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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71
한자 義直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기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647년~648년 - 의직 신라 공격
활동 시기/일시 660년 - 의직 나당 연합군에 맞서 선제공격을 주장
성격 장군
성별
대표 관직 좌평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료이자 장군.

[가계]

의직(義直)[?~?]은 백제 사비 도읍기에 중앙군의 장군으로 활동하였으나 성씨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활동 사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8 백제본기에, 647년(의자왕 7) “겨울 10월에 보병과 기병 3,000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무산성 아래로 나아가 주둔하며 군사를 나누어 감물성과 동잠성을 공격하였다. 신라 장군 유신이 몸소 군사들을 격려하며 결사적으로 싸워서 우리 군사를 크게 격파하니 의직이 혼자서 돌아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권47 비령자(丕寧子)열전에 따르면, 신라 장군 김유신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백제 군사 3,000여 명을 죽였다. 이듬해인 648년에는 “3월에 의직이 신라의 서쪽 변방의 요거성 등 10여 성을 습격하여 빼앗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660년(의자왕 20) 당나라 군사 13만 명과 신라의 정예 군사 5만 명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하여 왕도에 접근하였을 때 “왕이 소식을 듣고 신하들을 모아 나가서 싸우는 것과 지키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마땅한지를 물으니 좌평 의직이 나서서 말하기를 ‘당나라 군사는 멀리서 깊은 바다를 건너왔으니 물에 익숙하지 못한 자는 배에서 분명 피곤할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 땅에 내려서 군사들의 기운이 회복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공격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신라 사람은 큰 나라의 도움을 믿기 때문에 우리를 가벼이 여기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 만일 당나라 사람이 불리해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의심하고 두려워해서 감히 재빠르게 나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당나라 사람과 결전을 벌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의직의 의견은 달솔 상영 등이 반대하여 실행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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