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명지(明之), 호는 죽간(竹磵)이다. 시강원 문학을 지낸 강중진(康仲珍)의 증손자이며, 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다. 강복성[1550~1634]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한 뒤, 참봉·직장(直長)·찰방(察訪) 등을 지냈다. 1595년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장현광(張顯光) 등과 함께 발탁되어...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김규석(金奎錫)[1844~1908]은 익산시(益山) 출신으로, 천안 군수로 재직 시 현창과 창고를 중수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서(龜瑞), 호는 국헌(菊軒)이다.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뒤 참봉(參奉)을 거쳐 천안 군수, 통정대부(通政大夫), 중추원 의관(中秋院議官)을 지냈다. 1883년(고종 20) 10월에 녹비(鹿...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청양(靑陽), 자는 창숙(昌叔)이다.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김의건(金義建)의 아들이다. 김득대(金得大)[?~?]는 1707년(숙종 33) 무과에 급제한 후 천안 군수를 역임하였다. 천안 군수 재임 시 『선생안』[역대 천안 수령의 명부]을 중수하고, 서문을 지었으며, 천안의 『문헌록』을 다시 간행하였다. 군수가 쓰는 판공비의...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여량(汝兩)이다. 현종의 장인인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의 아들이며, 명성 왕후(明聖王后)의 동생이다. 김석익(金錫翼)[?~1686]은 23세 때 빙고 별검(氷庫別檢)에 임명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680년(숙종 6)에 인평 대군(麟坪大君)의 아들 복창군(福昌君)과 복선군(福善君), 그리고 허적(許...
-
조서 후기 이인좌의 난 때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공을 세운 무인 김선재(金先才)는 조선 영조(英祖) 때의 인물이다. 『영성지(寧城誌)』의 기록에 따르면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당하여 천안군(天安郡)의 초관(哨官)으로 있으면서 의(義)로서 살기를 작정하고 충성을 다하여 보국하였다. 군졸을 모집하여 적을 사로잡고 고을을 굳게 지켰다. 양무 이등 공신(揚武二等功臣)에 책훈...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남태기(南泰耆)[1699~1763]는 천안 군수를 역임한 뒤 벼슬이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낙수(洛叟), 호는 죽리(竹裏),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할아버지는 남상훈(南尙熏)이고, 아버지는 의빈도사(儀賓都事)를 지낸 남근명(南近明), 어머니는 부사(府使)를 지낸 이만봉(李萬封)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노대하(盧大河)[1546~1610]는 임진왜란 때 김응남(金應南) 휘하의 종사(從事)로 있으면서 식량 수송에 공을 세웠다. 천안 군수로 있을 때 처음으로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였으며, 왕실의 행재(幸宰)로 쓰이던 화축관과 객사를 건립하였다. 천안 군수 임기를 마치고 이천 부사로 승진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수오(受吾),...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무신. 민영(閔韺)[?~1637]은 천안 군수 재임 시 수선정이라는 정자를 건립하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에게 기(記)를 짓게 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정보(正甫)이다. 아들은 민광렬(閔光烈)이다. 의주 부윤을 지내고 1635년(인조 13)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과감히 척화론을...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박병(朴炳)[1587~1663]은 천안 군수 재임 시 병자호란 때 불탄 관아를 다시 지었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소문(小文)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낸 박응천(朴應川)이고, 아버지는 참봉 박동민(朴東民)이다. 큰아버지인 박동현(朴東賢)에게 입양되었다. 어릴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배웠고, 이후 김현성(...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의숙(宜叔)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박안현(朴顔賢)의 아들이다. 박순의(朴純義)는 1633년(인조 11) 증광시(增廣試) 증광 진사 3등 30위로 입격하였으며, 천안 군수를 역임하고 이후 원주 목사를 지냈다. 원주목사 재임 시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원주시 가곡 1리에 선정비와 순덕각...
