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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에 있는 1946년 10월항쟁 피해자들의 유족회. 10월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는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 추모 위령 사업, 유해 발굴 사업, 왜곡된 과거사 바로잡기, 유가족 트라우마 치유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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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2·28민주운동의 이념을 계승하고 기념하기 위한 사회단체.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독재정권이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지른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대구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주화운동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발생한 최초의 민주화운동인 2·28민주운동은 3·15마산의거로 이어졌고, 이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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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에 있는 1960년 2·28 학생의거를 기리며 세운 기념비. 2·28 학생의거 기념탑(二·二八學生義擧記念塔)은 1960년에 일어난 2·28 학생의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2·28 학생의거는 1960년 2월 28일 경북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경대사대부고], 경북여자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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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대구에서 군정연장반대운동을 하기 위하여 결성된 사회단체. 1961년 5월 16일 5.16군사정변으로 군사정부를 수립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2년 후인 1963년 2월 27일 민정 이양을 발표하였다.1963년 3월 16일 박정희는 민정 이양을 발표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4년간 군정을 연장한다는 내용을 담은 3.16 특별 성명을 전격 발표하며 군사정권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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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두 번째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동문시장은 ‘대구신장’이라 불리던 곳이다. 1791년(정조 15) 남문 밖에서 동문 밖[현 한일극장에서 대구백화점 일대]으로 이설된 시장이다. 4일과 9일에 개장하였던 동문시장은 도내 각지의 5일장을 연결하는 중심지였다. 1917년 8월 지금의 덕산동 일대로 이설되었고 현재는 염매시장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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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에 있는 대구 출신 6·25전쟁 참전 용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6·25참전용사명예선양비(六·二五參戰勇士名譽宣揚碑)는 6·25전쟁에 참전한 대구 출신 참전 용사를 기리기 위하여 2001년 세운 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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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대구에서 제7대 국회의원 선거가 부정으로 치러진 것에 대하여 항의하며 벌인 정치운동. 1967년 6월 8일 실시한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선거 기간 부정행위가 광범위하게 저질러져 ‘6·8부정선거’로도 불린다. 부정선거로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자치하자 야당의 선거 무효화 투쟁과 함께 대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시민과 학생들의 항의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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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대구에서 노차용(盧且用), 장택원(張澤遠), 정대봉(鄭大鳳), 문상직(文相直) 등이 독립운동 기지 건설과 무장투쟁을 목표로 비밀결사를 조직한 사건. ㄱ당 사건은 무장 항일 투쟁을 위하여 대구에서 조직된 비밀 결사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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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신규(姜信圭)[?~?]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상주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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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영주(姜永周)[?~?]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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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여성운동가. 강향란(姜香蘭)[1900~?]은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여성 최초로 단발을 실시하여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근우회(槿友會)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는 등 여성해방운동과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본명은 강해선(姜海先)이며, 강석자(姜石子)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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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9월 대구매일신문사 기자가 조직한 민주화운동 단체. 1969년 3선개헌(三選改憲) 이후 장기 집권을 표면화한 박정희 정부가 대중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을 높이면서 민중을 각성시키고 민중 역량을 육성하여 대중운동을 이끌고 나갈 지도부의 건설이 필요하였다. 경락연구회(經絡硏究會)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이끌어 갈 간부 양성과 지도부의 필요성에 의하여 결성되었다. 한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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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1가에서 설립되었던 경상북도 지역의 교원 노동단체. 2·28민주운동과 4·19혁명 직후인 1960년대 대구 지역에서는 교원노조 운동, 통일운동, 피학살자 진상규명 운동, 이대악법반대운동, 여성 노동자의 노동운동 등 각종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당시 사회운동을 주도하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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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설립된 식민 통치 기구이자 경제 단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 동원 체제를 구축한 일제는 농업 분야에서도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농업정책을 지원하기 위하여 ‘총후보국 노자협조(銃後報國勞資協助)’의 실행을 정책적으로 추진하였다.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기술원, 지도원, 정농가(精農家)를 육성하여 생산 확충에 이용하고자 하였다. 경북지주생산보국회(慶北地主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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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설립된 식민 통치 기구이자 경제 단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 동원 체제를 구축한 일제는 농업 분야에서도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농업정책을 지원하기 위하여 ‘총후보국 노자협조(銃後報國勞資協助)’의 실행을 정책적으로 추진하였다.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기술원, 지도원, 정농가(精農家)를 육성하여 생산 확충에 이용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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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및 경상북도에 설치한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 기구. 1930년대 지방제도 관련 법령이 개정된 배경은 다양하다. 첫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이 1919년 1차 부임 때 약속하였던 지방자치제도가 자문기관으로 그친 것에 대한 비판이 내외로부터 제기되었다. 둘째, 부협의회·도평의회 등 자문기관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고 의결기관화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셋째, 자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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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군수물자로 일제에 바친 군용기. 1937년 중일전쟁이 본격화되자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대상으로 군용기 헌납을 강제하기 시작하였다. 대구 및 경북 지역에서도 군용기 헌납을 위한 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되었고, 육군기 3기와 해군기 2기 총 5기의 군용기가 헌납되었다. 경북호는 일제에 헌납된 해군기 2기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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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계명대학교 소속의 연구 기관.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은 대구·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지역문화 발굴 및 연구, 국내·국제학술대회 개최, 국내외 학술지 발행, 연구 총서 발간, 한국학 영문 저서 발간, 고문헌 총서 발간, 시민강좌 운영 등의 학술 활동 전개를 통하여 한국학의 학문적 발전과 한국학의 국제화에 이바지하고, 한국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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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계명대학교 소속 학술 기관. 계명-목요철학원은 ‘목요철학 인문포럼’, ‘청소년 철학인문교실’, ‘목요철학 콜로키움’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청소년, 대학 구성원, 일반 시민에게 인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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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에 있는 학교 교사. 계성학교 강당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의 계성중학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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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에 있는 교사. 계성학교 맥퍼슨관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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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한 학교 교사. 계성학교아담스관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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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에 있는 교사. 계성학교핸더슨관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계성중학교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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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중등 보통 기관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중학교 졸업 이후에 진학하게 되는 후기 중등교육기관으로 실업계와 인문계가 있다. 형태는 복선형이지만 인문계, 실업계 모두 대학을 진학할 수 있어 단선형 학제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1974년 평준화가 도입되어 도시의 고등학교는 무시험 전형이지만, 면 단위 지역의 고등학교는 아직도 시험 선발로 입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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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현종 때 5도 양계 체계가 확립되면서 고려 전기 행정 구역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지방에는 지방관을 파견하는 주현(主縣),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는 속현(屬縣)으로 구분하였다. 주현으로는 경(京), 도호부(都護府), 목(牧) 등의 계수관(界首官) 지역과 현(縣)이 있었다. 주현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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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고인옥(高麟玉)[1921~2005]은 1921년 3월 14일 지금의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창평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조직인 백의단(白衣團)과 윤독회(輪讀會)에서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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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동영(郭東榮)[?~?]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ㄱ당에 입당하여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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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는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이자 애국 계몽 단체였다. 1개 면에 1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설립된 교남교육회는 ‘교남학회’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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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대구에서 설립된 개신교 연합 청년운동 단체. 1921년 12월 2일 남성정예배당[현 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 일명 구 대구제일교회]에서 대구 지역 소재 교회가 연합하여 ‘교남기독청년회(嶠南基督靑年會) 발회식’을 개최하였다.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목사 이만집, 남산교회 목사 박영조, 남산교회 장로 김태연·최종철 등 1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조선기독청년회 회장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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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시기 대구광역시 교육의 역사와 현황. 1. 대한제국기[1899~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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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교 교사. 구대구상업학교본관(舊大邱商業學校本館)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60-10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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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찬옥(粲玉), 호는 소봉(小峰). 고려 말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명인 구송은(具松隱)의 19세손이다. 조선조 임진왜란 때 창의 수훈한 첨정공 구회신(具懷愼)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구재서(具在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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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시기 대구에 설치된 군사 기관. 국군대구지구방어사령부(國軍大邱地區防禦司令部)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Walker Line]을 방어하고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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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지부.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중일전쟁에 대처하고 국가 총력전에 대비하여 국민운동의 통제를 강화하고, 정보선전의 필요로부터 거국일치·진충보국·견인지구·내선일체·황국신민화라는 목표를 갖고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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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경북 지역에 설치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지부. 1939년 9월 1일에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제는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 부문에서 이루어진 총동원 관련 운동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특히 1940년 6월에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서유럽을 제패하는 듯한 정세가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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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2가에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국채보상운동 기념비(國債報償運動記念碑)는 ‘국채보상운동 90주년’을 기념하여 1997년 10월 16일 세운 기념비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을 세상에 알린 옛 북후정 정자 터인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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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에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가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는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가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7년 설립한 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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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권업모범장의 출장소. 권업모범장은 일제 통감부가 일본식 농법을 한국에 이식 및 보급하여 한국의 농업 생산량을 늘리고자 설치한 농사 시험 기관이다. 통감부는 1906년 4월 27일 「통감부권업모범장관제」[칙령 제69호]를 발포하고 권업모범장을 전국적으로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1906년 6월 15일 경기도 수원에 설치한 권업모범장을 시작으로 19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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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용택(權容澤)[?~?]