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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이주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재실. 경암재(景巖齋)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 태암(苔巖) 이주(李輈)[1556~1604]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이주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경임(景任), 호는 태암(苔巖)이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나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낙재(樂齋)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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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김문기와 김귀송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경의재(景毅齋)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순절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재실이다. 김문기는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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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립하여 운영한 교육기관. 낙육재(樂育齋)는 1721년(경종 원년) 경상감사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대구읍성의 남문 밖[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설치한 학교이며, 경상감영이 운영하였다. 경상도 내 각 지역의 수령들로부터 추천받은 유생들을 감영 앞에 모아 선발시험을 치른 뒤 30명을 뽑았고, 두 개 반으로 나누어 1개월씩 번갈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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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존유를 시조로 하고 구회신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 때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역임한 구존유(具存裕)이다. 구존유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성(綾城)에 세거한 이족(吏族)이었다. 부인은 몽골의 침략으로 남송(南宋)이 망할 때 고려로 망명하여 능성에 정착한 주잠(朱潛)의 딸이다. 주잠은 주자(朱子)의 증손자로 한림학사(翰林學士)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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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을 시조로 하고 우익신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단양우씨(丹陽禹氏)의 시조는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후손으로 알려진 우현(禹玄)이다. 우현은 고려에 건너와 단양에서 살면서 1014년(현종 5) 진사시에 급제하여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내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되었다. 이후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우현의 10세손 우현보(禹玄寶)[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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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서씨(徐氏)는 고조선 때 여수기(余守己)가 서씨 성을 하사받은 것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후 신라 말 고려 초에 서신일(徐神逸)로 이어졌다. 대구에 정착한 것은 고려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등을 역임한 서진(徐晉)이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고 달성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것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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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흠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달성하씨(達城夏氏)의 시조는 하흠(夏欽)이다. 하씨(夏氏)는 중국 한족의 성씨로 유우씨(有虞氏)와 대우(大禹)에게서 연원한다. 송(宋)나라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강서(江西)·산서(山西)·하남(河南)·절강(浙江)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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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굴. 대구 대명동 왕굴(大邱大明洞王窟)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다. 고려 왕건(王建)과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927년 팔공산 공산동수(公山桐藪)에서 전투를 하였는데 왕건에게 전세가 불리하였다. 이때 신숭겸(申崇謙) 장군 등은 왕건이 미복(微服)으로 탈출하도록 하였다. 전투는 대패하였고 신숭겸 등은 지묘동 미리사(美理寺) 앞에서 전사하였다.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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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지방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 대구향교는 1398년(태조 7년)에 국가에서 창건한 지방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유교적 경전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에 유교에서 숭상하는 성현(聖賢)을 제향(祭享)하는 일도 수행하였다. 대구향교의 건물은 조선시대부터 교육이 이루어진 핵심 건물의 명륜당(明倫堂)과, 학생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동재(東齋)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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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경주김씨 참의공파조 김수남 추모 재실. 덕암재(德巖齋)는 경주김씨(慶州金氏) 참의공파(參議公派) 파조인 우재(愚齋) 김수남(金守南)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7년 후손들이 묘소 앞에 건립하였다. 김수남은 인조(仁祖) 때 일어난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병자호란 때에도 큰 공을 세워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인 김대길(金大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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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하시찬을 배향한 달성하씨 문중 재실. 돈목재(敦睦齋)는 열암(悅菴) 하시찬(夏時贊)[1750~1828]을 배향하고 있는 달성하씨(達城夏氏) 문중 재실이다. 달성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대도독을 지낸 하흠(夏欽)이다. 