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에서 현대 안산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김녕(金寧)이고, 1917년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에서 김창환(金昌煥)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머니는 안창순(安昌順)이다. 1972년 사망하였고, 묘는 화정동 시상골에 있다. 김영기는 안산공립보통학교[현 안산초등학교]를 거쳐 서울 중동중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보성전문 법학부, 전주사범을 졸업한 후 1937년 3월 31...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안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순약(舜若)이다. 민철호(閔哲鎬)의 아들인 민규호(閔奎鎬)에게 입양되었다. 1852년(철종 3) 출생하여 1917년 사망하였는데,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목내동 능안에서 거주하였다. 여흥민씨 세력의 핵심 인물로,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한일병탄에 기여하는 등 친일파로 활동했다. 민영소는 18...
-
개항기 경기도 안산 출신의 성혜영이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연성(蓮城)이란 안산의 별칭이다. 「연성계상(蓮城溪上)」을 지은 남파(南坡) 성혜영(成蕙永)[1848~1911]은 ‘안산 15학사’의 의발(衣鉢)을 전수 받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차세대 인사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혜영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가 오랫동안 방랑을 하면서 시를 썼다는 기록 이외에 행적을 밝힐...
-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산·시흥 지역의 문인들이 조직한 한시 창작 모임.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없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선비의 기개가 점차 쇠약해지고 세상을 가르치고 교화함이 더욱 약해진 것을 안타깝게 여긴 여러 선비들이 한시를 숭상하는 풍습을 다시 일으키고자 연성음사(蓮城吟社)를 설립하였다. 1921년 5월 이운근(李雲根)이 청년과 나이든 선비 10여 명을 모아 시모임을...
-
1774년 강세황이 경기도 안산의 뛰어난 절경 8곳을 노래한 한시. 조선 후기의 가장 뛰어난 문인화가 중 한 사람인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윈 뒤에 궁색한 서울 살림을 접고 32세 때에 처가가 있는 안산(安山)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61세라는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오를 때까지 궁핍 속에서 학문과 서화에 전념하였는데, 이때...
-
조선 후기 김희성이 경기도 안산 원당사 계곡에 띠집을 짓고 살면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김희성(金喜誠)[1722~1791]의 본관은 전주, 자는 중익(仲益), 호는 불염자(不染子)·불염재(不染齋)이다. 본명은 김희겸(金喜謙)이다. 전주김씨는 주로 함경도 일대에 집단으로 거주한 씨족인데, 조선 후기에 와서 어떤 경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파가 서울로 이주하여 수많은 여항시인을 배...
-
조선 후기 경기도 안산 출신의 김진표가 지은 한시. 김진표(金震標)[1614~1671]의 자호(自號)는 동애(東厓), 오애(梧厓), 동리(東籬) 등으로 사용되었다. 김진호의 증조부 김여물(金汝岉)[1548~1592]은 임진왜란 당시 충주의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며, 조부는 인조반정의 1등 원훈(元勳)으로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낸 북저(北渚) 김류이다. 아버지 김경징(金慶徵)[15...
-
삼국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안산이 사료에 처음으로 나타난 때는 삼국시대이다. 삼국시대에 안산은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남하 정책을 펴 한강 이남까지 점령하면서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때 안산을 고구려 지명으로 장항구현(獐項口縣)이라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에 “장구군은 본래 고구려의 장항구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개명한...
-
1928년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연성음사에서 펴낸 『연성음사제1회집』에 실려 있는 김창수의 한시. 1920년대 후반 연성음사(蓮城吟社)라는 문인 단체에서 전국 규모의 백일장을 개최했는데, 시제(詩題)는 안산을 상징하는 꽃인 중국 항주산(杭州産) 연꽃인 ‘전당홍(錢塘紅)’이었고 압운(押韻)은 ‘당(塘)’자였다. 주최 측은 당시 입선한 작품들을 모아, 『연성음사제일회집(蓮城吟社...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형중(亨仲). 할아버지는 통사랑 최정언(崔挺彦), 아버지는 최두(崔㞳), 어머니는 여주이씨(驪州李氏)로 부사직 이상공(李尙恭)의 딸이다. 최극태는 1672년(현종 13) 29세의 나이에 무과 별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그 뒤 숙종이 즉위한 1674년에 왕의 시위, 전령, 부신(符信)의 출납을 맡아보던 선전관이 되었다. 1675년(숙종...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여형(汝亨). 할아버지는 통사랑 최정언(崔挺彦), 아버지는 최두(崔㞳), 어머니는 여주이씨(驪州李氏)로 부사직 이상공(李尙恭)의 딸이다. 동생이 전라좌수사를 지낸 최극태(崔克泰)이다. 최선태는 1666년(현종 7) 선전관을 지내고 삼조(三曹)의 좌랑, 오위도총부도사, 오위도총부경력, 오위도총부부정, 내금위장 등을 지냈다. 외직으로 재령...
-
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삭녕(朔寧). 자(字)는 길보(吉甫) 또는 덕응(德膺).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최정서(崔廷瑞)이다. 형이 최인유(崔仁裕)이고 조카가 최경(崔炅)이다. 최인우(崔仁祐)는 1741년(영조 17) 31세에 식년시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안산에 머물렀다. 함께 교유한 이용휴(李用休), 이광환(李匡煥), 유경종(柳慶種), 강세...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字)는 탁이(卓爾). 할아버지는 최홍부(崔弘溥), 아버지는 최간이다. 최정해는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었으나 선조들이 문과에 낙방한 것을 보고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2월 청나라 태종을 황제로 추대하기 위해 조선의 동의를 구하는 청과 몽골의 사신들이 한양에 들어오자 조야에서 화의(和議)를 배격하고 사신들을 참하...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덕원(德遠), 호는 고산(孤山). 할아버지는 최혼(崔渾), 아버지는 부제학 최홍도(崔弘渡), 어머니는 영일정씨(迎日鄭氏)로 정유침(鄭惟沈)의 딸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누이, 처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숭조(尹崇祖)의 딸이다. 자호(自號)인 고산은 일시 머물러 살았던 황해도 해주에 있는 명산의 이름이다. 외숙인 송강...