-
조선 후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양, 자는 우천(于天)이다. 효자 정려를 세운 서충필(徐忠弼)과 서충좌(徐忠佐)가 종조할아버지이다. 장령공(掌令公) 서정연(徐挺然)의 아들이다. 서한장(徐漢章)[1640~1677]은 천안 원일면[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매당리]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워 겨우 7세 되었을 때 절구시를 지었다. 1...
-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오는 성씨. 성씨란 시조(始祖) 이래로 대를 이어 내려오는 혈족의 공통 칭호이다. 사실 성(姓)과 씨(氏)는 본원적인 의미에서는 개념이 달랐다. 성은 혈통의 연원을 표시하는 것이고 씨는 성의 분파(分派), 곧 본관을 의미하였지만, 보통은 구별해서 쓰지 않고 안동 김씨(安東金氏), 연안 이씨(延安李氏) 등 본관과 성을 합하여 씨족을...
-
고려 후기 천안부 판관으로 근무한 문신. 고려 시대에 천안부(天安府)에서 판관(判官)으로 근무를 할 때 근무 성적이 우수하여 공역서 승(供驛署 丞)으로 진급하였던 인물이다. 고려사 권102에 고려 시기의 자녀 상속에 대한 손변(孫抃)[?~1251]의 판결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수주인(樹州人)이며, 처가(妻家)가 왕실의 서족(庶族)[서자 자손의 혈족]이기 때문에 그는 대성(臺省)...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효자. 손여성(孫汝誠)[?~?]은 효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제수되었으며, 천안 군수 재임 시 처음으로 『천안 문헌록』을 작성하였다. 치적이 높이 평가되어 남원 부사로 영전되었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극일(克一), 호는 용담(龍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손위(孫渭), 할아버지는 손수창(孫秀昌)이다. 일찍이 아버지가 병이 들자, 목욕...
-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양현사(兩賢祠)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문효공 전신(全信)[1276~1339]과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천안 전씨 전득중(全得中)의 사위인 이협(李筴)[1583~1665]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천안시 풍세면 용정 초등학교에서 아산 방향으로 약 4㎞ 거리의 금호 1길로 들어가면, 삼태리의 앵봉...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이다. 어세공(魚世恭)의 9대손이고, 한성부 우윤을 지낸 어사형(魚史衡)의 아들이며, 경종의 장인인 어유구(魚有龜)의 형이다. 어유봉(魚有鳳)[1672~1744]은 사마시를 거쳐 1699년(숙종 25) 대과(大科)에 응시했다가 시험의 부정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였다. 뒤에...
-
전통 시대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한 천안 지역의 부녀자. 열녀(烈女)란 어려움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천안 지역의 열녀에 관한 기록은 『대록지(大麓誌)』, 『직산현지(稷山縣誌)』, 『영성지(寧城誌)』, 『대록삼강실록(大麓三綱實錄)』, 『여지도서(輿地圖...
-
강호문이 지은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 있는 태조 왕건의 유적인 고정과 왕자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글. 강호문(康好文) 찬으로 되어 있으며, 1478년(성종 9) 편찬된 『동문선(東文選)』과 1852년(철종 3)에 편찬된 충청도 천안군[지금의 천안시] 읍지인 『영성지』에 전하고 있다. 저자는 강호문(康好文)으로 생몰년은 미상이고, 자는 자야(子野), 호는 매계(梅...
-
충청남도 천안시의 상징 동물. 용은 고대부터 풍운(風雲)의 조화를 다스리는 수신(水神)·해신(海神)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일찍부터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 국가의 수호신과 왕실의 조상신으로, 농경을 보호하는 비의 신과 풍파를 주재하는 바다의 신으로 풍년(豊年)과 풍어(豊漁)를 기원하기 위해 숭배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의 상징 동물로 천안시에는 용과 관련된 마을 이름이 많다....
-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때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에 속하는 천안군 지역에서 300년이 채 못 되게 거주한 성씨. 1852년에 편찬된 천안 군지인 『영성지(寧城誌)』에 기록된 성씨를 보면, 10세[30년을 1세로 보아 대략 300년 정도의 기간] 이하로 군에 거주한 우거 성씨는 진주 강씨(晉州姜氏) 6명부터 전주 이씨(全州李氏) 1명까지 모두 37개 성관[성 및 본관]의 135명이...