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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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의윤(權義允)는 1868년 3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권종태(權鍾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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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재갑(權再甲)[1900~?]은 1900년 3월 2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6일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미대동에서 마을 차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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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정락(權正洛)[1887~?]은 18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서 태어났다. 1922년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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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설립된 여성운동 단체 근우회의 지회. 1927년 신간회가 민족유일당을 지향하면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민족 협동 전선을 구축하여 전국 단위로 지회와 분회를 조직하고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신간회의 조직은 여성 운동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활란(金活蘭)·유영준(劉英俊)·유각경(兪珏卿)·최은희(崔恩喜)·현신덕(玄信德) 등 민족주의 계열과 정칠성(丁七星)·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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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지역에서 1895년부터 1960년까지 일어난 독립운동이나 6·25전쟁 관련 기념비. 대구 지역 기념비는 대구 출신 인물과 대구 지역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 3·1운동, 학생운동, 6·25전쟁, 2·28민주운동 등을 기념하는 비가 다수를 이룬다. 행정구역별 기념비 수는 중구 9기, 달서구 8기, 남구·달성군 5기, 동구 4기, 북구·수성구 3기, 서구 2기 등의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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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남수(金南洙)[?~?]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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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민족운동가. 김달준(金達俊)[1877~1956]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서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를 결성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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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의병 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달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문인. 1624년 김경조(金慶祖)[1583~1645]가 이민구(李敏求)에게 선물한 「촉석루 연회도(矗石樓宴會圖)」[세전 서화첩, 2012. 5. 24, 민속원]에 김대진(金大振)[1571~1644]도 그려져 있다. 당시 경상도 관찰사에 부임한 이민구가 가을 순시를 하는 중에 진주 촉석루에서 잔치를 열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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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무생(金武生)[1898~1971]은 1898년 7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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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문진(金文軫)[1892~1926]은 1892년 5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문진(金文珍)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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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봉안(金鳳安)[1895~1959]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다가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봉안(金奉安)·김정수(金正秀)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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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삼도(金三道)[1900~1967]는 1900년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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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길(金相吉)[1926~2018]은 1926년 12월 2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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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김성륙(金成六)[?~1908]은 1863년경 대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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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성칠(金聖七)[1913~1951]은 1913년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원촌리에서 김상한(金相漢)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구화회(丘火會)·혁우동맹(革友同盟)·적우동맹(赤友同盟) 등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김희혁(金熙赫)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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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소성(金召成)[?~?]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에서 태어났다. 1925년 9월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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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수길(金壽吉)[1902~1932]은 1902년 1월 2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김수길(金秀吉)’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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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수천(金洙千)[?~?]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태어났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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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영서(金永瑞)[1880~1975]는 1880년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감으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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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우근(金遇根)[?~?]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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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김장수(金章洙)[?~?]는 대구에서 교원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며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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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재덕(金在德)[?~?]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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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재범(金在範)[1900~1931]은 1900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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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근(金昌根)[?~?]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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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서흥(瑞興). 초휘(初諱)는 김진효(金鎭孝), 자는 충거(忠擧), 호는 수암(睡巖). 아버지는 학생(學生) 김희전(金熙典), 동생은 김기식(金麒埴), 김진식(金震埴), 김구식(金求埴), 김창식(金昌埴), 김홍식(金弘埴)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인동 장씨(仁同張氏) 장석용(張錫龍)의 딸이다. 장석용의 아들은 경상 관찰사를 역임한 장승원(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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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윤약(允若), 호는 낙하(落下). 증조할아버지는 김경운(金慶運), 할아버지는 김규섭(金奎燮), 아버지는 김준동(金駿東), 외할아버지는 박경오(朴慶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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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목조 연립주택. 나가야[장옥(長屋)]는 하나의 지붕을 두고 칸을 막아서 여러 가구가 거주할 수 있도록 길게 만든 집, 즉 연립주택(聯立住宅)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나가야(장옥)는 대구뿐만 아니라 인천과 진해 등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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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나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대구에 설립된 전문병원. 의료선교를 펼치던 개신교 선교사들이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나병 환자를 치료하고 자활을 돕기 위하여 대영나병자구료회의 도움을 받아 대구의 나병원(癩病院)을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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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나상기(羅相基)[1901~1981]는 1901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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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1950년 6·25전쟁 때 순국한 인도 대령 우니 나야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나야 대령 기념비(나야大領紀念碑)는 6·25전쟁 때 국제연합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낙동강 전투에 참전하여 순국한 대령 우니 나야(M. K. Unni Nayar)[1911~1950]를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범어공원 내 야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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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씨름 선수. 나윤출(羅允出)[1912~?]은 1912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씨름 선수로 이름을 알리고 씨름협회 설립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해방 이후 10월항쟁에 참여한 이후 월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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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대구남산초등학교의 학교 교사. 남산초등학교강당(南山初等學敎講堂)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122의 대구남산초등학교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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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결성된 사회단체. 남산정(南山町)[현 중구 남산동]은 덕산정(德山町)[현 중구 덕산동], 봉산정(鳳山町)[현 중구 봉산동], 신정(新町)[현 중구 대신동], 달성정(達城町)[현 중구 달성동], 시장정(市場町)[현 중구 동산동] 등과 함께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인 거주지였다. 남산정은 1922년 1,300여 호에 약 4만여 명이 살았던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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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영실(南英實)은 1913년 1월 16일 대구부 전정(田町)[현 대구광역시 중구 화전동]에서 태어났다. 반제동맹(反帝同盟)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영실(金英實)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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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대구 지역 사회운동가들이 연루된 공안 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南朝鮮解放戰略黨事件)은 1968년 중앙정보부가 ‘통일혁명당 사건’을 수사하면서 진보 경제학자였던 권재혁 등 13명을 강제 연행하여 불법 구금하고 가혹 행위로 허위 진술을 강요하여 ‘간첩 사건’으로 조작한 공안 사건이다. 권재혁이 통일혁명당 서울시당위원장 김종태를 만나 조직 통합을 논의하던 과정에서 통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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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노차용(盧且用)[1904~1967]은 1904년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ㄱ당을 결성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노차갑(盧且甲)·노재원(盧在原)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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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한 청년 단체. 달성구락부(達城俱樂部)는 일본 도쿄[東京]에서 유학한 대구 출신 학생들이 조직한 청년 단체이다. 달성구락부가 1921년 8월 26일 오후 3시 대구 서성정(西城町)[현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대구청년회관에서 모임을 개최한 것으로 보아 1921년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달성구락부는 ‘재일본동경달성구락부(在日本東京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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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달성산업단지에서 일어난 노동운동. 달성산업단지(達城産業團地)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과 구지면에 위치한 지방 산업 단지이다. 대구광역시의 섬유 공업과 창원시의 기계 공업 등 두 공업 지역을 연결하는 연관 공업을 유치, 발전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달성군 논공면과 구지면 일대에 1979년 3월 23일 건설부가 지방 공업 장려 지구로 지정 및 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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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에 설치된 경상감영의 객사. 객사(客舍)는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하여 절을 올리는 곳인 정당(正堂)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숙박하는 건물을 합친 시설을 말한다. 대구 경상감영 북서쪽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일대에 지어졌던 객사는 중앙 건물인 달성관(達城館) 양옆으로 팔달헌과 대슬헌, 주흘헌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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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검찰사무를 담당하였던 재판소 산하 기구. 대구지방재판소 검사국과 대구공소원 검사국은 검사의 직무인 범죄의 수사 및 공소권(公訴權)의 행사 등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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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대구에 설치된 경마장. 일제는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각 지역에 오락 시설, 스포츠시설 등을 대규모로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를 시작으로 대구 지역에는 대구경마장을 비롯하여 대구공설운동장[대구운동장], 대구골프장, 대구수영장 등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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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 설립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의 지회. 민주화를 위한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大邱慶北民主化敎授協議會)는 대학과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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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 있는 1895년부터 1945년까지 대구 경북지역에서 출생 혹은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적은 기념탑. 망우당공원내에 있는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기념탑 주변은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지역의 근대 항일운동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 밀접한 곳이다.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기념탑 뒷편에는 조양회관과 조양회관을 세우고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 인물인 서상일의 전신상이 있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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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대구 계성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동맹휴학. 일제는 1908년 8월 26일 「사립학교령」[대한제국 칙령 제62호], 1911년 10월 20일 「사립학교 규칙」[조선총독부령], 1915년 3월 「(개정)사립학교 규칙」, 1918년 「서당에 관한 규칙」 등을 공포하여 애국계몽운동기부터 일제강점기 전 기간 동안 한국인의 사립학교 설립과 운영을 억제하고, 교육의 균등 기회를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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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대구 지역 최초로 만들어진 골프장. 