-
조선 전기 안산에 정착한 입향조이자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태호(太浩), 호는 독선당(獨善堂). 할아버지는 최담(崔潭), 아버지는 부사직 최자준(崔自濬), 어머니는 이윤종(李胤宗)의 딸, 처는 철원최씨(鐵原崔氏)로 최승진(崔承溍)의 딸이다. 양주최씨(楊州崔氏)의 시조는 고려 공민왕 때 학행(學行)으로 양주군(楊州君)에 봉해지고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받은 청계 최억(崔億...
-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경제(景濟), 호는 구포(鷗浦).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최자준(崔自濬), 아버지는 최황(崔滉), 어머니는 철원최씨(鐵原崔氏)로 최승진(崔承溍)의 딸, 처는 영일정씨(迎日鄭氏)로 정유침(鄭惟沈)의 딸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누이이다. 자호 구포는 당시의 경기도 광주의 반월방(半月坊) 사리(四里)[현 안산시 상록구 사...
-
1908년 유원성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매미골로 낙향한 이후 지은 한시.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근대 인물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명(周鳴)이며, 유명천(柳命天)의 6세손이다. 1874년(고종 11) 사마시에 급제하여 평리원검사와 개천군수를 지냈다. 평리원검사 시절 이준(李儁)[1858~1907] 열사와 함태영(咸台永) 전 부통령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
1908년 전후 유원성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의 매미골로 낙향한 이후 지은 한시. 유원성(柳遠聲)[1851~1945]은 근대 인물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주명(周鳴)이며, 유명천(柳命天)의 6세손이다. 1874년(고종 11) 사마시에 급제하여 평리원검사와 개천군수를 지냈다. 평리원검사 시절 이준(李儁)[1858~1907] 열사와 함태영(咸台永) 전 부통령과 함께 활동하...
-
조선 후기 이병연이 안산현감으로 재직 중 바닷가 어민들의 모습을 묘사한 한시. 이병연(李秉淵)[1671~1751]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일원(一源), 호는 사천 또는 백악하(白嶽下)이다. 김창흡(金昌翕)의 문인이며, 벼슬은 음보로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영조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졌는데, 문인 김익겸(金益謙)이 그의 시초(詩抄) 한 권을 가지고 중...
-
조선 후기 이광려가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은거하고 있던 강세황의 청아한 삶을 노래한 오언율시의 한시. 이광려(李匡呂)[1720~1783]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재 (聖載), 호는 월암(月巖) 또는 칠탄(七灘)이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학행이 높아 천거를 받아서 참봉이 되었다. 학식과 덕행이 높고 문장이 뛰어나 당시 사림의 제1인자였다고 한다. 강세황(...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조선 전기 무신이었던 병조좌랑 하효명(河孝明), 어머니는 절제사 승한(承翰)의 딸이다. 후손으로는 아들 하징(河澄)과 하팽로(河彭老), 하원로(河元老), 하충로(河忠老), 하인로(河仁老) 등 4명의 손자를 두었다. 맏형 하맹순(河孟洵)이 후사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장남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복산은 세조조에 선전관(宣傳官)으로서...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창주(滄州). 할아버지는 하효명(河孝明), 아버지는 인동현감 하복산(河福山), 어머니는 회덕황씨(懷德黃氏)이다. 아들로 하팽로(河彭老), 하원로(河元老), 하충로(河忠老), 하인로(河仁老) 등 4형제를 두었다. 장남 하팽로는 중종 때 정국공신 1등이 되었으나 과거시험에 낙제한 이후 과거에 응시하지 않자 왕이 이 사실을 알고 한탄하였다고...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개성부윤 이존성(李存性)의 딸이다. 하효명은 세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433년 7월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경복궁 근정전 추녀머리가 비로 인해서 무너져 내리자 세종은 대신들에게 보수를 명하였고 하효명은 별좌(別坐)에 임명되어 그 책임을 다하였다. 그 뒤 사...
-
고려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 홍균비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고려 후기 삼별초의 대몽항쟁 시기에 남양(南陽)[현 경기도 안산 지역]에 살았던 인물이다. 1270년(고려 원종 11) 5월 임유무(林惟茂)가 제거되면서 100여 년간 이어져 왔던 무인정권은 막을 내리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왕정복고와 더불어 몽고와 강화(講和)가 이뤄져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하지만 삼별초가 이에...
-
고려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 홍택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고려 후기 삼별초의 대몽항쟁 시기에 남양(南陽)[현 경기도 안산 지역]에 살았던 인물이다. 1270년(고려 원종 11) 5월 임유무(林惟茂)가 제거되면서 100여 년간 이어져 왔던 무인정권은 막을 내리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왕정복고와 더불어 몽고와 강화(講和)가 이뤄져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하지만 삼별초가 이에...
-
조선 후기 이익이 경기도 안산 화포에 은거하며 지은 17수의 한시. 화포(花浦)는 옛날의 성곶(聲串), 곧 오늘날의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이다. 칠언절구인 「화포잡영17수(花浦雜詠十七首)」는 문예미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권4에 실려 있다. - 제1수- 야우번분옥사림(夜雨翻盆沃四林)[밤비 억수로 내려 온 숲을 살찌우고] 조래제색희난금(朝來霽色喜難禁)[아침...