 대구에서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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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운동가. 김문심(金汶燖)[1912~1987]은 대구에서 교원노조를 결성하여 교육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대악법반대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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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시국대책위원회와 경북민족통일연맹의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통일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면서, 자주적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범시민운동단체의 성격을 가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회의의 결성을 적극 지원하는 활동을 벌인 민족통일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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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김소교(金小釗)[1926~?]는 사회당 경북도당의 국토통일위원장 및 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대구에서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세형(金世馨)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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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김장수(金章洙)[?~?]는 대구에서 교원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며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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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김현구(金鉉九)[1937~?]는 1937년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대학교 법과 3학년에 재학 중 경북피학살자유족회 대의원 및 대구유족회 청년학생위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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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발생한 양민 학살 사건. 한국 전쟁 중 남한 지역에서 진행된 양민 학살은 국군 및 미군, 인민군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남한에 의한 양민 학살은 인민군이 점령하였던 지역, 빨치산 근거지 일대, 전쟁 직후 비점령 지역 등에서 최소한의 법적인 심리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1949년 6월 5일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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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전후 달성군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 현장에 대해 조사·발굴한 사건. 한국 전쟁 전후 달성군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은 사형 선고라는 법적인 근거 없이 국가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 따라 양민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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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전후 대구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1960년 6월 결성된 경북피학살자유족회의 활동. 6·25전쟁 중 남한 지역에서 진행된 민간인 학살은 국군 및 미군, 인민군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남한 지역 민간인 학살은 인민군 점령 지역, 빨치산 근거지 일원, 전쟁 직후 인민군 미점령 지역 등지에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대구는 인민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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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동구 지역 민간인학살사건에는 국민보도연맹, 한국전쟁 발발 등이 주요한 배경이었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4월 좌익사상가 전향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인데, 1948년 12월 시행 공포된 「국가보안법」의 구체적 운용 대책으로 조직되었다. 한국전쟁을 전후 시기 국민보도연맹들에 대한 대량 학살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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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사회운동가. 두응규(杜應奎)[1913~1962]는 대구에서 이대악법반대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5·16군사쿠데타 이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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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 대구 지역의 경북고등학교에서 결성된 고등학교 최초의 통일운동 단체. 민족통일경북고등학교결성준비위원회(民族統一慶北高等學校結成準備委員會)는 1961년 4월 16일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전국학생민족통일전선 발기위원회 결성과 ‘통일 촉진 악법 반대 대강연회’가 열린 시점인 1961년 4월 20일 결성되었다. 민족계몽협회 경북고지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선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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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혁명 시기 안경근, 안민생, 김성달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민족 통일운동 단체. 민족통일연맹(民族統一聯盟)은 4·19혁명 시기 남북 교류, 평화통일을 목적으로 안경근(安敬根), 안민생(安民生), 김성달(金星達)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민족 통일운동 단체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인 안경근은 일제강점기 김구를 보좌하면서 밀정 숙청 작업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고 안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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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1월 10일 대구의 경북대학교 학생들이 통일운동을 위하여 결성한 단체. 민족통일촉진학생연구회(民族統一促進學生硏究會)는 1960년 9월 고려대학교의 전국대학생시국토론대회, 10월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정치학회 주최의 제5회 학생 토론회와 경북시국대책위원회의 발족, 11월 1일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연맹의 발기에 영향을 받아 11월 4월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학생 3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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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백규천(白奎千)[1915~?]은 1915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서 태어났다.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시국대책위원회와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자주적 남북통일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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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결성된 사회당의 경북 조직. 4·19혁명 시기에 대구에서 결성된 사회당 경북도당·대구시당은 혁신계 정당으로서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한 사회당의 정강·정책 실현을 목적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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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6월 대구에서 결성된 사회대중당의 경북 조직. 사회대중당경북도당(社會大衆黨慶北道黨)은 1960년 6월 15일 대구 구 국립극장에서 박기출·이동화와 대의원 825명 중 5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대중당경북도당 결성 대회’를 개최하였다. 