일제는 1920년대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각 지역에 오락 시설, 스포츠시설 등을 대규모로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를 시작으로 대구 지역에는 대구골프장을 비롯하여 대구공설운동장[대구운동장], 대구경마장, 대구수영장 등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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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한인 세탁 시설. 1920년대에 조선총독부는 한인이 위생 시설, 문화시설, 체육시설 등을 공립으로 설립하게 하여 문화통치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대구역 개통 이후 매년 대구 지역 인구가 폭증하면서 상하수도 시설, 세탁 처리 시설, 생활 시설 등의 절대적 부족은 대구 사회의 문제로 부각하였다. 한편, 대구부에서는 1920년대 초부터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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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조선인 자본가들로 결성된 친일 단체. 조선총독부는 민풍(民風)을 개량한다는 명목하에 친일 지주, 지역 유지, 금융 자본가, 부·도·군협의회 회원 등을 구성원으로 하여 교풍회(矯風會)를 설립하였다. 1911년 마산 교풍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교풍회가 설립되기 시작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더 증가하였다. 대구 교풍회(大邱矯風會)는 19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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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6월 대구에서 여성들이 국채보상운동을 펼치기 위하여 결성한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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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9월 15일 대구노동친목회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일으킨 노동쟁의. 대구운수노동자친목계는 1923년 7월경 설립되었다. 신재모·김광서·김학삼·서병하·김성곤·장춘동 등 6명이 주축이 되어 운수 노동자 30여 명을 규합하여 설립하였다. 대구역은 대구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이자, 각종 문물이 모여드는 집산지였다. 따라서 물건을 나르는 일용직 날품팔이 육체노동자가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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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대구노동친목회가 임금 인하를 단행한 진목운송점을 상대로 일으킨 노동쟁의. 운수 노동자 친목계는 1923년 7월 설립되었다. 신재모, 김광서, 김학삼, 서병하, 김성곤, 장춘동 6명이 주축이 되어 운수 노동자 30여 명을 규합하여 설립하였다. 대구역은 대구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이자, 각종 물산이 유통되는 집산지였다. 따라서 물건을 나르는 일용직 날품팔이 육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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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대구 지역의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운동 단체. 대구노동회는 대구 지역 노동자의 지위 향상, 생활 안정, 상호 부조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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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1월 대구 지역 대구노동회 소속 정미공 노동자들이 임금 인하를 반대하며 일으킨 노동쟁의. 운수 노동자 친목계는 1923년 7월 설립되었다. 신재모, 김광서, 김학삼, 서병하, 김성곤, 장춘동 6명이 주축이 되어 운수 노동자 30여 명을 규합하여 설립하였다. 대구역 화물 운반 노동자 400여 명은 1925년 10월 23일 오후 1시 만경관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친목계의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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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녹화운동을 위한 관변단체. 일제강점기 대구에서는 수원지(水源地) 확보와 혹열(酷熱) 완화책으로 녹화운동을 시작하였다. 대구 유지(有志)가 녹화 협회 설치를 계획하고,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에서는 1933년부터 식수비(植樹費) 확보를 계획하여 녹화운동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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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립되었던 고등교육기관. 대구농업전문학교는 관립으로 1944년 4월 개교하였다. 개교 당시 대구공립농림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의 교사 일부를 빌려 사용하였다. 학생은 농학과 50명, 농예화학과 50명이었으며, 학생 비율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1:4였다. 교직원은 교장 1명, 교수 3명, 생도주사(生徒主事) 1명, 조교수 1명 등이었으며, 한국인 교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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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대구농업학교 학생들이 수업연한 승격을 요구하며 동맹휴학한 학생운동. 대구농업학교 동맹휴학은 일제가 정한 농업학교의 수업연한의 연장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단행한 사건이다. 대구농업학교의 전신인 공립대구농림학교(公立大邱農林學校)는 토지조사사업에 필요한 측량기사를 양성하고자 설립되었다. 1910년 11월 1일 대구공립농업학교로 개칭하였다. 일제의 정책에 따라 농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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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근대식 의료기관. 일제는 조선인에게 서양 의료기관의 설치와 진료를 통하여 일본의 선진성(先進性)과 시혜성(施惠性)을 부각시켜 일본에 대한 반감을 없애고 우호적인 감정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각 도에 자혜의원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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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의 시가지 계획안을 조사 및 심의하기 위한 식민 통치 기구. 조선총독부는 1934년 6월 20일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공포한 이후 시가지 계획 위원회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35년 11월 4일 ‘조선총독부 시가지계획위원회 규정’에 따라 시가지 계획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시가지 계획 위원회는 각 도시의 ‘시가지 계획 사업’으로 지정된 계획구역, 가로망,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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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4가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학교 교사. 대구 동인초등학교 강당(大邱 東仁初等學校 講堂)은 중구 동인동4가 388의 대구동인초등학교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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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9월 14일 『대구매일신문』의 정부 비판 사설에 불만을 품은 청년들이 대구매일신문사를 습격하고 주필이 구속된 필화사건. 1955년 9월 13일 『대구매일신문』은 정부를 비판하는 논조의 사설 한 편을 실었다. 1955년 9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주 유엔 대사[공식 명칭 주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특명전권대사]인 임병직(林炳稷)의 대구 방문 시 학생들을 관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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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목공인들이 만든 노동단체. 대구목공조합은 기공 향상, 동업자 간 조직적 경영, 친의 도모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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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 대구비행장에서 열린 군용기 헌납 절차.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는 침략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책을 마련하고 전시 동원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였다. 1937년 9월 9일 일제는 「군수공업동원법」을 제정하고 전시 필요 물품을 통제·운용하도록 하여 군수품은 신속하고 원활히 보급되었다. 또한 1938년 5월 5일 「국가총동원법」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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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을 운행하던 대중교통.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는 날로 증가하는 시민의 교통 편의를 돕기 위하여 대구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대구 최초의 시내버스인 대구부영버스 운행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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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대구사범학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교육정책 실행에 필요한 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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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두류공원에 있는 대구사범학교 학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 기념탑(大邱師範學生獨立運動記念塔)는 대구사범학교 학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1998년 3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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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에 있는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대구사범 항일학생 의거 순절동지 추모비(大邱師範抗日學生義擧殉節同志追慕碑)는 비밀결사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강두안(姜斗安)[1922~1944], 박제민(朴濟敏)[1919~1943], 박찬웅(朴贊雄)[1919~1943], 서민구, 장세파 5명을 기리기 위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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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상북도 지역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민간 종합 정책 연구소. 대구사회연구소(大邱社會硏究所)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통하여 사회발전과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창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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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 이숙과 유척기를 모시는 사당. 상덕사(尙德祠)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였던 이숙(李䎘)[1626~1688]과 유척기(兪拓基)[1691~1767]에게 제향하고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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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출옥인 감시 목적의 친일 관변단체. 일제는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된 출옥인(出獄人)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1910년 인천구제원을 설립하였다. 표면적으로 면수 보호 기관(免囚保護機關)이었지만, 실제로는 사상범 감시의 기능이 더 컸다. 1911년 대구상성회(大邱常成會), 부산보성회(釜山輔成會), 공주관업원(公州慣業院) 등을 시작으로 매년 전국의 주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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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말 대구상업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항일·독립운동 단체. 대구상업학교 태극단(大邱商業學校太極團)은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당면 최대 목표인 조선의 자주독립을 이룩하고, 세계 인류의 영원한 평화·자유·평등을 실현하고자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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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철도 관련 화물의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조선총독부는 1910년 9월에 「조선총독부세관관제」를 공포하여 세관과 세관 산하 세관지서·세관감시서·세관출장소 등을 설치하였다. 세관출장소는 주로 철도와 연계하여 화물의 통관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관이다. 따라서 대구세관출장소는 대구역과 관련 화물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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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징세 행정과 세무 감독 업무를 관장한 식민 통치 기구. 일제는 1934년 4월 28일 「조선총독부 세무관서관제」[칙령 제11호]를 공포하고 대구를 비롯한 경성, 광주, 평양, 함흥에 세무감독국과 전국의 주요 지역 99곳에 세무서를 설치하였다. 이틀 후인 4월 30일에는 「조선소득세령」[제령 제6호]을 개정하여 개인소득세를 신설하고, 개인·이자·법인소득을 포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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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의 고아를 수용한 기관. 대구소년보호소는 소매치기, 구두 절도 등 치안을 불안하게 하는 고아를 교화하고자 설립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거 불명인 고아도 강제수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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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대구에서 일본인이 창간한 신문. 1900년대 말 대구 지역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대구일일신문사와 대구신보사가 있었다. 1908년 9월 대구일일신문사와 대구신보사가 통합하여 대구부 경정 2정목[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에 대구신문사조합을 설립하고 『대구신문(大邱新聞)』을 창간하였다.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는 대구일일신문사, 가토 이치로[加藤一郞]는 대구신보사의 이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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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대구 한약상들의 경제단체. 대구약상흥업회(大邱藥商興業會)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한약상들이 대구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하여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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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상설 시장. 대구어채시장(大邱魚采市場)은 1912년 일본인이 농수산물을 판매하기 위하여 대구 지역에 세운 상설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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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제조업. 1910년 대구 지역에는 탁지부 사세국 산하 연초시작장(煙草試作場)과 양조시험소가 설치되었다. 이때 전국 최초로 대전과 함께 대구에 대구연초시작장(大邱煙草試作場)이 설치되었다. 대구연초시작장은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 적합한 연초 품종을 개발 및 생산하고, 연초 제반 업무를 관할하였다. 1912년 3월 사세국에 전매과가 신설되면서 대구에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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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연초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던 기관. 경상북도에서는 1906년부터 입담배가 생산되면서 대구를 비롯한 경산, 김천, 영천, 안동 등 경상북도 전역에서 담배 생산이 이루어졌다. 또한 1908년 6월 남한연초제조주식회사(南韓煙草製造株式會社), 1909년 마에노조[前之園] 공장, 1910년 오이시[大石] 상회 등 연초 제조 공장이 설립되면서 연초 공업이 발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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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우편 업무를 담당한 기관. 대구우편국은 대구 지역의 우편 및 통신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1905년 10월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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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에 설립되었던 공설 운동장. 대구운동장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공설 운동장이었으며, 대구운동장 내에 있던 야구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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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대구부에 일본거류민단이 주도하여서 세운 성매매 업소. 대구유곽(大邱遊廓)은 1909년 11월 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도원동 일대에 일본거류민단이 주도하여서 세운 성매매 업소이다. 일명 ‘자갈마당’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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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음식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변하기 위하여 설립된 경제 단체. 대구음식업조합(大邱飮食業組合)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음식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변하기 위하여 설립된 경제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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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2가에 있던 의료인을 양성하는 의학 전문 교육기관. 대구의학전문학교의 전신은 관립 대구자혜의원(大邱慈惠醫院)에 사설로 세워진 의학강습소이다. 1910년 7월 21일 ‘관립 자혜의원 관제’와 ‘관립 자혜의원 시행령’이 칙령 제38호로 반포되었다. 관립 대구자혜의원은 1910년 9월 7일 대구 동문동에 자혜구료기관으로 세워졌다. 1923년 7월에는 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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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인력거조합에서 임금 문제로 일으킨 노동쟁의. 일제강점기 대구인력거조합에는 기생만 태우는 경일조(京一組), 남문조(南門組), 대성조(大成組), 서성조(西城組) 등 4개 하부 조합이 있었다. 