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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80
한자 支藥兒食米記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이용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 「지약아식미기」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발굴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지도보기
발견|발굴처 부여 능산리 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지도보기
성격 목간
용도 식미 현황 기록

[정의]

2002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 백제 목간.

[개설]

「지약아식미기(支藥兒食米記)」는 삼국 시대 백제에서 약아(藥兒)의 봉급을 지급한 내용을 기록한 목간(木簡)이다. ‘약아’는 약부(藥部) 같은 백제의 의약 관련 관청에서 일하였던 실무자로 추정된다. 목간의 성격은 기록, 장부, 문서를 이르는 기(記)에 해당한다. 제작 시기는 부여 능산리 사지(扶餘 陵山里 寺址)가 축조된 6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제작 발급 경위]

「지약아식미기」의 내용이 7일 동안 약아에게 식미(食米)를 지급한 양의 기록인 것으로 볼 때, 해당 목간은 백제 지방관이 약아에게 식량을 제공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하여 만든 일종의 생활 기록이자 행정 문서라고 할 수 있다.

[형태]

「지약아식미기」는 길이 44㎝의 막대형 목간에 기록되었다. 아래쪽이 파손되었고, 원래 길이는 46~66㎝로 추정되는 대형 목간이다.

[구성/내용]

「지약아식미기」가 기록된 목간은 사면에 모두 글자가 있는데, 이 가운데 두 면의 내용은 ‘지약아식미기’란 제목 아래, 첫날부터 8일간 매일 지급된 식미의 양을 기록하였다. 식미는 식용 쌀이기도 하였지만 물품 화폐로도 취급되었으므로, 약아의 일당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지급된 양은 4말[약 77ℓ] 전후였다.

다른 한 면에는 당시 지방관이었던 도사(道使)와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다. 도사에게도 식량을 지급한 듯한데, 아마도 도사의 신체 특성과 출신지나 소속처를 기록한 듯하다. ‘식(食)’은 수수, 조, 기장, 피 등의 먹을거리를 가리킨다. 다른 한 면은 다른 세 면과 달리 위아래가 거꾸로 쓰였다. 또 ‘12섬[약 2,160 ℓ]’과 같은 단어가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연습한 글이거나 혹은 덧셈 집계로 추정된다. 도사가 보내온 곡식의 양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식미의 양을 기록할 때는 되[升]를 큰 것과 작은 것, 즉 대승(大升)과 소승(小升)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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