-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때 천안군 지역에서 300년이 넘게 거주한 성씨. 1852년에 편찬된 천안 군지인 『영성지(寧城誌)』에 기록된 성씨를 보면, 10세[30년을 1세로 보아 대략 300년 정도의 기간] 이상 군에 거주한 원거 성씨는 천안 전씨(天安全氏) 39명부터 은진 송씨(恩津宋氏) 1명까지 모두 34개 성관의 228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윤행교[1661~1725]는 1694년(숙종 2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천안 군수를 역임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장문(長文)이다. 대사간을 지낸 윤황(尹煌)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윤증(尹拯)이며, 어머니는 한성부 우윤을 지낸 권시(權諰)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
조선 시대 천안에 우거한 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호는 여촌(麗村)이다. 감사를 지내고 천안 육현사(六賢祠)에 배향된 이승벽(李承璧)의 고손자이다. 이속(李涑)은 도학과 문장으로 가훈을 계승하였으며, 서울에서 내려와 고상한 도리를 행한 학자이다. 서울에서 내려와 고상한 도리를 행한 환성(歡城)의 유일(遺逸)이라 하는데, ‘환성’은 천안을 말하는 것이고, ‘유일’은 도...
-
조선 후기 천안에 우거한 문신·학자. 이수해(李壽海)[1693~?]는 영조 재위 기간 주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근무하면서 강직한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학행(學行)으로 네 차례에 걸쳐 참봉에 제수되었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일여(一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동명(李東溟), 할아버지는 이정화(李鼎華)이다. 아버지 이광의(李廣義)와 김만증(金萬增)의 딸인 어머니 광...
-
조선 전기 천안에 우거한 문인·학자. 이식(李埴)[1463~1502]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진사에 입격한 후 천안에 우거하며 학문과 후세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식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아들 이해(李瀣)와 이황(李滉)에게 이어져 큰 성과를 이루었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기지(器之)이다. 고조할아버지 이자수(李子脩)는 고려 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통헌대부 판전...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이암(李巖)[?~?]은 천안 군수를 역임하는 동안 치적이 뛰어나 청주 목사로 승진되었다. 1594년(선조 27) 천안 군수로 재임 시 도내 수령 중에서 가장 치적(治績)이 뛰어나 이조(吏曹)의 천거로 청주 목사에 특진되었다. 이후 1599년 안동 부사를 거쳐 1604년 연안 부사가 되었다. 이듬해인 1600년 선정으로 명망이 높아 왕...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이윤신(李潤身)[1689~?]은 1746년(영조 22) 천안 군수를 역임하고 함평 서장관을 지냈다. 천안의 『문헌록』을 속간하였다.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덕중(德仲)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성(李之星)이고, 아버지는 이인상(李寅相), 어머니는 최후식(崔後寔)의 딸이다. 1717년(숙종 43) 숙종이 윤선거(尹宣擧)와 그의 아들 윤증...