하흠은 인종(仁宗) 때 고려에 귀화하여 달성(達成)[현 대구광역시]에 정착하였고, 하흠의 아들 하용(夏溶)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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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철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대구 지역의 세거 성씨. 동래정씨(東萊鄭氏)의 시조는 사로국(斯盧國) 6부 촌장으로 정(鄭)씨 성을 하사받았던 지백호(智伯虎)의 후손 정회문(鄭繪文)이다. 이후 고려 초 보윤(甫尹)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1세조로 삼아 대를 이어 세거한 동래(東萊)를 본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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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달성하씨 세거지. 대구광역시의 옛 명칭인 달성(達城)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빈씨(賓氏)·서씨(徐氏)·하씨(夏氏)가 있다. 시조가 모두 모두 고려시대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면서 달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들 중 세거지와 집성촌을 형성한 것은 서씨와 하씨이다. 현 동구와 수성구 만촌동 지역에 서씨와 하씨가 나란히 집성촌을 이루어 후세 교육에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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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구재서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 물소재(勿小齋)는 구재서(具在書)[1860~1932]를 추모하기 위하여 능성구씨(綾城具氏)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능성구씨 무태(無怠)[현 북구 동변동·서변동]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이며, 이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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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대구 지역의 유학 정신을 연구, 계승하고 발전시켜 생활화하고자 하는 단체. 박약회는 유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인격을 함양하며 사회교화를 위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아울러 전통문화 보존, 청소년 교화 및 유학정신의 현대화를 위한 각종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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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귀화하여 대구 지역에 정착한 수성빈씨의 시조. 빈우광(賓于光)[?~?]의 본관은 수성(壽城)이며, 자는 대용(大用), 호는 송헌(松軒)이다. 중국 노나라 때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빈모가(賓牟賈)의 후손이며, 부인은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실(李實)의 딸 진보이씨(眞寶李氏)이다. 아들은 빈규창(賓珪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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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달성서씨 세거지. 서씨(徐氏)는 고조선 때 여수기(余守己)가 서씨 성을 하사받은 것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후 신라 말 고려 초에 서신일(徐神逸)로 이어졌다. 대구에 정착한 것은 고려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등을 역임한 서진(徐晉)이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고 달성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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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단양우씨 세거지. 단양우씨(丹陽禹氏시)의 시조는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후손으로 알려진 우현(禹玄)이다. 우현은 고려에 건너와 단양에서 살면서 1014년(현종 5) 진사시에 급제하여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내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되었다. 이후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우현의 10세손 우현보(禹玄寶)[1333~1400]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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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인천이씨 세거지. 인천이씨(仁川李氏)는 허씨(許氏)에서 갈린 분적종(分籍宗)으로 경원이씨(慶源李氏) 또는 인주이씨(仁州李氏)로도 불렸다. 이허기(李許奇)를 시조로 받들고 식읍으로 받았던 인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고려 중엽 이자의(李資義)[?~1095]와 이자겸(李資謙)[?~1126]부터 조선 초기 이징옥(李澄玉)[1399~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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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서성(徐渻)[1558~1631]은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서팽소(徐彭召)이고, 할아버지는 예조참의 서고(徐固)이다. 아버지는 서해(徐嶰)이고, 어머니는 청풍군수 이고(李股)의 딸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부인은 송령(宋寧)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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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구암서원에 배향된 학자. 서해(徐嶰)[1537~1559]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정지(挺之), 호는 함재(涵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언양현감 서거광(徐居廣)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서팽소(徐彭召)이다. 아버지는 예조참의 서고(徐固)이고, 어머니는 이인찰방 안사전(安嗣全)의 딸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부인은 청풍군수 이고(李股)의 딸 고성이씨(固城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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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을 시조로 하고 도흠조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경술보(庚戌譜)』「수성시조(受姓始祖)」 편에는 도씨(都氏)의 시조를 도계(都稽)라고 기록하였다. 