인력거부 80여 명이 1924년 2월 1일 만경관에서 모여 대구인력거노우회를 결성하고, 인력거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향상·단결하고자 활동하였다. 대구인력거조합은 주로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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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인쇄 직공들이 설립한 노동단체. 대구인쇄직공조합(大邱印刷職工組合)은 기술 연구, 지식 계발, 근검절약, 회원 실업자에게 직업 소개, 경조문(慶弔問) 상호부조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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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4월 대구에 설치된 임업 관련기관. 대한제국 정부는 1905년 전국에 걸쳐 산림조사를 하였다. 산림 정비가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하천 정비가 이루어지고, 도로 개보수와 광업·수산업의 발달이 쉬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6년 일본의 산림 전문가를 초빙하여 임업 관련 업무를 맡겼다. 1907년에는 수원, 평양, 대구 3곳에 수묘양성소(樹苗養成所)를 설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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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양잠 재배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 경상도는 조선시대부터 잠업을 하고 있었으며, 대표적 지역은 함창·상주·문경이다. 경상도는 양잠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첫째, 양잠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서리·습기 피해가 거의 없었다. 둘째, 낙동강 연안 수백 리에 걸쳐 있는 황무지는 뽕나무를 키우기에 적합하였다. 마지막으로, 공기가 건조하여 누에똥을 제거하는 횟수가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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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세무와 재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행정기관. 1908년 조선의 전체 인구는 978만 1671명, 호수(戶數)는 233만 3087호, 면적은 1만 4000리, 조세 수입은 1034만 604원이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233만 3249명, 호수는 55만 8155호, 면적은 2,104리, 조세 수입은 260만 3447원이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조선 전체 인구에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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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 대구 지역 재봉 직공들이 세운 노동단체. 대구재봉직공청년회는 1927년 9월 25일 오전 11시에 서성정 대구노동공제회관에서 총회를 열고 대구재봉직공청년회조합(大邱裁縫職工靑年會組合)[이칭 재봉직공조합]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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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전매품 생산과 유통 업무를 관장한 식민 통치 기구. 조선총독부는 전매품의 생산, 개발, 판매, 유통 등 전매 업무를 관장하는 전매국을 설치하였다. 일제는 주로 담배[煙草], 홍삼(紅蔘), 소금[鹽], 아편(阿片) 등 네 가지 품목을 전매품으로 관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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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한 전신 사무국. 대구전보국(大邱電報局)은 대구 지역의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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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정미업 관련 회사.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조선 쌀 수요가 급증하였다. 특히 1910년대 일본 상인들은 당시 거래액이 가장 컸던 미곡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하였다. 미곡은 주로 일본으로 수출되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본 상인들은 수출업체와 연결될 수 있는 장점, 일본계 은행의 막대한 금융지원을 등에 입고 미곡 유통의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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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대구 지역 조선제사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하여 일으킨 노동쟁의. 1921년 대구 지역 공장 수는 100여 개, 노동자 수는 3,000여 명이었고, 1926년 공장 수는 200여 개, 노동자 수는 5,000여 명이었다. 주로 연초업, 제망업, 제사업 등 경공업 중심 공장이 주를 이루었다. 1920년대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제사(製絲) 공장이 바로 조선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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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 있는 학교 교사. 대구제일중학교 강당은 1932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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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대구 지역에서 운송 노동자들이 일으킨 노동운동. 조선운송회사는 1930년 5월 24일 자본금 700만 원으로 주식회사로 설립되었다. 조선운송회사는 사장 무라카미기이치[村上義一]를 비롯하여 부사장, 전무, 이사, 감사 모두 일본인이었으며, 대주주는 주로 중일본통운회사(中日本通運會社), 조운영락회(朝運永樂會), 조선신탁(朝鮮信託), 조선우선(朝鮮郵船), 오사카상선[大阪商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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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설치된 지방 군대. 1895년(고종 32) 9월 설치된 진위대(鎭衛隊)는 부(府)나 군의 주요 지방에 주둔하여 지방의 질서유지와 변경을 수비하는 일을 주요 임무로 하였던 근대적 지방 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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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기상 및 기후 관측 기관. 대구측후소(大邱測候所)는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의 기상 및 기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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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 아동의 학교교육을 위하여 일본인이 설립한 기구. 대구 학교조합(大邱學校組合)은 대구 지역 일본인 아동의 학교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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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약령시의 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경제단체. 대구 한약업자 조합(大邱漢藥業者組合)은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내 한약종상(漢藥種商)들이 대구 약령시(藥令市)의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대구 한약업자 조합은 대구한약상조합, 대구한약업조합, 대구한약자조합, 대구한약조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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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 있는 화교 학교 교사. 모문금(慕文錦)은 1920년대 조선의 2대 화교건축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대구 지역에서 성공한 화교 출신 인물이었다. 모문금은 1940년대 화교 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으며, 모금 운동을 벌이고 기부금을 받아 1943년 화상공회 건물에서 개교하였다. 화상공회 건물은 현 종로호텔 주차장에 있었다. 당시 교실은 3칸으로 1칸은 교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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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5월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에 설립되었던 공설 수영장. 대구수영장은 여름철 더위가 심한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의 부민(府民)을 위하여 대구부에서 설립한 휴식처이자 피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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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대구부윤의 행정 자문기관. 일제는 1914년 「부제」[제령 제7호]와「부제시행규칙」[부령 제3호]을 제정한 뒤 경성, 부산, 평양 등 12개 지역에 각 부(府)의 자문기관으로 부협의회를 설치하고, 의장은 부윤이 맡도록 하였다. 부협의회는 부윤 및 협의회 의원으로 조직하고, 부윤이 의장이 되어 부의 조례를 설정 또는 개폐, 세입과 세출의 예산편성 등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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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7일 대구상업고등학교에서 전국 최초로 설립한 교원노조 단체. 2·28학생운동과 4·19혁명 직후인 1960년대 대구 지역에서는 교원노조운동, 통일운동, 피학살자진상규명운동, 이대악법반대운동(二大惡法反對運動), 여성 노동자의 노동운동 등 각종 운동들이 활발하게 일어나 당시 한국 사회운동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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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한일회담반대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결성된 단체.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문제를 한일회담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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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고등교육기관. 대구 지역에서 전문학교가 설립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이다. 1933년 공립 대구의학전문학교와 1944년 관립 대구농업전문학교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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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대구에서 결성된 학도의용군.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학생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켜 내기 위하여 ‘책 대신 수류탄과 총을 달라’면서 자원입대하였다. 자원입대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징집 연령 18세에 미달하는 14세~17세에 불과하여 학도병 또는 학도의용군이라고 불렀다. 학도의용군들은 책 대신 수류탄 몇 개와 총 한 자루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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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되어 활동하였던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협회는 일제의 고종 강제 퇴위 강요에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통감부에 의하여 해산당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간부들과 천도교의 주요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애국계몽운동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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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에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 덕산학교(德山學校)는 1921년 당시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면[현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 지역]에 설립되었던 사립 교육 기관이다. 당시 달성군 월배면에 거주하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상태(尹相泰)[1882~1942]가 덕산학교를 설립하여 단독 경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6회 졸업식은 1927년 3월 19일 오전 11시에 덕산학교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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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있던 소공원. 일제강점기 도수원(刀水園)은 달성공원(達成公園), 동화사(桐華寺)와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명소였다. 도수원은 인공 연못을 조성하여 만든 공원이었으며, 낮에는 유료 공원으로, 밤에는 별장형 요정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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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대구에 세워진 일본의 정토진종 본원사의 대구 포교소. 일본 불교의 대표적 종파인 정토진종(淨土眞宗) 본원사(本願寺)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3~1616] 시대에 동본원사(東本願寺)와 서본원사(西本願寺)로 분리되었다. 1873년 동본원사는 ‘대곡파(大谷派)’로, 서본원사는 ‘본파(本派)’ 또는 ‘본원사파(本願寺派)’로 불렸다. 일본 불교계는 식민지 개척 사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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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사립 교육기관. 3·1운동 이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이 크게 대두되었다. 3·1운동 이후 각계 각층에서는 민중 교육과 민중 계몽을 목적으로 학교 설립을 대규모로 진행하였고, 대구 지역에서도 대구천주교회 해성청년단에서 해성여자야학을, 대구제일교회에서 대남유치원·배성여자야학을, 대구교남기독청년회에서 야학법률강습소를, 대구노동공제회에서 노동야학을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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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대구 지역에 설치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법률 제22호]에 의거하여 설립되었다. 표면적 목적은 농사 개량과 농업기술 향상이었지만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에게 정착 지역의 저렴한 토지와 편의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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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대구에서 일어난 한일회담반대운동.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의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문제를 한일회담의 부차적인 내용으로 간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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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조현욱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牧山趙炫郁先生殉國紀念碑)는 독립운동가 조현욱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 6월 1일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세운 기념비이다. 조현욱(趙炫郁)[1854~1922]은 1919년 3월 26일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조현욱은 인근 마을 신태휴·조병국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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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건립된 백화점. 개성상인 출신 이근무(李根茂)가 1937년 대구부 본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에 건립한 무영당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1932년 세운 이비시야백화점, 1934년 세운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과 함께 대구 3대 백화점 가운데 하나였다. 무영당은 일제강점기 일본 자본에 맞서 대구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건립된 백화점이다. 무영당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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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덕길(文德吉)[1921~2001]은 1921년 9월 15일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선소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백의단(白衣團)과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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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1가에 있었던 백화점.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최고의 백화점으로 불리던 미나카이백화점[三中井百貨店]은 1934년 9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96[북성로1가 63]에 해당하는 대구부 원정(元町) 2정목(丁目)에 5층 건물로 세워졌다. 대구 지역에 백화점이 세워진 것은 1932년 이비시야백화점 이후 두 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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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대구시의회가 직선으로 선출된 민선 대구시장을 불신임한 사건. 대구시에서는 제2차 「지방자치법」[1956년]에 따라 1958년 10월 2일 직선제를 통하여 최초로 대구시장을 선출하게 되었다. 당시 대구시의 유권자 총수는 26만 2868명, 투표자 수는 17만 4036명, 기권자 수는 8만 8832명, 무효 6,600명이었다. 정당별 입후보자를 보면, 민주당 조준영(趙俊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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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기념비. 민족정기 탑(民族正氣塔)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1995년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세운 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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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광욱(朴光郁)[?~?]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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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朴南玉)[1923~2017]은 1923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태섭, 어머니는 이두리이며, 10남매의 셋째 딸이다. 1955년 영화 「미망인」을 제작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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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만규(朴晩閨)[?~?]