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396
한자 南扶餘
영어공식명칭 백제
이칭/별칭 백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538년연표보기 - 남부여 개칭

[정의]

삼국 시대 538년부터 660년까지 사용된 백제의 별칭.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 성왕은 538년(성왕 16) 백제의 중흥을 위해 사비(泗沘)로 천도하면서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扶餘)’로 하였다. 남부여로의 개칭은 부여를 계승한다는 정체성을 천명한 것으로, 왕실 세력을 결집하고 이성 귀족과 차별화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6 백제본기4, 성왕 16년 조에 “무오(戊午) 봄에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한다”라고 하였으며, 주(注)에 그 지명은 ‘소부리’라고 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2에는 “부여군은 옛 백제의 왕도이니 혹은 소부리군(所夫里郡)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내용]

백제는 538년에 수도를 웅진(熊津)에서 사비로 옮기면서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개칭하고 백제의 중흥을 꾀하였다. 성왕은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 신라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진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삼국사(三國史)』에서는 백제왕의 성이 부씨(扶氏)이므로 그렇게 일컬었다고 하였다. 또 『고전기(古典記)』를 인용하여 제26대 성왕에 이르러 도읍을 소부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하여 제31대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120년을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남부여라는 국호는 성왕사비 천도 이후 백제의 국명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는 백제 멸망 시까지 남부여라는 국명으로 사용된 사례가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538년 사비로 천도성왕은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하여 부여 계승 의식을 천명함으로써 귀족 세력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한성 지역에 대한 회복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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