결성 대회에서 이동화는 사회대중당을 “민주사회주의의 당이며, 노동자·농민·인텔리·중소 상공업자 등 광범위한 근로대중의 권익을 위하여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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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 거주하며 장면정권 시기 이대악법 반대 투쟁을 전개한 학생운동가. 성낙과는 1960년 청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에 입학하여 4·19혁명을 경험하였다. 1961년 청구대학교 2학년 재학 중 통일운동과 「한미경제협정」 반대 운동을 전개하자 장면정권이 이를 누르기 위해 「반공법」과 「데모규제법」을 시행하였다. 「반공법」과 「데모규제법」을 이대악법으로 규정하고 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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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신대영(申大永)[1922~?]은 1922년경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43년경 21세 때 도쿄외국어학교 말레이어과 제3학년을 수료하고 1945년 귀국하였다. 1946년 남선전기주식회사 사원, 신명여자중학교, 남산여자고등학교 교사, 대한비료공업주식회사 상무취체역을 지냈으며 1946년 12월에는 대한식량공사 사원으로 있었다. 2대악법[반공법,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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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민주화운동가. 신우영(辛佑榮)[?~?]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교원노조 활동을 전개하고 이대악법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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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신현달(申鉉達)[1923~?]은 1923년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사회당 경북도당 간부를 역임하며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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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할동한 민족통일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안경근(安敬根)[1896~1978]은 1896년 6월 10일 황해도 신천군 평라면 청계리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정의부(正義府)를 거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광복 이후 대구에서 자주적 남북통일을 전개하였다. 호는 석천(石泉)이고, 이관오(李冠五)·안사준(安士俊)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안중근(安重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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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민족통일운동가 안민생(安民生)[1911~?]은 1911년 황해도 신천군 평라면 청계리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한인 소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후 대구에 거주하며 자주적 남북통일운동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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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안잠(安潛)[1906~?]은 1906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태어났다. 1924년 대구 교남학교(嶠南學校)를 중퇴하고,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평화통일운동을 벌였다. 남북학생회담을 지지하고 성원을 보내며 자주적 남북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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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구성된 6·25전쟁 전후 대구·경상북도 지역 양민 집단학살 사건 조사를 위한 국회 특별 조사반.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의 양민 집단학살 사건은 6·25전쟁 이전에는 우익 반공 단체인 호림부대에 의하여 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이 자행되었다. 6·25전쟁 직후에는 달성1구와 가창 그리고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국가권력에 의하여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기결수와 미결수 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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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전후 전국적으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조사하기 위하여 구성된 국회 특별 조사반. 4·19 혁명 이후 국회에서는 6·25 전쟁 전후한 시기에 전국적으로 자행된 양민 학살을 조사하기 위하여 특별 조사반을 구성하였다. 이 특별반의 경북반은 주병환(朱秉煥)·윤용구(尹鎔球) 등 두 명의 국회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1960년 6월 2일부터 6월 6일까지 달성군 가창면과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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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대구에서 활동한 민주화운동가. 여학룡(呂學龍)[?~?]은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이소리에서 태어났다. 대서 교사로 근무하며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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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이자 정치인. 유한종(柳漢鍾)[1913~?]은 1913년 지금의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혁신계 정당과 사회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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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사회운동가. 윤식(尹埴)[1939~?]은 1939년 4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신진회(新進會)에 입회하고 간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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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이강립(李康立)[1915~?]은 1915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이대악법반대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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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 30일 대구 지역 노동단체들이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을 반대하여 결성한 단체. 이대악법반대경북노동단체공동투쟁위원회[이하 ‘경북노동단체공투위’]는 1961년 3월 30일 대구의 노동신문사에서 결성되어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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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 대구 지역 정당 및 사회단체들이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을 반대하여 결성한 단체.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공동투쟁위원회[이하 ‘경북정당사회단체공투위’]는 1961년 3월 대구에서 혁신계 정당 및 사회단체, 교원노동조합 등 11개 단체의 참여로 결성되어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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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 대구 지역 학생들이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을 반대하여 결성한 단체. 대구 지역 학생들은 1961년 3월 장면 정권이 통일운동과 정치운동 등을 억압할 목적으로 법제화를 시도한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반대 운동을 벌이기 위하여 이대악법반대경북학생공동투쟁위원회[이하 ‘경북학생공투위’]를 조직하였다. 