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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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만준(朴萬俊)[1897~1965]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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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몽득(朴夢得)[1915~1989]은 1915년 1월 31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금전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대구부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으로 이주하여 농촌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항일 비밀결사 대구노동자협의회에도 관여하였다. 박영옥(朴英鈺)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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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몽포(朴夢圃)[?~?]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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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문영(朴文瑛)[1871~1943]은 1871년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 거주하며 잡화상을 운영하던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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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병옥(朴炳鋈)[?~?]은 교남교육회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구 지역 교육 진흥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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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병태(朴炳兌)[?~?]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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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장호(朴章鎬)[1886~1961]는 1886년 8월 29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 강습생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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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헌(朴在憲)[1900~1986]은 1900년 1월 2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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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제민(朴濟敏)[1920~1943]은 1919년 7월 24일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연구회를 결성하고 활동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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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제원(朴齊元)[1884~1961]은 1884년 5월 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김천예수교회 전도사로 재임하며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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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호준(朴祜儁)[1920~2007]은 1920년 10월 1일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여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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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방한상(方漢相)[1900~1970]은 1900년 8월 2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호는 만취(晩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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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두운(裵斗運)[1888~1971]은 1888년 2월 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1945년 일제의 전시 동원 체제를 비난하는 낙서를 게시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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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백기만(白基萬)[1902~1969]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였다. 호(號)는 목우(牧牛)이고, 필명은 백웅(白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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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백남채(白南埰)[1888~1950]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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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6월부터 12월까지 대구 지역에서 열린 삼선개헌 반대운동. 박정희 정부와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1969년 대통령 연임 금지 조항을 없애 장기 집권의 길을 열고자 헌법 개헌을 추진하였다. 1969년 1월 6일 윤재회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이, 1월 7일 윤치영 민주공화당의장 서리가 개헌의 필요성을 표명하면서 개헌 논의가 표면화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1969년 1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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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서화가이자 민족운동가. 서병오(徐丙五)[1862~1936]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대구 지역 서화계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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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 관료이자 경제인. 서병화(徐炳和)[1883~?]는 1883년 9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료를 지냈고, 대구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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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교(徐尙敎)[1923~2018]는 1923년 11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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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개항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의 주택. 서상돈 고택(徐相燉古宅)은 개항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서상돈[1851~1913]의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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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욱(徐相郁)[?~?]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에 참가하여 시위를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서상직(徐相直)·서적파(徐赤波)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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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서주원(徐周媛)[?~?]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대구 지역 여성들을 규합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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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진구(徐鎭九)[1921~1944]는 1921년 9월 24일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회룡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여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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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민족운동가. 서채봉(徐彩鳳)[1859~1936]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서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를 결성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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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자선사업가. 서희원(徐喜瑗)[1854~1926]은 1854년 7월 25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남학교와 명신학교의 운영을 지원하는 등 대구 지역의 근대 초등교육과 여성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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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달성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경수(慶秀), 호는 소계(小溪). 증조할아버지는 우우당(友于堂) 석구담(石龜潭), 할아버지는 청계(淸溪) 석철한(石轍漢)이다. 아버지는 지지당(知止堂) 석치규(石致奎),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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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석주 이상룡 구국 기념비(石洲李相龍救國紀念碑)는 독립운동가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세운 기념비이다. 이상룡은 1911년 50세가 넘은 나이에 간도로 이주하여 구국 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석주 이상룡 구국 기념비는 이상룡의 제자 이은상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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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석봉(孫石鳳)[1901~1965]은 1901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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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손치봉(孫致奉)[?~?]은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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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송훈(宋焄)[?~?]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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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대에 있었던 상수도 보급과 유원지 활용 목적의 조합. 일제는 1914년 3월 1일에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통하여 대구부와 달성군을 분리하였고, 수성면은 달성군에 편입되었다. 수성면은 1920년대 초반 4만 석의 쌀을 생산할 정도로 비옥하였고, 달성군 내에서도 대표적인 쌀 생산지였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달성군에서 가장 많이 이주한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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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 당시 대구광역시 중구 대명동[옛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 모여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같은 시각 파고다 공원에 모인 5,000여 명의 군중이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확산되었다.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에서는 3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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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신간회의 지회. 신간회는 민족적·정치적·경제적 예속의 탈피,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의 쟁취, 청소년·여성의 형평운동 지원, 파벌주의·족보주의의 배격, 동양척식회사 반대, 근검절약 운동 전개 등을 활동 목표로 내걸고 전국에 지회(支會)와 분회(分會)를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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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대구 3·8만세운동을 주도한 신명여자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신명 3·1운동 기념탑(信明三一運動紀念塔)은 대구 3·8만세운동을 주도한 신명여자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1972년 10월 23일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신명여자고등학교에 건립되었다. 신명여자고등학교는 2004년 3월부터 남녀공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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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에 대구 지역 신문배달부가 설립한 노동단체. 신문배달부조합은 “지식 계발과 인격 향상, 호상 친목과 단결로써 사회의 정의적 봉공”을 실현하고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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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민주화운동가. 신우영(辛佑榮)[?~?]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교원노조 활동을 전개하고 이대악법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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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태근(申泰根)[1870~?]은 1870년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칠곡 신동교회 남전도회장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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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에서 활동한 친일파 관료.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성당(誠堂), 일본식 이름은 사루교쿠[申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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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현욱(申鉉旭)[?~?]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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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서영균, 송정득이 참여한 신흥학교 학우단이 펼친 독립운동. 신흥학교 학우단의 정식 명칭은 신흥 학우단(新興學友團)이다. 신흥 학우단은 1913년 3월 만주 류허현[柳河縣] 산위안푸[三源堡] 다화셰[大花斜]에서 창설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 주로 신흥 무관 학교(新興武官學校) 졸업생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 1913년 7월부터 국문 또는 국한문으로 발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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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심문태(沈文泰)[1895~1978]는 1895년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1920년대 이후에는 경상남도 지역에서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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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심정섭(沈廷燮)[?~?]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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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경수(安敬秀)[1888~1952]는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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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달득(安達得)[1903~1928]은 1903년 5월 1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북내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안달덕(安達德)·적파(赤波)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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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영두(安泳枓)[?~?]는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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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의중(安懿仲)[1881~?]은 1881년 5월 9일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에서 태어났다. 대구 나병원에서 소사[잔심부름꾼]로 일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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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된 친일 관변단체 애국부인회 지부. 애국부인회 대구지부(愛國婦人會 大邱支部)는 대구 지역 상류층 여성을 중심으로 설립된 친일 관변단체로 적십자사, 병원 등과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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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대구 약령시를 부활하기 위하여 설립한 경제단체. 대구 약령시(大邱 藥令市)는 1658년(효종 9)부터 경상감영의 객사(客舍)인 달성관 주변에서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리던 조선시대 전국 최대의 약령 시장이었다. 봄에 열리는 약령시는 춘령시(春令市), 가을에 열리는 약령시는 추령시(秋令市)라고 하였다. 대구 약령시는 1908년 일제에 의한 경상감영 객사 철거로 남성정[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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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대구 약령시 이전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의 객사(客死)인 달성관(達城館)을 중심으로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약령 시장을 개설한 데서 시작되었다. 1908년 일제에 의한 경상감영 객사 철거로 대구 약령시는 남성정[현 중구 남성로]으로 이전하였다. 대구 약령시가 남성정으로 이전한 이후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는 상인들이 만든 자치 조직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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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약령시의 진흥을 위하여 대구 한약업자 조합이 주도하여 세운 경제단체.