도계는 전한 기주(冀州) 위군(魏郡) 여양현(黎陽)[현 허난성 허비시 쉰현] 출신으로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 여가(呂嘉)의 반란을 평정하여 임채후에 책봉되고 도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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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인관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수원백씨대동보(水原白氏大同譜)』에 따르면, 중국 황제(黃帝)의 후손 백우경(白宇經)이 소주(蘇州)에서 태어나 당나라 때 이부상서에 이르렀으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 신라로 건너와 자옥산(紫玉山)[현 경상북도 월성군 안강읍 옥산동] 밑에 정착한 것에 시원을 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백우경은 영월당(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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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향교에 건립된 강학 공간. 1766년(영조 43) 대구판관 김로(金魯)가 지역의 가난한 선비들이 기숙하며 안정적으로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전(公田)을 들여 건립한 강학 공간이다. 1767년 경상도관찰사 김응순(金應淳)[1728~1774]이 기문을 써서 김로의 선비 양성 의지를 치하하였고, 김로도 기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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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대구읍성의 남쪽 성문.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는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부사 민응수(閔應洙)[1684~1750]가 1736년(영조 12) 축성한 대구읍성의 남쪽 성문이다. 대구토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석성(石城)으로 축성하면서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세웠는데, 남문의 다른 이름이 ‘영남제일관’이다. 영남제일관은 1906년 대구읍성과 함께 해체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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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섭을 시조로 하고 전영령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옥산전씨(玉山全氏)의 시조는 전섭(全聶)이다. 전섭은 기원전 18년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인 온조(溫祚)가 백제를 건국할 때 마려(馬藜)·오간(烏干)·한세기(韓世奇)·곽충(郭忠)·범창(笵昌)·조성(趙成) 등과 함께 공을 세워 백제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녹훈되고 환성군(歡城君)에 책봉되었다. 이후 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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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창건한 서원. 용강서원(龍岡書院)은 1696년(숙종 22)에 상무헌(尙武軒) 허득량(許得良)[1597~1637]과 낙암(洛庵) 허복량(許復良)[1602~1637]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장동에 ‘충렬사(忠烈祀)’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허득량과 허복량은 사촌 형제 사이인데, 무술을 익혀 국가에 공을 세운 무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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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에 있는 채선수를 추모하는 재실. 용산재(龍山齋)는 채선수(蔡先修)[1568~1634]를 기리기 위하여 인천채씨(仁川蔡氏) 문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채선수의 자는 경중(敬仲), 호는 달서재(達西齋)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155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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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우석구(禹錫龜)[1767~?]의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종서(宗端), 호(號)는 심와(心窩) 또는 세심와(洗心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중하(禹重夏)이고, 할아버지는 우상윤(禹尙胤)이다. 아버지는 우대일(禹大一)이고, 어머니는 김덕우(金德宇)의 딸이다. 부인은 전세지(全世祉)의 딸 옥산전씨(玉山全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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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무관. 우여도(禹汝度)[1625~1681]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자는 도숙(度叔), 호는 만회(晩悔)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성덕(禹成德)이고, 할아버지는 의병장 우배선(禹拜善)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정 우달해(禹達海)이고, 어머니는 주부 송희순(宋希醇)의 딸 은진송씨(恩津宋氏)이다. 형은 우여준(禹汝準)·우여율(禹汝律)이고, 동생은 우여규(禹汝規)·우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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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석규(李錫奎)[1816~189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치옥(穉玉), 호는 금서재(琴書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시채(李時采)이고, 할아버지는 이학섭(李學燮)이다. 아버지는 이기각(李基珏)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이며, 아들은 이우춘(李遇春)·이해상(李海祥)이다. 형은 이석구(李錫龜)이고, 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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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이약채(李若采)[1727~1782]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성흠(聖欽), 호는 행휴재(行休齋) 또는 속계거사(涑溪居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협(李莢)이고, 할아버지는 이영태(李英泰)이다. 아버지는 이인항(李仁恒)이고, 어머니는 이재휘(李載輝)의 딸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부인은 박필정(朴弼廷)의 딸 반남박씨(潘南朴氏)이며, 아들은 이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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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이화상(李華祥)[1842~1915]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재중(載重), 호는 백운정(白雲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학섭(李學燮)이고, 할아버지는 이기각(李基珏)이다. 아버지는 이석귀(李錫龜)이고, 어머니는 서진호(徐鎭浩)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형은 이의상(李宜祥)이고, 동생은 이태상(李泰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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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허기를 시조로 하고 이말흥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인천이씨(仁川李氏)의 시조는 이허기(李許奇)이다. 