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룡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473
한자 釣龍臺
영어공식명칭 Legend of the Joryongdae
이칭/별칭 「용암」,「용바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281년 - 「조룡대」 『삼국유사』 권2, 기이2 남부여 전백제 북부여 조에 「용암」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454년 - 「조룡대」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530년 - 「조룡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
관련 지명 조룡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무왕|의자왕|소정방
모티프 유형 수호신과 적장의 대결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조룡대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조룡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조룡대(釣龍臺)와 관련한 지명 전설이다.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에 쳐들어왔을 때 흰말을 미끼 삼아 백제 왕을 낚아 백제 침공에 성공하였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조룡대」는 1281년 편찬된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2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 조에 「용암(龍嵓)」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여현(扶餘縣) 조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룡대」백마강(白馬江)[사비하(泗沘河)] 변에 있는 바위인 용암에 얽힌 설화이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 사비성(泗沘城)을 공격하기 위하여 강을 건너려고 할 때 갑자기 비비람이 크게 일어나자 흰말로 미끼를 만들어 용을 낚아 도성에 진입하였다. 이후 소정방이 용을 낚은 강을 ‘백마강’이라 하고, 용을 낚은 바위는 ‘조룡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소정방이 바위 위에 앉아서 용을 낚았기 때문에 조룡대에는 용을 낚은 무릎 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조룡대」는 『삼국유사』에 용암 설화가 처음 소개된 이래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소개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과는 어긋난 허구에 불과하지만 이후 어느 시기에 ‘용암’이 ‘조룡대‘로 명칭이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

「조룡대」는 백제가 외세에 의하여 멸망하는 과정을 다룬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많은 각편과 유형이 기록되고 채록될 만큼 왕성한 전승 양상을 보이는 이야기이다. 「조룡대」는 백제를 수호하는 용을 외적인 소정방이 낚기 위하여 수를 쓰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의자왕이 용으로 등장하면, 용을 죽이는 방법을 알려 주는 인물로 의자왕의 애첩이나 사위, 딸이 등장한다. 의자왕의 측근 때문에 나라가 자멸하였음을 인물 역학 구도를 통하여 잘 보여 준다.

[모티프 분석]

「조룡대」는 소정방이 백제 왕으로 상징되는 용을 바위에서 낚은 승자로 묘사함으로써 백제 왕이 소정방에게 죽임을 당하여 백제가 완전히 멸망하였다는 인식을 보여 준다. 설화의 전승 과정에서 백제를 수호하는 용의 설화가 「조룡대」와 습합하면서 백제 망국의 증거물로 변이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조룡대」는 백제의 생명력의 원천인 사비강을 장소로 하여, 백제 수호신인 용과 외세인 소정방을 상징화하여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전승한 것이다. 승자와 패자 구도 속에서 용의 죽음은 백제의 패배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가운데 마무리된다. 백제를 무너뜨린 소정방은 잔인하고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반면 패자인 백제 왕은 호국지신 무왕(武王)의 현신으로 그려 적장에 저항하는 정신적 승리를 염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백제의 패망을 담은 「조룡대」는 죽어서도 백제를 지킨 정신을 상징적 인물의 대결 구도를 통하여 계승하고자 하는 염원을 문학적으로 재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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