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의 객사(客死)인 달성관(達城館)을 중심으로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약령 시장을 개설한 데서 시작되었다. 1908년 일제에 의한 경상감영 객사 철거로 대구 약령시는 남성정[현 중구 남성로]으로 이전하였다. 대구 약령시가 남성정으로 이전한 이후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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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도일(楊道一)[1876~1942]은 1876년 6월 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서 태어났다. 가창농업공동회(嘉昌農業共同會) 회원으로 활동하며 소작쟁의를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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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양말 직공이 설립한 노동단체. 양말공공존회(洋襪工共存會)는 1924년 6월 22일 경정 2정목 직공양말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우종면이 사회를 맡았고, 대구노동공제회 김하정이 축사를 하였다. 집행위원으로 문상직·강진환·채범식·홍낙우·안종범이 선출되었다. 창립총회 당시 강령과 규약을 정하였다. 양말공공존회는 대구노동공제회가 설립에 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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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대구 지역 양화 직공이 설립한 노동단체. 양화직공조합은 양화 직공의 생활 향상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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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대구에서 활동한 민주화운동가. 여학룡(呂學龍)[?~?]은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이소리에서 태어났다. 대서 교사로 근무하며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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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염복은(廉卜恩)[?~?]은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구애국부인회(大邱愛國婦人會)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였다. 남편은 구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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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 있는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왕산 허위선생 순국 기념비(旺山許蔿先生殉國紀念碑)는 의병이자 독립운동가인 왕산(旺山) 허위(許蔿)[1854~1908]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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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시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 우재 이시영 선생 순국기념탑(又齋李始榮先生殉國紀念塔)은 우재 이시영(李始榮)[1882~1919]을 기리기 위하여 1972년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세운 기념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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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세워진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 우현서루(友弦書樓)는 1904년 대구 지역의 부자인 금남(錦南) 이동진(李東珍)이 개인 재산을 투자하여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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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대구 지역 출신 유림 13명이 참여한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 일제는 1919년 2월 이완용을 정당 대표로, 김윤식과 이용직을 유림 대표로 하여 일왕에게 한국 유림은 독립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합방 절대 지지 한일 불리 청원서(合邦絶對支持韓日不離請願書)’[일명 ‘독립불원서’] 를 보냈다. 독립불원서는 일제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며, 김윤식과 이용직은 일본이 자진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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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유흥수(柳興洙)[1921~2016]는 1921년 6월 22일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윤독회(輪讀會)·문예부·다혁당(茶革黨)에서 활동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호는 산남(山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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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육군 공병 5기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육군 공병5기 6·25 참전 기념비(陸軍工兵五期六二五參戰紀念碑)는 6·25전쟁에 참전한 육군 공병 5기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4년 10월 27일 건립한 기념비이다. 2011년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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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대구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 대구 지역은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중심 도시여서 대구를 기반으로 의병 부대가 만들어지거나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구 출신 의병들은 주로 다른 지방의 의병 부대에 소속되어 항일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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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근영(李根泳)[?~?]은 1908년 교남교육회(嶠南敎育學會)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교남교육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1908년 3월 15일에 설립한 교육 계몽 단체였다. 교남교육회는 학교 설립과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대구와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각 지역에 지방조직인 지회를 설립하고 권유위원을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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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근중(李根重)[?~?]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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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친일파. 이근호(李根澔)[1861~1923]는 1861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자는 문옥(文玉), 호는 송은(松隱), 규재(奎齋)이다. 이근호의 동생은 이근택(李根澤), 이근상(李根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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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기명(李基明)[1898~1945]은 1898년 2월 27일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풍리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이형석(李亨錫)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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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남숙(李南淑)[1903~?]은 1903년 6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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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덕생(李德生)[1901~1939]은 1901년 6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이상일(李相一)·이일보(李一普)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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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동우(李東雨)[?~?]는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나정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여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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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두석(李斗錫)[1912~1938]은 1912년 5월 19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태어났다. 고향 왜관에서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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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이만집(李萬集)[1876~1944]은 대구 남성정교회 목사로 재임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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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명건(李命建)[1901~?]은 1901년 12월 29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대구에서 비밀결사 혜성단(彗星團)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여성(李如星)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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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이발 직공이 설립한 노동단체. 이발직공조합은 직공 단합과 친선, 호상부조, 기술 향상, 지식 계발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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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복건(李福健)[?~?]은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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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쾌(李相快)는 1902년 4월 2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ㄱ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만쾌(李萬快) 또는 이만쾌(李萬恢)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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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화의 주택. 이상화 고택(李相和古宅)은 항일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상화((李相和)[1901~1943]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거주하였던 집이다. 1910년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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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석도(李碩道)[?~?]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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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선희(李善希)[1896~1926]는 1896년 11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2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선애(李善愛)·이선희(李先希)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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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이성림(李成林)[1990~?]은 일본에 있는 도쿄 센슈 대학[東京專修大學] 경제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도쿄 유학 당시 1919년 일어난 3·1 운동에 참가하였다. 귀국 후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동지와 협력하여 사이토 마코토[齊藤實] 조선 총독 암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비밀이 폭로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수사를 받고 서울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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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성해(李聲海)[1903~?]는 1903년에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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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수건(李壽鍵)[?~?]은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이시평(李時平)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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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서 활동한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의 기업인이자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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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승욱(李陞旭)[1898~1962]은 1898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하대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운옥(李云玉)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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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사회사업가. 이영식(李永植)[1897~1981]은 1897년 12월 13일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이천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혜성단(彗星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대구 시내 상인들에게 폐점 철시를 요구하고 대구경찰서장 및 친일 인사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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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영옥(李榮玉)[?~?]은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봉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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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일본인 자본가. 1904년 대구를 중심으로 철도 공사가 진행되면서 일본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1904년 8월 일본인들이 거류민단(居留民團)을 조직하자 이와세 시즈카[岩瀨靜]도 가입하여 활발히 활동하였다. 1906년 11월 25일 대구 거주 일본인들과 함께 오카모토 리헤이[岡本利平] 부이사관의 지원을 받아 달성공원기성회를 조직하였고, 이후 일본인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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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국어학자·독립운동가·역사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환산(桓山), 한뫼·한메. 아버지는 이용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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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이석(李利錫)[?~?]은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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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재인(李在寅)[1887~1968]은 18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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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춘(李載春)[1877~?]은 187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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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식(李鍾植)[1891~1975]은 1891년 6월 2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곡물상을 운영하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이임용(李任用)·이화용(李化用)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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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 의열단원 이종암이 독립자금을 확보하다가 체포된 사건. 이종암(李鍾巖)[1896~1930]은 1896년 경상북도 대구군 해북촌면 백안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에서 태어났다. 1912년 대구부 서상정으로 이사하였다. 이종암은 대구공립보통학교[현 대구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농림학교, 부산상업학교에 연이어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여 매번 중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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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종헌(李鍾憲)[?~?]은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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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종희(李宗熙)[?~?]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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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중관(李重寬)[?~?]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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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증로(李曾魯)[1898~1962]는 1898년 1월 15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현내리에서 태어났다. 22살이던 1919년 4월 길림 군정사(吉林軍政司) 독판(督辦) 춘교(春郊) 유동열(柳東說) 총장에게 독립운동에 관한 취지를 듣고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지방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국내로 진입하였다. 