이후 대구역 광장과 수성천 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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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 2일 대구에서 개최된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 반대 집회 및 시위. 1961년 장면 정부의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 시도에 대응하여 대구의 정당·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들이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노동단체학생단체공동투쟁위원회[이하 이대악법반대경북공투위]를 결성하고, 악법 제정 반대를 위하여 4월 2일 저녁 대구역 광장에서 이대악법반대대구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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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부터 4월까지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을 반대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전개한 사회운동. 대구의 이대악법반대운동(二大惡法反對運動)은 1961년 3월과 4월에 걸쳐 혁신계 정당·사회운동 단체·노동운동 단체·학생들이 전개한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을 반대한 운동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개되었다. 일명 ‘대구데모사건’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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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운동가. 이목(李穆)[1922~2015]은 1922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대구 지역에서 교원노동조합대구시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내며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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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민주화운동가. 이복영(李福寧)[1929~2007]은 1929년 12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에서 태어났다. 경북피학살자유족회 간부로 활동하였고, 민주화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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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이자 정치인. 이석준(李錫俊)[1926~1973]은 1926년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북면 탑정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혁신계 정당과 사회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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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 거주하는 4·19혁명시기 통일민주청년동맹 경상북도연맹조직부장으로 활동한 사회운동가. 이승춘은 1961년 3월 대구광역시에서 통일민주청년동맹 경상북도연맹의 결성에 참여하고 조직부장이 되었다. 장면정권이 시민, 학생들의 한미경제협정반대운동과 통일운동에 맞서 「반공법」과 「데모규제법」을 공포 시행하자 시민, 학생들은 이를 이대악법이라 규정하고 이대악법반대투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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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경북위원. 이용노(李龍魯)[1899~?]는 1899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참여하고 중국 베이징 한국독립군정보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경북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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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의(全義). 아버지는 이근영(李根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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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이원식(李元式)[1913~1978]은 1913년 2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한의사, 의사, 서지학자, 문화평론가 겸 저술가, 수학자, 에스페란토어 학자 등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이원식은 1922년 4월 1일 영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대구 수창공립보통학교[현 대구수창초등학교] 4학년으로 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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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 운동가. 이정상(李正相)[1911~?]은 1911년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상대리에서 태어났다.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사회대중당과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정당 활동과 자주적 남북통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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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사회운동가. 이효철(李孝哲)[1937~?]은 193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에서 태어났다. 대구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 재학 중 경북피학살자유족회에 참여하고 청년학생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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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일본 유학생 이용로가 상해 임시 정부 수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으킨 운동. 3·1 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 통치에 조직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민족 운동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임시 정부의 수립이 추진되었다. 임시 정부 수립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였다. 이때 이용로는 임시 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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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상해 임시 정부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서 시작된 이용로, 이봉로 형제의 독립운동은 제2차 유림단 사건으로 확대되었고, 해방 후 친일 반민족 행위를 청산하기 위한 반민 특위 활동을 거쳐 경북 피학살자 유족회 활동으로 이어져 한국 근현대사의 맥을 이루었다. 이용로(李龍魯)[1897~?]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도쿄[東京]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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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민주화운동가. 조영진(曺永鎭)[?~?]은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연천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교원노조 활동을 전개하고 이대악법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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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 최일(崔一)은 1960년 5월 사회 대중당에 입당하여 경북도당 선전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사회 대중당은 4·19 혁명 직후에 구 진보당계, 민주 혁신당계, 민족 자주 연맹, 민주 사회당계 등의 혁신 계열이 결집하여 만든 정당이었다. 1960년 6월 사회 대중당 공천으로 제3대 경상북도 도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하였다. 1961년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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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 대구에서 결성된 진보적 청년단체.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은 1961년 3월 12일 대구에서 결성되었다. 통일민주청년동맹 경북연맹의 위원장은 사회대중당 출신의 경북 도의원이자 통일사회당 경북도당 준비위원회 구성원인 최일(崔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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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3월 달성군 가창면에서 양민 학살을 자행한 육군 본부 정보국 산하 대북 침투 특수 부대. 호림 부대는 1949년 2월 25일 육군 본부 정보국 산하에 대북 침투 특수 부대로 창설되어 달성군 가창면에서 양민 수십 명을 학살한 것으로 1960년 국회 특별 조사반의 조사에서 규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