-
고려 후기 천안 군수를 지낸 문신·학자. 이집(李集)[1314~1387]은 1347년(충목왕 3) 문과에 급제한 뒤,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과 교유하였다. 본관은 광주(廣州). 본명은 이원령(李元齡)이고, 자는 성로(成老), 호는 묵암자(墨巖子)·호연(浩然)·둔촌(遁村)이다.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이당(李唐)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합...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부제학을 지낸 이단상(李端相)의 아들이다. 이희조(李喜朝)[1655~1724]는 1680년(숙종 6)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고, 다시 천거되어 전설별검(典設別檢)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의금부 도사·공조...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정존중(鄭存中)[1721~1798]은 천안 군수 재임 시 전염병이 돌아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수습했다. 이후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정(士靜)이다.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의 후손이며, 정제선(鄭濟先)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정형익(鄭亨益)이며, 아버지는 정홍상(鄭弘祥), 어머니...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정지경(鄭之經)[1586~1634]은 천안 군수였던 정근(鄭謹)의 아들로 부자가 모두 천안 군수를 지냈다. 천안 군수 재임 시 전임 군수 손여성(孫汝誠)이 지은 『문헌록』을 바탕으로 『속문헌록』을 간행하고, 고을의 효자와 열녀를 포상하였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상백(常伯), 호는 기은(機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구(鄭球)이고...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치숙(致叔), 호는 지수재(止水齋)이다. 할아버지는 채시경(蔡時鏡), 아버지는 채봉장(蔡鳳章)이다. 채응복(蔡膺福), 채응정(蔡膺禎)은 형이다. 승지와 부사를 지낸 병조판서를 한 채위하(蔡緯夏)가 아들이다. 채응상(蔡膺祥)[1689~1754]은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 되어 성리학을 깊이 궁구하였고,...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의 가래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 호두나무에 열리는 열매. 호두나무가 처음 발생한 곳이 지금의 이란 지역에 해당하는 고대 페르시아 지방이라 알려져 있다. 호두나무는 인도, 태국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국 땅에서 수종을 이루었다. 일본으로 유입된 서양종과 만나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면서 오늘의 광덕 호두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는...
-
전섭(全聶)을 도시조로 하고, 전낙(全樂)을 중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천안시의 세거 성씨. 도시조 전섭은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 온조(溫祚)가 백제를 개국할 때 공을 세워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으며, 전섭의 16세손인 전낙은 927년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을 위기에서 구하고 신숭겸과 함께 순절하였다. 그 후 삼사 좌복야(三司左僕射)에 추증되고...
-
전통 시대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을 실천한 천안 출신의 인물. 충신은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절을 다한 신하로서, 성신(聖臣)·양신(良臣)·충신(忠臣)·지신(智臣)·정신(貞臣)·직신(直臣) 등 육정신(六正臣) 중의 하나이다. 천안 지역에도 충과 관련된 인물이 많이 있어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던 충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천안 지역의 효자에 관한 기록은...
-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생산되는 특색 있는 산물. 천안시는 기후가 온난하고 강수량은 적당하며 토양도 농업에 적합하여, 예로부터 쌀·보리·밀·콩·고추·오이·참외·배 등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먹을거리가 다양하게 생산되어 왔다. 현재 천안시에서는 지역의 기후와 토질에서 나오는 특산물을 육성·지도·개발하여 상품화하고 있다. 옛 기록에서 천안 지역 특산물에 관하여 서술한...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주(延州). 효자 현상후(玄尙後)의 서족(庶族)이라는 기록이 전할뿐이다 현유선(玄有先)[?~?]은 천안의 관노로, 바쁜 와중에도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 올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비록 가난하여 자신은 먹지 못하더라도 부모의 음식 봉양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으며,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했다고 전한다....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홍탁(洪雨+濯)[1597~1651]은 천안 군수 재임 시 선정을 베풀었고, 이후 부사에 승진하였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행가(行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을 지낸 홍우전(洪禹甸)이고,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홍수(洪脩)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洪履祥), 어머니는 선무랑(宣務郞) 김고언...
-
고려 후기 이곡이 천안의 회고정이라는 정자에 쓴 기문. 고려 후기 문신인 성원규(成元揆)[?~1382]가 1348년(충목왕 4) 영주(寧州)[지금의 천안] 수령으로 파견되어 회고정(懷古亭)이라는 정자를 지은 후 1349년(충정왕 1)에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에게 기문을 부탁하여 지은 것이 「회고정기」다. 정자의 이름을 회고정이라고 정한 이유와 고려 왕건이 삼한...
-
전통 시대 천안 지역에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인물.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온 삼국 시대부터 효 사상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오늘날의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의 태학(太學), 신라의 국학(國學)에서 『효경(孝經)』은 중요한 교수 과목이었다. 통일 신라 시대 원성왕 때 실시한 독서삼품과에서도 『효경』은 시험의 필수 과목이었다. 고려 시대 국립대학인 국자감(國子監)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