1919년 7월 중순경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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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창기(李暢基)[1913~1978]는 1913년 12월 24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서 태어났다. 고향 왜관에서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병기(李炳基)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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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춘수(李春壽)[?~?]는 대구에서 태어나 물산장려운동·조선여성동우회·근우회 대구지회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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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태학(李泰鶴)[1890~1962]은 1890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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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효순(李孝淳)[?~?]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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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대구 지역 인사들이 연루된 좌익 조작 사건.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은 1964년 제1차 인민혁명당사건에 이어 1974년에 일어난 제2차 인민혁명당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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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었던 초등교육기관. 1910년대 일제 식민교육정책 목표는 ‘우민화’교육이었다. 따라서 초등교육기관 설립 정책은 기본적으로 ‘6면 1교’로, 6개 면에 1개 공립학교를 설립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인들이 “신식교육을 배우려는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교육열’이라는 단어가 각종 신문지상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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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경규(林慶奎)[?~?]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 제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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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봉선(林鳳善)[1897~1923]은 1897년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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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자본가이자 정치인. 임상조(林尙助)[1886~1969]는 188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대구부회 의원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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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3·1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조직된 친일 관변단체. 자제단(自制團)은 조선총독부가 3·1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1919년 4월 조직한 단체이다. 친일파를 앞세워 조직된 자제단은 특히 남한 지방에 집중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자성회(自省會)’, ‘자제회(自制會)’라고도 하였다. 대구에서는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계기로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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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대구 지역에 설립된 근대식 의료기관. 자혜의원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관립 병원이다. 1909년 2월 청주와 전주를 시작으로 1910년 1월 함흥에 설립되었고, 1910년 9월에는 대구를 비롯하여 수원, 공주, 평양, 춘천, 진주, 경성, 의주, 해주, 광주 등으로 확대하여 설립하였다. 1942년에는 전국 46곳에 자혜의원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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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운동가이자 관료. 장규원(張圭遠)[?~?]은 근대 사립학교인 달성학교(達城學校)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부교장을 맡아 대구 지역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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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에 있는 의병장 장윤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장윤덕의사 순국 기념비(張胤德義士殉國紀念碑)는 의병장 장윤덕(張胤德)[1872~1907]을 기리기 위하여 1965년 10월 30일 세운 기념비이다. 2003년 2월 14일 국가보훈청에 의하여 독립운동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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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적십자사의 지부. 적십자사 경북지부(赤十字社慶北支部)는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의 산하 조직이었다. 당시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의 산하 조직에는 경북도 지부, 경기도 지부, 전북도 지부, 경남도 지부 등 4개 지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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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노동 운동가. 전태일(全泰壹)[1948~1970]은 1948년 8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전상수(全相洙)와 이소선(李小仙) 사이에서 2남 2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전태일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950년 3월에는 부산, 1954년 8월에는 서울에 정착하여 천막촌에서 살았다. 가난으로 인하여 거의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1956년 3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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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민족운동가. 정경주(鄭瓊周)[1866~1945]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서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를 결성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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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덕진(丁德鎭)[1897~1977]은 1897년 1월 9일 경상북도 달성군 달성면 성당동에서 태어났다. 정덕진의 또 다른 이름은 정입진(丁入鎭) , 정팔진(丁八鎭)이다. 1920년 8월부터 대한민국 임시 정부 특파원 이현수(李賢壽)와 함께 포고문, 유고문, 군자금 모금을 위한 경고문, 긴급 경고문, 독립 공채 모집에 관한 서류, 『자유 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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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인엽(鄭寅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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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행돈(鄭行敦)[1912~2003]은 1912년 8월 22일 지금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서 태어났다. 고향 왜관에서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가 정행국(鄭行國)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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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대구 지역 인사들이 연루된 좌익 조작 사건. 인민혁명당은 1955년 부산에서 결성된 암장(岩漿)그룹에서 시작된다. 암장그룹은 1954년 부산사범학교의 이수병, 김종대, 김정위, 박영섭, 유진곤, 부산고등학교의 최종국, 이영호, 김금수, 경남공업고등학교의 방중기가 사회과학 학습을 토대로 한국사회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만든 사회과학 연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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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8월 8일 대구시 6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제2대 시의원 선거. 1956년 2월 13일 「지방자치법[법률 제385호]」이 개정·공포되면서 시·읍·면장의 선거는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었다. 1956년 8월 8일에는 시·읍·면장과 의회의원을, 1956년 8월 13일에는 서울특별시, 시·도의회의원 선거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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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부터 1926년까지 대구를 비롯한 영남 일대에서 유림 대표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일으킨 독립운동. 김창숙(金昌淑)은 1925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회영(李會榮)을 만나 독립운동의 방략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김창숙과 이회영은 즉각적인 독립전쟁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기적인 독립전쟁 전략을 구상하기로 하였다. 김창숙은 새로운 독립운동 기지를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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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2월 12일 제3대 도의원을 선출하는 선거. 1960년 11월 1일 「개정지방자치법」에 의하면 1960년 12월 12일 서울특별시와 도의회의원 선거, 12월 9일 시·읍·면의회의원 선거, 12월 26일 시·읍·면장 선거, 12월 28일 서울특별시장·도지사 선거를 실시하도록 되었다. 한편, 1960년 9월 24일 내무부 당국에 따르면, 경상북도 도의원의 수는 기존 6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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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5월 15일에 대구 지역에서 제3대 정부통령 선거의 개표가 중단된 사건. 1956년 5월 15일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장면에게 득표수가 밀렸던 자유당과 이기붕 후보가 선거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하여 개표를 중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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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5월 2일에 대구 지역에서 민의원을 선출한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52년 개헌에 의하여 우리나라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으로 구성하여야 했다. 그러나 참의원은 구성되지 못하여 왔다. 1958년 1월에 국회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선거법」을 폐지하고 민의원의원 선거와 참의원의원 선거를 분리한 「민의원의원선거법」과 「참의원의원선거법」을 제정하였다. 참의원의원 선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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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설립된 조선소작인상조회 산하 지회인 친일 단체. 일제의 식민 농업 정책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적극적으로 소작쟁의를 일으켜 생존권 투쟁을 이어 나갔다. 또한 3·1운동 이후 각종 농민운동 단체가 결성되면서 소작농 보호, 친일 지주에 대한 성토, 소작료 인하, 상호부조, 노동야학 운영 등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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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조선식산은행의 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10월 조선총독부의 금융정책에 따라 대구 지역에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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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0월 18일 독립운동가 장진홍이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탄으로 폭파한 사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은 1927년 10월 18일 장진홍(張鎭弘)[1895~1930]이 일제에 저항하고자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배달하여 폭파시킨 사건을 일컫는다.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인 장진홍은 1916년 광복단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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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민주화운동가. 조영진(曺永鎭)[?~?]은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연천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교원노조 활동을 전개하고 이대악법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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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선(趙龍善)[1894~1981]은 1894년 2월 1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수원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고, 조선민족대동단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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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론인. 조용수(趙鏞壽)[1930~1961]는 1930년 4월 24일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서 조판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4·19혁명 후 민족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여 혁신계를 대변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호는 산남(山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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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대구사범학교 출신 교사와 학생이 비밀결사로 조직한 사회주의운동 단체. 주먹단은 김동환(金東煥)·권태림(權泰林)·김용갑(金龍甲)·서영달(徐迎達) 등 4명이 1929년 2월 24일에 조직한 사회주의운동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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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경주, 포항을 연결한 철도. 중앙경철(中央輕鐵)은 대구-경주 간 2등 도로를 보완하고자, 대구-경주-포항에 부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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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역에서 반월당까지 연결된 도로. 중앙통(中央通)은 일제강점기 대구역에서 반월당까지 연결된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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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중등교육기관. 1. 대한제국기[1899~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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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대구 지역의 교수와 지식인들이 세운 학술 단체. 지방사회연구소는 지역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하여 학술적인 조사 및 연구와 학제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당시 주로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에 있는 80여 명의 대학교수와 지식인들이 지방사회연구소 결성을 주도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형기, 김도형, 배영순, 이윤갑, 이종오,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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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및 경북 지역의 지주들이 결성한 조직. 지주조합(地主組合)은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의 지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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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실업자 구제를 위하여 설치된 대구부 산하 사회사업단체. 조선총독부는 192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대구, 경성, 부산, 평양 등 각 부(府) 단위로 ‘빈민 구제 사업’, ‘이재민 구조’, ‘노유폐질자(老幼廢疾者) 구료(救療)’, ‘고아 및 맹아자의 교양 및 행려병인 사망인의 구호 취급’ 등 사회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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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무정주의자들이 조직한 단체. 