이허기는 본래 김해허씨(金海許氏)였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14년(755년) 사신으로 당나라에 파견되었는데, 756년 안록산의 난 때 촉으로 피난하는 당 현종(玄宗)을 호종(扈從)하였다. 757년 난이 평정되어 도성으로 돌아온 현종이 허기에게 상으로 서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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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응을 시조로 하고 손세경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일직손씨(一直孫氏)[일명 안동손씨(安東孫氏)]의 시조는 손응(孫凝)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손홍량(孫洪亮) 유허비에 따르면, 손응의 원래 성은 순(筍)이었는데 고려 현종(顯宗)의 이름 ‘순(詢)’과 음이 같다 하여 ‘손(孫)’으로 사성되었고 한다. 손응 이후의 세계(世系)가 불분명하여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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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 이주하여 강학한 학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철산군수 정윤증(鄭胤曾)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이다.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사맹 정사중(鄭思中)이고, 어머니는 이환(李煥)의 딸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부인은 이수(李樹)의 딸 광산이씨(光山李氏)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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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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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포를 시조로 하고 양희지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중화양씨(中和楊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高宗) 때 정승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당악군(唐岳君)에 책봉된 양포(楊浦)이다. ‘당악’은 중화의 옛 이름으로, 이후 후손들이 중화를 본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었다. 이후 양포의 6세손인 양백지(楊百枝)가 고려 말에 서경천호(西京千戶)를 지내며 평양에 자리 잡은 이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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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중화양씨 세거지. 중화양씨(中和楊氏)의 시조는 고려 고종(高宗) 때 정승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당악군(唐岳君)에 책봉된 양포(楊浦)이다. 당악은 중화의 옛 이름으로, 이후 후손들이 중화를 본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었다. 이후 양포의 6세손인 양백지(楊百枝)가 고려 말에 서경천호(西京千戶)를 지내며 평양에 자리 잡은 이래 후손들이 주로 평양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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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가 거주하였던 경상감영 관아에 딸린 처소. 징청각(澄淸閣)은 선화당(宣化堂) 뒤편에 있으며, 경상감영 내에서 관찰사의 처소로 쓰였다. 1601년(선조 34) 감영을 대구부로 옮겨 올 때 선화당, 응향당(凝香堂), 옥영루(玉靈樓)[징청각 동루 편명] 등과 함께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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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문관. 채륜(蔡倫)[?~?]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채원길(蔡元吉)이고, 할아버지는 채귀하(蔡貴河)이다. 아버지는 군자소감을 지낸 채영(蔡泳)이고, 어머니는 서고(徐翺)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부인은 권우(權遇)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고, 아들은 채임소(蔡任紹)·채신명(蔡申命)·채신석(蔡申錫)·채신복(蔡申福)·채신보(蔡申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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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대구 지역에 은거한 학자. 최치원(崔致遠)[857~?]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다. 아버지는 최견일(崔肩逸)이다. 육두품(六頭品) 출신이라 사회적 진출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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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 하구락(夏龜洛)[1862~1919]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낙원(洛元), 호는 경암(景菴)이다. 아버지는 하석명(夏錫明)이다. 부인은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 하운서(夏雲瑞)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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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하시찬(夏時贊)[1750~182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경양(景襄), 호는 열암(悅菴)이다. 아버지는 하문징(夏文徵)이며, 대도독 하흠(夏欽)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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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시조로 하고 조함장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의 세거 성씨. 함안조씨(咸安趙氏)의 시조는 후당(後唐)에서 귀화하여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운 조정(趙鼎)이다. 조정은 신라 말에 동생 조부(趙釜)와 조당(趙鐺)을 데리고 절강(浙江) 사람 장길(張吉)과 함께 신라에 귀화하였다. 조정은 신숭겸(申崇謙)·배현경(裵玄慶)·복지겸(卜智謙)·권행(權幸)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조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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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학 교육기관. 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향교(鄕校)는 대구향교, 칠곡향교, 현풍향교이다. 모두 조선시대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후생을 교육하고 유교의 옛 성현에 대한 제향(祭享)을 이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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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 허호(許浩)[1824~1892]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양여(養汝), 호는 예산(禮山)이다. 아버지는 허윤(許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