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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462
한자 靑年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헌주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 중심의 민족운동.

[개설]

3·1 운동 이후 일제는 기존의 통치 방식과는 다른 문화 통치를 실시하면서 식민 통치의 기조를 바꾸었다. 이에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은 각종 운동 단체를 조직하며 청년운동에 나섰다. 청년들은 각 군면 단위로 청년 수양 단체를 결성하였고, 야학과 생활 개선, 강연회와 토론회 등의 문화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부여 지역에서도 청년 단체들이 문화 계몽 운동을 주도하였다.

[부여 지역 청년 단체의 조직과 활동]

부여에서 가장 먼저 결성된 청년 단체는 1916년 봄에 손창욱과 최현모 등이 발기하여 창립한 홍산청년회다. 홍산청년회는 1924년 박장환을 회장으로 선임하여 조직 개편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1922년경에는 부여 규암에서 규암청년회가 조직되었다. 규암청년회는 지방 청년 남녀를 훈련시키고 신생활을 수립하고 신문화를 촉진하며, 민중의 상식을 계발할 것을 강조하였다. 1923년 11월에는 구룡면에서 김일환 등이 구룡청년공지회를 설립하였다. 구룡청년공지회는 회원들의 근검절약을 장려하고, 노동야학을 설치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회원 자제를 위한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천면의 임천청년회도 1920년대 초반에 조직되었다. 청년 조직은 대체로 생활 개조의 민중 상식을 계발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부여 지역 청년운동은 1929년 5월에 시도되었던 ‘부여청년동맹 결성 투쟁’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총독부 경찰이 발기 준비 위원이자 주도층이었던 노명우를 소환하는 등 적극적인 탄압에 나서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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