진우연맹(眞友聯盟)은 표면적으로는 친목과 수양을 표방하였지만 무정부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일제를 상대로 기관 테러와 요인 암살을 하고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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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이현동에 있는 6·25전쟁 참전 용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참전용사 명예선양비(參戰勇士名譽宣揚碑)는 6·25전쟁에 참전한 참전유공자를 기리기 위하여 2001년 5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대구광역시 서구 이현동에 있다. 2003년 5월 30일 국가수호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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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갑원(蔡甲元)[1894-1986]은 1894년 6월 2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6일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미대동에서 마을 차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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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경식(蔡敬植)[1896~1950]은 1896년 11월 2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6일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미대동에서 일어난 마을 차원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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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채두석(蔡斗錫)은 유학(幼學)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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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명원(蔡命元)[1901~1966]은 1901년 10월 18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6일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미대동에서 일어난 마을 차원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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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봉식(蔡奉植)[1889~1949]은 1889년 4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6일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미대동에서 마을 차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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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송대(蔡松大)[1896~1966]는 1896년 11월 2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6일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미대동에서 일어난 마을 차원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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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채실건(蔡實健)[1922~1945]은 1922년 3월 19일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농림학교 재학 중 독서회를 항일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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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학기(蔡鶴基)[1901~1987]는 1901년 6월 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6일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미대동에서 마을 차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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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희각(蔡熙覺)[1894~1967]은 1894년 8월 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6일 인천채씨(仁川蔡氏) 집성촌인 미대동에서 마을 차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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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는 농촌계몽운동과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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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초등교육 기관. 대구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초등교육이 실시된 시기는 1899년 근대 교육기관이 설치되면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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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경성(崔景成)[1883~?]은 1883년 1월 1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사립 영흥학교(永興學校) 교장으로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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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교육운동가. 최극창(崔克昌)[?~?]은 근대 사립학교인 달성학교(達城學校)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대구 지역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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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낙철(崔洛哲)[1921-2005]은 1921년 11월 22일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연구회·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활동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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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 출신의 자본가. 최만달(崔萬達)[?~?]은 대구사범학교와 대구농공은행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대한협회(大韓協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최만순(崔萬淳)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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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영백(崔榮百)[1921~2005]은 1921년 6월 8일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백의단(白衣團)과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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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영학(崔永學)[?~?]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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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할동한 민족운동가. 최응백(崔應白)[?~?]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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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 최재화(崔載華)[1892~1962]는 1892년 12월 18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해평면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고, 이후 대구에서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최재하(崔在河)·최동수(崔東秀)·공동수(孔東秀)·최동철(崔東哲)·최덕규(崔德奎)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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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문(聲聞), 호는 금전(琴田). 최근응(崔謹應)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최흥원(崔興遠)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남교(崔南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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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여성 성악가. 추애경(秋愛卿)[1900~1973]의 아버지는 추영옥(秋永玉), 어머니는 최복경(崔福卿)이다. 아버지는 건어물상회를 운영하였다. 추애경은 대구부 시장정 2정목 144번지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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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대구 출신 6·25전쟁 전몰 용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충혼탑(忠魂塔)은 6·25전쟁에 참전한 대구 출신 전몰 용사를 기리기 위하여 1958년 5월 30일 세운 기념비이다. 1971년 4월 20일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으로 이전하여 재건립하면서 ‘충혼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5년 5월 9일 국가수호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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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학생 항일 투쟁 단체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태극단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太極團學生獨立運動記念塔)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벌인 태극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1973년 2월 1일 세운 기념비이다. 원래 구대구상업학교본관에 있던 것을 1985년 달서구 상인동으로 이전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다시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이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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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대구노동공제회 소속 토목공이 세운 노동단체. 토목공려회(土木工勵會)는 1922년 2월 26일 대구노동공제회 소속 토목공 150명이 조직한 노동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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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립한 임시토지조사국 산하 조직. 일제는 1905년 12월 통감부 설치 이후부터 토지조사사업을 위하여 한국의 토지제도와 토지소유 관습 등에 대하여 조사하고 연구하여 『한국토지조사계획서』를 발간하였다. 또한 1910년에는 「토지조사법」이 제정되었다. 이로써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전면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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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 인재를 육성하고, 산업 계열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는 1998년 3월 개정·공포된 「초·중등교육법시행령」[대통령령 제31349호] 제91조에 따라 특정 분야 인재 및 전문 직업인 양성을 위한 특성화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고등학교의 한 형태이다. 1998년부터 기존 전문계 고등학교 가운데 우수한 학교들을 뽑아 특성화고등학교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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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장애 아동 및 청소년에게 적합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운영하는 학교.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법률 제16746호] 제2조에서, 특수교육기관은 특수교육 대상자에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전공과 포함]의 과정을 교육하는 특수학교 및 특수학급을 말한다. 특수교육 대상자에게는 통합교육, 개별화교육, 순회 교육, 진로 및 직업교육 등을 실시하여 효율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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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대구에서 결성된 최초의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 109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가 결성되었다. 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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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학도의용군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학도의용군 6·25 참전 기념상(學徒義勇軍六·二五參戰 記念像)은 6·25전쟁에 참전한 학도의용군을 기리기 위하여 1979년 5월 30일 건립하였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다. 2003년 9월 22일 국가보훈청에 의하여 국가수호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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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있는 대한민국 내에 거주 중인 화교를 위한 중·고등학교 과정의 외국인학교 한국대구화교중고등학교는 1958년 9월 1일 대구화교소학부 분교지에 한국대구화교초급중학으로 세워졌다. 건축 당시에는 2층 건물 1동이었고, 학생은 35명이었고, 교원은 교장 1명, 교무 1명, 교사 2명으로 총 4명이었다. 1960년에는 학생 수가 100여 명에 달하였으며, 교원은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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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에 있는 대한민국 내 거주 중인 화교를 위한 초등교육 과정의 외국인학교. 한국대구화교초등학교(韓國大邱華僑初等學校)는 1943년 대구화교소학교로 개교하였다. 1920년대 대구 지역에서 성공한 화교 출신 건축가 모문금(慕文錦)은 1940년대 화교 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한편 기부금을 받아 1943년 현 종로호텔 주차장 자리에 있던 화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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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립한 은행 건물. 한국산업은행대구지점(韓國産業銀行大邱支店)은 1931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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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파리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비(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는 일제강점기 파리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하여 1997년 10월 10일 건립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월곡역사공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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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연순(韓連順)[1898~?]은 1898년 12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을 조직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종근(李琮根)이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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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 자본가. 한익동(韓翼東)[1888~?]은 1888년 4월 대구부 경정(京町)[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종로2가]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 자문기구와 관변단체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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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대구 지역에서 한일회담 개최 및 비준을 반대하기 위하여 전개한 민주화운동.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의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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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초등 교육기관. 1898년 9월 천주교 대구본당 주임신부였던 프랑스인 아실 폴 로베르(Achille Paul Robert)[한국명 김보록(金保祿)]가 계산성당 교육관에 ‘성당서당(聖堂書堂)[해성재]’이라는 한문 서당을 세웠다. 1908년 3월 1일 성당서당의 교명을 성립학교(聖立學校)로 변경하였고, 통감부가 사립학교를 통제하기 위하여 만든 「사립학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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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담(許澹)[1886~1972]은 1886년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경학교(聖經學校)에서 강습을 받고 있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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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방(許枋)[?~?]은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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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범(許範)[?~?]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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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허성덕(許聖德)[1902~1944]는 1902년 8월 28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8일과 3월 10일 대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한 뒤 항일 비밀결사 혜성단(慧星團)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신사참배 거부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허성도(許聖徒)·허도(許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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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허지(許智)[1893~?]는 1893년 6월 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대구부회 의원을 역임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하여 광복 후 친일 부역 혐의로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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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계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혜성단(彗星團)은 김수길, 이종식 등이 대구 지역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이다. 대구 3·1운동의 지속과 확대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며, 국외의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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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애국 계몽 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량(士良), 호는 자은(紫隱). 홍만조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성균 진사(成均進士) 홍가모(洪可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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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던 사립 초등 교육기관. 1902년에 안의와(安義窩)[James Edward Adams, 1867~1929] 선교사가 남성정교회(南城町敎會)[현 대구제일교회] 내에 대남학교를 세웠다. 1907년에 부해리(傅海利) 선교사의 부인 부마태가 장인차(張仁車) 선교사의 부인 파커(Edith M. Parker)가 운영하였던 바느질반 소녀 14명을 인수하여 대구 선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